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투사들의 교만이 혼란의 진원지


우리 나라의 민주 투사나 북한의 주체사상파는 국민과 국가, 민주 또는 인민과 조국, 통일을 오롯이 혼자 위하는 듯이 큰소리치고 스스로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지만, 실은 그 정신은 그들이 욕하는 독재 정치의 수렁과 봉건주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고 본다. 이건 스스로도 의식 못하는 무의식이어서 그 증상이 심각하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행동은 전혀 반대이지 않은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말보다 행동을 믿을 수밖에 없다.
문민의 정부가 문민을 위하는 것을 보았으며,
(정말 그랬다면 IMF 신탁통치는 왔을 리가 없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을 위하는 경우를 봤으며,
(정말 그랬다면 금융 구조조정, 기업 개선 작업, 공공 개혁, 노조 개혁, 교육 개혁, 의료 개혁, 남북 화해가 이렇게 혼란만 가중시킬 리가 없다.),
참여 정부가 국민들을 골고루 국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봤으며,
(정말 그랬다면 코드가 맞지 않는 야당과 언론 및 그를 지지하는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을 일제 시대의 경찰보다 더 미워할 리가 없다.)
인민의 공화국이 인민을 위하는 것을 보았는가?
(정말 그랬다면 오로지 군사력만 강화시켜서 인민을 300만이나 굶어 죽이는 짓을 했을 리가 없다.)

이런 비극은 왜 왔던가? 정말 큰 비극이 왜 자꾸만 예감되는가?
가장 큰 이유는 교만이라고 본다. 독선이라고 본다. 정권을 잡는 순간 이전에 아무리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더라도, 희생했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걸 새로 시작하면서 겸손 또 겸손해야 한다. 한국의 비극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권을 잡는 순간 교만 또 교만해진다. 스스로 면죄부를 발부 받고는 이전에 섭섭하게 대했거나 현재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것도 권력 투쟁을 빼고 나면,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도 별로 없다. 다시 말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은 별로 없고 단숨에 권력을 잡고 명예를 얻고 부를 획득하는 첩경이기 때문에 민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이 대부분이란 말이다. 고시 따위 기업 따위는 거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대선과 총선과 지방선거는 그렇게도 달콤하다. 이보다 크게 남는 장사가 없다.

데모를 하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노조 운동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꾸준히 머리를 써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공정을 개선하고 무엇보다 상하좌우 두루 협력하고, 시민 운동을 하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고함과 위협이 아니라 논리와 유머로 이기고 항상 마음을 열어서 상대방이 옳다 싶으면 즉시 받아들이고 누구와도 흥분하지 않고 토론할 수 있을 만큼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전문 분야는 밤이 이슥하도록 연구하고, 선거 운동을 하면서도 승부를 떠나 정정당당하고 깨끗하게 민주의 모범을 보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총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우리 나라 민주 투사들은 숫제 전쟁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정권을 잡고 나서도 그런 행태를 전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이 잘못되면 반성하는 게 아니라 즉시 마녀를 만든다. 전설 속 독재자처럼 야당을 두들겨 패고, 기업인들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고, 언론을 탓하고, 국민의 의식 수준을 개탄한다. 명백한 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한 마디 사과도 없다. 검찰 독립을 내세워 스스로를 보호하고 정적을 가둔다. 정 불리하면 도마뱀 작전을 써서 끼워 넣기로 몇 명을 검찰에게 넘긴다.

지역감정을 그렇게 욕하면서 숫자를 들먹이며 인사 정책의 공정함을 거듭 거듭 홍보한다. 화합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코드에 맞는 사람만 중용한다. 시스템을 그렇게 중시한다면서 관제 시민단체를 공식 정부 기관 위에 둔다.

우리 국민들은 정말 착하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비록 40%, 50% 지지도 못 받은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80%, 90% 밀어 주며 세 번이나 속아 주었다. 웬걸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원래 자기가 지지한 세력으로 돌아서거나 아예 정치 혐오감에 빠진다. 집권 말기가 되면 그나마 원래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우르르 싸늘한 웃음을 쏘아댄다.

야당 생활을 오래 하다가 보면, 출발은 민주적이었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현실감을 급격히 잃어 버린다. 반대를 위한 반대, 당선을 위한 당선을 위해 오로지 인기 관리에 급급해진다. 표 계산밖에 않게 된다. 정치 연예인이 된다. 만약 우리 나라가 정체된 사회였다면, 국민 소득이 여전히 세계 최빈국 수준인 일인당 5백 달러 정도에 머물고 대학 나온 사람이 전국민의 1%밖에 안 되고, 기업은 해외의 대기업, 중소기업과는 전혀 맞서지 않고, 수출은 엄두도 못 내고 국내서만 권력과 결탁하여 독과점을 통해 주머니 돈이 쌈지 돈 식으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면, 야당 때 말하던 걸 그대로 실행해도 잘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나라도, 국민도, 국제환경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전문 영역이 너무도 많아졌다. 민주 운동했다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오리 새끼처럼 젊을 때 입력된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혀 현실은 보고도 모르기 때문에 설령 자기들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책을 많이 읽는다 해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또한 해방 이후 우리 나라는 모든 영역에서 민주화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는 부만 쌓은 나라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히 민주화도 진척되었다. 그게 오로지 자기들 때문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민주 투사들의 행태가 더 비민주적이다. 동네 반상회도 국회보다는 민주적이고 중소기업도 의사결정 과정이 청와대보다 민주적이다.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해서 던진 말들이 실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그것부터 겸손하게 배워야 하는데, 대통령을 정점으로 해서 여당의 정치인들이 누구든지 불러서는 받아쓰기를 시킨다(dictator=tyrant). 스스로 한 말마저 여기 저기서 충돌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슬그머니 말을 바꾸거나 덧보태거나 변명하거나 역정을 낸다.

실세들의 작태는 정말 가관이다. 이들은 초헌법기관이다. 서로간에 조율도 않고 툭툭 던지는 그 말에 시장이 춤을 추고 국민이 한숨을 쉰다. 기업이 도망간다. 외국인이 발걸음을 돌린다.

자, 이제 제발 그러지들 말자.
박정희가 등소평보다 17년 앞서 개혁개방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모든 국민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불철주야 땀을 흘리게 만들어 만만찮은 부를 축적하여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의 토대인 두터운 중산층이 탄생했지만, 민주 투사들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민의 여망과는 정반대로 개혁이란 미명하에 줄기차게 한풀이를 하는 바람에 10년을 허송하여 이제 겨우 중국보다 5년 내지 7년을 앞서게 되었다.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빈민층이 급격히 늘어나서 사람들의 눈에서 파란 불이 튄다. 무시무시하다. 으스스하다.

자, 이제 제발 그러지들 말자.
국회를 최소한 동네 반상회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청와대를 최소한 중소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200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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