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60대와 늙은 30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한 뿌리 두 가지인데, 전자는 육체적인 연령보다 정신적인 연령이 중요하다는 말로 많은 표를 굳히거나 새로 얻었고 후자는 60대와 70대는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시라는 지원 유세를 받는 한편 인터넷을 장악한 20대와 30대의 여론몰이에 편승하여 세대간 갈등을 유도하는 데 성공하여 꿈같은 새 시대를 만들었다. 노무현 후보는 월계관을 쓴 후에 손을 비벼 쌍꺼풀을 세우지 않고는 흐르는 눈물에 눈을 못 뜨는 상태에서 감격에 겨워 ‘헌 시대는 가고 새 시대가 왔노라!’고 쉰 목소리로 외쳤다. 하긴 모 국회의원은 뇌세포를 들먹이며 초등학교 수준의 뇌 과학으로 노인들을 폄하하기도 했다.

참 재미있는 이중 잣대이다. 아마 머리가 비상한 범노사모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하여간에 젊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상대방이 육체적으로 젊으면 정신이 늙었다고 빈정대고 상대방이 육체적으로 늙었으면 정신까지 늙었다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내 편’은 무조건 젊은 진보파요, ‘네 편’은 무조건 늙은 보수파로 몰아붙인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젊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진보적이다, 평등과 분배를 중시한다, 민중편이다, 민족화해의 시대를 연다,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를 따라간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거부한다, 떠오르는 중국의 태양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북한을 너그럽게 대하여 민족 상쟁의 대결 구도를 피한다, 북한 체제를 내재적인 접근법으로 이해하려고 애쓴다, 뭐 이런 말들에 동조하면 즉시 육체적 나이에 관계없이 젊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1966년에서 1976년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에 낡은 제도와 의식은 붉은 10대와 20대들이 깡그리 때려 부수었다. 학교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책걸상을 모조리 불태우고 나라와 사회의 변혁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홍위병들이 양식만 축내는 늙은 것들을 깡그리 때려 눕혔다. 60대, 70대는 말할 것도 없고 40대 심지어 30대도 머리에 부르주아 사상이 든 자들은 사정없이 조리 돌렸다. 침과 오물과 몽둥이와 채찍의 세례를 퍼부었다. 때로는 죽창과 소총 아래 피를 흘리며 두 눈을 부릅뜬 채 뻣뻣한 살덩어리로 변하는 늙은이들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통일 대장정의 혁혁한 공을 세운 동지들도 똥통을 짊어지고 밭을 일구며 머리에 든 낡은 사상을 몽땅 비우게 만들었다. 이런 젊은이들과 정신연령이 똑같은 4인방만이 위대한 새 시대의 지도자 자격이 있었을 따름이다. 역사상 최초로 젊은 혁명의 시대를 맞이함에 희생이 없을 수 없는 법,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이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수억 명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몸과 마음에 동시에 입었다.

황룡이 아니라 84살이나 먹은 이무기가 죽자마자 그렇게도 시대에 앞선다던 4마리 암수 불여우가 ‘혁명 만세!’하면서 감방에서 헛소리나 하고 그렇게 서슬이 퍼렇던 수억의 강시들이 일시에 쓰러졌다. 알고 보니 이들은 여든 살 이무기에게 영혼이 금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육체적으로 젊었을 뿐 이들은 정신적으로 하나같이 노욕으로 똘똘 뭉친 봉건시대의 여든 노인들이었다. 20세기의 과학기술과 공업, 무역, 민주주의 등을 받아들여야 될 시점에서 300년 500년 아니 1000년 2000년 뒤로 돌아가서 수양제나 진시황의 폭정과 사상 통제, 쇄국주의, 봉건주의 등을 완장과 호루라기와 스피커와 몽둥이로 역사상 최초의 새로운 사상이라며 들쥐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아무에게나 강요했던 것이다.

홍위병이여, 악랄하게 전진하자며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낸 한국의 자칭 신세대도 마찬가지다. 개방 대신 쇄국, 자유 대신 억압, 쌀밥 대신 총알, 개혁과 인권 대신 미사일과 핵무기, 민주 대신 독재, 민중 대신 장군님, 힙합과 연애 대신 집단체조와 응원, 생산 대신 구걸, 분배 대신 강탈--이런 체제의 북한을 무한히 이해하고 감싸고 옹호한다. 당연히 이들에게 ‘북한에는 확인된 인권 탄압이 없고 북한이 못 사는 것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적대적인 정책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군사력을 키우다 보니까 못 살 뿐이다.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 구좌에 수십억 불이 있고 날마다 진수성찬을 즐기고 밤마다 기쁨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날조일 따름이다. 20대 초반에 OT와 MT에서 선배들로부터 입력된 사상 아닌 사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급변하는 지구촌의 시대에 사고방식이 막대기처럼 뻣뻣하다.

당연히 이들은 한국의 성취는 눈에 불을 키고 흠집을 낸다. 전 세계의 개도국 50억 인구가 꿈결같이 바라보며 너도나도 불법이언정 취업하러 오려는 한국의 성취는 부지깽이나 지게 작대기가 청와대에 들어갔어도 절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남북을 대결 구도로 몰아넣은 반공과 친미와 친일파들의 굴욕적인 한일수교를 시도 때도 없이 걸고넘어진다. 530살 먹고 죽은 조선의 영혼을 소유한 김정일에게 거슬리는 말은 죽어도 못한다. 수억 홍위병들의 영혼이 2000살 먹은 모택동의 영혼과 상통하였듯이 한국의 30대 홍위병들은 530살 먹은 김정일의 영혼과 맞닿아 있다. 그 영혼의 이름이 바로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은 알고 보니, 김일성과 김정일만이 주체적인 인간이고 나머지 2300만 북한 주민은 뇌수가 시키는 대로 하는 팔다리 곧 노예와 똑같은 미물이라는 뜻이다. 자연적인 나이로 따져도 한국의 386 운동권은 60대의 김정일과 정신연령이 거의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늙었다.

반면에 한국의 60대와 70대는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고 진취적이고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이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동조한다. WTO, 노동시장의 유연성, 남녀평등, 환경, 자유무역지대, 의료와 교육과 농업의 개방 등에 관해서 당위성과 현실성 사이에 놀라운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 세계와 발맞춰 가되 이를 한국적 현실에 슬기롭게 적응시킨다. 중공의 문화혁명 시대에 늙은 주은래와 등소평 등이 그러했듯이, 한국의 60대와 70대는 시대를 앞서간다. 중공의 홍위병처럼 억지와 생떼를 논리와 합리로 착각하는 386세대들이 빨라야 1980년대 대개는 1945년 해방 무렵 또는 북한의 1960년대, 조선의 160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60대와 70대는 늦어도 한국의 1970년대, 웬만하면 선진국의 1990년대, 대개는 세계의 2000년대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현재 이들이 한국에선 가장 시대에 앞선 세대이다. 거기에다가 지식과 경륜과 재산도 갖추고 있다.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한 이들은 돈도 가장 많다. 그러면서도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조선의 봉건주의와 일제의 군국주의, 북한의 공산주의, 한국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월남의 정글과 중동의 사막, 미국의 프레리와 마천루와 라스베가스, 일본의 아키히바라, 유럽의 박물관과 박람회와 요람 등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놀라운 세대이다. 육체적인 힘도 1960년대의 40대나 50대 수준이다. 아직도 10년 20년은 참을성이라곤 도무지 없는 젊은이 못지않게 일할 수 있다. 일찍이 이렇게 뛰어난 노인 세대가 없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봐서도 이들을 능가할 노인 세대로 축복받은 국가가 없다. 이들의 마음은 호수요 바다이다. 피라미나 붕어나 미꾸라지가 몇 마리 사는 개울물이나 개구리가 오글오글 사는 우물이 아니다. 온갖 플랑크톤과 물고기뿐만 아니라 물개와 상어와 고래도 사는 바다이다. 맑은 물도 있고 흐린 물도 있고 맑음과 흐림이 섞인 물도 있다.

권력을 쥐고 매스컴을 잡으니, 세상이 돈짝 만하게 보이나 본데, 늙은 30대들이여, 젊은 60대를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스승으로 모시라. 그러면 머잖아 자다가도 떡이 생길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불과 몇 년 후에 입에 넣은 빵도 뱉어내고 도망가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200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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