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29일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신영철, 판사 김태용, 박순관)는 金大中 전 대통령이 1980년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내란음모 등 사건에 대해서 재심을 청구한 데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선고했다.
<원심판결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을 파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내란음모와 계엄법 위반의 점은 각 무죄, 이 사건 공소사실중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의 점과 외국환관리법 위반의 점은 각 면소>
金大中 전 대통령은 재심청구의 이유를 세 개로 들었다. 첫째, 내란음모에 대하여 金피고인은 1980년 봄의 회동은 '순수한 민주회복을 위한 의사표시의 방법으로서 학생운동을 통하여 국민여론에 반영하도록 시도한 것에 불과하며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둘째, 계엄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金大中 피고인은 '계엄당국의 허가 없이 회동한 것은 사실이나 그런 집회는 사실상 묵인 내지 허용되고 있었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셋째,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金씨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는 대한민국 지지를 기본정책으로 내걸고서 조국의 민주회복과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결성된 단체이므로 결코 反국가단체가 아닐 뿐 아니라 나는 이 단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내란 음모, 계엄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전두환 등이 1979년12월12일 군사반란 이후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1981년1월24일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이다. 피고인의 행위는 이러한 헌정질서 파괴범행을 저지하여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므로 이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유지될 수 없다>
이 재판부는 그러나 金大中 피고인에게 적용되었던 국가보안법 등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우선 1995년 제정 5.18 특별법에 규정된 재심대상 판결 내용에 내란음모와 계엄법 위반은 들어가지만(헌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저지, 반대행위로 유죄를 받은 경우이므로) 국가보안법 위반은 재심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金大中 피고인에게 적용되었던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수괴 등 혐의), 반공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인정을 파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金피고인이 1987년7월10일자로 이 사건 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하고 피고인을 복권케 하는 특별사면을 받았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2호에 따라 이 부문에 대해서는 免訴(면소)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그 뒤 확정되었다. 金大中씨가 1980년 봄에 내란을 선동했다는 부분은 무죄가 되었으나 그가 국가보안법상의 反국가단체인 한민통에 가입한 사실은 무죄가 된 것이 아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판결에 의해서도 한민통이 국가보안법상의 反국가단체임이 여러 차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金大中씨는 反국가단체 결성 부분을 포함한 모든 범죄사실에 대한 선고를 실효케 하는 특별사면을 이미 받았으므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 부분에 대해서는 免訴, 즉 공소권이 없다는 선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재심선고로 인해 金大中 피고인에게 내려졌던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잘못된 것으로 확정되었으므로 한민통 가입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판결문을 왜곡하는 것이다. 金大中씨가, 북한정권이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해 설립추진한 한민통에 가입했었다는 사실은 이번 재심에도 불구하고 뒤집어지지 않았다. 작년, 한민통의 주요간부들이 해외 민주인사로 둔갑하여 한국에 들어와 金大中씨를 만난 적이 있다.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