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의 왜곡-햇볕 정책의 허구


햇볕 정책의 근거가 되는 이솝 우화를 살펴보자.

바람과 해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외투 벗기기 내기를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나그네는 더욱 옷을 여미게 되어 끝내 바람은 실패한다. 바람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사라진다. 해가 방글방글 웃으며 따뜻한 볕을 쪼이자 나그네는 슬그머니 외투를 벗는다.

여기서 저 유명한 햇볕 정책이 나온다.
북한에게 반공 정책을 아무리 써 봤자 소용없다. 유화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면 저들도 슬그머니 문을 개방하게 될 것이고 문을 열고 서로 왕래하다 보면 머잖아 모든 오해가 풀리고 한 민족끼리 오순도순 살게 된다. 아주 멋진 이론이다. 거의 완벽한 이론이다.

그러나! 뭔가 속은 듯하다. 그 자체로는 논리가 빈틈이 없어서 뭐라고 반박은 못하겠지만, 뭔가 속은 듯하다.

그렇다! 속임수다. 우화를 왜곡한 것이다.
우화에는 바람과 해 그리고 나그네가 등장한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그 대상을 정확히 말해야 한다. 북한이 나그네인가? 한국이 바람인가? 해인가? 만약 북한이 나그네라면, 북한은 언제나 희생자의 입장에 있어야 한다. 방안에 가만히 있다가 밖에 나가려고 할 때마다 찬바람이 씽씽 불어서 외출을 못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그러면 한국이 북침을 해서 6·25가 발발했다는 말인가.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기 위해 박정희 독재 정권이 평화로운 북한에 무장 공비를 침투시켰는가. 북한의 여객기를 폭파시켰는가. 김일성 주석이 해외 순방에 나간 걸 틈타 폭탄 세례를 퍼부었던가. 잠수정을 침투시켜 함경도를 공포 분위기에 빠뜨렸는가. 꽃게잡이 어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영해로 쳐들어가서 이에 대해 말로써 경고하는 북한 전투함에 포격을 가했는가. 그것도 두 번에 걸쳐서! 무방비 상태의 북한의 참수리호에 포격을 가해 격침시켰는가. 북한이 월드컵 4강에 올라가서 평양의 능라도 경기장에서 세기의 축구 대첩을 벌이는 날에, 전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날에!

나그네는 언제나 한국이었다. 북풍에 대비해 난방을 하고 내복을 입고 두꺼운 동복을 입고 그것도 모자라 밖으로 나갈 때는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반공 정책이었다. 공산당의 무차별한 공격에 맞서 살기 위해 취한 최소한의 방어 정책이었다. 정당방위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햇볕 정책을 썼어야만 했다면,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이라는 외세를 빌어 남침을 했을 때 만세를 부르며, 그들을 맞이하고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아내가 죽고 아들이 죽고 딸이 죽고 강아지가 죽고 이웃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감사하다면서 눈물을 흘렸어야 했단 말인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에 쳐들어왔을 때 시민과 군인과 경찰이 그들을 호위해서 청와대로 모시고 가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총살시켰어야 했단 말인가. 다투어 중앙청 꼭대기엔 인공기를 꽂았어야 했단 말인가.

한국은 바람이었던 적이 없다. 언제나 나그네 신세였다. 북풍에 맞서 자꾸만 자꾸만 옷을 껴입고 땔감을 미리 준비한 것밖에 없다.

일제 시대에 일제에 맞서 싸운 사람은 바람인가. 나그네인가. 조선인이 바람이라면 일제에게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해가 되어 그들에게 햇볕을 쪼여야 했단 말인가. 천황 폐하 만세를 드높이 외치며 자진해서 입대하고 이국에서 고생하는 내지의 군인들을 위해서 꽃같은 처녀들이 부푼 가슴을 안고 전선으로 그들을 위로하러 가야 했단 말인가. 간악한 일본놈이 바람이지 조선인이 어찌하여 바람이 되는가.

조선인이 나그네로서 일제에 항거하고 그들을 증오한 것이 죄란 말인가. 햇볕은 일제가 쏘여야 했지, 왜 우리가 일제에게 햇볕 정책을 써야 했단 말인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쏴 죽인 것이 죄란 말인가.
유관순 누나가 독립만세를 부른 것이 죄란 말인가.
이순신 장군이 왜놈들을 보이는 족족 바다에 수장시킨 것이 죄란 말인가.
변학도에게 잡혀간 성춘향이 수청을 거부한 것이 죄란 말인가.

한국의 반공 정책을 비방하는 자들은 본말을 전도시키고 있다. 교묘한 논리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아니면 그들은 너무 순진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않고 그냥 바람, 햇볕이란 말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반공 정책은 어디까지나 북풍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책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때로 국내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이를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있다면, 북한이 망상을 품지 못하도록 안보를 튼튼히 한 상태에서 --그들이 미사일을 만들면 우리도 미사일을 만들고 그들이 1분에 자동으로 1만 발을 발사할 수 있는 방사포를 휴전선에 배치하면 우리도 그대로 하고(오해하지 말라. 우리가 먼저 하자는 말이 아니니까. 미군 핑계를 대지 말라. 물러난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자들이 바로 북한이다.) 잠수정을 침투시키면 우리도 잠수정을 대대적으로 건조하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소련을 붕괴시킨 레이건의 정책이었다. 서독도 통일 전 동독과 소련이 절대 허튼 생각을 못하도록 국내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그도 모자라서 NATO의 우산 아래 자체의 국방을 더욱 튼튼히 했었다.--
다시 말해 저들이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는 한, 국내 정치에는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반공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 채, 당근을 내미는 것이다. 독재자 김정일에게 바른 소리를 절대 못하는 6공화국 3기와 4기가 반공 정책을 국내 정치에 악용할 리가 없다. 오히려 색깔론을 희화화하며 권력의 비호 하에 정부의 홍보 매체로 전락한 방송을 적극 활용하여 역색깔론의 연막을 터뜨려 진실을 싹 가리고 교묘하게 친공 정책을 쓸 뿐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햇볕 정책을 계속 유지하게 되면 북한 정권이 아무리 무리수를 두더라도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까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 칼이 내 목을 슬쩍 한 번 그어야만 잽싸게 몸을 피하며 맨손으로 그와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동해안 잠수정 침투와 두 번에 걸친 서해안 교전을 생각해 보라.

만약 북한이 나그네라면 북한 정권은 한국 역대 정부의 반공 정책의 피해자인 만큼, 배가 고파 탈북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눈에 많이 띄어도 북한과 중국의 선처만 바라고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그네인 북한 정권은 아무 죄가 없기 때문이다.

햇볕 정책은 바로 이들 탈북자에게 써야 한다. 북한 정권이 바람이라면 탈북자야말로 바로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왜 나그네에게 햇볕을 비추지 않고 바람에게 햇볕을 쪼이려고 하는가.
햇볕 정책은 북한 주민에게 쪼여야 한다. 그들이 바로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우화는 이제 이렇게 적용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바람이고 한국 정부가 이제는 가련한 나그네 신세에서 에너지가 충만한 해로 변신했다면, 나그네는 이제 북한 주민이다. 같은 나그네 신세였던 한국 국민은 이제 정부가 해가 됨으로써 북한이 아무리 찬바람이 되어 발버둥을 쳐도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있다.

그러니 햇볕은 바로 이들 가련한 나그네 신세인 북한 주민에게 쪼여야 한다. 바람인 북한 정권과 내기를 해야 한다. 추워서 벌벌 떠는 나그네인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두터운 외투를 벗고 방글방글 웃을까. 너희가 지금까지 찬바람을 60년 동안 불어제쳤으나 아무 소용없으니, 이제는 우리가 햇볕을 쪼여 보자고, 누가 이기나 내기 해 보자고 해야 한다.

탈북자부터 우선해서 햇볕을 쪼여 주겠다고, 이들이 햇볕을 받고 나서 배시시 웃으면 너희가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 같이 북한 주민 전체에게 햇볕을 쪼이자고.
(2000. 1. 30.) (200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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