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누가 먼저 만나는가의 문제


대통령 중심제下에서는 누가 대통령과 자주 만나는가에 의하여 사람들의 영향력이 결정된다. '공간이 권력이다'는 말도 있다. 朴正熙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죽게 되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대통령을 만나는 질서가 붕괴됨으로써 권부 실력자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1979년 10월26일자 마지막 대통령의 일정표를 보면 이날 아침 朴대통령은 9시40분에서 53분까지 이발을 한 뒤 9시55분에서 10시25분까지 車智澈 경호실장을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1979년도의 대통령 일정표를 보면 車 경호실장이 金桂元 비서실장보다 거의 먼저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고 있다. 이는 金正濂 비시실장 시절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김정렴 실장 시절에는 실장이 일과 30분 전에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하여 그날의 업무를 점검한 뒤 대통령이 집무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부속실에서 오면 대통령을 만나 주요사항을 구두보고하고 결재 및 보고 서류를 제출한다. 이어 의전수석이 그날의 일정과 면담 희망자에 대하여 보고했다.
朴 대통령은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의 면담 희망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했다.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만은 비서실의 사전 허가 없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비서실장 다음에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불문률처럼 되어 있었다. 특히 경호실장이 비서실장보다 먼저 대통령을 만나는 일은 극히 예외적이었다.
김정렴 실장은 경호실장, 정보부장, 법무장관, 검찰총장, 보안사령관의 면담에는 배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김정렴 비서실장은 각부 장관의 긴급보고는 사전약속 없이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계원 비서실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거의 매일 가장 먼저 대통령을 만나 여러 가지 정보를 보고했다. 그는 이를 위하여 일종의 私設 정보대를 운영하기도 했었다. 경호실장으로부터 먼저 보고를 받은 朴대통령은 그 사안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 후 비서실장과 정보부장이 같은 사안에 대해서 보고하면 대통령은 '그것은 이미 들은 이야기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경청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판단을 내릴 때도 실수를 하게 된다. 김계원 비서실장과 김재규 정보부장은 '경호실장이 월권을 하고 있고 각하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앙심을 품었다. 여기서 궁정동 총격의 씨앗이 싹텄던 것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