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尹, 동생은 李씨라도 좋나?

법무부는 2003년 9월 전통적인 姓氏 제도 변경과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측 제안이유: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를 구성하는 호주 제도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남녀평등과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족형태에 부합하지 않고 있으므로 가(家) 개념 및 호주제를 전면 폐지하여 헌법이념에 충실하고 현실의 가족생활에 부합하는 선진적이고 평등한 가족제도를 구현하려는 것임.
자녀의 성(姓)과 본(本)에 관하여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모의 협의에 따라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자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여 성(姓) 불변의 원칙으로 인하여 불합리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관련 규정도 개정하려는 것임>

위의 개정안에서 호주제 폐지 못지 않게 한국의 전통적 가족제도에 큰 영향을 끼칠 대목은 '혼인할 때 부모가 협의하면 자녀가 어머니 姓을 따를 수도 있도록' 한 대목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尹씨이고 어머니가 李씨일 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은 尹씨이고 장녀는 李씨가 될 수 있다. 장남 尹씨가 趙씨 성을 가진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은 尹씨인데 딸은 어머니 성을 따라 趙씨가 될 수도 있다. 趙씨 성을 가진 딸의 親할아버지는 尹씨이다. 즉 尹할아버지의 친손녀는 趙씨이고 친손자는 尹씨가 된다. 尹할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친손자에게 더 애착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姓은 한 가족의 브랜드이다. 이 브랜드가 바뀌면 가족의식도 약화되거나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姓으로서 父母의 姓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자유의 확대가 아니고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교차로에서 좌회전과 우회전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혼란의 확대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호적이 없어지고 어머니 姓을 따를 수 있도록 하면 아버지 姓만을 기준으로 하여 家門을 가르고 족보를 따지면서 조상을 찾아올라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어렵게 된다. 호적과 족보와 父姓 기준의 붕괴로 부모 이상의 조상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기초 구성단위는 개인이라기보다는 가족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가족적 결속력은 강하다. 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이 가족제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야 할 정도로 한국의 가족제도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전란과 굶주림의 시기에 국가가 해줄 수 없었던 것을 家長과 가족이 했다. 어려운 시기 가족은 방파제이기도 했고 토치카이기도 했다. 이런 가족의 위대한 희생정신과 결속력, 그 핵심에 '우리는 같은 姓을 가진 피붙이다'는 생각이 있었다. 姓씨 제도의 변혁은 가족 정체성의 핵심인 姓에 대한 혼란을 가져와 가족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자녀가 어머니 姓을 따르도록 허용하는 것은 남여평등과는 관계 없다. 미국에서 여인은 결혼한 뒤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자녀는 아버지 성을 따른다. 여인이 결혼하고도 자신의 姓을 유지하고 아들 딸에게도 자신의 姓을 물려줄 수 있게 된다고 해서 한국의 여인들이 미국의 여인들보다 더 평등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姓은 국적처럼 自我의 기초이다. 국가가 구성원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국민自我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일본과 한국 국적을 공유한 사람이 독도 문제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국민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親형제끼리 姓이 달라지면 아버지파와 어머니파로 소속 의식이 갈라질 것이고 이는 형제간의 우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가족의 화목에 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姓氏의 혼란은 근친결혼 풍습을 새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가족제도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즉 가족의 결속력이란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머니 姓을 따를 수 있게 한 이번 민법개정안이 가진 엄청난 함정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족제도가 이런 변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무슨 급박한 전염병에라도 걸려 있단 말인가. 장기간에 걸쳐 회복 불가능한 혼란을 사회, 가족, 국가에 끼칠 기존 姓氏 제도의 변혁을, 대다수 국민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 빠뜨려놓고 일부 과격한 인사들의 주도로 해치우도록 방치해선 안될 것이다. 이런 가족제도 변혁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절대적인 공감대를 확보한 다음에 해야 할 것이다.

다수 국민들은 호주제 폐지만 되는 줄 알고 있고 母系姓 제도의 도입을 모르고 있다. 쟁점은 호주제 폐지가 아니라 父姓 제도 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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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와 착시현상
가족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 필요


2003년 6월에 여성부가 예산을 댄 ´호주제 국민여론 조사´의 결과가 발표됐다. 70.2%가 호주제폐지에 찬성하고 80% 이상이 자녀의 성(姓) 결정에 있어 유연한 입장을 보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법상의 아버지 성(姓) 강제조항 폐지 등 호주제의 폐지 방향과 부합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좀더 유심히 살펴보면 표본의 62.5%가 여성임을 발견할 수 있다. 호주제와 같이 남녀의 의견이 확연히 갈라지는 이슈는 남녀성비를 맞추는 것이 상식이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82.3%가 호주제 폐지에 찬성했고 남성은 50.1%가 찬성했는데 이 여성들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루어진 곳이 여성회관 등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의미있는 여론조사가 되기 위해선 특정 성이 밀집된 공간을 피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여성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두고는 ´조작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성계는 호주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일본마저도 이미 호주제를 폐지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2차대전에 패한 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만들어진 신헌법(1947년 시행)에서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그래서 호주제를 폐지한 일본의 여성들은 가족성(부부가 합의해 쓰기로 한 성)을 쓴다.

물론 거의 남편의 성이다. 미국 대통령인 부시의 어머니도 ´Mrs. Bush´고 부시의 부인도 ´Mrs. Bush´이다. 미국도 가족성을 쓰기에 결혼한 여성 대부분은 남편 성으로 자신의 성을 바꾼다.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부부합의로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남편 성을 따라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게 호주제폐지론자들이 말하는 ´선진국의 남녀 평등한 신분등록제 아래에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맞는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 성을 사용할 수도 있는 여성들이 왜 남편 성을 쓸까? 혹시 성(姓)과 남녀평등은 상관없는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왕이 있고 공주가 있는 것은 어떤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니 영국의 여왕은 이제 끄집어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영국이나 일본의 국민들은 왕가라는 것이 이제 더이상 인간평등과는 상관없고 오히려 지켜야 할 문화자산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 중에 자기만 성이 달라서 자기는 남이라고 느껴진다는 4700만 중에 한 10명 있을까 말까 하는 사람들을 위해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게 정상적인 주장인가? 도무지 그런 부류의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그나마 한국의 여성계가 요구하는 것은 서구식의 가족부제도 아니다. 그 정도면 차라리 이렇게까지 여성계를 싸잡아 비난하지도 않는다. 여성계의 주장은 현재와 같이 ´별성제´도 유지하고, 새로 ´1인 1적제´도 도입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가족과 관련된 유무형의 끈을 모조리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1인1적제´를 쓰는 나라 중에서 ´가족성´을 쓰지 않는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 결혼한 후에도 여성이 자신의 성을 유지하는 나라, 다시 말해서 ´1인 1적제´를 쓰면서도 별성제를 쓰는 나라가 있는가? 가족 중에 자기만 성이 달라서 슬프다는 여성이 가족자체를 없애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신분등록제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알아야 이 정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입에서 두 말이 나오면, 그 입에서 나온 두 말 중에서 하나는 진실인 것이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십중팔구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진짜 진실일 것이다.

여성계 일각에선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을 벌인다. 의도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수준의 담론이다. 어떤 의견이 정책적 대안으로서 최소한의 의미라도 있으려면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동일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의 필연성과 보편성, 그리고 타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텐데 위의 주장은 어떤가?

´권박여자´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다. ´권´은 어머니의 성이고 ´박´은 아버지의 성이다. 부모님의 성이 같이 들어있는 것을 보니 보기에는 좋다만 ´권´이라는 그 어머니의 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바로 외할아버지의 성이 아닌가? 그 외할아버지의 성 역시 대대로 물려받은 성이지 않은가? 더구나 다음 세대에선 ´부모성 같이 쓰기´라는 원칙이 그대로 지켜지는가?

예를 들어 ´김이남자´라는 남성과 ´권박여자´라는 여성이 결혼을 해 자식을 낳으면 ´김이권박자식´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원하는 글자를 따다가 붙이자´라든가, ´성씨를 아예 없애자´라든가, ´부모 둘 중에서 한 명의 성을 붙이자´라는 식으로 새로운 원칙이 제시되어야 하고, 딱 한 세대만에 처음의 좋은 의도와 원칙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기가 막힌다. 도무지 이런 수준이하의 저질담론이 왜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첫째로 저러한 담론을 팔아서 먹고사는 ´직업 페미니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쌀도 사고 팔고, 휴대폰도 사고 파는 것처럼 당연히 지식도 사고 파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주장을 해주는 대가로 먹고사는 게 소위 말하는 ´지식자영업자´다.

둘째로 ´성(姓)´에 편집증적이리 만치 광적인 집착을 가진 몇몇 여성들을 강제로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할 법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1´과 ´2´라는 숫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주민등록증번호가 남녀차별의 대표적 사례가 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도 없는 기준자로서의 ´성(姓)´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호주제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근대적인 괴물´로 보이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과 본질은 같다. 이를테면 호주제를 둘러싼 ´착시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호주´ 가 ´단순 기준자´에 불과하더라도 그 호주라는 용어가 ´기준´이 되어 지켜내려는 가치가 그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계처럼 ´여성을 옭아매는 족쇄(이런 족쇄론은 서구사회에서 조차 이미 사라지고 있다.)´로서 가족을 파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겐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 그리고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갇혀 그 한계가 드러나 버린 자유와 평등 같은 서구식 가치들의 초월적 대안, 내지는 효과적 보조 수단으로서 가족주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겐 영생을 위한 구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세 번째로 한국산 페미니스트들은 말 그대로 낡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성해방´과 ´프리섹스´를 쟁취하려는 그녀들은 이미 늙어도 너무 늙었고 낡아도 너무 낡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저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로 얼마나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이들은, 아니 최소한 두려움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 자신의 그릇을 초과한 일을 벌려선 안된다. 고전물리학의 세계를 떠돌던 유령들이 양자역학의 세상을 지배하려 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산 페미니스트들은 맹목적으로 서구문화를 추종한다. 서구문화를 좋아하는 일부 여성들의 미적 취향을 고려해 한 나라의 신분제도를 바꿔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남성의 갈비뼈에서 여성을 만들었다는 매니악한 종교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에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에 불과하며 남편없는 여성은 먼저 주워가는 게 임자였을 때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도 우리나라의 남성과 여성은 별 차이가 없었다. 최소한 남녀차별의 문제에 있어선 우리나라가 서양의 제도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상이 호주제 존폐론의 본질이다. 바로 가족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과 이념으로서의 ´가족주의의 파괴´ 그리고 자학적 ´문화 사대주의의 극복´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미적 취향을 일반화하기 위해 거짓말과 정보왜곡, 여론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믿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아닌 다음에야 이미 그 자체로 ´상식의 적들´이다. 제발 상식의 적들은 개혁(!) 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당신들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고, 당신들의 남녀평등에 대한 관념은 지독히도 낡았음이 판명 났다. 진정성을 의심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고 이 믿음에는 능력에 대한 증명도 들어간다. 이 마저도 할 용의가 없는 호폐를 끌고 가는 주동자들은 최대한 조용히 있다가 사라지는 게 역사의 순리일 것이다.

여성계가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김기덕표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를 휩쓸고 있고, 한류라는 용어로 대표되듯이 한국문화의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기간 김기덕 감독에게 내려졌던 여성계의 과도했던 비판을 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이 자기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어서 여성계의 비판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에 여성계가 ´김기덕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어 김기덕 감독이 아예 원천적으로 영화를 못 찍게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이 부분이다. 이것이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몇 가지 악의적인 예로써 한국여성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이유이다. 한국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지 몰라도 한국 여성계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기회주의적 기득권집단에 더 가깝다. 이미 파시즘적 광기에 휩싸인 여성계는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자기세계에 갇혀버렸고, 그녀들에게 정당하고 적절한 비판을 해야할 소위 지식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정파적 이익에 휩싸여 입을 다물고 있다.


객원기자 ´푸른솔´(필명)은 호주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입니다.

[푸른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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