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내 남조선 비디오 붐의 파장




2003년말 金正日은 이런 요지의 지시문을 내려보냈다.
<요사이 남조선 비디오 1000여 개가 돌아다니고 이를 사고팔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엄중 단속할 것>

이 지시의 실효는 없었다. 단속해야 할 보위부, 당간부들이 바로 남한 드라마 비디오의 가장 중요한 수요자였기 때문에 단속은 대충 대충 진행되었다. 북한 지배층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외국어 대학교를 단속기관에서 급습하여 소지품 검사를 했더니 다수의 비디오가 발각되었다. 이들의 부모들을 조사하니 거의 전부가 당과 군의 간부들이었다. 김정일은 '이번만은 용서한다'면서 불문에 붙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퍼져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밤에 네 명의 탈북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남한 드라마 비디오를 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즐거운 추억처럼 털어놓았다. 세상이 갑자기 노랗게 보이고,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초라해지고(강냉이를 씹으면서 남한의 화려한 비디오를 보고 있으려니),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고, 그동안 남한 사람들이 참으로 일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민족도 저렇게 살고 있다니 하는 자부심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북한정권이 그동안 선전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구나 하는 결론이 내려지더란 것이다.

비디오의 확산은 시장경제의 확산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시장의 힘이 비디오의 확산을 가져왔다. 시장의 힘과 김정일 권력의 대결에서 김정일의 권력이 밀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디오를 1500원(1달러 정도)에 파는 사람, 비디오 녹화기를 3만 원에 파는 사람, 중국에서 비디오와 中古 플레이어를 사가지고 와서 돈을 버는 사람, 이 모든 것이 시장기능에 의해서 연결되고 확산되었다.

한 탈북자는 '배가 고파도 알고싶고 보고싶은 욕망은 약해지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비디오를 본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섹스를 하는 것처럼 짜릿하다'고 말했다. 요사이 북한 사람들은 남한으로 간 가족과 연락이 되면 가장 먼저 비디오를 보내달라고 한단다.

'피아노' '겨울연가' '가을동화' 등 비디오를 보면서 죽어 있던 감수성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다. 맨날 김정일 찬양 영화만 보다가 사랑과 情이 오고가는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고 가슴이 촉촉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성의 회복인 셈이다.
젊은이들은 비디오를 보면서 자조적인 농담도 한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이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어이 저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괜히 우리 속이려고 만든 거군. 전화선도 없는데 어떻게 전화가 걸리냐 말이야.'

한 탈북자의 장모는 골수 빨갱이였다. 그래도 하루에 두 시간씩 전기가 들어오면 '야, 빨리 남조선 비디오 틀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에 '봄날의 눈석이'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조총련과 함께 만든 것인데 거기서 잠시 도쿄 시내 거리의 차량행렬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이 어떻게나 신기한지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한국 드라마의 화려하고 애잔하고 우아한 장면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한 비디오를 안 보면 신식 인간이 아니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니 김정일이 이제는 이 흐름을 절대로 막을 수 없어요. 아마도 김정일은 비디오로 해서 망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정일은 市場으로 해서 망한다고 봐야 한다. 1995년 식량난이 닥치자 김정일은 군인들, 평양시민들, 지배 탄압기구 간부들 약500만 명한테만 식량배급을 보장하고 나머지 1600여만 명에게는 식량배급을 끊었다. 이로써 북한의 사회주의는 체제로서 붕괴되었다. 1600만 명 가운데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살아남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시장이 등장했고 주민들은 돈벌이에 나섰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사고 팔았다. 몸도 팔고 공장시설을 뜯어가 팔고, 박물관 수장품도 내다 팔고, 아이도 팔고, 심지어 인육도 팔았다. 이렇게 사고 파는 과정에 비디오 라디오 같은 정보 매체가 끼여들었다. 외부 정보가 비디오 라디오를 통해서 들어왔고, 이것이 북한주민들을 각성시키고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약화시켰다. 김정일은 배급을 포기하여 주민들을 굶겨죽인 代價로서 시장이란 호랑이를 키웠고 이 호랑이가 곧 김정일을 삼키고 말 것이다. 비디오는 그런 호랑이의 이빨쯤 될 것이다.

선전 선동의 귀재라는 김정일이 북한 주민들과 남한의 친북세력을 속여먹은 代價로서 한국의 대중매체에 의해서 그의 운명이 끝장난다면 이 또한 공평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무 잘 타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헤엄 잘 치는 사람은 물에서 죽고 선동 잘하는 자는 逆선전에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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