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용기


케네디가의 자랑, 존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형은 대통령 재직 중에 암살 당했고, 동생은 대통령을 눈앞에 두고 암살 당했다. 왜 그랬을까?

형제는 용감했다. 불의를 참지 못했고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악한 인간 세상에 두기엔 너무 아까워 운명의 여신이 그들을 아름다운 나라로 일찍 데려갔는지 모른다.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미국의 배꼽을 겨누는 핵미사일을 쿠바에 모셔 놓겠다고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이 그 헤프던 웃음을 싹 거두고 서릿발같이 정색함으로써 북극곰이 스스로 꼬리를 말게 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해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에 못지 않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동생 로버트 케네디의 용기다.
1956년에서 1958년까지 로버트 케네디는 상원 특별위원회의 수석 고문으로서 부정부패를 철저히 파헤쳤다. 이 보고서가 「내부의 적(The Enemy Within)-양승규 역」이란 책이다. 어떤 부정부패?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의 부정부패였다.

당시에 트럭운송조합의 노동위원장이었던 데이브 베크를 중심으로 지미 호퍼 등 노동조합 간부들은 정치인과 결탁하여 엄청난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일반 국민들에게 '천사의 집단' 내지 '어린 양들의 울타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의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치외법권의 위치에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갖은 협박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양의 얼굴을 한 이리의 검은 심보'를 있는 그대로 밝은 햇빛 아래 드러냈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돌보지 않고 조직 폭력배의 수중에 들어간 핵 폭탄의 뇌관에 감히 다가가서 삼엄한 경계망을 치고 있는 조폭들을 한 놈 한 놈 정의의 철권으로 모조리 때려 눕히고 그 뇌관을 제거한 것이다. 위기일발의 미국을 구한 것이다.

노조 마피아 두목들과 그들의 일개 하수인으로 전락한 정치인들이 기겁을 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독화살을 로버트 케네디에게 겨누고 최후 통첩을 했다.
'아그야, 애송이야, 그만 까불어라. 만약 네놈이 그 보고서를 세상에 내놓으면, 네 형은 절대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다. 밤하늘의 별과 같이 숱한 우리 노조의 반짝이는 표를 공화당에 던지고 때로는 꾀꼬리 목소리로, 때로는 천둥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벌벌 떨게 만드는 저 '위대한' 정치인들의 현란한 말씀으로 네 형을 물 먹이면 네놈의 형은 끈 떨어진 연처럼 가련한 신세가 될 것이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라.'

로버트 케네디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형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아도 좋다. 이런 신종 권력형 비리의 덫에 갇히면 미국은 한갓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니까. 설령 우리 형이 백악관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이 거대한 비리가 척결되면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 제일의 국가로 창창할 것이니까. 나는 자랑스런 우리 케네디가를 욕되게 할 수 없다. 사탄아, 물러가라!'

사회적 약자인 소수 민족, 가난뱅이, 노동자, 여성들의 표에 의존하고 있던 존 케네디였지만, 동생 로버트의 용기를 꺾지 않았다. 그 아우에 그 형이었다. 불의는 덮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님을, 국가 권력의 일부와 결탁한 불의의 세력이 으르는 협박에 주춤주춤 물러서다 보면 머잖아 국가 권력도 어찌할 수 없는 집단이, 무엇이든 삼켜 버리는 블랙홀같이 무시무시한 검은 집단이 생겨난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온통 과거 비리 캐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1987년 그 누구의 협박도 없이 공정하게 대통령 선거를 치른 이래 무려 17년을 이러고 있다. 최소한 앞으로 3년을 더 그런다나. 그것은 5년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이 정의의 탈을 쓰고 권력의 칼날을 시퍼렇게 갈려는 굿판일 뿐이다. 이미 파헤친 것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기를 무려 네 번째 되풀이하고 있으니까.

현존하는 거대한 비리의 온상은 따로 있다.
그것은 운동권 학생들의 비리와 시민단체의 비리와 노조의 비리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아득히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
학생회비를 따로 걷어 쓴 것, 학교의 수익 사업을 가로챈 것--이걸 감히 누가 파헤칠 수 있을까.
스스로 회비를 내는 일은 거의 없고, 정부와 기업, 시민들로부터 받은 돈들을 과연 어디에 어떻게 썼을까. 이들이 기업에 대해 분식 회계를 얘기하고 지배구조를 떠들고 투명성을 소리 높여 외친다고? 정치 세력과 결탁된 이들의 검은 장부에 감히 누가 손댈 수 있을까.
일반 노동자와는 별천지에 살면서 세상 정의는 온통 독점하고 있는 노조 간부들의 비리를, 정치 놀음에 신선 놀음에 신바람 난 그들의 비리를 감히 누가 손댈 수 있을까.
이 세 집단의 얼키고 설킨 조직적 비리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손을 못 댄다. 그들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KBS와 MBC는 말할 것도 없고, 권력과 위태위태한 대립각을 세우며 '바른 말 고운 말'을 애오라지 고수하는 조선과 동아도 꼼짝 못한다.

서양의 중세에 세속 권력의 옥좌에 앉은 왕도 거룩한 교황과 사제들은 조사하기는커녕 그들에게 감히 의심의 눈초리 한 번, 뼈 있는 농담 한 마디 못 던진 것과 흡사하다. 그런 치외법권의 지상낙원에서 종교 지도자는 타락할 대로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의 핵 공갈 미사일 협박에 36계 줄행랑 마음은 이미 부산의 태종대까지 물러가고, '386 참여 부대들'의 1년 365일 줄기찬 '분배 타령'에 되려 풀뿌리들이 꽹과리 대신 솥 단지를 들고 와서 깨갱깨갱 두드리는 나라에, 존 같은 대통령이 있다면, 당당히 영변의 지하 동굴과 평양의 주석궁과 백두산의 철봉각을 도려낼 '영리한 폭탄'을 설치한다면; 여든 야든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 있다면, 로버트 같은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진실의 횃불을 단단히 움켜잡고서 검은 동굴 속의 어둠을 하나하나 비춘다면, 설령 그들이 붉은 가슴에 검은 화살을 맞더라도, 그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논두렁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가로수에는 꾀꼬리와 파랑새가 노래하고 춤추는 나라로 탈바꿈할 것이다. (200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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