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노조, 시민단체


[권력의 흐름]

농업시대의 퇴조와 더불어 수천 년, 수만 년 공고하기만 하던 왕-귀족-사제(앙샹 레짐)의 권력 체계가 붕괴된다. 산업화와 더불어 중산층이 대두하면서 정당이 출현하여 선거 또는 혁명이라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이른다. 아직도 예외 지역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중동이다. 거기서는 농업시대의 토지에 해당하는 유전을 독차지한 왕과 귀족이 코란을 옆구리에 끼고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자국의 농민이나 노예에게 걷던 지대보다 외국의 자본가로부터 받는 유전 '임대료'가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많기 때문에 그들은 힘들여 중산층을 대량생산하는 산업화를 지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농업시대의 귀족보다는 분산된 권력 체계를 갖고 있지만, 산업시대의 정당도 무산계급이나 민중이라고 불리는 노동자와 농민과 소시민의 이익은 제대로 반영 못한다. 그래서 이들 중에서 가장 균질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단체를 결성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정보시대에는 노조도 전체 민중에 비하면 일개 소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도 더 이상 균질 집단이 아니다. 기업마다 다를 뿐 아니라 대량생산 체제의 2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급감하고, 생명 주기가 짧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급증한다. 또한 연봉 1천만 원도 못 되는 노동자와 연봉 1억 원이 넘는 노동자는 더 이상 동지애를 느낄 수 없다. 같은 블루 칼라도 천양지차이다. 단순 노동에 고용이 불안한 블루 칼라와 대학 이상의 학력을 자랑하는 무늬만 블루 칼라인 우량 기업의 엔지니어는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더 크다. 화이트 칼라도 천차만별이다. 휴대폰 요금을 간신히 버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 위에 핑크 칼라라고 단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블루 칼라보다 낮은 임금을 감지덕지하는 미소 부대가 있고, 그 위에 여전히 우아한 화이트 칼라가 있다. 그러나 그 화이트 칼라도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골드 칼라 앞에 서면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수구 세력으로 전락한 노조와 집단이기주의밖에 모르는 시민단체의 등장]

노조 자체가 이제는 혁신과 진보를 거부하는 수구 세력으로 전락한다. 전투적인 노조일수록 귀족화되었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그런 나라의 노조는 사용자와 사회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로부터도 배척받아 노조 가입률이 10%를 간신히 넘긴다. 90%의 노동자가 자기들만의 집단 이익 단체로 전락한 노조를 외면한다는 말이다. 대신에 경우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시민단체가 생겨난다. 이 시민단체는 이해 관계와 철학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핵 폭발하듯이 무수히 생겨나고 거품이 꺼지듯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왕에서 정당으로, 정당에서 노조로, 노조에서 시민단체로 권력이 점점 내려오고 점점 널리 퍼진다. 이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다. 이런 외형적인 면만 감안하면 한국은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한 나라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뿌리가 썩었고 줄기가 말랐고 꽃이 시들었다.

왕보다는 정당이, 정당보다는 노조가, 노조보다는 시민단체가 낫다는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 양반·지주로부터 조세를 골고루 걷는 대신 일반 백성으로부터는 5%의 조세만 걷은 세종과 양반·지주가 농민들로부터 40%에서 70%에 이르는 소작료를 울궈내는 것을 당연시한 철종이 같을 수가 없다. 나치나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구미의 의회 민주주의가 같을 수가 없다. 정부와 자본가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던 시절의 노조와 전임노조는 상임이사와 맞먹고 노조위원장은 사장 또는 회장을 윽박지르는 노조가 같을 수가 없다.

자원봉사와 후원금으로 꾸려 가는 시민단체, 정식 법인으로 등록하여 면세의 혜택을 받고 회계 장부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소외 집단의 정당한 권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머와 논리로, 감동으로 되찾는 시민단체와, 저 멀리 아른거리는 권력의 열매에 침을 삼키며 후원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생업을 팽개치고 오로지 그 일에 매달리는 자들이 암호가 가득 찬 회계장부를 연말에 자기들끼리만 어두운 골방에서 후딱 확인하고 즉시 파기하는 시민 단체, 막무가내로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또는 환경 지킴이란 거룩한 명예를 획득하기 위해 유리 봉투에서 원천 징수된 1천4백만 노동자의 2년간 세금을 몽땅 거대한 동굴에 파묻어 버리거나 망망한 바다에 쏟아 버리는 시민 단체 또는 정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선전선동을 일삼는 시민단체가 같을 수가 없다.

[정당도 나라마다 다르다]

정당의 발전도 나라마다 경제, 사회, 문화, 자연환경에 따라 제 각각이다. 그것은 발전과 반동, 진보와 퇴보를 거듭한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 대표적이지만, 독일과 일본이라는 후발 주자도 있다.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이들 나라와 서구의 나라들, 오세아니아주 그리고 캐나다만이 선진국으로 불린다. 소련과 동구, 중공, 북한, 쿠바 등은 길게는 70년 짧게는 50년 공산당이 유일 정당으로써 권력을 독점하여 피의 향연을 베풀었다. 동아시아의 4룡과 동남아시아, 인도를 비롯한 서남 아시아도 정당은 막강하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 중남미는 민중민주주의로, 아프리카는 봉건적 민주주의로 악명이 높은데, 거기서 정당은 소수 기득권의 장식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꾸준히 정당이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지만, 정당이 독재권력의 온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절대적인 기준은 세우기 힘드나 상대적인 기준은 세우기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자유중국과 중공, 한국과 북한이다. 국공내전 당시는 중원의 민중으로부터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보다 믿음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49년 자유중국과 중국이 양립한 이후로는 정반대가 된다. 모택동은 진시황으로 변모했고 장개석은 한 고조 유방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8억은 울었지만, 2천만은 웃었다.

[북한의 공산당과 한국의 여당들]

한반도에서도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이전까지는 소련군의 일개 괴뢰군인에 지나지 않았던 김일성이 민중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았다. 치열한 권력 투쟁의 와중에서 그가 농지개혁의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외세를 빌어 일으킨 동족상잔과 휴전에 이은 협동농장화 이후 공산당은 남북 양쪽의 민중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에서 악몽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다만 이북에서는 김일성의 선전선동과 쇠 채찍 때문에 민중들이 속마음을 비칠 수 없을 뿐이다. 권력과 방송과 군대를 독점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드라큘라 이빨 아래서 한민족 역사상 가장 슬프고 아픈 역사가 60년간 계속되고 있다. 굶주림과 병듦과 갇힘과 강제노역과 노동착취와 고문과 사형이 오히려 정상인 나라로 전락했다. 김일성 가문 외에는 북한의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정당이 노동당이다.

반면에 배는 고팠지만, 농지개혁과 동족상잔 이후 한국의 민중은 자유당 이어 민주당에 광범위한 지지를 보냈다. 남파간첩과 고정간첩 외에는 공산당을 사모하는 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4·19 후 민주당은 정통성 시비는 일거에 잠재웠지만, 조선시대 붕당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웅변과 공약(空約)과 계획과 개탄과 고함과 데모의 와중에 쉰세대와 신세대로 나누어 국가 권력과 미국의 원조금과 국민의 세금을 서로 빼앗아가고 뜯어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유당 때부터 긁적거린 경제개발 계획이라는 것도 10년은 더 붙들고 뭉개고 있었겠지만, 그대로 실천했어도 대체산업 위주의 폐쇄적인 민족주의 경제와 국유 산업 위주의 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했기 때문에, 잘해야 필리핀이나 파키스탄 또는 인도 수준 이상이 나올 수가 없었다. 박정희는 2년 정도의 시행착오 후에 대대적으로 민주당의 탁상공론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쳤다. 그래서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아직도 국민의 70%가 박정희를 사모할까?]

결국 배고픔을 해결한 사람은 전직 일본군 출신에 한때 공산당에도 가담했던 박정희 장군이었다. 그는 정당으로 민주공화당을 내세웠다. 그는 민중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장개석이나 이광요 이상이었다. 죽은 지 25년이 지났지만, 70%의 지지는 요지부동이다.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서 아무리 세뇌작업을 펼쳐도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 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민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원하는 것을 제공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가 낡은 혁대를 차고 구멍이 숭숭 뚫린 러닝셔츠를 입고 부채를 부치면서 파리채를 휘두르며 누리던 권력과 그의 약점으로 비치는 정통성과 명분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자들이 배운 자들을 중심으로 만만찮게 커지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를 실현할 토대가 마련되면서 물배가 남산만하던 시절을 망각한 민중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엄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갈수록 커졌다. 한국이 성인 사회로 접어든다는 좋은 징조였다.

동구가 열리고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집단 광기의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한국은 슬기로운 일반 국민만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이 있는 철든 지식인들도 북한의 유일 정당과 한국의 역대 여당들에 대한 판정에서 심판 전원일치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찢어진 철의 장막과 불탄 죽의 장막 사이로 진실의 햇빛이 비치자 거짓의 짙은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특한 나라, 한국!]

그러나! 한국은 독특한 나라! 지하에서 활동하던 우주인들에 의해, 지구의 현실에 감감 무소식인 우주인들에 의해, 한국에 몰래 들어와 암약하던 이상하게도 코리언을 쏙 빼 닮은 우주인들에 의해 민주화의 거센 바람을 타고 천지사방에 민들레 꽃씨가 퍼지듯 김일성화, 김정일화의 꽃씨가 곳곳에 뿌려졌다. 마침내 2000년 6월 15일! 이 날 이후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 무궁화를 진드기가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꽃으로 밀어내고 춘하추동 활짝 피었다. 청와대에까지! 저 유명한 조선과 동아, 중앙도 김정일의 휘황찬란한 웃음꽃을 1면에 통째로 실었다. 뒤늦게 최면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타도의 대상이 되어 있었지만.

북핵과 북한인권도 눈 먼 한국인에겐 태평양 한복판의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미녀 응원단의 생화 같은 웃음과 앙칼진 듯 섹시한 구호에 얼이 빠진 한국인들은 붉은 안경만 벗으면 훤히 보이는 찬란한 햇빛을 민족과 자주와 평화의 찢어진 우산으로 가리고 제국주의와 사대와 전쟁의 먹구름은 물러가라고 짝 잃은 두견새가 피를 토하듯 절규하고 있다. --통일만 된다면, 공산당인들 어떠리!

뿐이랴! 드디어 민주주의의 마지막 꽃이랄 수 있는 시민단체도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다며 여름 장마에 잡초가 자라듯이 산과 들과 공원을 새파랗게 뒤덮었다. 정정당당하게 법인으로 등록하고 투명한 회계를 365일 공개하는 극히 일부 시민단체와는 달리 초록은 동색이라 역시 불투명한 회계로 악명 높은 정당과 노조를 어느새 밀어내고 그 위에 군림하는! 무수한! 아름다운 이름의 시민단체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파란 한반도기를 흔들며, 낙동강의 다부동에서 인천의 월미도에서 감격의 눈물을 줄기줄기 자아내던 성조기를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불태운다. 수백만의 자국민을 고문하고 학살한 사담 후세인은 열렬히 사모하고 그 졸개 수천 명을 알라에게 보내면서 수천 명의 자국 병사도 눈물을 머금고 여호와에게 부탁한 조지 부시는 박정희를 증오하듯이 증오한다. 한 자락 양심은 있는지, 김정일 장군님을 사모한다는 말은 절대 공개 석상에서 않지만, 가만 지켜보면 '그이'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도 절대 않는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강시 집단 같아 으스스해진다.

세계를 한 눈에 내려다보면, 왕, 정당, 노조, 시민단체가 차례로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섬을 알 수 있다. 농업시대, 산업시대, 정보시대로 발전하면서 부가 증가되고 그 부가 분배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두 팔을 치켜들고 좌우로 흔들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절로 뿌리를 내리고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독버섯이 너무 많다. 향기로운 독초가 너무 많다. 한마디로 사이비가 너무 많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은 배워도 헛배우고 살아도 헛사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바보같이 보이겠지만! 슬기로운 사람들은 한줌밖에 안 되는 독재자와 권력 중독자에게 꿈속에서도 속지 않는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들이 도리어 바보처럼 보이는 난세가 위태위태 계속되면,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면서 백두산 옆에 백의민족의 시체가 쌓여 백두산에 버금가는 산이 하나 불쑥 새로 솟아나고 한강에는 푸른 물 대신 붉은 피가 철철 넘쳐흐를 것이다.

(200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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