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투하 즈음 실시된'모의(模擬)원폭 실험'

오사카(大阪)대공습 당시 B29가 투하한 1톤짜리 폭탄이나 소이탄 폭격과는 확실히 이질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1945年 7月26日 아침, 오사카(大阪)市 '히가시스미요시'(東住吉)區
상공에 1機의 美軍 폭격기 B29가 날아와, 특수한 폭탄 하나를 투하했다.

'B29가 폭격을 할 때는 4機로 한 편성을 이루어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구름 사이로 1機만 보여 정찰하러 왔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쥐색의 뭔가 둥근 것이 비행기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탄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것을 투척한 것으로 생각했다'


■ 완전히 폐허가 된 집들

당시 열세 살이었던 '이토 시게루'(伊藤茂, 81세)씨는, 지금은 없어진
路線인 노면전차 히라노(平野)線의 나카노(中野)역 앞에 서 있었다.
그 때, 특별히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폭탄은
옆으로 경사져 흐르듯 유유히 낙하하여, 나카노(中野)역
으로부터
서북 쪽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떨어졌다. 그 순간
폭발에 의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아주 넓게
회색의 흙먼지가
피어 오르는 것을 봤다. 이어,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콰광'하는
엄청난 音이 울려왔다'


【記憶の中に】大阪は核投下の実
'모의원자탄투하지점'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는 이토 시게루(伊藤茂)씨


2, 3일 후에 떨어진 장소를 찾아가 본 '이토'(伊藤)씨는, 사방
100미터 정도의 가옥들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오사카(大阪)市 기록에 의하면, 이 폭탄으로 7명이 사망하고,
73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가옥은 485채가 파괴됐다. 투하된
폭탄은 당시 기존의 것 중에서 가장 큰 '1톤짜리 폭탄'일 것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실체가
알려진 것은, 종전 후 46年이 더 지난 1991년이었다. 


■
떨어진 것은 '모의원폭'

정체를 밝혀낸 것은, 아이치(愛知)県의 시민단체 '春日井의 전쟁
을
기록하는 모임'에 의해서다. 이 모임은, 국회도서관에서 마이
크로필름에 수록된 전시중의 방대한
美軍자료를 조사하여, 히로
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의 원폭투하를 하기 전에 사전훈련
차원에서 이런 '모의원폭'이 오사카(大阪) 등에 투하된 사실을 
밝혀냈다.

모임에 따르면, 1945年 7月20日부터 원폭투하 이후인 8月14日
까지,
전국 30개 도시에 49발이 투하되어 사망 400명 이상,
부상 1200 명 이상을 냈다.
히가시스미요시(東住吉)區에 떨어
진 폭탄도 그 중 한 발이었다.
모의원폭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플루토늄 원폭 '팻맨'의 형태와 
동일한 것으로 길이
3.25미터, 직경 1.52미터, 무게는 1톤에서 4.5톤 사이였다.

모임의 '가네코 지카라'(金子力, 63세)씨는 원폭을 투하할 준비
를 하기 위해
원래의 공격 대상이 아닌 장소를 택해 실험적으로
투하한 것이 이 폭탄이었다'고
말했다. 모의원폭이라고는 해도
위력은 컸다. 오사카(大阪)대공습 당시 B29가 투하한
1톤짜리
폭탄이나 소이탄 폭격과는 확실히 이질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탄착지점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은, '주변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격렬한 폭풍을 동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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