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에 대하여

필명 리플필살(회원토론방에서)

파아란님의 '바빌론 강가에서'를 읽고서


저는 파아란님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파아란님의 글을 통하여 더러 아는 것도 있습니다, 여성 가장이시고 기독교인이시고, 높은 지식과 논리를 가지시고 국가를 위하여 큰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 와중에 시비도 있었고 외간 남자와의 모함도 있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파아란님에게 존경과 경외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파아란님의 쓰신 대부분의 글에서 논리가 충분하고 필력의 기가 넘쳐나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하겠으나 '바빌론강가에서'를 읽고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 어르신들께는 정초 부터 음란이라는 주제를 올려서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파아란님의 글에 거론하신 성접대업소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들도 파아란님의 글을 읽는다면 아마도 모함을 받았던 파아란님의 심정과 별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말씀 드립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호기심 반 충동 반으로 성매매업소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거기는 술을 파는 곳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성매매업소 간판을 내건 곳도 아니었으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이 다 알고있는 곳이고, 고가의 화대를 지불해야 하는 곳 이었습니다, 거기에서의 서비스가 일부 엽기적인 사항까지 있어서 그 여성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 낯선 남자에게 이런 일을 계속 할 수 있는가, 사장이 이렇게 하라고 시키는가,
- 아니다, 내 스스로 한다, 이것은 내 직업이다, 내가 서비스를 잘하면 손님이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내 수입도 많아진다, 내 수입이 많아진 만큼 나도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하류인생이라고 단정지어버린 사람에게서, 밑바닥 인생들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대답치고는 참으로 이외이고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D.H 로렌스의 소설 '차타레 부인의 사랑'은 출간되자 외설로 낙인 찍혀 판금 조치를 당합니다, 당시로선 음란의 극치였다고 합니다, 이 소설이 인간의 본성을 노래한 예술성 있는 문학이고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에는 30~40년이란 세월이 필요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매매업소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밑바닥 인생이라는, 음란이라는 멍에를 벗겨내어 우리와 똑같은 일반 대중이고, 파아란님이 증오해 마지않는 성접대업소도 자유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경제의 하나라고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와 주먹을 흔드는 여성들을 보셨습니까, 그들이 어두침침한 사회의 그늘에서 햇빛 쏟아지는 빛 밝은 광장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들은 더이상 사회의 곰팡이도 아니고 음란도 아니고, 바로 우리의 여동생 우리의 누이들이었습니다, 힘 없고 빽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서서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서러웠던 5~60년대를 살면서 절대로 울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DNA를 물려받아 그녀들의 선택은 부끄럽지 않고 떳떳했습니다,

성접대업소를 찾아가는 남성에게도 위에 거론한 여성의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쾌락을 위한다기 보다는 거대한 힘에 의해 굴러가기만 할 줄 아는 수레바퀴처럼 묵묵히 휩쓸려 갈 뿐 입니다, 그 거대한 힘이란 자기 목줄을 쥐고 있는 직장일 수도 있고, 집에서 제비새끼 처럼 기다리고 있을 부양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저 거대한 의무 앞에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 한국 남성의 주관은 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접대문화가 남성우월문화에서 조장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포르노산업이 가장 번창하고 있는 북유럽의 예를 보겠습니다, 바이킹의 발원지였던 북유럽에서 포르노산업이 흥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성들이 해적질을 하러 바다로 떠나버리면 남편이나 아내나 다시 만날 기약은 불확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몇년이 지나서 돌아올련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는 서로의 외도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발달된 성문화는 남성우월사회에서 보다는 남성의 이해와 배려가 있는 곳에서 더욱 번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음란'이라는 것은 너무나 우리와 친해져서 그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모든 것에 깊숙히 들어와 있어서 어디 까지가 생활이고 어디까지가 음란인지 누가 무슨 잣대로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중세시대 청교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것 하나라도 하느님의 불벼락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없어뵙니다, 그러나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숨을 헐떡이며 컴퓨터 모니터로 보면 음란이요, 조명 휘황한 전시실에서 넥타이를 메고 보면 예술인 세상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음란이라는 죄목을 만들었을 뿐 음란은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 처럼 오감의 한종류일 뿐 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 능력 이상으로 많은 여자들을 취하였을 때, 그 여자들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하여, 혹은 탈선한 여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음란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이해와 관용을 가지고 세상을 보시면 음란은 안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음란이라는 가치기준은 이제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파아란님의 기준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음란남이라는 비판은 사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바빌론음란녀라는 말은 약간 생뚱 맞다는 느낌입니다, 바빌론 강가의 통곡소리는 가지못하는 북녁땅을 고향으로 둔 이산가족의 울음소리거나 분단이라는 바빌론 강가에서 울고있는 대한민국의 통곡소리일 것 입니다,

딴지 걸려는 것은 아닌데 글이 길어졌습니다,
파아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집에 오시는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