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개혁, 혁명


*세계 최악의 독재 체제에 반만년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빈곤 집단인 북한은 불문가지 혁명의 대상이고, 전세계 개도국의 50억 인구가 선망해 마지않는 한국은 당근 개선의 대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자는 것인지 왼쪽으로 가자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개혁의 문패를 달고 대문을 걸어 잠그고 개구멍만 살짝 열어놓은 채(말뿐인 한미 공조와 시장경제) 한국의 집안에서 도리어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시도가 점점 가시화되고 노골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80년대에 대학에서 난무하던 붉은 구호와 대자보와 플래카드가 TV와 인터넷과 포장마차와 백화점 앞 길거리에서 파란 옷으로 갈아입고 방글방글 웃고 있습니다. 신고하는 시민도 없고 따라 다니는 경찰도 없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 앞 대로에서 어쩌다 색 바랜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김정일과 김대중과 노무현을 성토하며 비분강개하면, 시민들은 노망든 노인을 쳐다보듯이 멀뚱멀뚱 쳐다볼 뿐입니다.

이제 대세를 장악한 정당과 시민단체와 방송과 인터넷은 한국의 빛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언지하에 부정할 뿐만 아니라 15년 전에 전세계의 박물관에 처박혀 온통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19세기의 '관념론적인 평등'을 잣대로 한국의 정통성마저 원천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북한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그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그 후 60년에 걸친 김일성 부자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대반역을 '작은 과오'로 여겨 특별 사면하려는지, 울긋불긋 민족과 자주와 평화의 깃발을 들고 '남조선'에서 '주체 혁명'을 일으켜 6·15선언에 입각한 연방제 통일을 이룩하려는 망상에 천사의 날개를 달아 주고 천국의 나팔을 쥐어 주고 있습니다. 알고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 두메 산골의 이승복 어린이도 속지 않던 김씨 왕조의 망상이 부지불식간에 희망의 촛불을 켜들고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혁명이 다급한 북한은 아름다운 거짓말과 으스스한 협박으로 지난 10년간 韓美日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아 챙겼지만, 독재와 빈곤과 대량살상무기가 강화되고 심화되고 증대되기만 했을 뿐, 김정일의 아랫배와 웃음소리만 커졌을 뿐, 한국의 기쁨조들이 적극 홍보해 주는 김정일식 통큰 개혁은 휴전선 이북에서 신기루처럼 아른거리기만 하고 한 가닥 개선의 아지랑이조차 피어오르지 않습니다.
(200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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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개혁, 혁명

개혁이란 가슴 설레는 말을 들은 지, 어언 14년. 6·29 선언 이후 그렇게 설레던 가슴은 시나브로 답답한 가슴으로 변했다. 아직도 개혁이란 말만 들어도 들끓는 심장의 고동으로 잠을 못 이루는 '순진무구한'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세상살이에 조금이라도 '때가 묻은' 사람들은 뭔가 불안하여 잠을 설치게 되었다.

구악(舊惡)의 몸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 새로운 몸을 만들자는 것이 혁명이라면, 구악의 몸을 꽁꽁 묶어 피란 피는 몽땅 빼내고 새 피로 수혈하자는 것이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문제점도 적지 않으나 좋은 점도 그 못지 않은 만큼, 몸은 살리면서 나쁜 피만 뽑고 조금씩 구악의 '옷'을 벗어 버리자는 것이 개선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되고 처방이 잘못되면 치료가 잘못된다. 개혁이 혼란을 가져오고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능가하게 되는 것은 바로 개선할 것인가, 개혁할 것인가, 혁명할 것인가, 이 셋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개선할 것을 개혁하려고 하고 개혁한다며 실은 은밀히 혁명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잘못된 나라였던가.
첫째, 경제는 정치가 잘못되면, 행정이 잘못되면, 교육이 잘못되면, 결코 잘될 리가 없는데, 어떻게 한국은 3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자랑하게 되었을까. 서양에서 300년에 걸쳐 달성한 산업혁명을 불과 30년 만에 이룩했을까. 정보혁명에도 거의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을까.

둘째, 무분별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파괴하여 행복지수를 오히려 떨어뜨림이 정상인데, 비록 시내와 강과 바다가 오염되었다고 하나, 벌거숭이산이 어떻게 전세계에서 20세기 들어 이스라엘과 더불어 단 둘이서 푸르디 푸른 산으로 변하여, 그래도 한 걸음 집밖으로 나와 멀리, 또는 가까이 산을 바라보면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질까. 70년대 초만 해도 남한보다 훨씬 푸르던 북한의 산들은 왜 60년대의 남한의 산보다 더 붉게 변했을까.

셋째, 과도한 국방비로, 단세포적인 반공교육으로 경제와 정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데, 어떻게 하여 국방비가 교육예산보다 5조원이나 적은 15조원으로, 불과 국내총생산의 2.8%로, 국내 총생산의 33%를 국방비에 최우선 순위로 떼어놓는 북한의 말대로 하면 '남조선의 국방비가 공화국의 국방비를 월등히 능가하여 그 국가 존재 자체를 흔들' 정도가 되었을까. 또,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다던 학생이 대학만 가면 어찌된 셈인지 '오리엔테이션' 일주일이면 일제히 반공교육에 화염병을 던지고 도리어 인공기에 눈물을 흘리는가. 밤새워 '태백산맥'을 읽느라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개질까.

넷째, 가장 못 산다는 농촌에 가도, 집집마다 텔레비전이요, 냉장고요, 세탁기요, 전화요, 휴대폰이요, 컴퓨터요, 경운기요, 자가용일까. 집집마다 그 비싼 등록금 내면서 합격만 하면 자녀들을 대학에 다 보낼까. 나라에서 돈 한 푼 대 주지 않는데도, 60년대만 해도 시골에선 석 달에 겨우 500원하는 등록금을 못 내어 재주 출중한 아이도 중학교도 못 보낸 집이 심심찮게 있어서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는데 말이다.

다섯째, 그렇게 깨끗하고 능력 있다고 소리 높여 스스로를 자랑하던 민주주의의 화신들이 어찌하여 5년 나라살림에 IMF 신탁 통치요, 3년 나라살림에 해방 이후 52년 동안 누적된 국가 빚의 3배를 단숨에 덧보탤까. '도둑 맞은' 나라 살림을 떠맡은 무식한 군인은 어떻게 하여 나라에 곳간이 모자라 해마다 새 곳간을 지어서 가득가득 채웠을까. 민주주의를 하면 경제가 절로 잘된다고 30년 간 소리 높여 외쳤는데, 어떻게 그게 거꾸로 가는가.

여섯째, 과연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혼란이 민주주의인가. 불법, 탈법, 독선은 군인 출신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애향심은 민간인 대통령의 전유물이고 지역감정은 군인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군인은 독재자고 민간인은 민주주의의 화신이 아니었던가. 낙하산은 원래 군인이 치열한 유격 훈련으로 잘도 타지만, 민간인은 오금이 질려 감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어찌하여 민간인이 두 분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만인의 지탄이 된 30대 재벌을 다 합한 것보다 월등한 자산을 자랑하는 공기업과 더하여 그 못지 않게 우람한 은행에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저리 많은가. 외인부대로 차출되어 절해고도에서 저 유명한 이현세 감독에게 특별 유격훈련을 받았던가.

우리에게도 장점이 많았다. 곳곳에 문제점도 많았지만, 장점이 훨씬 많았다. 고친다는 것은 잘못을 고치는 것인데, 잘한 것을 고치라니, 그 어리둥절함이, 그 가치혼란이 극심하다. 어찌 남의 나라 것은 다 잘한 것이고 좋은 것이고 우리 나라의 것은 다 잘못된 것이고 나쁜 것인가. 북한처럼 인민들이 '우리는 행복해요!'를 연발하면서 화창한 봄날에 복사꽃이 가벼운 봄바람에 화사하게 떨어지듯이 분분히 스러지는 곳에서는, 독수리보다 더 날카로운 감시감독의 눈이 어디에나 번쩍이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이다. 지키고 보듬을 것이 훨씬 많다. 살려야 할 장점이 훨씬 많다. 그러니까 한국 상황에서는 혁명도 맞지 않고 개혁도 맞지 않다. 개선이다. 개선이 절실하다. 때로 원점에서 새로 시작할 것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개혁의 칼자루를 든 사람들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개혁의 빛을 눈부시게 비추는 그 거울 뒤에 숨은 자들이야말로 사실 개혁 이상의 혁명의 대상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개혁의 대상자들이, 자진하여 앞으로 달려나와 곡학아세의 피리를 불어대거나 뒤에서 응원의 북을 힘껏 두드리는 자들의 도움을 받아, 속으로는 혁명을 바라며 아름다운 명분으로 포장된 개혁의 팡파르를 연일 불어제치니까, 다들 가는귀가 먹어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

개혁의 칼자루를 못 쥐고 그 칼날을 맨손으로, 맨몸으로, 벌거벗은 몸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 제도들, 관행들은 대부분 개선의 대상이다. 난데없이 개혁의 대상으로 몰린 힘없는 이들은 양손으로 치부를 가리느라, 두 눈으로 번히 칼날을 보고도 막지를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등을 돌려 어깨로, 등으로, 엉덩이로 막을 수밖에 없다. 그 수치, 그 치욕!

이제라도 말을 똑바로 하자.
개혁이 아니다.
개선이다, 개선!
100%를 뜯어고치려는 혁명적 발상으로 청탁(淸濁) 불문하고 이른바 개혁 세력이란 이름의 실세(實勢)가 슬그머니 늘어뜨린 줄을 잽싸게 낚아채어 그것을 꼭 잡고 방글방글 웃는 20%만 빼고; 멍하니, 또는 뻣뻣하니, 당돌하니, 감히 무릎을 꿇지 않고 선 채로 눈치 없이 밥맛 떨어지는 표정을 짓는 나머지 80%에겐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 꼬투리를 잡아, 비리를 물고 늘어져, 손 좀 봐 주려고 한 방에 내다 꽂으려고 길길이 뛰는 그런 괴상망측한 개혁이 아니라, 잘된 80%는 살리고 잘못된 20%를 고쳐야 하는 그런 개선이다.

(200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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