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한 중국의 통일]
중국은 비록 산악 지대가 적고 광활한 평야 지대가 뻗쳐 있어서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통일하기가 쉬웠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렇게 광대한 지역이 BC221년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와 5호16국 시대(AD220~589), 그리고 제2의 남북조 시대(송과 요, 금)를 제외하고는 이민족의 지배(원과 청)를 포함하여 기나긴 세월 통일 왕조를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개인 생각에 이것은 세계사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한참 위에 노니는 으뜸 불가사의가 아닐까 한다.
[만리장성의 의미]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만리장성을 쌓아 이민족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영원히 전쟁을 종식하려는 의도였다. 이 당시 만리장성을 북동쪽에 세웠다는 것은 그 쪽에 중국 사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강대한 세력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룰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것은 후에 중원의 대제국이 천둥같이 꾸짖었건만 눈 하나 깜박 않고 빤히 쳐다보다가 천둥이 제풀에 잦아질 즈음에 가볍게 코방귀를 날리던 고구려를, 수·당이 발끈하여 중원의 총력을 기울여, 벼락같이 연이어 침략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만약 수백 년 만에 탄생한 중원의 대제국을 위협할 강국이 존재했다면 언제라도 천자의 위엄이 한갓 허풍에 그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복 전쟁을 계속했을 것이란 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중원을 확보한 것으로 진시황은 만족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500년 간의 전쟁과 분열(BC770~221)을 종식하고 중원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온 것으로 그는 크게 만족했다고 본다.
[중국의 재통일(漢)과 삼국의 번영]
진시황의 사후 짧은 내전을 겪은 후 그 치세가 장장 400년간 지속됨으로써 중국의 정체성(identity)을 확보한 대제국 한(漢)이 건설되는데, 이 때 문무를 겸비한 한무제(재위 BC141~BC87)는 행정과 경제를 쇄신하고 활발한 정복 전쟁을 일으킨다. 16차에 걸친 대대적인 원정에도 불구하고 끝내 흉노족을 굴복시키진 못했지만, 한의 강역은 동서남북으로 한껏 넓혀진다. 이 때의 강역이 중국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중원은 397만㎢로 현재 중국의 40% 정도) 이 때 벼락을 맞은 곳이 요하 근방의 고조선이었다. 1년간의 전쟁 끝에 BC108년에 고조선이 멸망한 것이다.
한사군이 한반도까지 진출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으나, 이 때 우랄-알타이어를 쓰는 고조선의 종족이 차이나-티베트어를 쓰는 한의 종족에게 쫓기어 북쪽으로 동쪽으로 남쪽으로 흩어지면서 작은 나라를 세웠던 듯하다. 부여, 동예, 옥저, 마한, 진한, 변한 등이 이 때 서서히 커지지 않았나 한다.
한이 그 수명을 다하고 중국이 내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요동, 요서, 만주, 한반도의 중소 왕국들은 그 힘이 부쩍 부쩍 커지기 시작한다. AD180년경부터 중원의 한은 이미 그 수명을 다하고 수많은 독립국들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 혼란 상황은 아주 길어서 이전의 통일의 시대와 그 기간이 거의 같았다. 바로 위진남북조, 5호16국 시대로 그 분열 상태가 무려 400년간 지속된다. 이 기간에 중원의 인구는 오히려 줄어 들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AD2년 전한 말기의 인구가 6천만이었지만, AD606년 수의 인구가 4천6백만이다. 한나라의 인구는 당의 전성기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만리장성 동쪽은 이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삼국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침내 AD589년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을 때, 거의 이 대제국과 자웅을 겨룰 만한 나라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고구려였다. 중국의 분열은 결과적으로 한민족의 발전을 방조한 셈이다.
[수·당과 고구려의 70년 세계대전]
수·당과 고구려는 장장 70년에 걸쳐(AD598~668) 대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건 그 어떤 전쟁보다 치열했던 세계대전이었다. 중국의 한족이 이 때보다 창칼이 예리했던 적은 없고 동북아의 조선족도 이 때보다 화살이 빠르고 방패가 튼튼했던 적은 없다. 건곤일척의 전쟁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 되풀이했다.
그 후유증으로 400년 만의 최강국, 삼국 시대의 위·오·촉을 다 합한 것보다 팔뚝이 굵었던 수가 망했다. 그 황제는 실성을 해서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황음을 일삼다가 암살 당했다. 중원은 다시 내란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중국사 4000년이 배출한 MVP 군주 당태종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태양같이 군림한다.
이 당 태종마저, 돌궐족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가 후에 힘을 비축해 그 돌궐족을 초토화시켰던 이 당 태종 이세민마저 고구려에겐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만사에 의욕을 상실하고 화병으로 끙끙거리다가 '절대 고구려와 맞대결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친정(親征) 후 4년 만에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나이인 52세에 죽는다(AD649).
[당의 태종 이세민과 신라의 태종 김춘추]
역시 당 태종은 '스스로를 아는' 영명한 군주였다. --중국의 한족은 고구려와의 70년 전쟁 이후 원군(임진왜란과 6·25동란 때)으로서가 아닌 한, 두 번 다시 압록강을 넘지 않는다.-- 당 태종은 직접 침략 작전에서 간접 침략 작전으로 바꾼다(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이세민은 고구려와 맞붙기 전에는 신라의 애걸을 '외교의 ABC'도 모른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AD643), 김춘추가 사촌의 나라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급변하는 '뭍의 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 '용왕' 연개소문에게 도리어 '간'을 바칠 위기에 처했지만 '토끼의 지혜'를 발휘하여 간신히 탈출한 후(AD642) 여·당 전쟁에서 당이 대패하는 걸 보고(AD645) 직접 목숨을 걸고 고구려 수군이 눈을 부라리고 지키는 험한 바다를 건너오자, 버선발로 달려가 환영했다(AD648).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직접 대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가서 수 양제도 공략하지 못했던 천하제일의 요새 요동성을 무너뜨리고 기고만장하다가 그만 안시성에서 양만춘에게 대패하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돌아온 당태종! 그 후 고금제일의 군사 천재를 자부하던 당 태종은 고구려만 생각하면 아름다운 여자도 현명한 신하도 멋진 천리마도 다 꼴 보기 싫던 차, 김춘추를 보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 때 밥을 두 그릇 먹었을 것이다.
고구려를 도모할 묘책이 떠올랐던 것이다. 신라라는 나라는 너무 작아서 중국의 한 마을 같아 보였지만, 이를 잘 활용하여 맥이 빠질 정도로 긴긴 시간에 걸쳐 주력부대가 요동에 있는 고구려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다 보면, 그 생산력이, 그 경제가, 그 부가 중원에 도저히 비교되지 않는 만주의 천하제일고수 고구려를 서서히 굶겨 죽이고, 이어 귀여운 신라·백제는 첩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환상을 품고 김춘추를 극진히 모셨다. 외모부터 비범하다고 극구 칭찬을 했다. (어떤 기록에는 김춘추의 외모가 아주 보잘것없었다고 나온다.)
신라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구세주를 만난 셈이고 당은 밑져도 본전이라는 장삿속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어부지리(漁父之利)의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으로 어수선한 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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