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독에서는 동독을 새로 보자는 운동이 만만찮게 일어났다. 1961년 1월 1일부터 8월 12일까지 무려 16만 명의 동독인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자, 동독은 그 해 8월 13일부터 전격전(Blitzkrieg)을 펼치듯 베를린 장벽을 구축했다. 이로써 통일의 길은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에 따라 서독이 이전보다 더한 냉전적 사고에 의해 대대적인 반공 운동을 펼쳐야 마땅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동독을 전체주의적인 체제로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는지에 대해 반성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 운동은 크게 정치계와 학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는 이미 1962년에 동독의 존재를 포함한 기존 상황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는 동쪽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9년 수상이 되자 바로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구하게 된다. 그 사이에 동독 측에서 중요한 정책을 하나 내렸다. 그것은 1964년 11월 동독각료이사회에서 연금수령자(노인)는 4주간 서독을 방문할 수 있다고 결의한 일이다. 서독에서는 즉시 방문하는 이들 모두에게 100마르크씩 환영금을 주었다. 그 해에 바로 100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의 친인척과 상봉했다. 마침내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되어 1972년 10월에 양독 사이에 통행조약이 발효된 이후에는 매년 무려 1천만여 명이 동서독을 드나들었다.
남북 정상이 포옹한 이래 한국이 김정일을 비롯하여 북한의 노동당원 300만 명을 사실상 5년간 오롯이 먹여 살려 주는데도 기껏 100여 명의 가족 상봉 쇼나 몇 차례 벌이고는 민족화해 어쩌고저쩌고 하며 시대가 변했다고 TV가 호들갑을 떠는 남북한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한편 서독의 학계에서는, 통일 후 슈타지의 비밀문서에 의해 동독의 간첩으로 드러난 베를린자유대학의 페터 크리스티안 루츠 교수가 각광을 받았다. 그가 주장한 것이 바로 만년 시간강사 송두율이 조자룡의 헌 칼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양대 TV에서 마구 휘두르는 내재적 접근론이다. 루츠는 동독 연구에서 4개의 기본원칙을 내세웠다.
1. 진지하고도 신뢰할 만한 정보
2. 가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분석
3. 비교연구의 기초 확립
4. 정치적 결정의 脫이데올로기 및 합리화
자체 논리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60년대의 내재적 접근론과 70년대의 동방정책은 두 가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첫째는 이미 말한 베를린 장벽이다. 이제 엄연히 사실상의 두 국가로 존재한다. 누구든지 베를린 장벽을 넘어서면 가차 없이 동독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1962년 8월 17일의 비극처럼! 동독의 한 청년이 기관총 세례를 받아 철조망과 장벽 사이에서 중상을 입고 축 늘어져 있으면, 서독에서는 그저 긴 헝겊을 던지고 발을 동동 구를 수 있을 뿐이다. 동독 경비병은 한 시간 이상 폭포수처럼 피를 흘리는 자를 차갑게 쳐다보다가 들것도 없이 팔을 사정없이 잡아 당겨 질질 끌고 갈 뿐이다. 한 가닥 숨이 붙어 있든 붙어 있지 않든! 현실은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사실은 동독의 상황이었다. 의외로 동독은 만만찮았다. 사람이 절대 못 살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치가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서독보다 훨씬 철저하게 청산되었다. 배고픔은 완전히 해결했고 분배도 그런 대로 잘 이루어졌고 공업도 상당히 발달했다. 공산 국가 중에는 최고였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동독은 1964년부터 노인들은 1년에 100만 명이나 서독의 친척을 무려 한 달 동안 방문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나 정치계나 오로지 반공을 외치며 동독은 독재와 빈곤으로 지옥을 방불하게 한다고 거짓말해서는 오히려 서독 사람들에게 반발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동방정책의 정치는 성공했으나 내재적 접근론의 학문은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동서독 주민이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었다. 소련도 마찬가지지만, 공산주의 독재는 필연적으로 고인 물로서 썩게끔 운명 지어 있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기득권은 봉건시대의 기득권보다 더 공고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민중과 완전히 유리될 수밖에 없었다. 동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연히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져서 자동차 한 대를 사기 위해서는 출생 신고와 더불어 자동차 구입 신청을 해야 결혼할 무렵에 간신히 구닥다리 차를, 서독에서는 터키 노동자도 타지 않을 차를 간신히 구할까 말까 하는 식의 한심한 ‘사이코의 섬’으로 전락한 것이다. 체육과학과 약물의 발달로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무더기로 딸 뿐이었다.
동방정책에 의해서 민간인 교류가 1년에 1천만 명이 넘고 합법적으로 1년에 10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서독의 TV를 동독에서도 누구나 보게 되면서 이미 일찌감치 동서독 주민들은 동독에 사망 선고를 내렸던 것이다. 엄청난 숫자의 동독 간첩이 서독의 정부, 국회, 노조, 시민단체, 대학, 학계 등에 바이러스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내성이 생긴 건강한 민심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공산주의가 좋다고 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보다 이론에 죽고 관념에 살고 세계 어느 나라든 진보연하면 일단 점수를 따고 드는 학계에서는 여전히 내재적 접근론이 서독에서 제법 힘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거센 현실의 파도 앞에는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자연히 보수파가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대반격!
“체제내재적인 서술을 통해 보다 높은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 생각은 큰 잘못이다. 체제내재적인 기술은 무비판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며, 심지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과 가치관 속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 --디 차이트(1976)
1978년에는 정부의 은근한 협박과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성격의 ‘독일연구회’가 발족했다. 마침내 동독 측에서 보아 용도가 다한 루츠는 1979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졌는데 숲속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1960년대 북한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업도 제법 발달시켰을 때는 오히려 내재적 접근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송두율이 민주 운동하다가 독일로 쫓겨 간 해가 1967년이니까, 그 때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진보주의 운동이 뜨겁게 타올랐던 데다가 당시 서독에서 크게 유행하던 내재적 접근론이 제법 그럴 듯했기 때문에 한국의 열혈남아가 그 이론에 혹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자유는 없었지만 북한은 최소한 일제시대보다는 잘 살았기 때문이다. 자유를 빼면 한국보다 못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어도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남북은 낙원과 연옥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에 이르면 남북은 천국과 지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남북의 정치계와 학계는 정반대로 나아갔다. 소련과 동구가 무너지고 북한의 정권이 전제왕조답게 세습되고 북한 주민이 300만이나 굶어 죽고 30만이 거지와 노예로 만주 벌판을 떠도는데도 불구하고, 동독의 고정간첩이 퍼뜨렸지만 한 세대 전에 자멸한 내재적 접근론이 뒤늦게 세계 10대 경제강국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바야흐로 2000년대 들어 먹음직한 열매를 맺기 직전이다.
사대주의에 물든 한국의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은 독일의 일개 만년 시간강사를 하늘처럼 떠받든다. 20년 전에 독일의 한 숲속에 버려진 고물을, 내재적 접근론을 주워서 엄청난 학설인 양 떠벌이는 엿장수를 세계적인 석학이라며, 코드가 통하는 국가정보원의 수장마저 그가 김철수라는 가명의 북한 고위간부라고 증언하는데도 아랑곳없이 하늘같이 떠받든다.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법원에서 그를 감옥에 가두지 못하고 독일로 추방했지만, 2005년 서울의 한 신문이 그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면서 독일 말인지 한국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면 타고르의 시를 받아 적는 것처럼 감격에 겨워 이를 받아 적어서 버젓이 활자화하고 있다. 그러면 진보와 민족과 민주를 독점한 무리들이 이를 무슨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막의 물처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받아 마시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을 악용하여 민중을 뼛속까지 착취하다가 망한 나라에서 그 성리학 외에는 모든 것을 우수마발로 여기던 우물 안 개구리들과, 스스로 생각하기에 순수와 정통성으로 똘똘 뭉친 조선말의 위정척사파와 그들은 참 많이도 닮았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정말 재미있는 나라이다. 아니,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민초들에게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나라이다.
(200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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