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1라디오 'KBS 열린 토론'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2년의 국정 운영에 대해 국민의 60.7%가 부정적인 응답을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OX형 질문에서 74.0%가 X를 골랐다. 여타 다른 조사도 대략 이 범위 안에 있다.
어느 조사든 경제를 가장 못한 부문으로 꼽는다. 40%를 밑도는 긍정적인 대답 가운데서는 정치 개혁을 단연 1위로 꼽는다. 특히 전문가들이 그러하다. 반면에 보통 사람들은 남북 문제를 가장 호의적으로 본다. 전문가 중에 이채를 띄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당의 김용갑 의원이 바로 그 사람으로, 그는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재미 많이 본 정치는 잘했다고 하고 별 재미를 못 본 경제는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뜻대로 못한 경제는 잡초처럼 생명력이 강한 민간 경제의 힘으로 그런 대로 괜찮아졌지만, 정부의 뜻대로 움직인 정치는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땅처럼 엉망이 되었다는 말이다.
중립적인 입장의 학자나 반대 입장의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를 최고의 업적으로 꼽는다.
2004년 총선 전에 필자가 예측한 대로 벌써 여당 일각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들고 나오고 있지만, 지금은 엄연한 6공화국의 4기 정부이다. 어떤 정치 개선이나 개혁도 6공화국 헌법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면에서 민주화의 최대 공로자는 노무현 대통령도, 김대중 전대통령도, 김영삼 전대통령도 아닌 노태우 전대통령이란 말이다. (이하 대통령 호칭 생략) 노태우는 6공화국의 태조나 마찬가지이므로.
정치 문제로 다투다가 친여당파가 논리의 수렁에 빠지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고 휘두르는 말이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국가 원수 모독죄가 없어졌으니 말이야.' 이 말의 속뜻은 민주화의 황금 마차에 무임 승차한 주제에 까불지 말라는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친일파 후손에, 군사 독재 주구에' 어쩌고저쩌고. 옳든 그르든 그들은 이렇게 확신한다.
1987년 6월 29일! 이 날에 한국도 놀라고 세계도 놀랐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두환 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 7년 단임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여당의 대표가 '말의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해 6월 10일부터 6월 26일까지 민주주의의 불길이 전국에 번지는가 했더니, 급기야 명동에서 넥타이 부대까지 등장해서 직선제 개헌의 바람을 거세게 일으키자, 어제 그제만 해도 산천초목을 떨게 하던 권력은 한갓 산불에 휩싸인 오두막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노태우는 오두막이 타기 직전 골방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전두환의 목에 서늘한 말의 칼을 겨누었던 것이다. 그로써 여야가 '형님 아우' 하면서, '야자' 타임도 수시로 즐기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일사천리로 만장일치로 더 이상 손댈 게 없을 정도로 멋진 헌법을 제정했다.
그게 바로 국민의 직접 투표로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권력 구조의 핵심인 6공화국 헌법이다.
그렇게 하여 그 해 1노와 2김이 번갈아 100만 군중을 동원하는 대축제를 주최한 끝에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비록 전두환과 더불어 12·12의 주역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모두가 구원(舊怨)을 덮고 화해했던 것이다. 2김은 각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제 광범위한 중산층의 대두로 더 이상 군인은 정치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별들이 쿠데타를 못 일으키듯이 한국에서도 별들이 쿠데타를 못 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쪼잔하게 과거를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무언의 합의를 본 것이다. 알고 보면 피차 오십보 백보였으므로.
6공화국과 더불어 '땡전' 뉴스는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대통령이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분장하여 수시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잡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대통령을 한 마디라도 비판하면, 반론권을 내세워 청와대가 도끼눈을 치켜 뜨는 현재와는 달리 그 시절에는 권위주의가 꼬리를 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서 산골의 코흘리개도 TV 뉴스를 보면서 '물태우 나왔다!'고 놀렸다. 무엇보다 이 때부터 노동조합이 노동3권을 찾아 신나게 파업을 즐길 수 있었다. 월급이 천장부지로 올라갔다. 다행히 전두환 정부가 경제의 기초를 튼튼해 해 놓아서 1년 내내 파업을 해도 경제는 잘만 돌아갔다. 3저 호황!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이 다가오자 노조는 일시에 붉은 머리띠를 풀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자유는 방종과 거의 동의어로 통했다. 이에 노태우는 '최틀러'를 내세워 '무임금 무노동'과 '총액 임금제'의 2대 원칙을 선포하고 자유에 따른 책임을 엄히 물었다. 또한 전국에 조직폭력배가 자유의 바람을 타고 속속 조직을 재정비하고 밤의 기업에 이어 낮의 기업까지 넘보자,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남의 자유를 해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폭력'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따끔하게 일깨워 주었다. 민주주의가 가슴 설레는 봄에서 방종한 여름을 지나 얼얼하게 따귀 한 대씩 맞고 정신을 차리는 가을로 접어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때가 한국 민주주의의 절정이었다. 그 다음 김영삼 정부부터는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굿판을 벌여서 한풀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영삼은 돈키호테가 되어 물레방앗간을 적의 성이라며 부수고 양떼를 적이라며 녹 쓴 칼을 휘둘렀다. 김대중은 햄릿이 되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회의하고 야유하고 저주했다. 대신 자유와 풍요의 나라 대한민국 외에는 그 어떤 나라에도 써 먹을 수 없는 무력만 전력을 기울여 키울 뿐 전국민으로 하여금 하루 24시간 내내 먹는 것만 생각하고 먹는 것만 꿈꾸게 만든 2세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공포와 기아의 땅인 북한의 독재자에게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덜컥 면죄부를 안겨 주었다. 노무현은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재산 형성 과정은 어떠하든 돈이 많은 자들, 특히 강남의 부자들은 불문곡직 그 사진을 골방에 줄줄이 걸어놓고 날마다 비수를 던졌다.
노태우는 초기엔 혼란을 겪었지만 말기에는 자유에 따른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임기 내내 민주주의를 외치며 열심히 부수기만 했다. 옛 정적에게는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가혹하게 물었으나 그의 '민주 동지'들에게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를 듬뿍 안겨 주었다. 이 틈을 타서 서서히 김일성 부자를 민족의 유일무이한 영웅으로 받드는 자들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곳곳에 포진했다. 민주와 친북이 본격적으로 야합하는 순간이었다. 반공주의자인 김영삼은 서울대는 뒷문으로 들어갔는지 소문대로 머리가 얼마나 나쁘던지, 한완상을 통일부 장관으로 떡 하니 앉혀 놓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너무 흥분하여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비서가 써 주는 대로 취임사에서 '민족은 이념에 앞선다!'고 큰소리로 읽었다.
김대중이 집권하면서 재빨리 한겨레신문이 KBS와 손을 잡는가 했더니, 방송은 민주와 친북을 거의 동의어로 쓰기 시작했다. 헌법에 대통령 모독죄가 없어서 잡아 넣지 못할 뿐, 대통령을 비판하는 신문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는 것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선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에서는 전세계가 규탄하는 북한인권을 정부와 방송이 괴이한 논리로 철저히 외면하고 도리어 음모설을 내세우며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한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이준 열사의 심정으로 우르르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김일성 부자의 인권 유린에 비하면 그 100분의 1은커녕 그 100분의 1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인권의 핵심인 생존권을 4500만 떼거지에게 보장한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는 물귀신같이 물고 늘어지면서, 민족 공조를 그렇게 내세우지만 2300만의 생존과 인권은 천성산의 도롱뇽이나 새만금의 갯지렁이 취급도 않는다. 분배의 투명성은 북한 당국이 발표하는 대로 철석같이 믿고 달러와 식량과 비료를 바리바리 실어다 준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무지와 위선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축제에 이어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습관화를 가져와야 할 시기에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생은 내팽개치고 날마다 민주주의의 굿판을 벌였다. 마침내 국민, 민족, 통일, 평등, 참여 등의 꽹과리를 울리면서 대한민국을 온통 갈등의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극소수 공산당이 또 다른 노동착취 세력으로 둔갑하여 70년을 군림하다가 자체 모순으로 붕괴된 나라들의 이념보다 더 지독한 주체사상이 서서히 파고들어 어느 순간 김대업과 386 주사파가 나란히 거리를 활보하고 송두율이 방송을 타고 정몽헌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대한민국은 선진민주복지 국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나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금기가 사라졌다, 모든 권위가 무너졌다, 이제 친일파 후손과 군사 독재의 주구들과 친미사대주의자들이 쫓겨나면, 대한민국에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가 정착된다, 그러면 자주평화 통일이 절로 이루어진다, 라며 대한민국의 실세들은 찬란한 내일의 햇빛을 바라보며 오늘도 잠을 설친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이게 민족 화해인가? 이게 정치를 잘한 것인가?
(200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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