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다나오섬(島)에 和平을 가져다 준 女性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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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6. 産經新聞

日本정부가 外交정책의 한 축으로 삼고있는 '평화구축'이 잘 발현
되어,
필리핀南部의 '민다나오'섬(島)에서 40 여년간 지속돼 온 분
쟁이 그 막
을 내리고 있다. 日本은, 분쟁 당사자인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과격파
조직' 각각으로부터의 신뢰를 배경으로, 분쟁지의
부흥발전뿐 아니라
和平프로세스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적극外交의 이면에는, 평화달성의 날을 고대하며 세상을
떠난
日本 女性外交官의 공헌이 있었다.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소 현장으로 와 주었지요'

민다나오和平 추진과 관련하여 反정부세력의 총책임자로, 6월에
히로시
마(広島)市를 방문한 이슬람무장세력 '모로 이슬람해방전
선'(MILF)의 '무
라도'議長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웃었다. 사진에
서 '무라도'氏의 옆에
있는 이는 2004年 9月부터 약 3年間, 필리핀
주재 日本大使館의 公使로 근
무한 '다카하시 다에코'(高橋妙子)
씨다.
2011年 1月 암으로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ミンダナオに和平を、歴史動かした女性外交官 初の日本主導「平和構築」外交に奔走 志半ばで逝く  
2005年5月, 필리핀 민다나오섬(島)에서, '무라도'議長(左)과 함께
한 
'다카하시 다에코'(高橋妙子)씨


사진은, 2005年 5月 '다카하시'(高橋)씨가 反정부세력의 거점인 민
다나오
섬(島)에서 열린 '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 총회에 日本
정부대표로
참가했을 즈음에 촬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영상
을 보면, 다카하시
(高橋)씨가 武裝을 하고 있는 많은 게릴라 兵士
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갈채를 받는 모습이 나온다.

폭탄이나 암살 등으로 여차하면 목숨이 달아나는 곳. 국군(필리핀
군)과
의 전투로 남편을 잃은 女性.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하고
소년병이 된 어
린이. 민다나오섬(島)의 이러한 '不条理'(부조리)들
을 직접 눈으로 본 다카
하시(高橋)씨는 분쟁종결을 실현해야 한다
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다카하시(高橋)씨와 민다나오 분쟁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동료에
의하면,
다카하시(高橋)씨는, 필리핀정부 관계자나 外交官들이 찾
아가기를 꺼려하는
現地를 몇 번이나 방문하며 국군(필리핀군)과
경찰간부뿐 아니라, 게릴라
조직의 사령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
한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분쟁지인 만큼 화평교섭에 이르기까지 인적지원과 물적지원이 필
요하다.
이러한 지원이 있어야 나중에 부흥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日本의 공헌을 크게 염두에 둔 다카하시(高橋)씨는, 말레이
시아,
브르네이, 리비아라는 3개국으로 이루어진 '민다나오 국제감
시단'(IMT)에
이슬람 국가도 아닌 日本으로부터의 요원파견을 실현
시키기 위해 많은 힘
을 썼다. 당시, 日本은 해외 분쟁 케이스에서, 
和平合意 成立 이전의 단계인 
'平和구축조직'에는 참가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日本大使館은, 총력을
기울여('올 재팬'으로) 민다
나오和平을
지지하는 태세를 구축해 줄 것을 日本정부에 요청했다.
그 다음 해인 2006年, 日本정부는 IMT에 대한 요원
(부흥.개발 담당)
파견과 무상자금의 집중실시 방침 등을 표명하며 和平
合意 실현을
향한 지원을 강화했다.

이 동료는, '다카하시(高橋) 公使는 和平시나리오를 작성한 1등 공
로자다.
다른 사람들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것 뿐이다'라고 회상
했다.
다카하시(高橋)씨는, 2007年 8月에 韓国으로 異動했다. 그리
고 그 다음 해인 2008年 和平
프로세스는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고
전투가 再開됐다. 30만명 이상의 피난민
이 발생하고 국제사회는
교섭에서 손을 떼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日本
만은 '和平을
이루기 위한 관여' 방침을 끝까지 견지하며, 필리핀정부와 이슬
람
해방전선(MILF) 간의 파이프 역할을 수행하며 교섭을 추진해 왔다.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재직시, '2008 일본음악연주제'
개회사를 하는 '다카하시 다에코'(高橋妙子)씨(사진출처:뉴시스)


이러한 노력이 열매를 거두어, 2011年 8月, 日本의 나리타(成田)
空港 가까운
장소에서, '아키노'대통령과 '무라도'議長은 최초로
TOP회담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 회담이 돌파구가 되어, 금년
3月에 '包括和平合意'의 署名이 실현
됐다.  

다카하시(高橋)씨는 회담 약 반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병이 있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지인이나 동료에게 숨겼다. 다카
하시(高橋)씨의 外務省 후배이
자 日本大使館에서 민다나오和平
을 담당한 国際協力機構(JICA)의 '다케와카
게이조'(竹若敬三)
총무부장은 지난 5月에, 다카하시(高橋)씨의 영전에 이렇게
報告했다.

'先輩의 헌신으로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수십만 명의 미다나오
사람들
에게 화평을 가져다 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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