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쯤 되면 그만큼 세야지. 그런 정도도 못 하면 총리야?』

朴承復 샘표식품 회장이 직접 겪어본 국무총리의 位相
朴承復(박승복) 샘표식품 회장(92)은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국무총리실에서 정무비서관(1급), 행정조정실장(차관급) 등으로 10년간 근무하며 丁一權(1964년5월~1970년12월), 白斗鎭(1970년12월~1972년6월), 金鍾泌(1971년6월~1975년12월) 등 세 명의 국무총리를 모셨다. 지금도 국무총리실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國總會(국총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2003년 7월호 月刊朝鮮에 실린 필자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金鍾泌 총리는 취임한 지 얼마쯤 지난 다음에 자기가 총리로서 꼭 해야 될 몇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어야 되겠다. 그게 총리로서 내가 해야 될 일이다. 그 일은 당신이 대신 해줘야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야당을 많이 도와주라고도 당부했다. 그래서 야당의 민원을 많이 들어주게 됐고 그때부터 야당의 민원은 모두 총리실로 모아졌다.
朴正熙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나는 국방과 외교만 맡고 일반 행정은 총리가 총괄한다』고 선언했다. 朴대통령은 두서너 달 지난 후, 똑같은 선언을 다시 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선언해도 장관들이 결재서류를 청와대로 가져오니까 두 번씩 같은 소리를 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 金鍾泌 총리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항간에서는 朴正熙 대통령이 金鍾泌 총리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朴承復 회장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朴대통령은 金총리를 대단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金총리는 매일 청와대에 보고 차 올라갔다. 그 점이 다른 총리와 다른 특색이었다. 권세는 권력핵심과 물리적 거리에 비례한다. 朴대통령이나 金총리 두 사람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金총리를 누가 우습게 보겠는가. 한마디로 총리의 令(영)이 섰다. 역대 국무총리 가운데 金鍾泌 총리만큼 내각을 확실히 장악하고 지휘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朴承復 회장은 생각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진로의 창업주 張學燁(장학엽)씨가 구속됐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덕수교회가 張회장의 집이었다. 400평짜리 대지에 집을 지었는데, 호화주택이라고 구속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JP한테 갔다.
『우리 집이 바로 그 집 건너편인데 그 집 호화주택 아닙니다. 땅이 넓다 뿐이고 2층집이 어떻게 호화주택입니까. 더군다나 그분이 이북에서 피란 나온 대표적인 기업인인데, 그런 사람을 구속하면 이북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서 반감을 갖습니다. 무슨 큰 잘못이 없는 한, 풀어 줘야됩니다』라고 건의했다.
金총리는 그 말을 듣더니 『당장 검찰총장에게 가서 풀어 주라고 하라』고 그랬다. 그때 검찰총장이 金致烈씨였다. 朴承復 회장은 검찰총장을 찾아가 총리의 뜻을 전했다. 朴회장을 검찰총장에게 보낸 JP는 바로 청와대에 올라가서 대통령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그래서 張회장은 하룻밤만 자고 바로 나왔다. 그때만 해도 총리의 힘이 그만큼 셌다. 朴承復 회장은 말한다. 『총리쯤 되면 그만큼 세야지. 그런 정도도 못 하면 총리야?』
이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구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 JP, 金致烈씨, 朴承復 회장 셋만 아는 秘話(비화)다.
金鍾泌 총리는 무슨 일이고 우물거리는 법이 없었다. 결단이 빨랐다. 1973년 어느 날, 金총리가 朴회장을 불렀다. 총리실에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행정조정실(지금의 국무조정실)을 만들어야겠다면서 실장 자리를 朴회장이 맡으라고 했다.
朴회장이 『각하께 말씀드렸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아니』 그랬다. 그 다음날 金총리는 朴대통령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고 한다. 총리의 보고를 들은 朴대통령은 『아, 그것 참 잘 생각했다. 나도 그런 기구 하나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참 잘 생각했다. 진행하라구.』 그렇게 해서 지금의 총리 行調室(행조실)이 만들어지게 됐다.
金총리는 行調室의 長은 부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자리인 만큼 장관급으로 해야겠다고 말했다.
朴회장은 반대했다. 『부처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자리는 권력이 센 자리다. 본시 권력이 있는 사람은 직급이 높으면 안 된다』고 했다. 朴회장의 반대로 行調室長 자리는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徐壹敎(서일교)씨가 총무처장관이었는데, 장관급으로 만들어진 법률안에 대해 총리 결재까지 받았다가 법안 내용을 고치라고 하자, 전말을 모르는 그는 총리실을 나오며 투덜대더라고 했다.
金鍾泌 총리는 朴회장에게 『行調室長 자리를 당신에게 맡겼으니, 모든 걸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분명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라고 쐐기를 박았다. 다시 말하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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