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은 그렇게 죽일 놈인가

안티구한말(토론방)

제목 : 이완용선생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
갑오개혁을 일으킨 주역으로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선생.
우리에겐 매국노,친일파로 잘알려져잇다.
조선민족의 자존심에서는 일본과 합방한다는게 도저히 용납못할 치욕이었을것이다.우리민족에겐 관습적으로 내려온 정서인
일본은 왜놈 만주족은 오랑캐 오직 한족만이 중화민족으로
조선을 지배할 자격을 가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엉터리 자존심으로 주자학도 오리지널보다 더 세밀하게
연구하느라 500년 허송세월 보내고 정작 남은건
세도정치에 찌들은 헐벗은 백성과 잦은 흉년
과학기술을 천대함으로써 문명이라곤 낫 호미 괭이 수레에
무기라곤 칼 활 창 구식화약무기가 전부였다.
정약용선생같은 분이 실학을 연구하였으나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고 엎친데 덥친격으로 청나라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대원군은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또한번 잃어버린 10년
허송세월을 보낸다.후에 집권한 고종황제는 현실적인 분이었다
나름대로 근대화를 이루어 보고자 차관도입도 하고 개혁도 단행하고 무기도입을 추진하고 신식 해군사관학교 양성에도 눈을 돌려
일본의 상선을 개조해 최초의 군함을 보유할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일본과 서구유럽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엔
너무나 많은 세월이 지나버려 하찮은 약소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동학혁명군 30만명이 4천명의 일본 기관총부대에 몰살당하고
죽창과 총알막는 발을 엮어 발을 굴리면서 육박전을 펼쳤으나
문명의 힘앞에선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국가를 몸에 비유한다면
대한제국은 못먹고 못입고 못배워서 허약한 체질에
병균을 싸워 이겨낼 항체가 없어 병을 투입하면 그대로 앓는
체질이었다.육체와 실체가 없는데 아무리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무장해도 서구의 기술문명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에겐 3가지 선택이있었다.첫째
해산된 군대를 다시 재정비하여 일본과 전면전을 펼치는 방법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를 물리친 해전강대국이었다.
두번째,힘이없으면 버티는 방법으로 죽기살기를 각오하고 저항
세번째,한일합방조약에 서명하고 일본의 보호를 받겠다.
그는 결국 세번째를 선택했다.나는 그시대 시대상황을 보면
이완용이 아니라 지금의 이해찬이 총리를 맡았다해도 그방법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을사오적의 매국행위에 대해선
비난받아 마땅하다.정서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구한말 대한제국의 위정자로써 국력을 키우지 못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동시대 인도는 조선보다 많은 인구에 지하자원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세포이 항쟁으로 수십만명이
죽기도 하엿으나 영국의 총몇자루 든 점령군에게 총알받이가
될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조선의 을사오적은 한일합방의 조건으로
많은것을 얻게된다.일본의 예산의 십분의 1을 한반도에 투입하고
일본과 똑같은 교육 똑같은 행정과 제도를 시행하게 했다.
이완용은 도저히 이룰수없는 근대화를 일본의 열차의 한칸에
얻어타 조선을 개화시키길 원했을수도 잇다.


61.38.25.148


대중반역 (02/21 08:43)
나라를 빼겼을 때 가장 큰 역적놈을 그당시 왕이다
정치를 개판 치고 나라망치고 그 쫄개가 나라 빼앗기는
문서에 서명 한죄 밖에 없다 모든 건 왕이 책임져야 한다
작금의 빨갱이 달러 퍼줘 핵 만들어준 그 짐승새끼도 전부 고봉들 탓으로 돌리고 그놈은 더러운 상까지 받아쳐먹은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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