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1월12일
朴正熙 대통령은 연설이나 기자회견을 국민 설득의 기회로 활용했다. 매년 1월초에 열린 연두기자회견은 3~4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일문일답이 오고가는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朴대통령이 강의하듯이 국정을 설명하는 장소였다. 일종의 대통령에 의한 국정보고대회였다. 요사이 이런 기자회견기록을 읽어보면 朴대통령이 어떤 철학과 전략으로써 국가를 경영해갔는지 아주 명료하게 떠오른다. 朴대통령의 말은 대중정치인들의 말과는 사뭇 달랐다. 도덕과 명분을 앞세운 말이 아니라 비전과 방법론과 사례와 통계를 주로 구사한 말이었다. 과장이 적고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려고 애쓰다가 보니 그의 말은 그때 재미가 적었다. 세월이 지나서 그의 비전이 적중했고 그의 꿈이 이뤄진 것을 확인한 뒤에 읽어보니 朴대통령은 국민들을 보면서, 또 미래를 향해서 증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朴正熙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가 썼던 책과 연설문이다. 그의 말과 글은 그의 것이었고 거짓과 과장이 적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1973년 기자회견에서 朴대통령은 전해에 있었던 8.3 사채동결조치의 성과를 자랑했다.
'8·3 조치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잠깐 설명했습니다마는, 그 목적을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나라 인플레의 악순환을 단절하자는 것입니다. 해방 후에 고질화된 인플레의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단절해서,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나라 기업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하겠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고리 사채의 압력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이것을 제거해 주고 금리를 대폭적으로 인하해 주고, 또 산업 자금을 과감하게 방출해 주고, 투자를 많이 하게끔 정부가 稅制面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하고, 이렇게 해서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뒷받침해 줌으로써 우리 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해서 수출 증대에 기여하자는 것이 또 한 가지 목적입니다. 셋째는, 고용을 증대하고 고도 성장을 지속해 나가는 그 바탕을 튼튼히 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적과 효과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8·3 조치에 의한 사채 동결 조치에 따른 신고 액수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3,450여 억원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우리 나라의 전체 통화량과 거의 맞먹는 액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 통화량이 4천 몇 백억원이라고 기억합니다마는, 우리도 우리 나라의 私債가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것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이러한 사채를 쓰고 있는 기업에 대해 금리를 낮추어 주고 상환 기한을 연장을 해주었습니다. 전체 사채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805억원이이 출자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정부로서도 은행 금리를 대폭적으로 인하했고, 2천억원에 달하는 貸煥을 해 주었고, 642억원에 달하는 산업 합리화 자금을 방출했습니다.
또한 중소 기업들을 위해서 신용 대출을 확대하고, 또 우리 금융 질서를 획기적으로 쇄신하는 데 여러 가지 조치를 강구했습니다. 그 결과 효과로 나타난 것을 검토해 본다면, 기업의 부담을 약 천억원 가량을 경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키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며, 우리 경제가 앞으로 안정된 바탕 위에서 고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보겠습니다.
예년 같으면 추석이다, 김장 때다, 또 크리스마스다, 연말 연시다 하면, 으례 물가가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8·3 조치 이후 연말까지는 도매 물가나 소비자 물가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안정 내지는 하락 추세를 보여 도매 물가가 0.1% 오르고, 소비자 물가는 1.5%가 오히려 하락하는 현상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은 해방 이후 우리 경제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환율도 언제나 문제가 되던 것이고 정부에서도 머리를 앓던 문제인데, 400원선에서 안정이 되었읍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수출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작년 수출 목표 17억 5천만 달러, 이것은 처음에 목표 그 자체도 국제 경제가 불황에 빠져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많았습니다마는, 그것을 초과해서 18 억달러를 약간 초과 달성했습니다. 무역과 무역외 수지에 있어서, 작년에는 약 3억 달러의 흑자를 나타냈는데, 이런 것을 8·3 조치의 효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작년 상반기에 경기가 침체되었고, 산업 생산도 상당히 둔화되어 있었습니다. 즉 작년 1월부터 6월 사이에 산업 생산이 10% 성장을 했는 데 비해서, 7월부터 11월간에는 18.4%가 증가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8·3 조치가 점차 그런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대폭적인 「시설 투자」와 경제의 꾸준한 상승이 있을 것으로 우리는 예견하고 있습니다'
1973년1월24일
朴대통령은 전국 치안 및 예비군 관계관 중앙 회의의 유시를 통해서 7.4 공동성명 이후 진행되고 있던 남북대화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어놓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을 결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촉을 하여 한 가지 뚜렷이 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기본 전략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우리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는 야욕은 하나도 포기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주변 정세와 세계적인 조류에 맞추어서 방법과 전술만을 약간 바꾸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은 금년에 들어서도 「4대 군사 노선을 철통같이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4대 군사 노선이란 全국토의 요새화, 全인민의 무장화, 全인민군의 간부화, 장비의 현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입으로는 7·4 공동 성명이니 평화 통일 운운했지만은 자기들이 무력 남침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발언을 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대화는 대화고 혁명은 어디까지나 혁명이다」라는 말이 아마 그들 속심의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1973년 4월 5일
朴대통령은 식목일 기념일, 새마을운동 행사에 나가면 꼭 긴 연설을 했다. 연설이라기보다는 강의였다. 이런 강의식 연설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비전과 열정을 직설적으로 쏟아부었다. 이날도 그는 열을 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큰 소리만 하는 것보다 간단한 것부터, 우리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가장 실속있는 애국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길인 것입니다. 공연히 허장성세나 큰 소리만 하는 사람치고 실제 행동을 보면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 보통이고 오히려 여러 가지 애국과 逆行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은 우리 조상들이 살고 갔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언젠가는 우리가 죽어서 모두 이 조국 강산에 묻혀야 될 땅입니다. 또한, 길이길이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 여기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조국이요, 조국의 강산입니다.
그 사랑하는 표시를 무엇으로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당분간 『애국』이란 말은 입에서 딱 떼어버리고, 우선 산에다 나무를 심고 나무를 아끼고 이 조국 강산을 하루바삐 울울창창하게 만듭시다. 그런 상태를 만드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길인 것입니다.
재일 교포 여러분들도 아마 오시면서 비행기 위에서 그런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일본은 공중에서 보면 푸른데 동해 바다를 건너서 포항 일대의 우리 나라 땅에 들어서면 산이 벌겋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이 우리보다는 강우량이 많고 기후가 좀 따뜻하다는 영향도 있겠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이 기후조건에서라도 우리 국민들이 조금만 더 나무를 아끼고 산을 가꾸는 정성을 표시하면 일본 이상으로 우리 나라도 푸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산에 누가 올라가서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자라서 사람이 손을 대지 않고 건드리지 않으니까 불과 몇 년 동안 저런 정도로 울창하게 된 것입니다.
흔히 우리 나라는 강우량이 적고 추워서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는데 절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올라가서 자르고 밑의 낙엽을 긁어내고 나무를 못살게 굴어도 저 정도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 산이 비옥하고 나무가 잘 자라는 토질인 것입니다.
식목을 하고 가꾸는 것을 하나의 간단한 상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조림은 어디까지나 기술인 것입니다. 어떠한 樹種(수종)을 어떠한 땅에다 심어서 어떻게 관리를 하고, 어떻게 가꾸어야만 이 나무가 산다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1973년 4월 17일
朴대통령은 전국경제인대회 치사를 통해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와 윤리를 강조한다. 朴대통령이 대기업 중시 정책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정서는 재발적이라기보다는 서민적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규제했지만 그 자신이 노조위원장이란 자세로서 재벌총수들에게 富의 사회적 환원을 강조하곤 했다.
'따라서 나는 이 기회에 80년대 초에 우리가 이룩할 수출 100억 달러와 국민소득 1,000달러라는 중간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 시책과 병행해서 경제인 여러분들이 수행해야 할 당면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해 두고자 합니다.
그 첫째는, 산업의 합리화와 기술 혁신을 촉진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물가 안정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기업이 자체내에 기술 훈련을 위한 기구와 시설을 갖추어 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둘째로, 모든 기업은 하루 속히 대단위화되고 국제 수준화되어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 증대에 적극 기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기업은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공개되어서 국민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건전한 기업 풍토를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민족 기업으로서 공익성을 구현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네째로, 모든 기업인은 노동 조건의 개선과 노동자의 복지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 국민 민복에 기여한다는 투철한 사명 의식을 길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이윤은 사회에 되돌린다는 大義에 투철한 기업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막대한 재정 부담을 무릎쓰고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8·3 긴급 조치」를 취했던 것도 기업의 이윤만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건전한 성장 없이는 경제의 발전과 국민 생활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기업의 공익성 때문에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화 통일 외교 정책에 관한 특별성명
1973년 6월 23일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가 그 동안 추진해 온 남북 대화의 경험과 국제 정세의 추이에 비추어, 민족의 숙원인 조국 통일의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내외에 천명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우리는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국토는 양단되고 민족은 분열되었읍니다.
당초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한 군사적 경계선이라고 하던 38선이 그 후 철의 장막으로 변하고 남과 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읍니다.
그 동안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어 38선의 해소와 통일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이 있었으나, 미·소간의 근본적 대립으로 실패에 돌아가고 결국 한국 문제는 국제 연합에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974년 제2차 국제 연합 총회는 남북한을 통한 자유로운 총선거의 실시를 결의하고 이를 위해 임시 한국 위원단을 파견하였읍니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자유 선거가 실시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제 연합에 의하여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게 된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불의의 침략으로 인한 한국 동란으로 무수한 동포가 생명을 잃고 전국토는 초토화되었으며, 3년간의 끝에 휴전은 성립되었으나 분단은 계속되고 통일은 요원해졌읍니다.
나는 이 분단으로 말미암은 동족의 고통을 덜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1970년 「8·15 선언」에서 남북한간의 긴장 완화를 촉구하였읍니다. 그 다음 해 8월 12일 우리측은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작년 7월 4일에는 평화 통일을 위한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읍니다.
이리하여 남북 대화는 시작되었읍니다. 그러나, 근 2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과는 우리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는 용이하고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신뢰해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며, 평화 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 왔읍니다.
그러나, 북한측은 불신 요소를 남겨 둔 채 대한 민국의 안전 보장을 위태롭게 할 군사 및 정치 문제의 일괄 선결을 주장하고 있읍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측은 통일을 위한 남북 대화의 진행 중, 밖으로는 사실상 조국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는 행동을 계속하여 왔읍니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현상으로 보아 우리가 기대하는 바 남북 대화의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견되며, 상당히 긴 시일이 소요되리라고 판단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결과적으로 불신의 심화와 긴장의 고조마저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한편, 최근의 국제 정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냉전 시대가 끝나고 현상 유지를 기조로 하는 열강들의 세력 균형으로 평화 공존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 주된 조류라 하겠읍니다.
또한, 그간 이 지역에 있어서의 일련의 주변 정세의 발전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국토 통일이 단시일 내에 성취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읍니다. 즉 조국 통일이라는 민족 지상의 염원과 목표를 국제 정세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우리는 객관적 현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겠읍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을 국내외의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 현명하고도 확고한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강인하게 추구해 나가야 하겠읍니다.
그것은 곧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킴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자주 역량으로 통일을 기필코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 공동 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5. 국제 연합의 다수 회원국의 뜻이려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 연합 가입 전이라도 대한 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련 총회에서의 「한국 문제」 토의에 북한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대한 민국은 호예 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진한다.
7. 대한 민국의 대외 정책은 평화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 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대북한 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잠정 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
친애하는 남북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이 처해 있는 오늘의 내외 정세를 냉엄히 평가할 때 이 길만이 긴장완화의 국제 조류 속에서 민족의 위신과 긍지를 유지하면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자주적으로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 앞에서 결코 실망이나 좌절은 있을 수 없읍니다.
우리 모두 희망찬 용기화 슬기로 한반도의 평화, 겨레의 번영, 그리고 조국 통일을 위해 힘차게 매진합시다.
포항 종합 제철 준공식 치사
1973년 7월 3일
요즘 흔히 우리 나라 공업이 중화학 공업 시대의 문턱에 도달했다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 공업이 중화학 공업 시대의 문턱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벌써 문턱을 훨씬 지나 상당히 깊은 분야에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준공을 보는 이 포항 종합 제철은 생산 규모에 있어서는 1차적으로 조강 103만톤 규모가 됩니다. 선진 여러 나라에는 지금 현재 연산 1천만톤을 넘는 대규모의 공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이 공장은 이제 시작합니다.
이제 우리는 남을 따라가기 위한 출발에 있어서 첫 개가를 여기서 올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공장은 금년부터 계속해서 260만톤으로 확장 공사를 하고, 또 계속해서 79년 말까지는 700만톤 규모까지 확장할 계획을 지금 추진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정부는 1980년대에 가면 우리 나라의 철강 수요가 국내만 하더라도 약 1,200만톤 내지 1,300만톤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하에 포항 종합 체절의 1차, 2차 확장 공사와는 별도로 이와 병행하여 연산 약 1천만톤 규모의 제2종합 제철 공장 건설을 지금 예의 추진 중에 있읍니다.
이러한 공장들이 전부 계획대로 순조롭게 추진되어서 80년대 초에 가면 우리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100억달러 수출이라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100억달러 수출을 할 때가 되면 총수출량에 있어서 중화학 분야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약 60%를 넘게 될 것입니다. 100억달러 수출에서 약 60억달러 이상은 중화학 분양의 제품이 나가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을 할 때 오늘 준공을 보게 된 이 종합 제철은 앞으로 우리 나라의 중화학 공업의 하나의 근간이 되고 가장 핵심체가 된다는 것을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 유시
1973년 11월 22일
새마을 운동이란 무엇이냐? 나는 작년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간단히 쉽게 말하여 「잘 살기 운동이다」라고 풀이를 했읍니다. 이 「잘 살기」라는 것이 대단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 하면 나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고대광실 좋은 집에서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자조심이 강하고 서로 협동을 하여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가면서 나도 잘 살고, 우리 이웃도 잘 살고, 우리 고장도 잘 살고, 우리 나라도 잘 사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강조했읍니다.
그것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들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는 부강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이것이 참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다시는 가난이라는 유산을 절대 물려 주어서는 안 되겠읍니다. 이것이 새마을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작년에도 강조했고,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또 우리 온 국민들에게 나는 재강조를 하는 바입니다.
우린는 다시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나라의 백성, 못나는 나라의 국민, 못난 백성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겠읍니다. 과거 일제 시대 또는 해방 직후 그리고 6·25 전쟁을 전후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요』 이렇게 물을 때에 자주 정신과 주체 의식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는 『나는 한국 사람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하게 생각하여 말을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요』 『나는 동양 사람이요』 『동양에도 여러 나라가 있는데 중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이요』 『아니요』 『그럼 어디요』 『한국이요』 『한국이 어디에 있더라』 또 아는 사람은 『아 - 한국 전쟁 때 그 피난민들이 몰려 다니던 그 한국말이요』 과거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많이 있었읍니다.
앞으로는 어디에 나가서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요』 『나는 대한 민국 사람이요』하고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 특히 우리 후손들에게는 어디에 나가서도 조금도 구김살 없이 가슴을 활짝 펴고 떳떳하게 『대한 민국 사람』이란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서 물려 주자, 이것이 우리가 노리고 있는 새마을 운동의 궁극적인 목정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참되고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면, 또 살기 좋은 우리 고장을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겠읍니까?
첫째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즉 근면입니다. 옛 말에 『일근은 선지장이요』 『일태는 악지장』이란 말이 있읍니다. 한문입니다만, 『一勤』 한일자 부지런한 근자, 한번 부지런한 것은 선지(善之), 착한 것의 으뜸가는 것이다, 부지런할 것이 모든 선의 으뜸가는 것이다, 『일태(一怠)는 악지장(惡之長)』이라 한일자, 게으를 태자, 게으르다는 것은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으뜸 가는 것이다, 이런 옛말이 있읍니다.
내가 잘 살고 우리 고장이 잘 살고 나라가 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첫째 부지런해야 하겠다, 근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면하지 못한 사람이 백마디 말을 해 보았자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조 정신이 강해야 되겠읍니다. 서로 협동을 할 줄 알아야 하겠읍니다. 근면·자조·협동 이것이 새마을 운동의 행동 강령입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조국 근대화를 위한 일대 약진 운동이요, 동시에 범국민적인 정신 혁명 운동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반드시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론이나 말만 가지고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마을 운동은 하나의 행동 철학입니다. 또한 이 운동은 반드시 주민의 소득 증대와 직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둡니다.
소득 증대를 수반하지 않는 운동은 처음에는 모두 열을 올려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열의가 식어버리고 주민들이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계속 불길이 타오르고 불이 꺼지지 않게끔, 식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는 소득 증대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직결되어야 하겠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여러분들에게 73년도판 성공 사례집 두툼한 책이 한 권씩 배포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년도에 가면 74년도판, 다음 해에는 75년도판, 이렇게 앞으로 계속 우리 농촌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역사로서 편찬하여 후세에까지 남기려고 합니다.
후세에 우리 자손들이 이 책을 읽어서 우리의 조상들이 이처럼 훌륭한 마을을 만들고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만큼 피땀을 흘려가면서 노력했구나 하는 그 사실을 우리 후손들이 알게 될 때, 과연 그들이 어떠한 느낌을 가지겠는가? 조상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느끼는 동시에 우리도 노력해야 하겠다고 분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민족의 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조상이 해온 일을 계승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후손들이 어떻게 조상들이 했던 뜻과 얼을 계승하고 받드느냐, 거기에는 조상과 후손들 사이에 비록 시대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서 정신적으로 명맥이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손들이 보았을 때 조상들이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만큼 피땀을 흘려 가면서 노력했다, 우리 동리를 잘 사는 부자 마을로 만들기 위하여 전 부락이 근면·자조·협동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렇게 애를 써서 우리 부락을 이처럼 훌륭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 후손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도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게을러서는 안 되겠다,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야 하겠다』는 감명과 감동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얼인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 희랍의 역사를 읽어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있읍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아테네 시민들이 그들이 죽을 때 자손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하기에 『후세인 너의 조상이 누구냐고 묻거든, 너는 서슴치 말고 우리의 조상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고 떳떳이 일러주마』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 용사들이 자기가 죽으면서 후손에게 『누가 너를 보고 너의 조상이 누구냐고 묻거든 나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용사의 후손이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대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나이가 들어 늙으면 죽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을 때 자손들에게 무슨 유언을 남겨 놓고 죽는 것이 가장 보람되겠읍니까?
나는 우리 자손들에게 『후세에 너의 조상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의 조상은 1970년대에 새마을 운동에 앞장서서 알뜰하게 일한 바로 저 마을의 농민이었다고 대답하라』는 유언을 남기는 것이 가장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인생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며 또한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떳떳한 유언이겠읍니까?
나는 새마을 운동은 우리들 세대가 앞장서서 해야겠고 또 우리 후손들 대에까지도 반드시 물려 주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 만큼 보람 있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결론적으로 몇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말하자고 합니다.
첫째로, 새마을 운동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천 도장이다』 나는 이렇게 강조하는 바입니다.
즉 새마을 운동은 우리 나라에 한국적인 참다운 민주주의를 뿌리 박기 위한 하나의 실천 도장입니다.
왜냐 하면 새마을 운동은 한두 사람이 모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부락 사람들이 전부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부락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부락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창의적이며 헌신적인 부락 지도자를 전체 의사에 따라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락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좋은 의견을 들어 종합을 하고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한두 사람의 의견을 가지고 이것이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다음에는 그 부락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고, 그 다음에는 남녀노소가 전부가 참여하여 서로 협동하고 땀 흘려 이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얻어진 성과, 여기에서 얻어진 소득은 부락민들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돌아가야 되고, 또 부락민들에게 동의를 얻어 일부 소들을 부락 공동 기금으로 저축을 해야 합니다. 그 저축한 것이 어느 정도 축적이 되면 또 다시 부락 사람들의 전체의 의견을 모아서 부락 공동 이익 사업을 결의하여 이를 추진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마을 운동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적인 방법이며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흔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민주주의하면 과거의 선거를 연상합니다. 막걸리, 고무신 가지고 표 얻고 하는 그것만을 연상합니다. 그것은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건전하고 참다운 민주주의라는 것은 새마을 운동과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는 새마을 운동과 같이 점차적인 훈련과 실천을 통해 하나하나 뿌리를 박아 나갈 때 비로서 정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도 그 실천 과정에 있어서는 근면과 자조와 협동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여된 민주주의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앉아서 놀고, 먹고,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전부 정부에 의지하면 된다는 의존심만 양성하고, 여·야, 아랫 동네, 이 마을·저 마을이 전부 분열하여 서로 싸우고 욕하고 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읍니다.
나는 이런 민주주의가 오래가면 그 사회는 멸망한다고 생각합니다.
박대통령 연설문 뽑음
-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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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2-25, 14: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