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10월17일은 朴正熙 대통령에게는 1961년5월16일과 함께 운명적인 날이었다. 이날 그의 행적을 청와대 접견일지를 통해서 재구성해본다.
대통령은 오전 9시30분에 金溶植외무장관을 불러 곧 발표할 유신조치에 대한 외무부의 대책을 지시했다. 일본과 미국 대사에 대한 공식통보도 지시했다.
대통령은 9시40분에 書道室에서 최규하, 박진환, 박종홍 씨등 특별보좌관 회의를 소집하고 유신조치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회의도중 李厚洛정보부장, 김용식 외무장관, 김정렴 비서실장이 긴급보고를 하기 위해 朴대통령을 몇 차례 집무실로 모시고 나갔다.
朴대통령은 11시25분부터 김정렴 비서실장, 이후락 정보부장, 김용식 외무장관, 김종필 총리, 정일권 공화당 의장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오후에 발표할 비상조치를 논의했다.
이날 특이한 것은 오후 3시11분부터 34분간 申範植 서울신문사장이 대통령을 만난 것과 그의 뒤를 이어 공화당 車智澈의원이 20분간 대통령을 만나고 간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이 무렵 朴대통령을 공사석에서 자주 만났고 곧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연루된다.
朴대통령은 오후 네시 4분부터 백두진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을 초치하여 유신선포에 대하여 통보했다. 곧 계엄사령관이 될 盧載鉉 육군참모총장도 다시 불렀다.
이날 오후 6시부터 37분간 대접견실에서 있었던 비상국무회의는 국회해산, 헌법효력 중단을 결정한 대통령의 뜻을 받아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기로 의결했다.
1972년10월17일의 청와대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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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03, 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