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자유와 정치·문화 자유8~10

경제·사회 자유와 정치·문화 자유8/10

[중국인의 의의 문화와 정치]

중국은 의(義)의 나라이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낸 문학 작품이 바로 나관중의 삼국지와 시내암의 수호지다. 도원결의와 백팔 형제의 의리는 중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는 지도자가 무소불위의 아버지 역할을 못한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에게 황제가 신하 위에서 위세를 부리듯이 군림하지 못한다. 송강은 백팔 도적의 수령으로서 형제들에게는 제멋대로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모택동이 장개석에게 이긴 이유는 중국의 전통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당연하다. 모택동은 대장정의 고난을 통해서 송강이 백팔 형제의 신임을 얻듯이 동지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 마음은 그러나 일본의 충도 아니요 한국의 효도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의(義)다. 장개석은 이 의를 얻지 못했다. 의를 얻지 못한 자, 중국에서는 그 세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거꾸러지게 되어 있다. 장개석은 오히려 대륙에서 쫓겨나고 나서 비로소 대만에 함께 간 사람들로부터 의(義)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후로는 그가 잘할 수밖에 없었다.

상하 지위가 엄연하지만 최초에 맺은 혈맹은 평등한 의(義)에 기반을 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맏형이 아버지나 우두머리를 자처할 때, 중국은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모택동이 문화혁명이란 명분으로 바로 이런 대실책을 저질렀다. 진시황이나 수양제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재미있는 현상은 따꺼(大哥, 맏형)가 의리를 배반했더라도 형제들은 그가 돌아오길 끝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죽거나 아무 일도 않고 칩거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맏형은 그러나 넘지 못할 선을 절대 넘지 못한다. 의리로 맺은 나머지 형제들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은 주지만, 죽일 수는 없다. 등소평이 끝까지 살아남았던 이유가 바로 대장정에서 맺어진 이 의리 때문이었다. 이 의리마저 저버릴 때 중국에서는 천하대란이 일어난다.

중국인의 이 의리가 넓혀지면 중화사상이 된다. 세계 어디 가든 중국인은 중국인끼리 서로 돕는다. 아버지가 다르면 같은 동네 사람끼리도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우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해외에서 경쟁할 때 이 경향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외국에서 수입할 때, 함께 뭉쳐서 상대방 나라에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다. 같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인은 영화 수입이나 박찬호 중계방송권 확보에서 보듯이 우리끼리 싸워서 상대방 좋은 일만 해 준다. 서로 아버지가 다른 가문이기 때문이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우리 집안만 잘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중국인과 무슨 일을 하든 이 중국인의 의(義)를 모르면, 평생을 사귀어도 겉돌게 된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것이 중국인들에게는 큰 자랑으로 통한다. 국가적으로 아예 외국인과 내국인은 물건값이나 서비스료가 다르다. 그러나 외국인도 어떻게 하여 중국인의 의(義)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 의가 통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딜 가든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이 의의 세계에 들면, 계약서가 필요 없다. 말이 곧 신용이다. 아무리 큰 거래도 중국인의 의의 세계 안에서는 전화 한 통화면 끝난다. 생명보다, 마누라보다, 부모보다, 자식보다 이 의로 맺은 형제를 더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암흑가에도 이것이 그대로 통한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를 방(幇)이라고 하는데, 이 세계도 철저히 의리로 뭉쳐 있다. 이들은 버젓이 기업도 운영하고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도 된다. 유방과 주원장은 바로 이 암흑가에서 일어나서 가장 중국적인 나라, 한과 명을 건국했다. 당의 이세민도 아버지 이세연이 일부러 돈을 주어 장안에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사귀게 하였다. 선비, 학자, 관리뿐만 아니라 깡패, 도적, 거지, 중, 도사를 사귄 것은 불문가지다. 이들은 하나같이 나중에 당의 건국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무협소설에 보면 거의 언제나 개방파라고 거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개 좋은 사람들이고 그 중에 꼭 이인(異人)이 숨어 있다. 중국인의 의식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황제가 된 유비나 도적의 우두머리가 된 송강이나 중국인은 똑같이 존경하고 사랑한다. 황제라고 더 존경하지 않고 도적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실은 황제인 유비보다 중국인들은 의로 맺어진 관우와 제갈량을 훨씬 존경하고 사랑한다.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 중에서 이 두 사람이 각기 전후반의 주인공이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관우의 죽음과 제갈량의 출사표를 보고 울지 않는 중국인은 단언컨데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은 의(義)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암흑가의 우두머리가 죽으면 대만 시내 한복판을 거대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운구 행렬이 지나가고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조문객으로 연도에 늘어서는 것을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의 의의 세계를 모르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사회 현상이다.

한국인으로 중국인의 의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이장수 축구감독이 아닐까 한다. 그는 중경에서 천만 명이 넘는 열렬한 팬이 있다고 한다. 그가 단지 중경의 프로 축구팀을 최강으로 만든 것만으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가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의 의의 세계로 들어간 결정적인 계기는 구단에서 제공한 개인 아파트를 떠나 선수들과 같은 숙소를 쓴 것이다. 거기서 그는 선수들의 문란한 사생활을 뜯어 고쳤다. 밤늦게까지 술을 못 마시게 했다. 프로 정신을 제대로 일깨워 주었다.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장수 감독을 큰 형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맺은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설령 이장수 감독이 성적이 안 좋아서 중경 시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는 최소한 선수들의 의의 세계에는 이미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 얻지 못할 소중한 자산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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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자유와 정치·문화 자유8/10

[일본의 충(忠) 문화와 정치]

일본은 충(忠)의 나라이다. 집단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성(城)을 중심으로 하는 영주인 대명(大名 다이묘)에게 절대 충성했던 것과 똑같은 구조가 현대에도 어디에나 있다. 정치에서 이것이 두드러짐은 말할 것도 없다. 계파 정치의 오야봉은 기본적으로 하나하나가 옛날의 영주이다. 그런데 효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는 단지 집단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그가 사라지더라도 집단은 다른 사람에 의해 언제든지 다시 이어진다. 혈연 중심으로 가계를 이어가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기본적으로 혈연 중심이되, 그보다 집단을 중시하기 때문에 설령 혈연과 관계없더라도 대가 끊어지면 유능한 사람이 대신 그 집단을 이끌어간다.

100년, 200년 어떤 집단이 이어지는 것이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다. 집단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계파가 있지만, 한국과 달리 정당이 수시로 명멸하지 않는 것은 한 계파의 수장은 더 큰 집단의 한 구성 분자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 집단에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나가게 되면 그는 더 큰 집단에게 불충한 것이 되어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이런 자는 아무리 똑똑하고 힘 있고 돈이 많고 깨끗해도 배척당한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에 근무했던 사람이 동일 직종의 일을 못하는 것도 바로 이 집단에 대한 충성 때문이다. 반면에 효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나오면 자기가 새로운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바로 직전에 자기가 하던 그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 원칙처럼 되었다. 거래처마저 다 빼앗아간다. 만약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그 대기업에서 이를 못하게 하면, 이제까지 쓸개까지 빼주면서 효도를 다하던 그 회사를 중상모략하는 데 일생을 건다.

일본의 재벌이란 집단이 말만 계열(게이레츠)로 바뀌었을 뿐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창업자니 소유자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재벌이란 집단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맥아더에 의해 창업주가 다 쫓겨났더라도 관계없다. 집단 자체는 그대로 살아남는다. 흔히 일본의 재벌이 2차 대전 후 해체되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다. 단지 소유주가 물러났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소유주가 능력이 없으면 시간의 문제일 뿐 물러나게 되어 있다. 미쯔비시, 미쓰이 등은 여전히 웬만한 나라보다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전체로 보면 일본주식회사, 부분으로 보면 몇 개의 거대 재벌, 그 아래 밤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중소기업--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 관계는 하나같이 충(忠)의 관계이다. 따라서 외국 기업은 일본 시장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

정당은 거대 정당 자민당이 있다. 나머지는 모두 군소 정당일 따름이다.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일본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사회당이 한 때 잠시 득세한 적도 있지만, 일본의 당은 누가 뭐래도 자민당이다. 그 당 안의 큰 계파가 군소 정당보다 크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 야구에서 자민당에 해당하는 팀이 바로 요미우리 거인 팀이다. 압도적으로 팬이 많다. 일본인은 옛날 막부에 해당하는 거대한 집단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은 충을 매개로 한 집단 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도 거의 변하는 게 없다. 이것도 효를 매개로 하여 '아버지'를 태양으로 모시는 나라인 한국과 전혀 다르다. 일본의 수상이 수시로 바뀌어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나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반면에 '아버지' 중심인 한국에서는 대통령 한 번 바뀌면 모든 게 뒤집어진다. 이렇게 두 나라가 판이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

일본에서는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충의 세계이므로 집단을 영원히 살리기 위해 지혜를 모으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의사결정은 철저히 상향식이다. 우리가 하향식인 것과 정반대이다. 상향식으로 충분히 논의되어 결정이 되면 이건 반드시 지킨다. 결정된 것을 철두철미 지키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결정되기 전에 충분히 논의하여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게 만드는 것을 화(和)라 한다. 그래서 일본은 스스로의 정신을 화혼(和魂)이라 한다.

일본의 의사결정 과정은 자기들 문화로서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다. 의회보다 다도 모임이나 요정의 술자리가 더 중요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일본의 이런 문화를 잘 알았기 때문에 한일 수교시에 일본 원로들을 극진히 대우했다.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일제의 35년 지배를 받았던 한민족으로서는 당시의 3억 달러니 5억 달러니 하는 것이 도대체 성이 차지 않았지만, 짠돌이 일본으로서는 크게 선심(?)을 쓴 셈이다.

일본의 계파 관리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옛날 영주가 무사를 먹여 살리는 것과 동일하다. 자연히 계파의 보스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한국 못지않게 검은 돈 얘기가 많이 오갈 수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의 정치가 머잖아 크게 변할 것]

한중일 정치는 경제 자유를 확대하고 사회 자유를 보장하고 문화 자유를 해방시켜 생산을 계속 늘리고 비판을 허용하여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야 할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는 새로운 문화가 용트림하고 있다. 아니 이미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이 문화의 주역은 경제 자유와 사회 자유에 이은 문화 자유로 커질 대로 커진 중산층과 일반 대중이다. 이들의 수준이 이미 지도자연하는 정치인들을 능가한다.

중국은 개방된 지 얼마 안 되어 정치가 전통적인 형태를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별 탈없이 지속하겠지만, 한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는 정치인들은 거의 블랙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었다. 각기 효와 충, 의의 전통에 서구 민주주의를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할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나타나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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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자유와 정치·문화 자유10/10

[밥 잘 먹고 숭늉 마시기]

자유는 경제 자유와 사회 자유를 먼저 주고 정치 자유와 문화 자유는 민중들이 그 자유를 감당할 수 있을 때, 주는 게 올바른 순서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구도 거의 이런 순서를 밟았다. 정치 자유도 선거권에 대해서만 얘기해도 그것이 전국민에게 확대되는 것은 서구에서도 20세기였다. 언론, 종교, 예술의 자유도 정치 자유가 확대되는 것과 더불어 서서히 확대되었다. 그네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달성하여 옛날부터 멋진 신세계를 이룬 듯이 다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무시하고 자기와 똑같이 하라는 것은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그보다 자기 나라와 국민은 무시하고 이들 논리를 맹종하는 후진국(?)의 사람은 더욱 가소롭다.

후발 산업국인 독일과 일본이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을 하면서 정치가 독재로 흘렀다가 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제 정신이 든 것도 무슨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문화에 바탕을 둔 의식 변화와 그에 따른 정치의 성숙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면, 그것은 전혀 수수께끼가 아니다. 거의 필연적인 일이었을 뿐이다.

[중국의 성공과 러시아의 실패 원인]

1980년대 들어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두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인데, 세계 최빈국에 독재 국가였던 중국이 오히려 미국과 더불어 초강대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러시아를 압도하게 되었다. 중국이 앞으로 20년만 지나면 세계 2위, 3위의 경제강국이 되고 50년만 지나면 세계 1위의 경제초강대국이 될 것을 현재로서는 의심할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제안한 경제·사회 자유와 정치·문화 자유의 이론에 따르면 쉽게 설명된다.

[경제·사회 자유를 먼저 준 중국]

중국은 1978년 등소평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면서 공산당 일당 지배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정치와 문화의 자유를 억제하여 정치 안정을 가져오고 대신 경제와 사회 분야의 자유를 서서히 풀어 주었다. 10여년 후 경제·사회 자유로 자유의 맛을 알게 된 세력이 마침내 정치·문화 자유까지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공산당 일당 독재과 정면으로 맞섰다. 이것이 저 유명한 1989년의 천안문 사태다. 결과는 일반의 예상과는 반대로 무자비한 탄압이었다.

이 때 전세계의 민주화 지지 세력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중국은 이제 끝장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등소평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였다. 피를 흘림으로써 정치 안정을 이룩한 다음에 경제·사회의 자유는 한층 더 넓혀 주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자 중국은 당당히 GDP 기준으로 세계7위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구매력으로 따지면 일본을 제치고 이미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러시아는 1985년 고르바초프가 구소련의 대통령이 되면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서구가 원하는 바를 거의 그대로 실천했다.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라는 러시아 말이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그는 경제·사회 자유만이 아니라 정치·문화 자유도 한꺼번에 다 허용했다. 그 자유의 물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스스로도 익사해 버렸다.

[정치·문화 자유와 경제·사회 자유를 한꺼번에 다 준 러시아]

천연자원 세계1위, 기초과학기술 세계 2위, 국토면적 세계 1위--이 모든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극도의 혼란이 동토를 휩쓸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를 쫓아낸 옐친은 알코올 중독자로, 만인의 지탄을 받던 KGB마저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 사회 자유는 무엇보다 치안이 확보되어야 민중들이 누릴 수 있는 건데, 경찰의 힘이 무력한 상태에서 비밀경찰마저 해체해 버리자, 회사 하나를 설립해도 기관총부터 사서 스스로를 방위해야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마피아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KGB 요원이 마피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자유는 자유를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경제·사회 자유는 사람들이 쉽게 감당하지만 정치·문화 자유는 감당하기가 아주 어렵다. 전자는 물질적, 기술적, 자연적인 자유인 반면에 후자는 정신적, 이론적, 인간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누릴 수가 없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기적도 없다.
자연계의 변화가 수만 년, 수십만 년, 수백만 년, 수천만 년의 시간을 단위로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이루어지듯이, 인간계의 변화는 최소 30년, 보통 100년, 200년, 500년의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한다. 중국인은 5천년 역사를 통해 이를 어떤 나라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사 외에는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 등소평이 중국의 유원한 지혜를 터득한 대표주자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했다.

한국도 중국 못지않게 오랜 역사가 있는 나라지만, 조선 중기 이후 모든 기준을 중국의 '과거(주나라와 송나라)'에 맞춤으로써 고유 사상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사상적으로 중국을 흉내 내는 모화사상이란 황사가 삼천리금수강산을 온통 뒤덮었다. 그 결과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가 없게 되었다. 죽으나 사나 정통성 시비로 날을 지샜다. 그것이 현재까지 계속된다.

조선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일제시대를 거치고, 개혁·개방할 절호의 시기였던 대원군(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 당시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와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바다에 아무리 돌을 집어넣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듯이 사막에선 구멍을 아무리 파도 땀방울만한 물 한 물방울도 나오기 힘든 법이다.) 이후 무려 100년 만에 비로소 박정희란 지도자가 한국 실정에 맞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그는 중국 사상이란 무의식의 갑옷을 입고 미국 사상이란 의식의 총칼을 든 '배운 분'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허용한 경제 자유와 사회 자유 덕분에 한국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민중이 마침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정치 자유와 문화 자유도 자유에 따른 책임을 다하면서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배운 분'들이 중국과 미국의 잣대를 참고로 우리의 잣대를 만들어야 할 시대적 소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지도자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긴 흐름으로 볼 때 이런 모순은 짧으면 10년, 길어야 20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한민족이 떨치고 일어날 때가 된 것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전혀 두려워할 게 없다. 모순의 극점에 있는 북한도 긴 흐름으로 볼 때 그 생명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냥' 사라지진 않겠지만.

극도의 혼란 끝에 마침내 러시아에서 2000년에 푸틴이 등장했다. 그가 하는 일을 보면, 경제·사회 자유는 인정하되 정치·문화 자유는 제한한다. 박정희, 이광요, 장개석, 등소평의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전세계는 이런 그의 행보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고르바초프가 했어야만 했던 일을 15년의 시행착오 끝에 그가 비로소 하게 되었다고 본다. 만약 푸틴이 지금 하는 일을 고르바초프가 했다면, 지금쯤 러시아는 중국을 능가하는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역사적 사실로부터 지혜를 얻기 어려운 이유는 기존의 학설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200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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