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사에서 朴統이 최고

제목 : 박대통령과 역대대통령평가.....역시...박통이 최고였다....


| 한국인이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3대까지 역임한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의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는 총 9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있습니다. 이들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47.9%)으로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꼽았으며, 2위를 차지한 제15대 ‘김대중 대통령’(14.3%)을 압도적인 차이로 앞섰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1963년 민선에 출마, 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79년 9대 대통령 재직시 불의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기간 대통령직에 머물렀습니다. 개발을 앞세워 민주화와 인권을 유보 시킴으로써 독재라는 비난도 들었지만 새마을운동이나 경부고속도로공사 등 현재의 한국경제 기반을 닦은 강력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으로 최근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10대부터 30대 초반으로부터도 상당한 호감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대통령후보 최초로 ‘노사모’와 같은 열렬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현직 ‘노무현 대통령’(6.7%)은 낮은 지지율로 3위에 머물러 남은 임기동안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조사개요]
> 조사지역: 전국 (제주도제외)
> 조사대상: 만 15세 이상 남녀
> 표본크기: 1,728명
> 표본추출: 다단계층화무작위추출
> 조사방법: 가구방문 개별면접
> 조사기간: 2004/05/13~2004/05/29
> 표본오차: +/-2.35%P (95% 신뢰수준)
> 의뢰기관: 한국갤럽
> 조사기관: 한국갤럽

또다른 조사.
조사시기 주관 조사 내용 및 결과
정부수립 50주년 기념한국갤럽조사 ▶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조사.

〈정치분야〉
· 1위 : 박정희 (66.9%)
· 2위 : 김 구 (26.3%)

※ 교수 50인이 뽑은「50대 인물」조사에서는
· 1위 : 김 구
· 2위 : 박정희
· 3위 : 정주영
98. 8. 16 미국 시사주간지「타임지」조사 ▶「20C 아시아 인물 20걸」조사에서
·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박정희” 선정됨
※ 한국 1명 (박정희)
일본 6명, 중국 3명, 인도 3명 등
99. 10. 21 KBS 길중섭의 쟁점토론(ARS) ▶ 「박대통령 재평가」여론조사에서
· 박정희 지지율 79.9%
99. 10. 25 ~11. 4 MBC ▶「박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6,040명중)
· 찬 성 : 3,482명 (57.6%)
· 반 대 : 2,317명 (38.4%)
· 잘 모르겠다 : 241명 (4.0%)
99. 11. 30 뉴스피플, 한길리서치 공동조사 ▶「20세기 한국을 움직인 사람들」조사에서 (전문가 500인 대상)
※ 20세기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 100명 선정
〈정치·사회분야〉
· 1위 : 박정희 (95.0%)
99. 12. 7 월간중앙(12월호) ▶「한국 최고 인물 10선」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50.3%)
· 2위 : 김 구 (16.8%)
99. 12 월간조선(12월호) ▶「금세기 대한민국 최고 인물은 누구일까」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52.1%)
· 2위 : 김 구 (16.6%)
· 3위 : 김대중 (10.7%)
99. 12. 3 한겨레신문 ▶ 20세기 20대 뉴스「한국의 인물」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 2위 : 김 구
· 3위 : 이승만
2001. 7월 월간 신동아와 국민제안센터 보트코리아 공동조사

※ 7. 19 동아일보 보도 ▶ 대통령 역할을 가장 잘한 대통령은? 전국 E.mail 조사 결과
(교수 13,314명 설문조사 )
· 1위 : 박정희 대통령(58.4%)
· 2위 : 김대중 〃(22.9%)
· 3위 : 김영삼 〃(7.2%)
· 4위 : 이승만 〃(3.5%)
· 5위 : 전두환 〃(3.3%)
2001.12.26 국정홍보처

※ 2001. 12. 27 SBS 8시 뉴스
2001. 12. 28 중앙일보, 연합뉴스 보도 ▶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성인 4,500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21,1%)
· 2위 : 세종대왕 (19,8%)
· 3위 : 이순신 (12,7%)
· 4위 : 김 구 (10,5%)
2002. 1. 23 ~ 2. 14 월간조선(3월호) ▶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총 15,295명 대상)
· 1위 : 박정희 4,285명(28%)
· 2위 : 광개토대왕 2,257명(14%)
· 3위 : 세종대왕 1,93명 (11%)
· 4위 : 이순신 1,303명 (8%)
· 5위 : 김대중 807명 (5%)
2002. 2. 6 월간중앙, “폴앤폴” 공동조사 ▶「역대 대통령 국정운영 능력 평가」 조사에서
· 종합 평점 최고 : 박정희
※ 거의 모든 항목에서 압도적 최고평가

1. 국민을 위한 정치평가
· 1위 : 박정희 (56.0%)
· 2위 : 김대중 (20.0%)

2. 국정 운영능력 평가
· 1위 : 박정희 (55.4%)
· 2위 : 김대중 (15.7%)

3. 국민에게 희망을 준 대통령
· 1위 : 박정희 (60.6%)
· 2위 : 김대중 (18.4%)

4. 경제정책 평가
· 1위 : 박정희 (62.0%)
· 2위 : 김대중 (15.6%)

5. 역사발전에 대한 긍정적 기여
· 1위 : 박정희 (52.3%)
· 2위 : 김대중 (20.2%)

6. 가장 책임감 있는 대통령
· 1위 : 박정희 (54.7%)
· 2위 : 김대중 (18.9%)

7. 과감한 의사결정
· 1위 : 박정희 (54.5%)
· 2위 : 김대중 (14.5%)

8. 인재기용 평가
· 1위 : 박정희 (30.1%)
· 2위 : 김대중 (17.4%)

9. 남북관계 개선 평가
· 1위 : 김대중 (64.4%)
· 2위 : 김영삼 (8.2%)
· 3위 : 박정희 (6.5%)

10. 국민의견을 존중한 대통령
· 1위 : 김대중 (37.2%)
· 2위 : 박정희 (11.9%)

11. 민주주의에 기여한 대통령
· 1위 : 김대중 (36.5%)
· 2위 : 박정희 (13.5%)
2002. 2. 18 월간중앙과 폴앤폴 공동조사

※ 2/18 연합뉴스 보도 1. 전현직 대통령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경우 당선자
· 1위 : 박정희 (46.4%)
· 2위 : 김대중 (16.7%)
· 3위 : 전두환(9.6%)

2. 차 한잔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친근감 있는 대통령
· 1위 : 박정희(37%)
· 2위 : 김대중(26.9%)
· 3위 : 전두환(7.9%)

3. 대통령 정책평가

· 박정희
: 위민(爲民)정치, 국정운영 능력, 경제정책, 과감한 의사결정 분야에서 각각 1위
· 김대중
: 남북관계 개선, 국민의견 존중, 민주주의 기여도에서 각각 1위
2002. 6. 27 ~ 7. 9 한국갤럽

※ 2003. 8. 14 연합뉴스 보도 ▶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여론 조사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 대상)

· 1위 : 박정희(20.1%)
· 2위 : 세종대왕(16.0%)
· 3위 : 이순신(15.3%)
· 4위 : 김 구(7.9%)
· 5위 : 유관순(2.5%)
2002. 8. 26 ~ 27 한국 대통령 평가위원회
(위원장 : 박동서)

※ 조선일보 보도 ▶ 역대대통령 평가조사 결과
(해당분야 전문학자 320명)

1. 업무수행능력
· 1위 : 박정희(63.56%)
· 2위 : 김대중(58.64%)
· 3위 : 김영삼(50.96%)
· 4위 : 이승만(49.40%)
· 5위 : 전두환(49.30%)

2. 업적수행분야
· 1위 : 박정희(66.58%)
· 2위 : 김대중(65.08%)
· 3위 : 전두환(56.72%)
· 4위 : 김영삼(55.16%)
· 5위 : 노태우(52.84%)

3. 자질분야
· 1위 : 박정희(62.7%)
· 2위 : 김대중(58.45%)
· 3위 : 이승만(56.95%)
· 4위 : 김영삼(56.04%)
· 5위 : 전두환(51.90%)
2002. 10월 서울대 교내신문 “대학신문”

※ 10. 14 연합뉴스 보도 ▶ 역대 최고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재학생 1,687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46.0%)
· 2위 : 김대중
· 3위 : 이승만
2003. 2. 15 코리아 리서치

※ 2. 16 연합뉴스 보도 ▶ 현정부를 포함하여 어느 정부가 잘 했느냐 ? 조사에서
(전국 성인 남녀 1,037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정부(51.1%)
· 2위 : 김대중 〃 (21.5%)
· 3위 : 전두환; 〃 (9.5%)
· 4위 : 김영삼 〃 (2.0%)
· 5위 : 노태우 〃 (0.5%)
2003. 7월 월간 현대경영 조사
(8월호 게재)

※ 2003. 7. 29 연합 뉴스 보도 ▶ 국내 100대 기업 비서들이 본 CEO 인물 및 조건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61개 사 82명 참가)

1. 국가CEO 중 가장 존경하고 모시고 싶은 인물

· 1위 : 박정희 대통령 (68 %)
· 2위 : 김대중 〃 (18 %)
· 3위 : 노무현 〃 (10 %)

2 . CEO 중 가장 존경하고 모시고 싶은 인물
· 1위 : 이건희 (삼성회장)
※ CEO의 최대 조건 : 선견지명과 결단력
2003. 9. 22 ~ 11. 14 월간조선 ▶ 5천년 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총 3,937명 참가)

· 박 정 희 : 1,943명 (49.4%)
· 세종대왕 : 393명 (10.0%)
· 광개토대왕 : 290명 (7.4%)
· 이 순 신 : 229명 (5.8%)
· 단 군 : 129명 (3.3%)
2003. 11. 3 ~ 8 동아일보, 아이클릭 공동조사

※ 03. 11. 13 동아일보 보도 ▶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6대도시 30, 40대 남성 500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51.4 %)
· 2위 : 없 음 (20.6 %)
· 3위 : 노무현 (15.6 %)
· 4위 : 김대중 ( 6.4 %)
· 5위 : 전두환 ( 4.2 %)
2004. 01. 07 ~ 25 영화채널 ‘캐치온’과 영화전문 사이트 ‘엔키노’ 조사

※ 04. 02. 04 연합뉴스 보도 ▶ 역대 대통령 중 누가 정치를 잘 했으냐?
(네티즌 5,883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56.7%)
· 2위 : 김대중 대통령(29.0%)
· 3위 : 이승만 대통령(3.8%)
· 4위 : 윤보선, 전두환 대통령(3.3%)
· 5위 : 최규하 대통령(1.8%)
· 6위 : 김영삼 대통령(1.3%)
· 7위 : 노태우 대통령(0.8%)
2004. 2. 24 am7과 (주)아이클릭

※ 04. 2. 26 am7 보도 ▶ 현재 대통령을 포함하여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 1위 : 박정희(41.7%)
· 2위 : 없음(28.9%)
· 3위 : 노무현(12.3%)
· 4위 : 김대중(11.1%)
· 5위 : 전두환(2.7%)
· 6위 : 이승만(1.2%)
· 7위 : 김영삼(0.9%)
2004. 3. 22 조선일보 산업부

※ 04. 3. 23 조선일보 보도 ▶ 역대 정부 중 가장 기업하기 좋았던 시절은?
(조사 대상 :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국내 제조업, 금융업, 벤처업계의 대표적인 CEO 55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 시절(52.7%)
2004. 5. 8 MBC-TV 「생방송 대한민국은 통화 중」 ▶ 가장 효자였을 것 같은 역대 대통령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설문조사 (참여 인원 35,220명)

· 1위 : 박정희 12,276명(34.8%)
· 2위 : 김대중 9,425명(26.8%)
· 3위 : 김영삼 4,566명(13%)
· 4위 : 이승만 3,561명(10.1%)
· 5위 : 노태우 2,860명(8.1%)
· 6위 : 전두환 2,532명(7.2%)
2004. 5. 16 한겨레신문
※ 2004. 5. 16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보도 ▶ 가장 좋아하는 국가지도자는?

· 1위 : 박정희 (50.0%)
· 2위 : 김구(12.3%)
· 3위 : 노무현(11.6%)
· 4위 : 김대중(8.6%)
· 5위 : 권영길(1.3%)
2004. 5. 21 ~5. 24 MBC-TV
※ 2004. 5. 25 MBC-TV 홈페이지, 문화일보(5. 29) 등 ▶ 이 시대 각 분야별 영웅은?
(응답자 : 네티즌 1,825명)

정치 분야

· 1위 : 박정희 888명(49%)
· 2위 : 노무현 443명(24%)
· 3위 : 김대중 388명(21%)
2004. 5. 13 ~5. 29 한국갤럽
※ 2004. 6. 17 조선일보 보도 ▶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은?
(15세 이상 1,728명 참여)

· 1위 : 박정희 前 대통령(47.9%)
· 2위 : 김대중 前 대통령(14.3%)
· 3위 : 노무현 대통령(6.7%)
· 4위 : 전두환 前 대통령(1.7%)
· 5위 : 이승만 前 대통령(1.0%)
· 6위 : 김영산 前 대통령(1.0%)




내가 본 박정희 - 정주영 명예회장 -

정 주 영 - 현대그룹명예회장

나는 오늘의 우리 경제문제의 시각을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경제의 근대화>로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경제사에 우뚝 솟은 인물.

건설.중공업. 자동차에서부터 전자의 첨단산까지 우리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

고희를 넘긴 나이를 잊은 듯 발걸음이 끊겼던 소련으로 북한으로 바쁜 일정을 잡으며 또 한번 우리 경제를 새로운 출발선에 세워 놓고 있다.

정회장이 기억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곧 한국경제의 근대화 였다.

통치기간 동안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켰느냐가 중요

「2차대전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일본 사람들이 떠나간 후 극빈으로부터 탈피해야 했고 치안문제도 큰 것이었습니다. 초대 이대통령 시절은 일단 치안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치안이 안되면 사회가 어지러우니 자연히 치안중심의 정치였습니다. 경제발전도 하고 싶었지만 10년 통치기간 동안 결국 못했습니다. 제2공화국도 민주정치를 표명하고, 하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어느 정치가가 민주정치를 좋아하지 않겠느냐 반문하며 2차대전 후 발전한 모든 나라들이 경제가 발전한 후 정치가 병행해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나는 왜 박대통령에게 정권이 넘어 갔는가를 중시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혼란, 학생운동 등 그 형편, 주어진 여건에서는 민주정치를 확립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민주정치만을 표방할 실정이 아니었죠, 그리고 정치나 사회가 국민 뜻대로 되어가지만은 않습니다. 」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정권을 어떻게 물려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치를 맡은 기간동안 어떻게 했는가, 어떻게 국가를 발전시켰는가를 중시해야 한다고 정회장은 말한다.

「박대통령은 보통나라 정치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6.25 이후 폐허 속에서 우리나라는 기술, 자본, 근로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죠. 그분은 첫째 자본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하다가 차관을 구해 경제를 발전시키도록 구상하셨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어느 기업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차관을 구해올 신용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박대통령은 정부가 그 보증을 할 테니 기업이 알아서 잘해 가지고 한국산업을 근대화시키자고 하셨습니다. 」

그래서 당시 기업들은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실패한 사람은 형무소행을 각오하고 차관을 들여와 산업근대화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이 이룩한 한국산업의 근대화는 다른 나라 정치가가 할 수 없는 차관기업의 성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빚을 들여온다고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차관을 들여와 한국산업을 근대화하였습니다.」

88올림픽 유치신청도 박대통령이 한 것이다.

대통령 시절에 하나도 놓지 못한 한강다리를 9개나 건설한 것만 보아도 경제발전은 획기적인 것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들이 밀접해 있는 한강변의 반포에서 잠실까지의 제방을 쌓아 「강남」지역을 건설한 것도 박대통령이었다고 상기시킨다.

「요즈음 공산권과의 수교, 경제 교류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박대통령의 한국산업 근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88년 서울올림픽을 성대하게 마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우리 경제가 발전되지 않았으면 올림픽을 유치하지도 치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 동안 특히 소련, 동구권 나라들은 북한의 선전 때문에 우리나라를 거지나라로 알다가 올림픽 때 다녀가서는 그 실상을 알게된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가 소련이나 동구 등 우리와 교류가 없고 적대시까지 하던 나라들과 활발하게 정치.경제적 교류를 갖게된 것도 모두 박대통령이 이룩한 경제발전이 기틀이 되었다고 강조하는 정회장. 그가 소련과의 경제교류에 주력하는 이유를 소련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켜 남북평화 통일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련에게 우리가 정직. 성실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줄 수 있으면 그 영향으로 북한도 우리를 적대시할 수 없을 것이고 경제교류로부터 이루어져 남북의 국민이 하나가 되면 정치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편다.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바덴바덴에서도 우리나라와 최후까지 경쟁을 벌였던 일본은 우리나라를 일본에서 60억불 차관을 가져가는 가난한 나라하고 악선전하기도 했다고 올림픽 유치현장을 되새기는 정회장은 올림픽 유치신청도 이미 박대통령이 해놓은 것이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처음 박대통령과 만난 것이 제2한강교 건설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그 분의 뜻은 가장 싸고, 가장 튼튼하게 되도록 빨리 다리를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싸고, 튼튼하고, 빨리 만든다>

이것처럼 박대통령의 건설이념을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제2한강교는 가장 튼튼한 다리로 인정되어 그 후에도 당인리 화력발전소에 무거운 기계가 들어올 때 여러 다리의 역학 조사를 한 결과 그 곳으로 들어오도록 했다고.

「그 후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문에도 자주 뵙게 되었지요. 경제가 발전해 화물량은 늘어나 철도화물 만으로는 안되고 고속도로를 건설해야겠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고속도로에 대해 지식이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태국에서 고속화도로를 건설중인 현대건설을 찾으신 거죠. 당시 현대건설도 태국에서 고속도로도 아닌 고속화도로를 독일 건설팀에게 배우며, 장비를 빌려쓰며 공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당시 박대통령은 최소의 비용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안을 내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정회장이 이 명을 받고 서울서 부산까지 헬기로, 지프차로, 걸어서 3번을 다니며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산출한 것이 380억불.

그러나 자신만 지시받은 줄 알았던 이 건설계획은 육군공병단에도, 건설부에도, 서울시에도 내려가 있었고 재무부에는 자금조달이 시달된 것이었다고, 결국700억불의 건설부, 170억불의 서울시를 제치고 현대의 안이 가장 타당하게 인정되었고 전체 고속도로의 5분의 2는 현대가, 나머지는 다른 회사들이 나누어 맡아 건설하도록 결정되었다. 처음에 현대가 낸 안 은 굴은 뚫지 않고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고속도로라는 점을 감안해 길이 나쁘면 굴을 뚫는 다는 계획으로 수정돼 경부고속도로는 410억불로 완공을 보게된 것이다.

「우리 경부고속도로는 일본의 동명선보다 늦게 시작해 일찍 끝났습니다. 물론 보상비도 일본이 비싸고 두껍게 시공한 이유도 있겠지만 박대통령의 뜻은 우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통행료를 받아가며 보수하는 것이 차관 금리보다 싸다는 계산이었죠. 개인이나 국가나 그 사정에 맞게 살림을 펼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까. 박대통령의 그 치밀함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밤10시에도 부르셔서는 1억을 들여 건설한 외국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그리면서 이렇게 하면 7-8천이며 안될까 설계하는 분이셨습니다.」

정회장은 박대통령이 설계자이며 구상자이며 또한 실현되도록 독려하는 감독자였다고 회상한다.

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한 국민에 귀감 되는 지도자

「그 분이 불행한 일로 돌아가셨지만 땅이 있습니까, 집 한 채가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장기 집권할수록 부패하기 쉬운데 우리는 그 정반대의 경우를 그분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울러 통치자가 청렴결백할수록 나라는 더욱 부강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

통치이념은 박대통령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박대통령을 닮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잇는다.

「지금도 박대통령이 주신 휘호하나를 거실에 걸어놓고 있는데 <청 렴 근> 이라는 내용입니다. 평소 그 분의 생활태도나 정치가로서의 신념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사리사욕으로 장기 집권한 것도 아닙니다. 나라는 부강시키고 기업도 성장시켰지만 자손에게는 남긴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 것입니다. 」

현대, 근대사에서 이만하면 우리나라도 <괜찮다>고 표현하는 정회장. 메스컴이 단점들을 쓸 기회는 많지만 역대 대통령의 장점들을 써서 후세에 많이 알리고 가장 좋은 장소에 동상도 세워 국민에게 귀감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앞으로 박대통령 통치기간 동안의 사업을 책으로 발간했으면 합니다. 정치학박사 학위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농담의 반은 진담이라 했던가. 웃으며 하는 말속에서 뼈를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박대통령 때 시작한 서산 간척지에서 올해에는 쌀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쌀 농사가 잘되면 그 때 초대할 테니 꼭 오라는 당부를 들으며 문득 먼 데 앞을 내다본 그 분의 또다른 구상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니들이 박대통령의 리더십을 아니??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친일파 였으며,
독재자 였다는 내용의 글로 차 있으나...
진정 위대한 인물은 제아무리 음해 세력이 흠집을
내려 해도 시간이 흘러 갈수록,
도리어 죽은 후에 그 위대함을 알수 있게 되듯이,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되면
알게될수록 참으로 감탄을 금할수 없다.

박정희는 한국 역사상 보기 드문 위대한 인물임에도,
지금은 평가 절하 되고 있지만,
수백년 후에는 어쩌면 세종대왕 보다도 더,
존경을 받을것이라 확신한다.
박정희의 위대함은 여러곳에서 드러나지만,
난 첫째로 부정부패 친인척 비리가 없는것을 꼽고 싶다.
박대통령 이후, 비리, 부정 부패로 얼룩진 후임 대통령들을 보라!


전두환은 7년간 수천억을 꼬부치고 동생등 일가친척 들에게
온갖 이권을 나누어 주었고,--
노태우는 5년간 대기업에서 역시 수천억을 뜯어 내고
재벌가와 사돈을 맺은후 특혜를 베풀어 주었으며----

김영삼은 스스로는 뇌물한푼 안받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결국 그 아들이 수많은 비리에 개입하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은 앞선 대통령들이 친인척 비리때문에
그렇게도 비난받은것을 완전히 망각했는지,-
그 아들 들이 비리로 줄줄이 법정에 서고야 말았으며,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혹이 있지 않는가.

그런데 박정희는 무려 18년 간이나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 했음에도 불가사의 하게
친인척 비리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이 한건도 없지 않는가.
사후 그의 정적들이 조금이라고 더 박정희를 깍아내리려
눈에 불을켜고 비리를 찾아 보려 했으나,
결국 어떠한 숨겨놓은 돈도--- 자녀들에게 노골적인 특혜를
베푼것도 알려진게 없으며, 그의 재산은 죽은후 주머니에서
십만원과 고물시계을 팔에차고 있었던겄 뿐이였으며, 그이상
발견된것이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 까지도
팔자를 고치게 만들수 있는것이 가능 했던 만큼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과연 박정희란 인간이 얼마나
청겸결백 했었는가을 보여주는것, 않이 겠는가.
사후 후임 대통령들의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들을 보면 그의
위대함은 더욱더 빛날 뿐이다.

두번째로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나라에 목표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는 남이 해놓은 것에 대해 불평 하며 비난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말로 불평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일을 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그는 스스로 남이 뭐라건 상관없이 나라에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올바른 사람을 배치한후, 권한을 주고 전력 투구하여, 일관된
정책으로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실패라고 어느 누가 그러는가?

농촌의 보리고개를 5000년 한민족 역사에 처음으로 없앤것이
박정희 그가 않인가.
지금 세대는 기억 못하지만 70년대에는 나라에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부국 강병´ 이라는 당연한 목표 말이다.

월급장이는 한달, 사업가는 최소한 십년, 정치가는 백년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79년도 수도서울 이전´백지계획´의 청사진을보면 1000년후의
먼 미래을 내다보며 구상한 그의 탁월한 안목과 지혜에
정말 감탄과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박정희가 가장 위대한 점..---
엽전정신 즉 ´조선인은 해도 안돼´ 라는 패배의식에 쪄들었던
국민들 에게 ´우리도 뭉치고 노력하면 할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수 있겠다.

혹자는 말한다.
박통시절의 경제 기적이 박통 혼자만의 공이냐고....
모든 국민이 죽자살자 일해서 나온 결과라고 하며,
박대통령의 위업을 절하시키고저 애쓰는 사람들이있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간과 하는 점은.
일반 국민들이 그토록 몰입하여 일할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지도력, 우리도 일하고 노력하면, 나도 잘살고 나라도
발전할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자신감, 동기유발 이야 말로
리더자로서의 지도력과 솔선수범 하는, 언행 일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박정희는 명확한 국가 비젼과 각 단계별 목표달성을 명확히
국민들에게 인식 시킴 으로써
국민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일할수 있도록 유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훌융한 리더자의 지도력이 않이 겠는가.

요즘 주위를 둘러 보라.
´한국 사람은 XXX 라서 안돼´ 하는 자포자기성의 멘트가
유달리 많 이 들리지 않는가?
이것은 나라에 리더쉽이 실종되고 사람들이 더이상 지도층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박대통령의 경제 개발계획을 사사 건건 물고 늘어지며,
고속도로 건설현장의 불도저 밑에 누워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던 장본인들 과 그 문하생들,--

반대와 비판을 일삼던 속칭 ´민주화 세력´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러주는것도 아깝다)
그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그들이 원하던 대로 10년을 넘게 통치 했다.

그런데 지금에 현실은 어떠한가.
적이 누구인지, 친구가 누군지, 극단적 이념에 사상적 갈등과
국론분열의 지역감정, 참여정부 들어와서는 한술더떠 세대간 갈등, 과거사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며,
경제는 곤두박 치고있는 현실을 보라..............

나는 자신있게 말할수있다
그들 민주화 세력들이 제대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것은
´전무´ 하다 고, 그들 말만 앞세우는 허풍장이 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경제는 절단나고 국민들의 살림은 더 힘들어졌고
빈부격차는 더욱더 벌어졌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국민들이 자신감을 상실 하고야 말았지 않는가.

노력하며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안하고 수백 수천명이 몰려다니는
아파트 부동산 투기...비생산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한 현실을 보라.....

나는 또한 자신있게 장담할수 있다.
수백년이 흐른후에 지금의 그들, 말많은 지도자들을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은 대한민국 중흥의
시조로써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것 이라고....
박정희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그는 죽어서 진정 그 가치를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높이 평가 받게 될것 이라고.......






***에고... 다들 인터넷 검색해서 박정희 친일파로 모는 찌질댐이 엿보이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마쇼. 밑에는 박빠가 쓴글인데 노빠가 쓴 박정희 친일했다고 오도한 글보다는 좀 나은거 같아 올려보요. 박빠건 노빠건 박정희대통령 이용해 먹지 마오. 짜증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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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친일파???


인터넷상에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10가지란 글을 검토 해 보자.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현재 전혀 없으며, 만약 있었다면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나, 현재까지 “~~라고 하더라.” 라는 글만 있을 뿐이다...

혈서론의 출처가 만주일보라고 하는 데. 만주일보는 1927-1934년까지가 발행기간 이다.
즉 만주일보는 1934년에 폐간되었고 박통이 입학한 때는 1942년으로 이 말은 거짓이다.
만주일보가 보관되어 있는 서울대의 소장목록입니다.. 찾아보시길...
(http://147.46.181.112/lib_service/separate/paper_list.html#마)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③ 완전한 일본인

- 위 ②,③ 은 박통을 반대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다.
이와 반대되는 글들도 엄청 많다... (예들 들면 지난cbs 방송에서 박통의 제자들이 증언한 박통이 선생으로 있을 당시 민족교육과 애국심을 고취시킴


또한 박통을 싫어하는 사람은 박통을 극히 나쁘게 평가할 것이며, 박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평가를 할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평가하는데 ②,③과 같은 주관적인 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분명히, 한사람의 평가는 오직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서만 평가해야 할 것이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 회 참가했다.

- 이 주장 역시 허위 날조된 글이다.
이와 관련된 글에서 보면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을 신이 나서 토벌에 참여했다` 고 한다.

그러나 박통이 소위로서 근무할 당시엔, 만주에 독립군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박통은 1944년 3월부터 1년 5개월간 만주군 제8단(단장은 중국인)소속으로 근무지는 중국 열하(지금의 承德) 지방이었다. 열하 지역에서 독립군이 활동하던 주 무대 까지는 지금도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이다..

또한 박통이 만주군에 복무한 1944년 당시의 만주 독립군의 항일투쟁 기록을 보면, 독립군은 1931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내륙지방의 도시인 중경(중국표현으로 '충칭')으로 본부를 옮긴 뒤 거기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즉 1944년 당시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다..

* 아래 네이버 백과사전를 검색해 보시길 바란다..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47512

- 박정희 대통령을 죽도록 싫어한 대표적인 지식인 한홍구의 `기회주의자 박정희` 란 글에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생략 .... 해방 전 박정희의 친일경력이란 만주군 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군 제 5 군관구 예하의 만주군 보병 제8단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경력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조사과정이나 각 정치단체에서 내건 악질 친일파의 처단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경미’한 것이다. 또한 박정희가 관동군 정보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은 당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군부대나 공산유격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 ...'

결국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110여 회나 참여했다는 것은 허위 날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 특설대

- 이것 역시 허위 날조된 글로서 간도 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의 명단(중국측 조사자료-'特設部隊', 1960, 66 - 84쪽.)은 아래와 같다.

박정희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간도특설대(총79명) - 姜在浩 李元衡 朴鳳祚 金燦奎(金白一) 金錫範 金洪俊 宋錫夏 石希峯 崔南根 崔在恒 신현준 최경만 윤춘근 문이정 趙某(豊田) 김용기 태용범 백선엽 윤수현 이재기 김묵 豊田義雄 吳文剛 李淸甲 申奉均 海原明哲 白川** 金松壯明 伊原久 鶴原** 朴東春 李鶴汶 崔忠義 朴鳳朝 許樹屛 金大植 方得官 洪淸波 金龍虎 金致斑 具東旭 朴春植 方太旭 孫炳日 劉仁煥 尹秀鉉 李德振 李龍昊 李東俊 李龍星 李準龍 李逢春 太溶範 崔在範 崔炳革 李龍 金忠南 車虎聲 金忠九 柳益祚 朴春範 朴春權 曺昌大 洪性台 李東郁 廉鳳生 吳南洙 金萬玉 金鍾洙 李東和 朴蒼岩 朴泰元 李白日 金龍周 申然植 李龍星 任忠植,, 馬東嶽, 桂炳輅, 全南奎

- 2004. 06.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만주군 친일파 내용중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의 명단에도 박정희의 이름은 없었다..
(MBC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공산주의를 배신한 것이 왜 기회주의가 되어야 하는지?
그러면 공산주의자로서 그냥 남아 있어야 했다는 뜻인지?
솔직히 공산주의 배신한 것 잘한 것 아닌가?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박통을 친일파로 몰고가기 위하여 박통의 창씨개명인 다카키 마사오를 들고 나왔으나, 김대중 대통령도 창씨개명을 하였고 그 이름이 '도요다 다이쥬' 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 되었다. 이걸 아직도 써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창씨개명은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창씨개명 자체로는 친일파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이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이 글 역시 ② ③번과 같이 주관적인 요소가 더 크다...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1

대통령이 국가이익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 및 협조를 받은 것이 친일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지금 일본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하는가? 또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외교적 수사법으로 한 발언이 친일파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외교석상에 욕을 하면 그것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일까? 역대 대통령 치고 이러한 외교적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는 대통령이 없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당시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 청구권 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일본이 제시하는 배상 최고액 7000만 달러를 놓고 협상하여, 무상원조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결한다..
즉 80억 달러 주겠다는데 박통이 3억 달러 받은 것이 아니다.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주는 쪽이 일본인데.....

또한 위 금액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그리고 대일 청구권을 협상하여 보상받은 나라는 아직 어느 나라도 없다.
수십억 달라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 인가?

- 위 사항은 정책결정사항이며 이러한 정책 결정사항으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한가지 예를 들면, 국토는 땅, 하늘, 바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독도는 신한일 어업협정에 의거 한일 공동어로 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바다가 국제법상 일본에게 영유권이 인정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대통령)에 의해 체결 되었다.

그럼 김대중이나 노무현도 친일파인가?

또한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한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더욱 완전한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 청구권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 그 당시 대일 청구권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정신대 문제와 관련하여 대일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는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 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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