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오카(富岡) 製絲場을 지탱한 女性들

 2014. 9. 14. 産經新聞

세계문화유산 登録(등록)으로 注目을 받은 군마(群馬)県
도미오카(富岡)
市에 위치한 <도미오카(富岡) 製糸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
만, 明治時代(1868~1912년)에 이
工場에서 生糸(생사)를 방적한 工女들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멀리 떨어진 시가(滋賀)県 히코네(彦根) 지역
出身者였다.

그녀들은 나중에 히코네(彦根)로 돌아가 각자 보유한 技術을
활용
하여 繊維産業(섬유산업)発展에 크게 貢献(공헌)하게 되면서
시가(滋賀) 지역은 全国
屈指(굴지)의 <繊維県>으로 成長했다.
왜 히코네(彦根) 女性들이 도미오카
(富岡)로 많이 갔을까? 


【関西の議論】世界遺産「富岡製糸場」を支えた「彦根」の女性たち…今と重なる「地方創生」「女性活躍」の歴史
히코네(彦根)의 士族(舊무사계급)이 県에 提出(제출)한 <製糸器械所
設立之儀ニ付嘆願書>의 그림(絵).
이 <洋風器械>를 100機 갖추면
좋겠다고 쓰고 있다 = 시가(
滋賀)県 所"101


■ 아내(妻)와의 인연(縁)을 더듬어 히코네(彦根) 女性을 募集

明治5年(1872년) 新政府는 官営模範工場(관영모범공장)
<도미오카(富岡)製糸場>을
設立했다. 하지만, 操業開始 당시는,
'工女모집'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못했다. 도미오카(富岡) 製糸場에서는
外国人 技術者로부터 指導(지도)를
받는 것으로 돼 있었고, 外国人의
赤와인(포도주) 마시는 모습으로
인해 <外国人에게 피를 빨릴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製糸場 建設에 깊이 관여하여 設立後(설립후)에도 <賄方(마카나이
가타,
식료품 조달자)로서 노동자들을 지원한 '나오지로'(直次郎)라는
인물은, 工場長들과 함께 工女募集에도
奔走(분주)했다. 아내(妻)가
히코네(彦根) 出身이었던 인연(縁)을
더듬어 히코네(彦根)를 방문하여 
女性들에게 도미오카(富岡)製糸場에서
일할 것을 권유했다. 이것이
히코네(彦根) 女性이 大量雇用(대량고용)되는 계기가
된다. 

모집에 응한 女性의 한 명으로, 舊히코네(彦根) 藩士(번사,
영주가 지배하는
지역의 무사)의 아내(妻) 오치시로
시게코(遠城繁子)로부터 一家의
困窮(곤궁)함을 전해들은 
工場長은 시케코(繁子)를 歓迎(환영)하고, <工女담당
理事>직을
맡긴다.

그 후, 1876년에는 153명, 1877년에는 167명, 1878년에는
132명씩
시케코(繁子)를 뒤이어 많은 女性들이 도미오카(富岡)로
향했다.
그 증가세는, 제사장을 보유한 군마(群馬)県이나
이웃(隣)県인
나가노(長野)県을 上回하여, 시가(滋賀)
지역 出身者는 전체 工女의
30%를 차지하는 最大勢力이 되었다.
하지만, 낯선 지역에서의 生活
이나 重노동으로 목숨을
잃은 女性도 꽤 많아 시가(滋賀) 出身者 중
21명이 死亡한다.
그 중, 10명이 20세 이하의 젊은 女性이었다.
그녀들의 묘지는,
지금도 도미오카(富岡) 製糸場 근처에 있다.


県営彦根製糸場の内部を描いた「製糸場操業ノ図」。富岡の技術を生かして創設された(滋賀県所"101)
県営 히코네(彦根)製糸場 内部를 그린 <製糸場 操業図>. 도미오카
(富岡)의
技術을 활용하여 創設되었다 = 시가(滋賀)県 所"101


■ 도미오카(富岡)의 技術을 널리 전파

에도시대(江戸時代,1603~1867년)에는 35万石(쌀 생산 35만섬)
규모가
되어 <近江国(옛 시가현) 중 가장 큰 都会(도회)>로
인정받았던 히코네
(彦根) 藩(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明治維新(1868년)
後에는, 舊武士層(구무사층)이 職을 잃어버리고
衰退(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거기서
藩이 착안한 것이
"453糸業(잠사업)이었다.

廃藩置県(藩을 없애고 県을 둠) 後인 1875년, 舊히코네(彦根)
藩士
(영주 휘하 무사)들에 의한 <洋風器械>를 導入한 生糸의
試'443製造가
시작됐다. 1876년에는 舊藩士(영주 휘하 무사)들이,
미오카(富岡)
에서 돌아오는 子女의 技術을 활용하는 施設로서 
県権令(県知事 格)
에게, 近代的 製糸工場의 建設을 申請했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추진되기도 전에, 1877년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구마모토현 등 지방세력이 일으킨 반란)이 
勃発(발발)하게 된다. 공장건설
申請과 準備에 관계된 몇 명이
西郷軍(반란군)과 関係가 있었던 것
으로 의심을 받아 官憲에게
拘束되어, 이들의 製糸場 設立 시도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데, 権令(知事 格)이, 舊藩士(영주 휘하
무사)의 就業支援에
前向的이었던 덕분에, 県営의 <히코네(彦根)
製糸場> 設置는
드디어 결정이 된다.

1878년에 操業을 開始하자, 히코네(彦根) 근처의 湖東地域
등에서는
히코네(彦根)製糸場의 工場長이나 工女들을 教師로
삼아 機械(기계) 製糸場
의 設立을 잇따라 추진하게 된다.
1917년에는, 같은 히코네(彦根)에서,
히코네(彦根) 製糸場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자녀가 <오우미(近江)絹綿
株式会社)>
(지금의 '오미켄시'=오사카市)를 創業한다. 히코네(彦根)
製糸場은 1901년에 閉鎖(폐쇄)되지만, 県内 模範工場으로서의
役割을 훌륭하게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製糸会社創立趣意書」には「富岡から帰った工女は、器械がないから教えられない」と記されている(滋賀県所"101)
<製糸会社創立趣意書>에는, <도미오카(富岡)에서 돌아 온
工女들은, 器械가 없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는 상태다>라고
적고 있다  = 시가(滋賀)県 所"101


近代日本의 経済発展을 견인한 製糸業의 遺産(유산)은,
도미오카(富岡)
以外에도 各地에 남겨져 있다. 나가노(長野)県
오카야(岡谷)市는,
今年 8月, 도미오카(富岡) 製糸場의
操糸機(조사기) 등을 展示하는 오카야
(岡谷) "453糸博物館을 리뉴얼
오픈했다. 아울러, 同県에는, 도미오카
(富岡) 製糸場의 4代째
所有者가 된 가타쿠라(片倉)製糸紡績
(現가타쿠라工業)이 노동자의
慰安施設을 겸해 1930년 전후에 建設한
가타쿠라(片倉)館이 있다.

사이타마(埼玉)県 구마가야(熊谷)市에 있는 것은, 가타쿠라(片
倉)
工業・구마가야(熊谷)工場의 一部를 博物館으로 만든 <가타
쿠라(片倉)실크記念館>이다. 生糸輸出의 拠点이 된
요코하마
(横浜)에서는, 요코하마(横浜)生糸検査所였던 施設이
現在,
요코하마(横浜) 第2合同 庁舎(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教育再生考-現場からの報告(1)】かわいそうじゃなかった女工たち、近現代から逆さに学ぶ 歴史授業に多角的視点を
나가노(長野)県 오카야(岡谷)의 製糸場에서 일하는 1920년 전후의
製糸工女.
가혹한 노동환경이었다는 批判도 있지만, 工女들의 90%
는 처우에 만족하고 있었다
= 오카야(岡谷)"453糸博物館 提供


그런데, 히코네(彦根)市에는 이러한 施設 등의 遺産이 남아있지
않다. 市도 <把握(파악)한 바 없다>는 반응을 보여 製糸場 建物이
閉鎖된
後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상태이며, 도미오카(富岡)
製糸場과
히코네(彦根)와의 関係를 아는 사람도 지금은 많이
없다.


■ 女性을 활용한 모델 케이스

히코네(彦根)製糸場을 둘러싼 환경(산업 관련성)을 보면,
同製糸場을
金融(금융)측면에서 支援했던 <第百三十三 国立銀行>이
製糸場 開業 翌年인
1879年에 히코네(彦根)市에서 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現在는 <시가(滋賀)
銀行=오쓰보(大津)市>으로 존속하며,
県内 経済를 금융측면에서 지원
하고 있다. 또, 製糸는 물(水)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水道의 수도
꼭지 製造가 그 부근에서
번창하게 되어 지금도 히코네(彦根)는, 国内
屈指의 밸브産地가
돼 있다.

시가(滋賀)大 経済学部 '스쓰이 마사오'(筒井正夫, 일본경제사)
教授는,
<히코네(彦根)는, 도미오카(富岡)의 影響(영향)이
多面的으로 남아있는,
全国에서도 진기한 케이스다. 当時의 新政府가
목표로 했던 모델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指摘(지적)했다.
当時는 유럽과 미국이라는
列強을 <뒤쫓아가 추월하자>는 구호가
일반적이던 時代였다.


富岡製糸場が世界文化遺産登録へ 富士山に続き国内14件目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미오카(富岡)製絲場


<히코네(彦根)의 歴史는, 地方創生과 女性活躍이라는 측면에서
모델이 될 수 있다. 도미오카(富岡)의 세계문화유산 指定을
계기로
各지역 고유의 歴史에도 눈(目)을 돌렸으면 한다>고
스쓰이(筒井)
教授는 부연했다.

製糸業과 관련하여, 도미오카(富岡)의 施設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지만, 히코네(彦根)는 遺産이 남아있지 않아 그 지역의
과거 隆盛(융성)했던 때를 아는 사람이 현재 많지 않은 상태다.
도미오카(富岡)와 히코네(彦根)가 묘한 対照(대조)를 보이는
부분이다.





     http://youtu.be/aqlZnlT1G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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