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여사 피격 날의 박정희

陸여사 피격 직후의 대통령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저격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고 공식 행사가 끝난 직후, 국립극장 관장실에서는 이런저런 긴장된 대화가 오갔다.
관장실에는 대통령을 위시하여 丁一權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金正濂 비서실장 등이 배석했다.
대통령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용을 좀 설명해.”
“….”
좌중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대통령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장실 입구 바로 앞에 박 실장이 멍하니 서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하늘만을 응시한 채 누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누가 와서 대통령의 말을 전해도 말이 없었다.
“각하께서 상황 설명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
대통령은 몹시 궁금한 듯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어했다.
“뭘 좀 알아봤나?”
한 비서관이 말했다.
“알아본 것은 없지만 궁금하시다면 저라도 본 대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래, 말해 봐.”
“첫 번째 총성이 울리자, 단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하고 박종규 실장이 뛰어나가 즉시 응사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 각하의 허리춤을 잡아 연설대 밑으로 피하게 한 다음, 영부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대통령은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영부인의 안부는 묻지도 않고 대뜸 이런 말을 했다.
“객석은 어두워 잘 안 보일 텐데 그 곳에다 쏘게 되면 시민들이 다치잖아.”
“응사시에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영부인은 아마 지금쯤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하셨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 행사장으로 갑시다.”
대통령의 다음 행사장, 즉 지하철 개통식으로의 이동 지시가 떨어지자, 주변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만류했다.
“각하! 그것은 안 됩니다. 역사에 보면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사건 때도 암살조가 세 팀이 있었습니다. 제1조가 던진 폭탄이 황태자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되자, 제2조가 다른 장소에서 결국 황태자를 살해하지 않았습니까. 측근의 만류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두 번째 행사장에 참석했다가 결국 폭탄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부하들은 제2의 암살조가 또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면서 진언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런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질 않았다.
“일단 일정이 잡힌 공식 행사이니만큼 가봐야 되지 않겠는가.”
“각하께서는 서울대학병원으로 가시고, 지하철 개통식에는 정일권 국회의장이 대신 참석하는 게 좋겠습니다.”
목표물이 대통령이니만큼 다른 사람은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도 개통식에 가봐야지.”
그러면서 대통령은 자동차에 올랐다가 망설이듯이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집사람이 걱정되니까 내 대신 정 의장께서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청와대에서 김영원 의전비서관은 어딘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 8군사령관한테서 방금 전화가 왔었는데, 군의관 팀이 수술 준비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총상을 당하셨다고 하니 일반외과 의사들보다 야전 군의관들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긴급 요청을 세 번이나 해왔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에 연락을 취했더니만 거절을 해 결국 미 군의관 팀과 연결을 못 시켰습니다.”
훗날 ‘서울대학병원측의 의료 미스’라는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서울대학병원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다한 수혈을 하여 육 여사의 심장이 오히려 과부하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후 서울대 수술팀에게 일련의 문책을 시도하려는 측근들의 행동을 본 대통령은 “그러지 말라”며 도리어 그 사람들을 나무랐다.
“오죽 못나면 동족에게 죽겠어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직후 어느 날.
비서진들은 대통령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이때 돌아간 아내에게 생전에 못다 준 정 때문에 애석해 했다.
“내가 젊어서 지만이 엄마한테 잘해 준 것이 하나도 없어. 지금 이 나이가 되어 좀 잘해 주려고 했더니 세상을 떠났구먼. 자네들도 나같이 후회를 안 하도록 하시오. 세상이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군. 내 내자 나이가 마흔아홉인데 아무리 몹쓸 병에 걸렸더라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렇게 죽은 것도 본인 말이 씨가 된 것 같아. 언젠가 내자가 외출할 때 내가 ‘나도 위협받고 있으니 당신도 조심하시오’라고 했더니, 내자 말이 ‘국민에게 당하면 복이지요. 오죽 못났으면 자기 국민에게 저격당하겠어요. 걱정 마세요’라고 하더니 일본 사람도 아닌 한국 사람에게 죽었구먼.”
육영수 여사는 접견할 때마다 방문을 10㎝쯤 열어 놓고 있었다. 남녀부동석이라는 차원에서였다. 비서관들을 대하는 영부인의 언행도 한 번도 과하게 사용한 적이 없었다.
특히 접견 전에는 육 여사의 독특한 신고가 있었는데, 대기하고 있는 비서관에게 호명을 하거나 노크를 하지 않고 단지 접견실 주위를 서성대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가령 “00 비서관이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라는 식의 말을 반복하면서 접견실 문 앞을 서성거렸다. 이때 해당 비서관이 영부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인사를 하면, 그때서야 대화가 이뤄지곤 했다.
영부인은 또 절대 밀폐된 방에는 직접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품행이나 언행이 방정하였다.

직접 쓴 국군의 날 연설문

1974년 10월 1일.

이날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이 한 훈시는 밑에서 올린 초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쓴 연설문이다. 이 연설문에는 통일과 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전략) 우리 국군의 역사는 건군 초기부터 공산 침략자들과의 투쟁의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도 그들과 투쟁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또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 일보도 양보할 수 없는 생존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공산 침략자들이 우리를 침략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이겨야만 비로소 우리는 참다운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평화와 번영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각박한 현실이 오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이를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보는 한반도의 정세와 안보관은 현실을 도외시한 엉뚱한 판단으로서 위험천만한 사고방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에 부과된 민족적인 사명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역사적인 소명이기도 하기에 기어코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서도 안 됩니다. 또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민족적인 대과업을 어떻게 완수해 나갈 것인가?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 일부에서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색맹적이거나 인식 부족의 시국관을 가지고 무책임한 현실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총화, 그리고 또 유신 체제까지도 의식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고,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작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또다시 유신 체제에 도전하려는 일부 인사들이 민주가 어떠니, 자유가 어떠니 하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우 중대시하고, 이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유신 체제는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자유를 지키자는 체제입니다. 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자유는 일시적으로 이를 희생할 줄 알고, 또 절제할 줄 아는 슬기를 가져야만 비로소 큰 자유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노리고 있는 침략자들이 우리 내부에 어떠한 허점이 생기는 것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도 남과 같이 달고 맛있는 것을 다 먹고 다 누리려고 한다면, 또 그러면서도 자유는 자유대로 지키겠다고 한다면, 너무나 세상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도전을 받고, 그렇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또 지금 이 시각에도 그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오늘의 세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와 같은 극좌 모험주의자들과 앞으로도 끝없는 대결을 지속하면서, 또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이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도 반드시 거쳐야 할 몇 단계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 첫 단계가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평화 정착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연목구어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 불가침 협정부터 먼저 하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된 후에는 남북이 평화 공존을 해나가면서 서로 대화도 하고, 교류도 하고, 그리고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유엔에도 같이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나가다가 여건이 성숙되면 통일 문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여건으로 보아 이 방법 외에 다른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이런 제의를 모조리 거부해 왔습니다. 지금 이런 판국에 당장 남북연방제니 대민족회의니 하는 것은 음흉한 딴 생각이 있어서 하는 또 하나의 기만 술책입니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대와 앞으로 벅찬 민족적 대과업을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비상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지속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노력과 병행하여 우리는 총력을 경주하여 국력 배양에 힘써야 합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최대의 무기는 국력입니다. (중략)
그리고 또 국력 배양을 촉진하고 가속화하는 최선의 길은 유신 과업의 성공적인 수행밖에 딴 길이 없다는 것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을 향한 격정 토로

1974년 10월 2일.
대통령은 맏딸 근혜 양과 함께 청와대 출입기자단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대통령과 출입기자단 사이에 사석에서 이루어진 대화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이른바 신사협정이 맺어져 있었다. 이날 나누었던 대화 내용 역시 당시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근혜 양이 먼저 이런 말로 인사를 했다.
“어머님께서 여러분을 종종 초대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다 아시는 것처럼 그 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초대하지 못했습니다. 어저께 아버님께 말씀드려 오늘 여러분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육여사에 대한 추모담이 오갔으며, 국민으로부터 위로 편지가 하도 많아 모두 회답을 못하고 있으며, 근혜 양이 어머님 옷을 그대로 입는다는 등의 얘기에 기자들은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 후 화제는 정치 문제로 옮아갔다.
대통령은 당시 미국의 태도에 대해 상당히 언짢아했었는데, 포드 미국 대통령의 내한에 앞서 구속 인사 석방설에 대한 李鍾求 기자의 질문을 받자 대통령은 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미국의 포드 대통령이 곧 내한할 텐데 방한 전에 구속 인사를 석방한다는 설이 나도는 모양이지요. 가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포드가 오는 데 무슨 사전 조건이 필요합니까? 포드가 내한하기 이전에 구속 인사를 석방한다는 것은 국제 관례에도 없는 일입니다.”
미국에 대한 대통령의 감정 표현이 계속 이어졌다.
“미국이 군사 원조를 가지고 우리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보도가 나도는데, 사실상 미국의 군사 원조는 별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닉슨 대통령과 약속했었던 ‘군 장비 현대화’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의회 사정으로 인해 연도별 군사 원조 비용이 현재 실질적이지 못합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미국의 원조가 480만 달러에 불과했었는데, 이런 액수는 그저 주니까 받을 뿐이지 안 줘도 큰 지장은 없어요. 우리도 내년도 국방 예산을 높게 책정해 놓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통령의 어투는 매우 당당하고 고압적이었다. 무기와 관련된 대통령의 복안이 이어졌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기도 생산하고, 아울러 필요한 것이 있다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 올 계획입니다.”
대통령은 또 “자주국방의 토대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곧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논평을 했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金日成인데, 그거야 일 년이면 족하지 않겠어요. 진짜 문제는 일본입니다. 우리보다 경제가 조금 앞섰다 해서 지금 까부는데, 그럴 때마다 일본과의 경제 싸움에서 필히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더군요.”
대통령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발언들이 계속 이어졌다.
“미·일 양국의 일부 지도자들과 일부 언론들이 한국에 대해서, 특히 우리의 인권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데 심히 마땅치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안보 파동 때 그들이 취한 좋지 않은 행동도 있으면서 남의 나라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이상한 일 아닙니까.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각 주의 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대에게 발포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대체 어떻다고 인권 운운해요!”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언성을 높여 격렬한 감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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