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신체 해부용으로 사용되는 北 자살자

北, 자살 뒤에 따르는 두벌죽음
최근 세 모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잇따르고 있다. 30대 여성이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가 하면, 50대 부부가 연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 또한 40대 가장이 지체장애 아들딸을 데리고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을 선택하는 순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대답은 이미 죽음이 문턱을 넘어간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자실 뒤에 둘러싼 민심이다. 사람들은 자살의 원인을 정부의 잘못된 시책이나 복지제도의 책임으로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 보건복지부가 이런 현상이 생기기 않도록 대책을 내놓는 등 복지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복지제도가 제일 잘 되었다고 선전하는 북한에서 자살은 어떻게 취급되며, 그 뒤에 따르는 민심과 대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최근 정착한 탈북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자.

2013년 4월 북한을 탈출한 김일영씨의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는 자살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인민대중중심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살이 있을 수 없는 현상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식구 중 누가 자살을 해도 남은 가족들은 후과가 무서워 극비로 취급한다.

북한이 아무리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자살은 빈번히 생겨난다. 경제생활이 괜찮은 시기에도 남녀문제라든지 가정불화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살이 외부사람이 발견한 경우에는 소문도 나고 법적인 절차도 밟지만, 가족의 눈에 발견될 경우에는 소리 없이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이라고 법에서 인정되면 두벌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법의감정원에서 자살이라고 판정 나는 즉시 그 시체는 의학대학학생들의 신체 해부실험용이 되고, 자살자 가족들은 반항할 수 없다. 민족반역자의 시체는 가족들에게도 내어주지 않고 정권이 처리한다.

김씨는 2009년 무산에서 친구 여동생이 약을 먹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자살한 동생네 인민반장의 신고로 보안원이 문을 뜯고 들어와 자살을 인정했다. 즉시 시체는 법의감정원으로 실려갔고 5시간 후에 시병원으로 후송했다.

가족들은 딸의 시체가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자살이다 보니 누구를 붙잡고 알아보지도 못한다. 갑자기 소형버스가 오더니 의사복을 입은 열 명도 넘은 의대학생들이 부리나케 병원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이렇게 그는 자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죽음 때문에 죽어서도 실험용으로 두벌죽음을 당했다. 담당보안원이 다음 날 가족들에게 시체는 정부에서 처리했다고 하면서 자식을 잘못 두면 가족들 앞날에도 누가 되니 남을 자식들 교양을 잘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2012년에 남한에 정착한 혜산출신 김광철씨는 북한에서 살 때 당시 체험했던 작업반 동료의 가족자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2005년에 혜산청년광산 청년갱에서 일하던 친구가족이 눈 오는 저녁 집단자살을 했다. 자살한 친구는 제대군인 출신이다. 제대당시 고원이 고향인 그는 북한노동당의 방침에 따라 혜산광산에 무리배치되었다.

아들딸을 슬하에 두고 네 식구가 되면서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다. 배급과 월급이 없는 직장에서 하루만 결근해도 당위원회에서 찾고 당 생활총화에서 비판한다.

그는 배고파 우는 자식들을 보다 못해 아내와 토론하고 집안의 유일한 재산들을 싼 값에 내다 팔고 입쌀과 돼지고기를 샀다. 온 식구가 모여앉아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었다. 어쩌다 느끼는 배부른 행복도 맛보기 전에 그들은 쥐약을 먹고 가족동반자살을 했다.

광산보위부사람들과 보안원들이 무리지어 와서 집안을 검열하더니 모여든 동네사람들을 향해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광산사람들은 무서운 공포에 질려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고 아무런 말도 못했다.

자기 몸의 한부분과도 같은 어린자식들이 입에 쥐약을 넣어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정부에 대한 반항이었고, 배고픔을 모르는 세상으로 다 같이 가서 살고 싶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광산당위원회는 광산당원들을 강당에 모여 놓고 이번 자살행위는 당에 대한 불만이며,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면서 이런 현상이 광산에서 다시 일어나는 경우에는 그가 속한 세포비서를 강하게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시체는 일주일 후 관도 없이 광산 뒤 산에 거적에 쌓여 묻어졌다. 동네사람들이 돈을 모아 관이라도 사서 입관하려고 했지만 정부에서는 민족반역자는 관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추위에 얼어붙은 땅을 대충 파서 묻어버렸다.

광철씨는 '남한은 누가 자살을 하면 고인들에 대한 동정을 보낸다. 반면 북한은 자살을 해도 남은 가족들에게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민족반역자의 가족'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닌다.'고 말했다.

'죽어서도 두벌죽음을 당해야 하고 차디찬 땅에 관도 없이 묻혀야 하는 것이 북한자살자들의 운명이다. 죽음으로써 모든 고통을 끝내려고 자살을 선택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들의 불우한 생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