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 약 1000명을 학살한 소련군

여자와 어린이 노인 등 1300여 명의 非전투원인 민간인에게 소련군은 전차(탱크) 포격을 가하고, 캐터필러로 깔아뭉갰다

                                                 2014. 8. 10. 産經新聞

【挿絵で振り返る「アキとカズ」】(19)ソ連軍が日本人1000人を虐殺した葛根廟事件を忘れてはならない

산케이 신문 독자로부터, 참고하라며 받은 것이 1945년에 제작된
소련군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영상은 비겁하기 그지없는 소련의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선전물로서 '(소련 참전은)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라든지 '소련 참전으로 인해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라는 뻔뻔스러운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기도 안찬 것은 '(소련 참전으로 인해) 日本주민들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지옥 같은
고통을
日本人들에게 안겨 준 장본인이 그런 주장을 하는 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당시 소련군에 의해 약 1000명의 日本人이
벌레만도 못하게
학살된 '갓콘뵤'(葛根廟)사건'의
생존자 및 유족들이 펴낸
600페이지에 이르는 大作 '갓코뵤 사건의 증언'이
발간돼
있다. 

'갓콘뵤(葛根廟)사건에 관해서는, '지지'(時事)통신 해설위원장이며, 
日本은행 총재를 역임한 '후지와라 사쿠야'(藤原作弥,1938년生)씨를
인터뷰했을 때 상세하게 들은 바가 있다. 

만주(現 중국 동북부) 북부의 '흥안가'(興安街)에 살았던
 
'후지와라'(藤原)씨 가족은 1945년 8월 10일, 갑자기 침공해 온
소련군을 피해 운좋게도'마지막 열차'에 오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급생이나 이웃에 살던 많은 日本人들은 걸어서 피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8월 14일 점심 직전쯤 근교에 있던 
라마사원(寺院)
'갓콘뵤'(葛根廟) 근처에서 이들은 소련군
전차부대에게 발견되고 만다.

소련군에게 위치가 드러난 당시의 日本人 수는 약 1300명
정도였다.
대부분 女子와 어린이, 노인이었다. 이러한 非전투원인
민간인에 대해
소련군은 전혀 인정사정이 없었다. 달아나느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차(탱크) 포격을 가하고, 
캐터필러로 사람들을 깔아뭉갰다. 움푹 팬 곳에
몸을 엎드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머신 건(기관총) 세례를 퍼 부었다.

중무장한 소련 전차부대 앞에 놓인 그들은 그렇게 죽어 갔다.
이
아비규환의 지옥 같은 상황은 1시간 수십분에 걸쳐 계속
되었다.
결국 살아서는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자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 희생자는 약 1000명에
달한다. 정말 운좋게도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대부분
中國人 손에 넘어가 '잔류고아'가
되어 戰後로도 차별과
빈곤, 중노동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日本으로 생환한 사람 수는 겨우 백명 남짓에 불과했다.
 '후지와라'(藤原)씨는
이 책의 서문에서, '어려서부터 나에게는,
나 혼자만 살아 남았다는 일종의 죄의식이
항상 자리하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악마와 다를 바 하나 없는 소련군의 
만행은 후대의 일본인에게 계속 전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평화를 위해'라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저들의
거짓을 믿게 되는 日本人이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http://youtu.be/6ylhySDIH_A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