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육자의 '조인정 유학기' 讀中感

"여고생의 유학은, 남자가 군대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숙해지는 것과 같은 거지요. 조인정 씨는 대성할 거에요."
며칠 전 會食 자리에 갔더니 대학교수 출신이고 국제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70代 교육자가 반가운 말씀을 했다.

"'소심한 인정이의 대담한 선택'이란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趙 사장 출판사에서 냈더군요. 집사람이 이야기해서 알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는 사람이 고맙고, 책을 내는 사람은 책을 사준 사람이 고맙다. 이 교육자의 讀中感이 더 고마웠다.

"재미 있게 읽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여학생이 낯선 미국에 가서, 처음엔 엄격한 호스트를 만나 고생하다가 나중엔 좋은 분들을 만나고, 다시 일본의 대학에 유학을 하는 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 참으로 좋은 경험입니다. 유학을 가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이지요. 남자가 군대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숙해지는 것과 같은 거지요. 조인정 씨는 대성할 거에요."

'수줍은 여고생을 자신만만한 여대생으로 변화시킨 미국 고등학교 유학기'라는 副題가 핵심을 전한다. 인생의 고비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젊었을 때의 외국체험은 그런 탈바꿈의 좋은 계기이다.

유학이든 入隊이든 부모와 가정을 떠나 생소한 문화와 접촉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해진다. 발전한 나라의 공통점은 국민들이 이동을 많이 하였다는 것이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바이킹, 지금은 한국인이고, 중국인이다. 인구 비례로 여행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지금도 네덜란드, 영국, 독일인이다. 이동을 하려면 적응과 모험을 위한 준비와 훈련과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은 강인해지고 조직은 커진다.

여행의 본질도 이동인데, 여행은 독서라고 한다. 여행(이동)을 안하는 사람은 책의 첫 페이지만 되풀이하여 읽고 있는 사람과 같다. 여행중에 가장 진지한 여행이 入隊이고 유학이다. 아래 조인정 양의 머리글을 읽어보면 유학이란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어느 날 읽었던 유학記였다고 한다. 조인정 씨의 '소심한 인정이의 대담한 선택'이란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 또 다른 조인정이 나올지 모른다. 책은 著者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보다 큰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자녀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가 아는가? 읽은 이들 중 몇 사람의 운명이 바뀔지?

한국은 미국 유학파 李承晩 대통령이 세운 나라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박사이고, 미국 생활을 통하여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깨우친 사람이다. 한국의 성공은 국제파가 세운 나라로서 개방과 경쟁의 원리를 국가 운영에 도입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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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인정이의 대담한 선택' 머리글

위스콘신에서 만난 무서웠던 호스트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미국 유학 생활을 돌아보면 어떻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도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에서 언급했던 두 갈래의 길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수많은 갈래의 길들이 나를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수줍음이 많고 지나치게 내성적이며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줄도 모르는 소심하기 짝이 없던 어린 학생이었다. 혹 정도正道를 벗어나지는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던 겁 많은 소녀였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주위의 압박에 완전히 기가 눌려, 타인이 제시하는 인생의 길을 따라가며 내 자존감을 잃었다. 하지만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꿈을 다시 꿈틀거리게 했고 내 십대 운명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내 인생에 대한 우려를 200% 느끼며 나는 담담히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냈고 미국 유학 모험길에 올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위스콘신에서 처음 만난 엄격하고 무서웠던 호스트와 생활하던 세 달 동안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갔고,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가득찼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공부와 생활은 어릴 적부터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보며 키워온 꿈이었으므로 내 앞에 닥친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이 넘치는 에이미 가족과 만났을 때에도 내 마음 속 벽은 새로운 호스트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없이 두꺼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과 가까워지는 것부터 굉장한 고비였다. 내가 에이미 가족의 새로운 일원이 된 얼마 후 에이미는 이웃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날은 12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새해맞이를 위해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이 파티에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모든 교환학생들이 초대되었고, 그들은 지하 거실에서 스피커가 터지도록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극히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내 방에서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파티문화가 너무 두렵고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호스트 오빠인 에릭이 방에 찾아와서 지하로 내려가 파티를 즐기자고 설득했지만, 나는 극구 거절했다. ‘춤을 춰야 하면 어쩌지? 누가 술을 마시자고 하면?’ 이런 쓸데없는 걱정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호스트 엄마 에이미가 내 방에 들어와 그냥 즐기면 된다고, 자신과 함께 내려 가자고 설득했을 때에도 나는 파티에 대한 두려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눈물을 쏟아냈다.
항상 괜한 걱정에 골머리를 앓고 살던 나는 3년간의 유학 생활을 통해 긍정적이며 잘 웃는 명랑한 성격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유쾌한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며, 색다른 문화 체험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으로 하루하루 더 발전되고 성숙해져 갔다. 항상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며 조금이라도 잘못되는 것과 실수하는 것에 두려워하던, 노력했던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자책하던 나는, 세상과 내 존재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거나 비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아自我뿐만 아니라 일상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서도 나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쭈뼛거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잘 물어볼 수 있었고,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솔선수범해 일을 추진했으며, 처음 보는 사람과 말하는 것도 쑥스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으로의 轉向

고등학교 유학 생활 3년 동안 줄곧 바라온 ‘미국 대학 입학’을 눈에 앞두고 있을 때였다. 3년 전보다 용감해지고 당당해진 내가 설렘 半 걱정 半으로 대학생으로서 새로운 첫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돈이라는 물질적 요소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노력하고 안간힘을 써 봐도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일본으로의 전향’은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 내게 일본어 교과서는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학교수가 되면 꼭 이 나라의 문화, 역사,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일본 대학 입학’이라는, 내 본래의 꿈과 조금은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부모님께서는 당시 내게 “다른 길을 찾아보자”라며 입시 스트레스에서 이제 겨우 벗어난 나를 다독이셨다. 그 험난한 여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속상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겉으로는 내게 강경하게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사실 나보다 더 속상해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완전히 ‘일본 전향’을 마음먹었을 때 연거푸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보이셨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원서를 작성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동생에게서 전화로 합격통보를 전해들을 때는 핸드폰을 쥘 힘이 없어 손이 덜덜 떨렸고, 숨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와세다 대학교 합격! 이보다 달콤한 말이 없었다.
나는 이제 매일 사람들 사이에 끼여 지옥전차로 등하교를 하는, 왼쪽에 한 줄로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밥공기를 들고 식사를 하는, 스미마셍すみません: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또는 부탁합니다과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일본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16호관 앞 벤치에서 점심을 먹자고, 방과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자고, 토요일에는 수업을 마치고 어디로 놀러 가자고 친구들과 주고받는 연락 또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지 어언 네 달이 흘렀다. 미국 고등학교 시절 줄곧 꿈꾸며 그려왔던 ‘미국 대학 교정에 있는 나’는 물론 현재의 내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운명처럼 일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 또다른 꿈은 실현되었고, 현재 나는 행복에 젖은 매일을 보내고 있다.
차마 입 밖으로 내기 쑥스러울 정도로 짧은 내 20년의 삶에서 겪은 눈물과 한숨은 이젠 ‘꿈의 발자취’가 되었다. 나는 어둠 속에 반짝이는 오래도록 소망하던 ‘꿈’이란 별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꿈’은 힘에 겨워 멈추고 싶을 때에도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용기가 된다. 간절한 꿈이 있다면, 자신이 상상하던 그 이상의 기적을 성취하고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이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 한편에 빛나고 있는 ‘꿈’의 존재와 가능성을 자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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