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주4.3사건’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 등 보수단체 주도로 4.3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세미나가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제주4.3사건의 성격>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4.3사건은 남로당이 전국적으로 전개한 2.7투쟁에서부터 비롯됐다”며 “2.7투쟁은 남로당이 UN결의에 따른 남한 지역 총선을 저지하기 위해 전개한 폭력투쟁”으로 규정했다.
양 교수는 남한 좌익세력들이 “1948년 2월7일부터 시위, 파업, 학교맹휴, 시설파괴, 경찰관서 습격 등 폭력투쟁을 전개했다”며 “남로당은 이 투쟁을 2.7구국투쟁이라고 불렀다. 2.7 투쟁은 전국적으로 2월 하순까지 전개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미군정이 5월10일 남한 총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자 남로당은 무장투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5.10선거를 방해하기로 했다. 이런 남로당의 결정에 따라 남로당 제주도의 5.10선거준비를 방해하기 위해 종전보다 더 격렬한 무장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러한 무장투쟁을 위해 1,500명(무장 500명, 비무장 1,000명) 규모의 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
양 교수는 이어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한라산 정상과 중턱의 89개 오름에서 봉화가 올랐다. 이 신호로 남로당원들이 지휘하는 무장 유격대원들이 사전에 정해진 표적들을 일제히 공격했다”며 제주4.3사건 당시 좌익세력들의 폭력투쟁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폭도(유격대원)들은 새벽부터 낮까지 경찰관과 그 가족, 우익애국인사들과 그 가족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4월3일 이후에도 폭도들은 게릴라전 방식으로 경찰관, 선거준비요원, 우익애국인사 등과 그 가족을 살해했다. 살해하는 방법은 잔인무도했다. 총으로만 사살한 것이 아니라, 톱으로 머리를 절단하고, 칼로 사지를 절단하고, 생매장하여 살해하고, 나이어린 소년 소녀와 임신부까지 살해했다. 임신한 경찰관 부인의 배를 갈라 살해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 경찰지서, 관공서, 우익인사 가옥, 교회당 등을 방화 파괴했다. 이러한 폭도들의 학살만행과 파괴활동은 선거일인 5월10일까지 계속되었다>
양 교수는 당시 사건 주동자들의 경우 “제주도 차원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한 공로로 4.3폭동 및 그 후의 무장 게릴라 활동을 지휘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들이 북한이 만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임되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폭동과 반란에 참여한 인사들의 영혼은 결코 국가가 위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4.3사건과 관련해서는 현재 수준의 위령제 정도가 타당하며, 국가지정 추념일로 기념한다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4.3사건희생자추념일 지정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제주4.3폭동이 反대한민국적 폭동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제주4.3폭동이 국군이나 경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인 것처럼 포장되는 이유는, 아직도 한국의 민주화세력 중에 4.3폭동과 그 정치적 궤를 같이하는 인민민주주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 이사장은 “대한민국의 탄생을 방해하기 위하여 일어난 폭동과 관련된 사람들을 대한민국 정부가 추념하게 되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자기부정으로 된다”며 이렇게 되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민중운동사로 쓰인 <한국사>의 현대사 부분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제주4.3폭동을 추념일로 지정한다고 해서 과거 사실이 은폐될 수는 없다”며 “어느 경우에나 추념일의 지정이 스스로 자기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이 되지 않을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양동안 교수와 안병직 이사장 외에 박희도 前 육군참모총장, 김영중 前 제주경찰서장, 현길언 前 한양대 교수,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한광덕 (예)육군소장 등 그동안 온-오프라인 상에서 제주4.3사건의 실체를 알려온 인사들이 참석했다.
정리/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