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북한인권은 야누스의 두 얼굴


북한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NPT 탈퇴를 선언했다. 한국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국을 향해 핵 게임의 마우스를 쥐고 흔들었다. 530년 전통의 문민정부가 근 100여년 만에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군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한국은 더 이상 북한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바로 세계유일초강대국에게 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국제무대라곤 아마추어 대회에조차 얼굴을 내민 적이 없는 밴텀급 권투선수가 10년 무적의 프로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에게 도전의 흰 장갑을 던진 셈이다. 미국으로선 나뭇잎만한 흰 장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잘해야 본전이었지만, 북한으로선 최악의 경우에도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는 필승의 패였다. 수년 전부터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원조 물자가 끊어졌기 때문에, 야박한 그들로부터 연간 수출의 20배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의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는 상태라, 가만있으면 어차피 나라 자체가 망할 판이었으니까.

결과는 미국의 희망 섞인 합리성이 북한의 절박한 도박성에 무릎을 꿇었다. 식량이라든지, 공산권의 몰락이라든지, 한국의 압도적 경제력이라든지, 한국의 빛나는 민주화라든지, 어디를 둘러 봐도 북한이 경수로 완공까지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총 한 방 안 쏘고 북한이 말라 죽는 것을 생 비디오로 감상하려는 가학적 상상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제네바에서 북한에게 사탕 바른 독약을 한 아름 선물했다. 웬 걸 북한은 사탕만 싹 발라 먹고 유유히 독약은 한국에 넘기고 한국으로부터 기사회생하는 청심환을 잔뜩 챙겼다. 독약을 먹은 한국은 그 후 두 번이나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면서 상전인 북한이 멀리서 헛기침만 해도 미국을 향해 또는 일본을 향해 술 취한 쥐처럼 마구 덤벼든다.

2002년 미국이 이라크를 두드리기 직전, 북한은 이제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해 10월 ‘우린 농축 우라늄 계획이 있지롱!’하며 미국의 약을 올렸다. 이번엔 미국이 더 세게 나왔다. 당장 북한의 생명줄인 중유 공급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1년 후 중국이 이전에 보내던 것에 미국이 주던 것을 얹어 주기로 하자, 북한은 중국을 큰형님으로 깍듯이 모시기로 다짐하고 지하 밀실에서 피의 의식을 엄숙히 거행했다. 2004년 중국이 동북공정을 밝히자, 과연 북한은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국에 신경질을 부렸다. 한국도 우물우물 입안에서 중얼거리기만 할 뿐 중국에는 꼼짝도 못하고 만만한 미국을 향해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미운 일본을 향해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꼴도 보기 싫은 국내의 우익을 향해 독설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북한인권을 침략의 빌미로 삼지 말라!
--북한의 핵은 자위 수단일 뿐! 당장 적대 정책을 버리고 획기적 지원으로 장군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려라! 안 그러면 뉴욕 한복판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날릴 것이다! 핵이 무섭지도 않느냐! 9·11은 예고편일 뿐!
--독도는 우리 땅! 사죄하라! 북한과 당장 수교하라! 북한에 100억 달러를 바쳐라! 정신대와 징용에 대해 사죄하고 메구미는 대승적 차원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
--친일파 물러가라! 수구꼴통 뒈져라!

선군정치의 꽃이 장거리 미사일이요, 선군정치의 열매가 핵무기이다. 반면에 선군정치의 그림자가 기아요, 선군정치의 밑거름이 인권탄압이다. 경제와 군사 중에서 군사를 택한 것이 선군정치이다. 민생과 전쟁 중에 전쟁을 택한 것이 선군정치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돈 맛을 안 이래로 북한에 공짜로 들어오던 식량과 석유와 원료와 부품이 뚝 끊어지면서 북한의 2300만은 처절한 생존 투쟁에 들어섰다. 살아남는 방법은 권력과 후안무치밖에 없었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쥔 자로 인륜을 내팽개친 자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밑바닥 인생 또는 권력이 있더라도 양심적인 자들은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이라는 것은 사치였을 따름이다. 굳이 수용소에 가지 않더라도 나라 전체가 인권의 사각 지대로 변했다. 그 이전에도 인간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감시와 고발로 인권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1990년대 이후는 북한에서 인권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죽지 못해 환장한’ 짓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북한의 목표는 이판사판이 아니다. 북한의 목표는 인민군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조선 해방'! 조선의 문인관료처럼 말만 화려한 한국의 자칭 민주세력들은, 정부와 여당과 방송과 친여 시민단체와 진보연하는 자들은 전쟁이라면 사시나무 떨 듯 떨기 때문에 세계 10위의 한국 경제력과 세계 6위, 7위 수준의 한국 군사력은 북한의 대포 한 방이면 혼비백산 주저앉아 손이야 발이야 목숨만 살려 달라고 빌게 되어 있다. 단지 미국을 어떻게 쫓아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일본을 어떻게 엿 먹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국경만 개방하면 당장 모든 게 들통 나기 때문에 북한은 절대 개방하지 못한다. 금강산이니 개성공단이니 뇌물 받을 곳만 빠끔히 열어 놓되, 한국의 거지보다 마르고 꾀죄죄한 북한 주민은 누구도 거기에 얼씬하지 못하게 한다. 철저히 훈련받은 요원만, 문답표를 달달 외운 핵심 세력들만 몇 명 들락거리게 할 뿐이다.

북핵은 한국의 전쟁의지를 완전히 꺾기 위한 수단이다. 남의 집안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평화통일의 거룩한 민족적 쾌거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못하게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필승의 패이다.

북한의 인권탄압은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도 기어코 ‘남조선 해방’을 이룩할 선군정치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다. 따라서 전 세계가 규탄하고 미국과 일본이 법까지 만들어 협박해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집안일’일 따름이다. 자식을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생명을 준 부모의 마음에 달렸을 뿐이다. --이것이 유구한 조선의 전통이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이심전심으로 훤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자칭 민주민족세력들은 북핵과 북한인권에 대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궤변의 고속도로를 무한질주하는 것이다.

북핵과 북한인권, 그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면,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 진돗개처럼 악착같이!

(200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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