<월간 한국발전 리뷰> 2004.12월호(137호) 게재:
“한나라당은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되새겨라”
李東馥 [15대 국회의원/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I.
필자는 지난 11월3일 한나라당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요청을 받았다. 한나라당이 이튿날인 11월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해찬 국무총리 파면 촉구대회’를 열 예정인 데 여기에 참석하여 ‘규탄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당원이 아님은 물론 정치권 밖에 있는 필자에게는 황당한 얘기였다. 필자는 정중하게 이 요청을 사절했다. 사절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규탄사’에 배정해 준다는 7-8분을 가지고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고 둘째로는 “이번에 이해찬 총리의 막말 문제를 문제 삼아 한나라당이 뽑은 칼이 진짜 칼인지 아니면 종이 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이 칼이 종이 칼이라면 여기에 덩달아 춤춘 사람만 우스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앞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 무렵 한나라당 안에서 수용론이 일고 있는 ‘양비론(兩非論)’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이때의 ‘양비론’이란 문제의 ‘막말’ 논란의 당사자인 이해찬 총리가 던진 것으로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좌파 정권’ 시비에 대해 사과하면 내가 한 말에 대해서도 사과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뇌리에는 며칠 전 KBS 토요 심야토론에 출연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공공연하게 문제의 ‘양비론’을 수용하는 발언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필자는 “아, 이 기회에 이 ‘양비론’의 부당성에 대하여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얘기해 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한나라당에 다시 전화하여 다음 날 행사에 나가서 ‘규탄사’를 하겠다고 통고했다.
다음 날 문제의 한나라당 집회에서 필자는 문제의 ‘규탄사’ 발언의 기회를 빌어 문제의 ‘양비론’의 부당성에 대해 얘기했다. 필자의 논지는 요약하면 간단한 것이었다. 이 총리의 한나라당에 대한 막말과 노 정권에 대한 한나라당의 ‘좌파정권’ 시비 사이에는 서로 사과를 주고받아야 할 교환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라는 치명적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과오에 대해서는 그 동안 삼중(三重)의 ‘세탁’이 이루어졌다. 첫째로는 혹독한 여론의 심판이 있었다. 둘째로는 사직당국에 의한 사법처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4.15 총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이 있었다. 4.15 총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차떼기당’인 한나라당에게 원내 다수당으로부터 소수당으로 전락시키는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차떼기’의 과오가 있었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국리민복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에게도 299개 국회의석 가운데 개헌저지선을 충족시키는 121석 정도의 지분은 허용해야 한다는 ‘황금의 분할’을 해 주었다. 한나라당이 명실겸전하게 개과천선했느냐의 여부에 대한 판단은 ‘미래의 몫’으로 남겨져 있지만 문제의 ‘차떼기’ 시비는 이상의 ‘삼중의 세탁’을 통해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일단 ‘과거의 일’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행정부의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문제의 ‘차떼기’ 시비를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가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좌파정권’ 시비는 아직도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몫’이다. 노 정권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국내적으로 국민의 60%가 ‘좌파정권’으로 생각하고 있고 해외 언론과 학계에서도 그렇게 분류하고 있으며 더구나 북한이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한국정권, 그리고 특히 노 정권을 가리켜 ‘친공연북 정권’이라고 공공연하게 단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 정권이 과연 ‘좌파정권’이냐, 아니냐를 가리기 위해서는 노 정권의 인적 구성, 지지 기반, 정책 노선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검증’해야 하고 이 같은 ‘검증’은 끝이 나지 않은 것은 물론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은 ‘미래의 사안’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하여 문제의 ‘차떼기’ 시비에 대한 사과와의 교환조건으로 노 정권의 ‘좌파’ 성향 의혹에 대한 ‘면죄부’를 미리 발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엄연한 현실은, 정체성 문제에 관한 한 이 나라 보수ㆍ우익세력의 시각으로는 한나라당 자체가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만약 한나라당이 이번에 문제의 ‘양비론’을 수용하여 객관성이 있는 ‘검증’ 절차 없이 노 정권의 ‘좌파’ 성향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발급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한다면 이 나라 보수ㆍ우익세력은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이 11월4일 한나라당 행사에서 필자가 한 ‘규탄사’의 골자였다.
II.
지난 11월2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는 사실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한나라당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전 선거기간을 통해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공세에 선 반면 재선을 노리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는 시종일관 수세를 면치 못한 선거였다. 공정하게 말해서 3회의 대통령후보 간 TV 토론과 1회의 부통령후보 간 TV 토론의 승자는 모두 민주당 쪽이었다. 거의 모든 선거이슈에서 케리 후보가 부시 후보를 몰아세웠었고 투표 당일 ‘출구조사’(exit poll) 때까지는 케리 후보의 우세가 점쳐졌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비단 선거인단 수에서 필요한 과반수 270명보다 16명이 많은 286명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득표면에서도 전체 투표자 가운데 51%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의 케리 후보를 3% 표차로 압도하는 이변을 연출해 냈다. 동시에 실시된 상ㆍ하 양원도 공화당 페이스였다. 공화:민주 의석분포는 상원에서는 51:48에서 55:44(나머지 1석은 제3당)로, 하원에서는 223:210에서 230:201로 의석차가 확대되었다.
이 같은 이변을 연출시킨 저력은 단 하나였다. ‘들 토끼’들을 쫓지 않고 ‘집 토끼’들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결과였다. CNN 방송은 “선거직후 출구조사에 의하면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의 79%가 부시에게 투표한 반면 18%만이 케리에게 투표했다”고 분석했다. 매주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60%가 부시를 찍었으며 유권자의 21%가 투표할 때 도덕적 가치를 선택의 척도로 고려했는데 그 가운데 78%가 부시에게 투표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CNN 출구조사 응답자의 55%가 “케리는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확고한 신념과 지도력의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것이다. 칼 로브가 총지휘한 부시의 선거전략은 ‘중간지대’를 가지고 다투는 데 정력을 허비함이 없이 ‘도덕적 가치’와 ‘지도력’을 부각시켜 본래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공략함으로써 이들의 일방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과 함께 이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내몲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출구조사에 의하면 (괄호 안은 케리 지지율) 부시는 남자 투표자의 52%(48%), 백인 투표자의 55%(45%), 보수성향 투표자의 82%(18%), 남부 거주 투표자의 54%(46%), 60세 이상 투표자의 51%(49%), 연수입 10만 달러 이상 투표자의 55%(45%), 개신교도의 55%(45%), 군복무 경험자의 55%(45%)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 투표자들이 본 부시의 경쟁력은 ‘강력한 지도력’(85%), ‘쟁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75%), ‘테러 대처 능력’(85%), ‘도덕적 가치 수호’(78%)에 있었다. 위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부시의 승리 요인은 ①유권자들을 지리적ㆍ사회적ㆍ문화적으로 편을 가르고 ②‘도덕적 소수’를 각성시켜 선거전을 ‘도덕적 가치관의 싸움’으로 변질시켰으며 ③테러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자신은 ‘총사령관’으로 케리는 ‘허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III.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결과와 한나라당 사이에 무슨 함수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 간에는 절대적 함수관계가 있다.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이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이 보여준 선거전략과는 정반대로 ‘집 토끼’들은 방치하고 소외시킨 채 직접 ‘중간지대’의 ‘들 토끼’들을 쫓는 데만 허둥지둥 정력을 소모한 끝에 패배의 고배를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한나라당의 ‘집 토끼’들은 누구인가? 보수ㆍ우익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 나라의 보수ㆍ우익세력은 1945년 해방 후 이 땅에서 좌익세력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건국했으며 6.25 전란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전후복구에 그치지 않고 적화통일의 야심을 버리지 않는 북한으로부터의 다양하고도 집요한 간접침략 책동을 물리치면서 경제적 산업화를 이룩함으로써 낙후된 후진국에 불과했던 이 나라를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세력이다.
지난 5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 내용은 이 나라의 현대사를 크게 왜곡시키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보수세력을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에 대한민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진행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엄청난 변화는 보수ㆍ우익세력이 이룩한 것이었다. 이른바 진보ㆍ좌익세력은 이 같은 근대화ㆍ산업화의 방해세력에 불과했었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의 근대화ㆍ산업화 과정에서, 어쩌면 불가피하게, 권위주의 체제가 등장했고 그 결과 민주화라는 값비싼 정치적ㆍ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만든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 같은 불행한 일들이 56년간의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의 흐름으로 본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장의 차원에서, 산업화와 근대화의 차원에서, 그리고 국부(國富)와 국력의 축적 및 국민복지의 신장의 차원에서 그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발전과 성취는 5천년 민족역사를 통해 가장 자랑스러운 찬연한 ‘성공의 신화(神話)’였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북ㆍ좌익세력들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2002년의 16대 대통령선거와 열린우리당을 원내다수당의 위치로 밀어올린 금년 4월15일의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거둔 승리가 불안한 ‘절반의 승리’에 불과했다고 보고 오로지 오는 2007년의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의 재창출에 성공함으로써 나머지 ‘절반의 승리’를 마저 확보하기 위한 정치공작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하여 이들은 그 동안 전개된 대한민국 역사의 ‘전체’가 아닌 ‘부분’을 가지고 ‘자학사관(自虐史觀)’을 조작하여 청ㆍ소년들을 오도하여 그들의 부모 및 조부모 세대로부터 이간시키며,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공조’론에 편승하여 ‘친미’와 ‘반미’의 2분법적 ‘편 가르기’로 국민을 양분하고, 국가조직 전반에 걸쳐 ‘좌경ㆍ친북’ 성향 인맥으로 형성되는 ‘비선조직’을 깔아 공조직을 형해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나라야 산으로 가든지 바다로 가든지 아랑곳함이 없이 다만 전형적 좌파식 정치공작적 방법으로 “세상을 뒤엎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이 같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공작은 지금 국회에서 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있는 ‘4대 쟁점법안’ 입법 강행 기도의 형태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 하에서 한나라당의 역사적 소명은 스스로 자명해 진다. 그 것은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이어야 할 ‘집 토끼’들, 즉 이 나라의 보수ㆍ우익세력의 지지를 다시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이 계승해야 할 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업적의 주역이었던 이 나라 보수ㆍ우익세력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역사적 소명을 부정ㆍ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숙명적 운명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은 지금 당내의 ‘양비론’에 의하여 교란당하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바로 이 ‘양비론’자들은 “표밭을 쫓아가야 한다”는 천민(賤民)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하여 한편으로는 보수ㆍ우익세력의 지지를 ‘당연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ㆍ우익세력을 ‘기피’의 대상으로 삼는 ‘이중성격자’의 행태를 보여준다.
이들은 이 나라 유권자들의 이념적 성향을 ‘진보 3할ㆍ보수 3할ㆍ중도 4할’이라는 ‘신화(神話)’에 입각하여 보수ㆍ우익세력과의 ‘거리’ 유지를 전제로 소위 ‘중도 4할’의 표밭에서 열린우리당과 각축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백전백패(百戰百敗)’의 ‘전략’일 뿐이다. 왜냐 하면 열린우리당은 이미 이른바 ‘진보 3할’의 표밭을 확실할 뿐 아니라 열광적인 지지기반으로 평정해 놓은 바탕 위에서 문제의 ‘중도 4할’의 표밭을 공략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소위 ‘보수 3할’이 한나라당을 불신하고 심지어는 그 같은 불신 때문에 ‘대안(代案)’의 필요성마저 거론되는 상황 속에서 ‘중도 4할’을 가지고 열린우리당과 다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보 3할ㆍ보수 3할ㆍ중도 4할’의 ‘신화’도 하나의 ‘가공적 허구’일 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상처 받고 좌절감에 빠져서 분노하면서도 구심점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집 토끼’들, 즉 이 나라 보수ㆍ우익세력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주역이 되어 이룩해 놓은 대한민국의 서사시(敍事詩)를 지켜내기 위한 ‘성전(聖戰)’에 뛰쳐나오도록 하는 것 이상의 확실한 전승(戰勝) 전략이 없다는 것을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의 부시의 승전보(勝戰譜)가 보여 주었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명심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과연 이 같은 확실한 승리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여부는 한나라당이 지금 국회에서 결전(決戰) 전야에 있는 ‘4대 쟁점법안’ 저지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해 내느냐의 여부에 걸려 있다고 보아 틀림없어 보인다. [끝]
“한나라당은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되새겨라”
-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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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30, 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