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얻지 못한 자유와 풍요


대한민국의 자랑을 두 개만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자유와 풍요를 꼽겠다.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웃을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는 과히 세계적이다. 40년 전의 극빈국에서 세계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풍요도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 자유와 풍요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지식층 스스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왜 그럴까.

복권에 당첨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잃기 쉽다. 많으면 많을수록 잃기 쉽다. 거기 '나'의 땀이 배어 있지 않은 탓에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공짜로 무한히 주어지는 공기에 고마움을 표하기는 어렵다. 타고 날 때부터 어디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염시키기도 쉽다. 오염된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안다. 피 흘려 얻지 못한 자유도 소중함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길 따름이다.

불란서의 자유는 100년의 투쟁과 혼란을 겪은 후에야, 세느강을 100년간 붉게 물들인 후에야 비로소 얻은 것이다. 그 후에도 독일과의 두 번에 걸친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간신히 지킨 자유이다. 미국의 자유는 유럽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대한 대서양을 쪽배를 타고 건너간 후 어제의 모국인 영국과 처절한 전쟁을 통해 얻은 자유이다. 다시 100년 후 내전으로 총인구 3천만명 중 무려 60만을 희생하고서야 지켜진 자유이다. 그래서 불란서와 미국은 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자유를 제한하려는 자들에게는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언제든지 쌍권총을 뽑아 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의 자유에 대해서는 엄청난 착각들을 하고 있다. 그것은 미안한 말씀이지만 독재에 맞서 싸워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큰 자유 안에서의 지극히 작은 자유일 뿐이다. 그래서 스스로 얻은 작은 자유는 얼마나 소중한 줄 알지만, 스스로 얻지 못한 자유는 얼마나 크고 소중한 줄 모르고 그것이 또한 얼마나 허약한지 모른다.

일제의 칼을 우리 목에서 벗겨 준 것은 독립 전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대한민국에 공짜로 선물한 것이다. 불로소득을 얻은 소련이 준 것도 절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북한 땅에도 찾아올 뻔한 자유를 앗아갔을 따름이다. 우리 힘으로 일제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100년의 긴 세월과 최소한 1000만 명 이상의 죽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자유가, 공짜로 얻은 크나큰 자유가 외세를 빈 동족에 의해 풍전등화 신세가 되었을 때, 300만의 원혼이 필요했다. 원혼에 무슨 차별이 있을까만, 자유의 대지를 일군 결정적인 종자는 이름도 모르는 가난한 작은 나라로 만리타국에서 건너온 3만5천에 이르는 자유의 씨앗이었다. 그 후에도 3만7천 명의 '허수아비' 아닌 '허수아비' 곧 미군이 눈을 부라림으로써 지켜진 자유이다.

6·25를 겪은 세대는, 피 흘려 자유를 지킨 세대는 자유의 소중함을 처절히 깨달았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그것을 모른다. 왜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가. 그것은 피 흘린 세대도 주역(主役)을 담당한 게 아니라 조역(助役)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짓밟으려 온 북괴군을 우리 힘으로 격퇴하고 내친 김에 우리가 '양키'를 용병으로 거느리고 치올라가 통일을 성취했다면, 너무도 자랑스러워 그 피 흘림을 그들 자유의 전사 본인의 영혼에만 아니라 그 후손의 영혼에도 깊이 각인시켜 두었을 것이 틀림없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럴 힘이 도무지 없었다.

당연히 현재 우리가 거의 무한대로 누리는 자유가 실은 얼마나 허약한 줄 모른다.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당장 미군이 몽땅 철수하면, 우리의 군대로는 전혀 자유를 지키지 못한다. 물리적 군사력도 군사력이지만, 정보의 90% 이상을 미군에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그들이 '자주적인 대한민국'이 원하는 대로 일시에 빠져나간다면, 우리는 즉시 눈과 귀와 코가 막힌 '하얀 코끼리' 신세가 된다.

2300만 명의 동족을 거지나 노예로 만든 야수들이 피둥피둥한 하얀 코끼리를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정보의 까막눈이 된 대한민국은 저들이 무슨 일을 꾸며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달콤한 말에 속절없이 넘어간다. 어느 날 한밤중에 야수들은 경비가 없는 주지육림의 거대한 성을 넘어 도둑같이 들이닥칠 것이다. 멋모르고 민족공조의 노래에 장단을 맞춰 주던 자들부터 그 목에 칼을 씌울 것이다. 당장 강제수용소에 끌고 갈 것이다. 미군이 없었으면 지금쯤 강제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고 한 '노빠'의 말은 정확한 말이다. 북한에서는 민주화 투쟁은 감히 상상도 못한다.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진을 구겨도 강제수용소에 가는 나라니까. 보위부와 안전성과 인민군이 전 인민을 물샐틈없이 통제하고 있으니까.

한국의 민주투사들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선거 제도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권력의 소중함은 알지만, 미국의 안보 우산 안에서 누리는 작은 자유의 소중함은 알지만, 미국이 주었고 지금도 미국이 지켜주고 있는 큰 자유의 소중함은 모른다. 도리어 그것을 간섭으로 생각한다. 민족공조와 평화통일이라는 몇 마디 말로써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풍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풍요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세 명의 군인 출신 대통령 때 일군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와이에서 모피를 팔고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아, 월남에서 피를 팔고 중동에서 땀을 팔아 불철주야 너나 없이 아귀같이 벌어들인 것이다. 그 후로는 가만 내버려두는 것보다 훨씬 못한 정책을 펴서 계속해서 성장잠재력이 떨어졌다. 이 풍요도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스스로 땀을 흘려 번 것이 아니어서 그 소중함을 모른다. 저절로 된 줄 안다. 정경유착해서 얼렁뚱땅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줄 안다. 그것도 문제투성이일 뿐이라고, 그래서 외환위기가 온 것이라고 사정없이 폄하한다. 민주화만 되면, 자기들이 집권하면 절로 대한민국이 날개를 달고 훨훨 최선진국으로 날아갈 줄 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금융 선진화, 세계화와 지역화가 조화를 이룬 시장경제의 활성화, 불완전한 WTO를 보완하는 FTA의 체결 등으로 새 틀을 마련해야 함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일하게 국제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을 특히 잘 나가는 대기업을 온갖 구실로 과거의 비리를 캐내어 '때려잡기'에 골몰할 뿐이다. 줄기차게 대기업을 개혁하겠다고 무차별로 들쑤신 결과는 선진경제로의 비상이 아니라 후진경제로의 추락이다. 해외로의 대탈출을 조장했을 따름이다. 더 이상 국내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밖에 투자를 못하게 공포심을 심어 주었을 따름이다. 덩달아 대기업의 납품업체들이 줄줄이 깡통차고 국제시장에서 구걸하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그 결과 항산(恒産)이 없는 400여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을 따름이다. 실질 실업률 15%(삼성경제연구소)를 달성했을 따름이다.

경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겸손할 줄 모르고 전문가에게 맡길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을 아마추어의 애국심으로 도도한 의도와는 정반대로 국가 경제를 망가뜨리기만 한다. 경제를 전혀 몰랐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떻게 성장과 안정과 무역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사방으로 달아나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는지에 대해 추호도 배울 생각을 않는다. 그가 김재익 전 경제수석을 발탁하여 믿고 맡기고 부지런히 배운 겸손함을 이어받을 의사가 추호도 없다. 감옥에 가두고 경매에 붙이고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나오세요!' '나오세요!' 애타게 부를 뿐이다.

만약 한 방울이라도 땀을 흘려 치열한 국제 시장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국부를 늘린 게 있다면,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했다면, 과거비리 캐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일을 할 리가 없다. 밤이면 밤마다 하이드씨의 얼굴로 되돌아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 약점을 잡아 무차별로 사과상자와 007 가방을 동원하여 으슥한 골목이나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에서, 그랜저보다야 작지만 여러 대의 티코로, 돼지저금통을 운전대 앞에 하나 덩그렇게 실은 여러 대의 티코로 '푸른 종이'를 받아 싣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낮이면 낮마다 지킬 박사의 가면을 쓰고 정의를 부르짖는 가증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피 흘려 얻지 못한 자유, 내 힘으로 얻지 못한 자유--그것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땀 흘려 얻지 못한 풍요, 내 힘으로 얻지 못한 풍요--그것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다.
물처럼 공짜로 무한히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소중한 줄 모르는 자유, 소중한 줄 모르는 풍요--그것은 오래 갈 수가 없다. 행동의 자유뿐 아니라 말의 자유까지, 말의 자유뿐 아니라 생각의 자유까지 박탈당한 북한 주민처럼 그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실질 일인당 국민 소득이 100불에 지나지 않는, 대한민국에 비하면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화장실에서 쓸 신문지 한 조각 없는 북한 주민처럼 영락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는 미녀 응원단이 부끄러운 데 쓰려고 하얀 광목을 통크게 요구하는 그런 가여운 나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후에 가수 장나라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져서 음반 팔아 번 소득의 일부를 떼어 보송보송 '황홀한 일회용 광목'을 수백 만 개나 북한 여성들에게 기증했지만.

(2003. 11. 27.) (200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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