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베토벤, 조훈현과 이창호


천재라면 누구보다 먼저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신동으로 시작해서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까지,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 천재의 후광이 빛났다. 1791년 35살 꽃다운 나이로 그가 죽은 지 20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음악은 전 세계에서 어떤 음악보다 많이 연주된다.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을 통틀어 그의 음반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우스개로 20세기에 모차르트가 태어났다면, 고전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음악가가 다 굶어 죽었을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반면에 또 다른 음악의 최고봉인 악성(樂聖) 베토벤은 천재성보다 노력과 고뇌와 의지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술주정뱅이 테너 가수 아버지가 아들을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어 돈 좀 만져 보려고 평범한 아들을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교육시켜 후천적으로 길러낸 음악가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한때 베토벤은 음악을 죽기보다 싫어했지만, 후에 다시 음악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서른 살 이후에는 청력을 완전히 잃어 생명보다 사랑한 음악을 전혀 들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모차르트는 천재이고 베토벤은 범재인가?
베토벤 음악이 모차르트 음악보다 못한가? 음악사에서 둘 중 누가 더 빛나는가? 도대체 천재란 무엇인가?

1777년 21살의 모차르트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 고향 잘츠부르크의 신임 대주교가 마음에 안 들어 안정된 궁정 음악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뮌헨, 만하임, 파리--결국 그는 실패하고 1779년 고향으로 돌아간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어머니를 호강시키기는커녕 파리의 초라한 여관에서 딱딱하게 식은 크로와생을 씹다가 끝내 어머니마저 여읜다. 왜 천재 모차르트가 그토록 참담하게 실패했을까? 왜 천재 모차르트에게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았을까?

모차르트는 파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달콤한 소리가 아닌 쓴 소리를 듣는다. 그의 자작곡을 연주하면 다들 열광하다가 까무러쳐야 마땅한데, 관중도 적었거니와 박수 소리는 더욱 적었다.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그는 물어 보았다.
'왜들 그러세요, 네?'
누군가 내뱉듯이 던지는 청천벽력!
'흉내 그만 내! 네 나이가 몇 살이냐!'

그렇다! 그는 나이 스물이 넘도록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물욕과 허영심 때문에 연주 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체계적인 음악 수업 계획의 일환으로 그는 어릴 때부터 유럽 곳곳을 여행했던 것이다. 뮌헨, 만하임, 비엔나 등 독일뿐만 아니라 벨기에,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이태리 등 당시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유럽의 음악 선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볼프강은 온갖 종류의 음악을 들었고 듣는 족족 스펀지처럼 각기 다른 그 음악을 흡수했다. 과히 천재였다! 그러나 유럽의 모든 음악을 버무려 기가 막히게 모방만 했을 뿐, 그는 나이 스무 살이 넘도록 자신의 음악이 없었던 것이다. 독창성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거기서 주저앉았다면, 어릴 때 신동 소리를 듣던 숱한 다른 사람들처럼 모차르트 역시 평범한 인간으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모차르트를 보고 깊은 절망감을 씹었다는 살리에리보다 못한 3류 음악가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으면, 그는 음악사에 단 한 줄도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1778년 22살의 모차르트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머리에 쥐가 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파리 시민에게 들려 주었다. 그것이 저 유명한 [터키행진곡]이다.
'역시! 모차르트는 천재구나! 앙코르!'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터키행진곡]은 1683년 비엔나가 터키의 침략을 물리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1783년에 작곡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모차르트가 진짜 파리에서 음악가로서 홀로 서기에 성공하는 기념비적인 그 작품을 창작했다면, 거기서 취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끝내 취직을 못하고 죽기보다 싫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어느 쪽이 진실이든 그 때의 경험은 모차르트에게는 늦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성인식이었다. 비로소 위대한 음악가로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1787년 고향 본에서 스승 네페로부터 충실한 음악수업을 받은 17살의 베토벤은 꿈에도 그리던 비엔나로 간다. 17일이나 걸린 긴 마차 여행.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은근히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던 31살의 모차르트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는다.
'경이로운 존재! 언젠가 세상에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다.'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그러나 베토벤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비엔나에 도착한 지 불과 14일 만에 허겁지겁 고향으로 달려간다. 간신히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는 루드비히 판 베토벤.
'다정한 목소리로 어머니, 라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던 때, 그 때의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었으면 나와 보라고 해!'

5년 후, 모차르트가 쓸쓸히 죽은 다음 해, 베토벤은 비엔나에 다시 가서 본격적인 음악가의 인생을 걷는다. 일찌감치 그는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이미 작고했지만 모차르트를 포함해서 다들 이태리 음악에 경도되어 있을 때 그는 J. S. 바하를 모델로 삼고 북독일의 음악을 재해석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비엔나의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베토벤은 하이든, 알브레히츠베르거 등으로부터 음악을 배운다. 살리에리의 지도도 받았다. 하여튼 그는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다. 많은 변주곡을 작곡하는 등 모방을 통한 창조를 모색하면서 이내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곡을 하나하나 세상에 내놓는다.

천재라고 하면 사람들은 많은 착각들을 한다. 뿌리깊은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지능이 아주 높아서 암기력과 기억력이 비상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척척 알고 노력을 거의 않고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르는 영감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범인이 많다.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음악사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창의력을 보인 베토벤을 천재라 하지 않고 대소 세계바둑대회를 21번이나 우승한 이창호를 기껏 '노력형 천재'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에 인색하기만 하다.

지능지수가 높은 것은 천재의 싹이 있을 따름이다. 싹이 트고 자라서 거목이 되고 그 거목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야 천재임이 입증된다.
천재의 핵심은 둘이다. --창의력과 불멸의 업적.
이 둘을 뒷받침하는 것은 초인적인 노력과 불같은 열정이다. 노력 없는 천재는 있을 수 없다. 천재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범재 또는 영재 수천 수만 명이 수십 년 수백 년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수 없는 정상에 불과 몇 년 만에 엄청난 노력으로 거의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서 깃발을 꽂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는 배움의 과정에서 강제력이 동원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좋아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이 천재의 필수요건이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천재였다. 어릴 때 배우는 과정에서 약간 더디게 보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5살 때부터 작곡했다고 하지만, 베토벤은 12살에 작곡을 시작했는데, 모차르트가 12살에 작곡한 것에 이미 뒤지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가 강하게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절은 어느 쪽이든 모방의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천재의 대명사 모차르트도 만하임-파리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한 어엿한 음악가로 거듭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천재도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범상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친필 악보가 하나하나 발견되면서 그도 더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고쳐 쓴 것이 밝혀졌거니와 떠오르는 대로 마구 작곡하거나 작문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불멸의 음악이나 영원한 고전이 되는 게 아니다. 쇼팽이 말했듯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 중에서 고르고 골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한갓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곡만 들으면 그 아름다운 음악에 그 뛰어난 악상에 황홀해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한 편식이 심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교향곡만 해도 100곡을 넘게 작곡한 하이든의 곡만 두루 들어도 모차르트의 곡을 천상의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그의 곡을 흉내낸 듯한 것이 너무 많으니까. 교향곡이든 소나타든 협주곡이든 사중주든.

모차르트는 35년 동안 630여곡을 작곡했고, 베토벤은 57년 동안 130여곡을 작곡한 걸 갖고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어폐가 있다. 베토벤의 곡은 하나같이 독창성이 뛰어난 정선된 곡이지만, 모차르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교향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9곡밖에 없고 모차르트의 그것은 41곡이나 있지만, 베토벤은 9곡 전곡 특히 3번, 5번, 6번, 7번, 9번이 1년 내내 전세계에서 연주되지만, 모차르트는 40번과 41번[주피터] 두 곡이 주로 연주될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베토벤의 교향곡에 절망한 바그너는 교향곡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합창 교향곡]에서 성악이 들어간 것에서 힌트를 얻어 악극(music drama)이라는 새로운 음악 양식을 만들어낸 데서 보듯이, 베토벤의 교향곡 한 곡 한 곡은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것이다. 9번 [합창교향곡]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저 유명한 '미미미 도 레레레 시'로 시작하는 다단조의 [운명교향곡]은 단 한 음도 전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게 없고.

조훈현이 바둑의 천재라는 데는 동양 3국이 거의 이의가 없다. 그만큼 그는 어릴 때부터 출중한 기재를 보였고 일본에서는 당시에 워낙 기라성 같은 기사들이 많은데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것은 없지만, 후에 한국으로 되돌아온 후 군 복무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래 그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군계일학! 마침내 1989년 바둑의 올림픽이라는 제1회 응창기배에서 우승하면서 그는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 퍼레이드의 축하를 받았다. 그의 천재성은 제비라는 별명에서 잘 드러난다. 발상의 자유로움과 기발함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조훈현은 그러나, 1989년 이미 열네 살 제자에게 국내에서는 밀리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떨어지는 듯하고 기수와 묘수도 별로 없이 범수로 일관하는 듯한 둔중한 소년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력이라는 것은 천재가 둔재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천재는 관심이 없는 분야엔 철저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창호가 어릴 때 복기도 잘 못하는 때도 있었다는 것으로 그 천재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한심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기력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피아노 연주가가 1만개나 되는 소나타 한 곡의 음표를 외우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듯이, 그것은 별 다른 재주가 아니다. 단지 이창호는 자기가 바로 그 날 둔 바둑이라도 어떤 수순엔 관심을 두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는 암기보다 이해, 이해보다는 비판, 비판보다는 응용과 창조를 중시했음에 틀림없다. 하여튼 20살이 되기 전에 이미 이창호는 세계가 뒤따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스승 조훈현까지 포함해서 아무도 선뜻 이창호를 천재라고 일컫지 않았다.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노력하는 기사라는 것이다. 손가락이 아예 꼬부라질 정도로 노력한 오청원은 천재라고 하지만,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만든 대천재라며 너도나도 추켜세우지만 이창호는 그 패러다임에 갇혀 있을 따름이라고 하면서 이창호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이 극도로 꺼린다.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이것은 천재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천재는 비상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조훈현이나 오청원이 이창호보다 덜 노력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들이 더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들은 열정에 넘쳐서 고도로 집중해서 바둑에 정진했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했다는 느낌이 안 들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0대에 이창호 10대 시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내제자가 되던 때부터 이미 '자기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스승에게 배우되 스승과 정반대되는 방법을 고수했다. 이미 그는 여덟 살 무렵부터 천재의 거목으로 자랄 푸른 싹이 보였다는 말이다. 천재의 핵심인 독창성이 뛰어났다는 말이니까.

평범하게 둔다는 것도 결코 천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가장한 큰 어리석음(大愚) 곧 공자의 지혜를 뛰어넘는 노자의 지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10대 후반에 현대바둑을 개척한 오청원을 일찌감치 넘어섰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는 속기에도 누구보다 능한 걸 보아 얼마든지 기발한 발상으로 묘수와 기수를 펑펑 터뜨릴 수 있지만, 그것은 '확률 상'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질 수 있는 죽을 꾀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섬뜩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두텁게 두텁게 판을 짜면서 평범 속에 천재를 숨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청원이 [만유인력]의 뉴턴을 한 차원 뛰어넘은 [상대성 원리]의 아인슈타인이라면 이창호는 원자 세계에서 확률의 개념을 정립한 하이젠베르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며 아인슈타인은 끝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고등학생도 하이젠베르크가 옳다는 것을 이해한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세계가 이창호를 따르는 것을 보아 이미 전문 기사들은 무의식 중으로 이창호가 오청원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했다는 것에 동의하는 듯하다. 단지 이창호가 워낙 성실하고 겸손하고 과묵하여 단지 겉보기에 평범하게 보여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가 너무 뛰어난 천재라서 천재인 줄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베토벤이 57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그가 말년에 창의력이 고갈되어 아무 것도 안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1814년에서 1816년 사이에 그는 거의 창작 활동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다들 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정말 열심히 찧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때는 멜로디의 서정성에 새로 눈을 뜨고 음악의 완성을 묵묵히 추구하던 일종의 모색기였다.

교향곡에 버금가는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비어], 모차르트 최후의 대작 [레퀴엠]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곡으로서 베토벤 필생의 역작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 음악의 올림푸스 [합창 교향곡], 달관의 경지에서 인생의 내면을 이보다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없는 후기 현악4중주 5곡 등 베토벤은 40대 후반을 넘어서면서 죽기 직전까지 불멸의 곡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에 단 한 곡만 남겨도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명곡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10년 이상 세계 바둑계를 지배한 이창호가 영웅을 질시하고 헐뜯는 한국적 풍토에 깊은 내상을 받은 후에 공교롭게도 주요 대국에서 내리 3패를 한 것을 보고, 이창호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느냐고 그의 시대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입방아를 찧는 것을 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이창호는 지금까지 이룬 것만으로도 오청원과 조훈현을 합한 것보다 큰 업적을 쌓았다. 하물며 그는 이제 겨우 30세이다. 빠름과 계산에서 10대 20대보다 조금 못할 뿐, 종합적인 면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황금의 30대가 그 앞에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다. 그가 어떤 성취를 이룰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간은 누구든 그와 바둑판을 대하고 마주앉으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영웅을 헐뜯음으로써 세계적인 영웅도 시정잡배보다 못한 졸장부로 만들고 권력에 중독된 일개 졸장부는 도리어 불세출의 영웅으로 둔갑시키길 즐기는 자기 파멸적인 한국의 독특한 풍토에서 벗어나, 불가사의한 희대의 천재 이창호가 계속 쌓아올릴 빛나는 봉우리를 이제 다같이 손에 땀을 쥐면서 지켜보고 가슴에서 우러난 박수를 치며 부지런히 그를 따라 배우는 게 어떨까. 그러면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련만.

(2005.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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