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 60분의 정형근 죽이기

나는 고백한다 - 수인번호 30의 고백(세세)


어제 KBS 추적60분에 출연하여 버젓이 ‘선진 노동자’운운하며 자신의 김일성 추종과 친북이적행위에 대해 거짓말을 하던 심진구의 참회과정이 방송됐던 1987. 2. 25 한 일간지 TV편성표에 적힌 프로그램 제목입니다.

KBS 참 대단한 방송이더군요.
친북이적행위자의 일방적인 고문운운하는 주장을 방송하면서 시청자들에게는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하고 ‘민주인사’로 추켜세우는 방송, 대단합니다.

사실 애초부터 정형근 의원이 고문을 했느냐? 누가 거짓말 하는 것인가? 무엇이 진실일까?하는 문제보다는 정형근 의원이 고문당사자란 진실을 각인시키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식의 짜깁기 왜곡으로 일관하며 계속 정형근 의원이 고문당사자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더군요

추적60분에서 보여줬던 당시의 신문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커다랗게 「親北傀 反美공산혁명 음모사건」이란 헤드라인과 함께 많은 기사들이 보도됐더군요. 그중에서도 주목을 끈 것은 “나는 이렇게 속았다”「反美共産혁명」九老小組責 沈鎭九씨의 反省文이란 박스기사입니다.

【『삶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노동현장에서 가두시위등 폭력투쟁을 일삼는 무리들은 진정한 노동자가 아닙니다. 이들의 뒤에는 성적불량으로 제적된 위장취업자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분명 그들은 신성한 근로현장을 투쟁의 발판으로 하여 공산혁명을 위한 토대로 삼고자 잘뛰고 있습니다...』 친북괴반미공산혁명음모 사건의 핵심인물로 「구로지역 근로자 小組責」 沈鎭九씨(27. 전 삼립식품공원) 는 수사기관에서 검거된 뒤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허황된 환상에 빠져 위장취업자들의 달콤한 선동에 넘어가 이들의 실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럴듯한 이론에 따라 무분별하게 행동했음을 깨닫고 자탄과 후회의 심정을 적은 반성문을 검찰에 제출했다.

8절지 종이에 22장이나 되는 장문의 반성문에서 沈씨는 『저와같이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삶의 보람을 얻고자 꿋꿋이 일하고 있는 선량한 노동자들이 다시는 저와같은 허황된 길을 밟지 말고 누구의 꾐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 이글을 씁니다』라고 동기를 밝혔다.

沈씨는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처지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법대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충만돼 허황되고 달콤한 金日成주체사상과 사회주의 혁명이론에 빠져들었고 선량한 노동자를 선동하여 구렁텅이로 몰고가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후회했다.

沈씨는 특히 같은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3월18일 분신자살한 朴永鎭씨(S정밀근로자)의 장례식이 거행된 그해 4월27일 경기도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내 장례식장에서 民統聯의장 文益煥목사등 재야단체 유명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朴씨의 약력보고를 한 뒤 이들 인사로부터 수고했다는 격려를 받았을 때 『나도 노동운동의 선봉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됐다』고 털어놓았다.

沈씨는 고3당시 『왜 우리집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져 학교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중 우연히 서점에서 구입한 「마르크스주의비판」「학생과 사상」등의 이념서적을 읽고 탐닉하게 됐다.

沈씨는 81년 6월 입대한 이후에도 계속 북한을 동경, 철책선근무시의 기억을 토대로 84년1월 제대한 직후 入北루트지도를 작성, 책상서랍에 숨겨두기도 했다.

沈씨가 이번 사건의 주범 金永煥씨를 만난 것은 직장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던 84년2월, 서울구로동천주교회에서 고교동창의 소개에 의해서였다.

金씨는 부동산공인중개사시험을 준비하던 沈씨에게 『노동현장에 함께들어가 노동자를 의식화시키자』고 권유한 뒤 계속 찾아와 이념서적을 통한 노동운동의 방법론을 가르쳤다.

沈씨는 그뒤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을 같이하며 金日成주체사상등에까지 심취했고 구로 독산지역 노동자 모임을 만들어 지역적 연대파업등을 토론하기도 했다.』】

왜 KBS 추적60분은 심진구의 반성문에 대해서는 단한마디 일언반구도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KBS가 87. 2. 25 보도특집으로 방송한 ‘나는 후회한다 - 심진구의 고백’을 왜 방송에선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신문기사등을 종합한 결과 심진구는 친북과반미공산혁명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관련자 13명중 핵심인물 3인중 한명으로「구로지역 근로자 小組責」활동한 결코 좌경이나 용공등 類似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생적인 골수 공산주의자로, 북한의 대남방송을 장기간 청취, 북한의 대남혁명이론을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음모를 노골화했던 바, 김일성을 맹종하는 북한의 고정간첩을 방불케하는 조직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진구는 특히 남한의 무장폭동을 유발하기 위해서는「힘있는 군대」를 동원키로하고 ‘병사혁명운동조’를 구성하여 무기를 탈취, 도시게릴라전을 벌이기로 하고, 실제 이같은 계획에 따라 무장폭동을 준비, 인천시지역 지도를 입수, 정밀분석하고 도상훈련까지 실시했으며, 또 폭동실패시 북한으로 도주하기 위해 입북지도까지 준비하는 등 월북방법까지도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84년 1월 제대한 후 중부전선 철책선 근무시 유심히 관찰한 내용을 근거로 入北루트지도를 2회에 걸쳐 작성, 자신의 고향 안성집 안방 장판밑에 은닉해두었고 조직의 과업 수행과 남한에서의 무장폭동이 실패할 경우 북한의 지원필요성 등을 들어「입북 루트지도」와 간첩이나 고정간첩, 또는 일본 조총련과의 연계를 모색하자고 제의한 사실이 있습니다.

특히「친북괴반미공산혁명음모 사건」은 학원 및 노동계에 침투한 최초의 자생적 주체사상 조직으로 사건관련자들은 이후 주요 간첩사건 주범으로 다시 검거되었는데, 핵심 주범 중 3인 중 하영옥은「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간첩으로 99. 10. 서울지검 공안1부가 구속·기소한 바, 김영환, 하영옥 등은 남파간첩과 대동월북, 노동당에 입당하거나 현지입당하여 북한의 공작금을 받아 지하혁명당 건설을 획책하다 검거됐으며, 황인욱, 은재형등은 92. 10월 검거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핵심으로 총책 황인오에 의해 조선노동당에 현지입당하여 활동하다 검거된 사실이 있습니다.

또 양홍관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봤습니다.
양홍관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12년형을 선고받고 6년 살다가 98년도에 8.15특사로 석방, 2003년도 사면 복권)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강원도당 책임자로 활동한 것 이외 흥미로운 기록도 있더군요

양홍관의 2심 판결문중 피고와 변호인의 항소이유에서 자신은 북한의 추종세력이 아니라며 “피고인이 민애전 및 조애전 가입식때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및 조선노동당기 앞에서 선서식을 했던 것은 남북연대의 상징적인 의미뿐이었는데도 원심이 사실오인을 하여 동 피고인을 주체사상가로, 김일성주의자라고 판단했다”하고 있어, 양홍관 뿐만 아니라 변호인도 양홍관의 민애전 가입 사실에 대한 사실관계 및 주변 정황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제 방송에서는 초상화, 노동당기 모두가 고문으로 조작됐다고 태연히 증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홍관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역사와 민족이 과연 어느쪽의 역사와 민족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인오 관련 자료에는 양홍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자료도 있더군요.

판결문 등 자료 따르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의 A3 난수지령문 및 대북 보고문 난수표 해독 결과과 나오는데, 양홍관은 김일성 팔십회 생일을 맞아 북한 노동당의 노력훈장을 받은 것을 황인오를 통해 전달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위대한 수령님 탄생 팔십돌을 맞으며 도책 양관자(양홍관, 신동욱)에게 노력훈장 배려됨. 그들 이북과 련계된 것 알고있다면 배려전달하고 정치사업할 것 : 수신일자 92. 4. 22」「별도 명령 없으면 조직사업 재개하겠음. 배려 전달하였음 : 보고일자 92. 4. 24」

특히 91. 11 말 황인오는 은서보고를 통해 중앙지도부 결성 사항 및 지도부 최호경, 장창호, 정경수, 은재형, 김철완, 양홍관, 신동욱 등 신원자료를 북한에 전달 한 바 있고, 이 명단은 황인오가 검거되면서 소지하여 수사의 단초가 됐던 핵심조직원 8명의 명단입니다.

하늘만이 진실을 안다는 진행자의 멘트 속에 확신적으로 내뱉는 확고한 유죄 취지의 멘트는 결국 단순한 정형근 의원의 고문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 8~90년대 ‘민주인사’를 안기부가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여 ‘친북이적행위자’로 만든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방송이었습니다.

북한을 비롯해 남한 내 친북좌익들은 정형근 의원을 왜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갖 홍위병 잡배들을 동원하여 말도 안 되는 증거를 들여 밀며 인민재판, 마녀사냥을 획책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결국 80년대, 90년대 자신들의 친북이적행위를 희석시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형근 의원을 고문기술자, 거짓말쟁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며 전복시키려는 친북좌익주의자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민주화 인사로 둔갑하는 판에 간첩질과 친북 이적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량한 죄값을 치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다시 편입되었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이라도 표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기대일까요?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