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6명이 사망하고, 最多 290여 명이 실종 혹인 生死(생사)불명 상태이다.
이틀 전 오후 8시 30분쯤 인천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이 여객선에는 학생 325명과 교사 15명을 포함한 승객 447명, 선원 26명, 승선원 보조 아르바이트생 3명, 船上(선상) 불꽃놀이 행사 업체 직원 1명 등 총 477명이 타고 있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은 어제 오후 2시 브리핑에서 침몰 사고로 2명이 사망했고 368명이 구조됐으며, 나머지 107명의 生死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공식발표했으나, 海警(해경)은 오후 2시30분 현재 180명이 구조됐고, 2명 사망·290여 명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안전행정부 측은 “어선이나 민간선박 등도 구조에 나서고 있어 구조자 집계에 착오가 있었다”며 “현재 정확한 구조자 수자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생존자들은 침몰한 배 안에 최소 수십 명의 승객들이 갇혀 있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해난구조대(SSU)와 해군 특수전 전단(UDT/SEAL)이 船體(선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구조된 승객 김성묵씨는 YTN과 인터뷰에서 “여객선 홀 안에 있던 어림잡아 30~40명이 남아 있었는데 배가 90도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당시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뉴스1이 보도한 두 학생의 생존기를 읽어보면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판단을 하게 한다.
<세월호 4층 한 객실에 타고 있던 二卵性(이란성) 쌍둥이 정대진·정복진(17) 형제는 배가 잠시 옆으로 기우는 느낌을 받았다. 10여분 뒤 船內(선내)에는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입어라.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게 된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는 방송이 퍼졌다. 그 순간, 배가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와장창' 하는 굉음과 함께 객실 안에 있던 옷장이나 집기들이 한쪽 방향으로 쓸려내려갔다. 객실에 비치된 구명조끼를 입고 어렵게 복도로 나온 정군 형제는 옆으로 기운 선체에 몸을 기댄 채 누웠다. 방송에서 알린 대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텼지만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배 안으로 바닷물이 흘러들어왔다. 바닷물은 1층, 2층, 3층을 차례로 집어 삼키더니 이윽고 정군 형제의 몸까지 덮쳤다. 비로소 "움직여야 살겠다"고 느낀 쌍둥이 형제는 배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미 목까지 차버린 바닷물 때문에 유일한 방법은 물 속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 형제는 출구가 보이는 곳까지 이동하기 위해 숨을 참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숨이 차면 다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깊게 숨을 들여마신 뒤 또 다시 潛水(잠수)했다. 결국 두 형제는 10여분 만에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들 손을 붙잡아 준 것은 고속 경비정을 타고 구조에 나선 해양 경찰이었다. 정군은 "순식간에 배 안에 바닷물이 찼다"며 "방송에서 알린 대로 객실에만 있었던 친구들은 차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6명 사망, 最多 290여 명 실종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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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6, 14: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