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골고루 얻어야 하는 정치인은 아직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대학가에서는 굳이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늦어도 1980년이면 다들 민중을 입에 달고 다녔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념이 지각변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이미 대학가에서는 민중은 성스러운 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행동으로 정부에 반기를 들면 금방 눈에 띄지만, 노골적으로 북한 공산당을 내세우지 않는 한, 말로 하는 문학과 평론에서 민중을 북극성으로 모시는 거야 유신 정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학문과 언론출판의 자유를 박탈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무슨 소린 줄 잘 몰랐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과서와는 달리 1970년대만 해도 대학에서는 이미 민중을 노래하고 민중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예술 작품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음악도 대중가요의 형식을 빈 의식적인 노래들이 김민기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후에 크게 히트를 쳤다.
김소월과 박목월, 조지훈, 김영랑, 서정주 등의 서정시는 중졸 고졸 또는 대학에서 더 이상 문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이나 촉촉이 적셨을 뿐, 현실도피적이고 체제순응적이고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그 문학성이 형편없이 깔아뭉개졌다. 대신에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등 일제시대의 저항 시인과 월북 또는 납북 시인인 정지용, 백석 등은 이름 한 자를 동그라미로 표시하곤 했지만, 은밀히 돌려 보면서 골방에서 하염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풀이 눕는다'라며 민중시의 빗장을 푼 김수영과 졸부·독재자를 풍자한 담시 [오적]의 김지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후에 신경림은 한국의 두보로 고은은 한국의 이태백으로 칭송을 받았다. 신동엽도 높은 산이었고. 왜? 이들은 민중을 노래했으니까. 독립운동이든 민주주의든 이들은 민중의 아픔과 슬픔을 토착적이고 질박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노래했으니까.
소설도 마찬가지다. 김유정, 김동인, 이광수, 김동리 등은 죽림파로 친일파로 독재의 나팔수로 경멸의 대상이었다. 특히 한국문학사상 문호 소리를 들은 유일한 인물이었지만, 말년의 친일 행위로 [무명]의 세월을 보내던 중 6·25의 와중에 납북된 이광수와 당시 문학계의 거두였던 김동리는 시에서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서정주와 더불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자로 매도되었다. 대신에 처형되거나 숙청된 다른 문학가들과는 달리 월북하여 고위 공산간부가 된 홍명희는 전설이었다. 금서였던 그의 [임꺽정]은 금으로 도금된 책보다 가치가 있었다. 그를 모태로 하여 황석영이 대하소설 [장길산]을 한국일보에 연재하자 대학의 문학계는 난리가 났다. 마침내 조정래가 반공소설이 아닌 대하민중소설 [태백산맥]을 내놓자, 기껏 제3자적 입장에서 어정쩡한 철학을 형상화했던 최인훈의 [광장]에 환호하고 그것을 영역하여 스웨덴으로 보내던 문학계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보다 더 큰 감동으로 사흘 밤낮을 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이 때 괴이한 자가 나타났다. 이문열! 그는 아버지가 월북하여 어릴 때 끊임없이 쫓겨다니다가(실지로 당국의 감시를 받아 그랬는지, 단지 그 어머니가 피해의식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정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는데, 거미줄처럼 촘촘한 짜임새에 한 문장 한 문장이 맛깔스러운 단편과는 달리 단편소설의 세계 3대 거성 모파상의 장편 [여자의 일생]처럼 엉성하고 주제도 별 깊이가 없는 [사람의 아들]이 나오면서 대학가에서 미처 비판하기도 전에 그는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가 평역한 [삼국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수험생들도 논술에 도움이 된다며 너도나도 읽었다. 그러나 이문열은 누구보다 민중소설의 대열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끝내 홀로 부르주아 문학(이분법으로 볼 때)의 대로를 걸어갔다. 조정래가 수십억원을 버는 사이 그는 수백억원을 벌었다. 이문열은 군사독재를 비판하지도 않았고 친일파를 욕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는 정신적으로 친일파요, 독재주구요, 부르주아다. 극우보수주의자다. 그 책을 꽃상여에 싣고 가서 불태움이 마땅하다! 실은 이문열은 회의론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주의(humanism)를 문학의 가장 큰 잣대로 삼았던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듯이, 관념론적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이문열은 아리까리하기 만하다. 장편소설로서 문학성이 높은 창작소설은 아직 없기 때문에 아직 이광수처럼 문호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이문열은 회의론자의 입장에서 벗어나면 붕새처럼 문호로 비상할 역량은 충분히 갖춘 인재이다.
일반 대학생이든 운동권이든 문학도 길잡이가 필요하다. 평론가와 비평가가 실은 소설가나 시인보다 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서울대 영문과의 백낙청과 서울대 국문과의 김윤식, 이 두 사람이 민중문학의 지팡이요 눈이다. 하버드에서 D. H. 로렌스의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고 거기 나오는 민중을 조명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백낙청은 서울대 영문과만이 아니라 [창작과 비평]을 통해 [사상계]의 장준하 이래로 한국의 지성에 누구보다 영향을 많이 끼쳤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김윤식은 최초의 저술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통해 한국근대문학의 기원을 일제시대의 카프계열에서 찾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제까지의 전통적인 문학의 눈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사람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이영희 이상으로 살아 있는 전설이다. 90년대 미술계에선 민중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쓰는 젊은 평론가 유홍준이 혜성처럼 나타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양념처럼 군사독재를 조롱했고.
나는 80년대에 [실천문학]을 정기 구독한 적이 있다. 흑백론적 사고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한국적 의식구조 하에서는 순수파와 참여파로 딱 나뉘어 밥 한 그릇도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없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순수파가 득세하던 때라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우리나라도 이런 걸 용납할 만큼 여유로워졌구나! 그러나 서너 권 읽고 나서는 정기구독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을 노래하고 민중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북한문학을 소개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처음에는 북한문학 가운데서도 숨을 크게 들이킨 후에 볼 만한 것이 더러 있었지만, 어느 순간 활자가 온통 빨갛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 것도 북한 것도 그건 전혀 문학이 아니었다. 조악한 선전물이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거기 비하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작품이었다.
국민은 무엇이고 민중은 무엇인가? 왕조 시대의 백성이나 공산국가의 인민과는 달리 국민은 의회민주주의와 3권 분립을 기본으로 하여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구성원일 것이다. 민중은 특권과 세습재산이 없는 노동자와 농민, 영세 자영업자, 소시민 등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문제는 남북의 현실이다. 한국은 보릿고개에서 힘없이 누워 있던 사람들이 60년대를 지나면서 특별히 불우한 사람이 아닌 한 머리맡에 쌀을 한 가마니 정도 두고 단잠을 잘 수 있었고, 70년대를 지나자 작은 아파트나 전세방에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고,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한 집에 승용차를 평균 한 대씩 갖게 되었다. 민중이 대거 중산층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극우보수파라는 이문열도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보다 무려 10배나 잘 살게 된 이런 나라를 찬양은 아닐지라도 있는 그대로 그린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구로아리랑]인데, 민중소설 흉내나 냈을 따름이다. [아우와의 만남]도 어정쩡하고.
조정래, 황석영, 신경림, 고은--이들은 역량 있는 작가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두 눈은 광어처럼 한쪽으로 붙어 있다.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과 조선시대의 애환을 그리되, 그들은 그들이 저주하는 한국이 부자 나라가 되는 덕분에 조정래 같은 경우 인세만으로 작은 재벌 못지 않게 많은 현금을 만졌지만, 그들에게 민중은 관념의 대상일 따름이다. 어느 순간 입력된 19세기 사회주의 사상에서 그들은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부르주아의 부르주아 생활을 한다. 더군다나 황석영은 제 발로 북한까지 가서 안내와 감시 속에서 북한 공산당이 보여 주고 싶고 들려 주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와서는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통일 후 북한 주민 2300만에게 돌팔매질 당할 소리를 태연히 활자화했다.
민중을 이야기하고 민중을 노래하려면 대를 이어 60년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애환을 피를 토하며 들려 주어야 한다. 70%가 중산층으로 올라선 한국의 민중에게서는 그들이 이야기하고 노래라는 어두운 면을 80년대 이후 거의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북한의 민중은 끝없는 감시와 노동착취로 강냉이 고개에서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다. 그러다가 3백만이 새까만 시체로 변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과 박정희의 경제개발로 한국의 민중은 북한의 민중보다 10배가 아니라 100배나 잘 살고 100배가 아니라 1000배나 자유로워졌다. 그런데도 마치 그들은 북한은 민중의 이상향이요, 한국의 민중의 연옥인 양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조정래는 언젠가 [신동아]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북한 정권의 과오는 친일파 청산과 민중을 위한 정치 체제를 건설한 정통성이란 공덕 때문에 크게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학, 음악, 미술, 영화--여기서 노래하고 그리는 민중은 극히 일부만 현실과 부합된다. 거기엔 국민도 없고 민중도 없다. 진정 민중의 애환을 들려 주고 보여 주려면 북한의 민중에 대해, 아우슈비츠를 보고 한 때 시를 쓸 수 없었던 유태인처럼 국내의 탈북자와 만주로 직접 발로 뛰어 선전과 사실, 관념과 현실을 구별하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을 가라앉힌 후에 스스로 상징적이나마 한두 작품을 불사르고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심금을 울릴 작품을 쓰기 바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나 [닥터 지바고] 같은! 아니면, 박경리의 [토지]를 본받거나. 영화라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신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고.
(200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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