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측의 일부 변호인들은 여전히 1980년대 학생운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재벌과 노동자, 독재와 민주의 구도로 사회를 규정하고 있었다.
11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대한 최종 변론이 열렸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통진당 해산을 촉구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통진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재판정에 들어서자 재판관들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사건 기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17만쪽 분량이라고 한다. 마지막 변론이어서 그런지 사진 기자들도 여느 재판 때보다 많았고, 방청석도 가득찼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서 제18차 변론을 마침으로써 이 사건의 변론절차는 모두 종결됐다. 헌재는 최종 선고 기일은 추후에 지정한다고 밝혔다.
최후 변론에서는 정부 측 대리인 5명, 통진당 측에서는 모두 8명이 나서서 법정 공방을 펼쳤다. 양측 변호인단이 사용한 시간은 각 2시간, 2시에 시작된 재판은 6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날 변론의 쟁점은 통진당 목적(당의 강령)의 위험성, 통진당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의 위헌성, 통진당 활동의 위헌성, RO 사건과 통진당의 관련성 등이었다.
정부 측은 “통진당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폭력혁명을 목적으로 활동해온 민혁당의 잔존세력들이 당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악하고, 정당의 목적과 활동에 있어 민주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반헌법적 세력”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이에 반해 통진당 측은 “통진당이 북한의 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통진당은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일뿐”이라고 맞섰다. 이들 변호인은 “통진당 해산 심판 자체가 정치적인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반민주적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최대 관심은 정부 측 대표자로 나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최후 변론에 쏠렸다. 특히 이정희 대표는 동영상을 통해 통진당이 종북(從北)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 장애인을 대변하는 소수정당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도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필자의 시각에서 이날 재판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통진당 변호인들이 헌법재판소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며 헌법재판관들을 ‘은근하게 압박’하는 변론 전술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들 변호인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 자체를 ‘민주 대 반민주’ 세력의 대결 구도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역할을 분담한 것 같았다.
통진당 측 변호인 "해산 청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통진당 측의 이광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5ㆍ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라며 “9차 헌법은 헌법의 본질을 훼손한 폭압 정권인 박정희ㆍ전두환 체제를 지양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과 6월 항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9차 헌법에 의해 재구성된 청구인(정부측 공무원)들이 과거의 악령으로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전영식 변호사(이하 변호인은 모두 통진당 측)는 “2014년 오늘 우리는 두 번의 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이라는 폭력에 의한 헌법파괴를 이겨내고 헌법재판이라는 형식으로 민주주의의 미래를 재판하고 있다”며 “오늘의 헌법을 만든 힘은 시민사회의 힘이었지, 법조인들의 힘이 아니었다. 이 역사의 힘을 존중해 달라”는 말로 최후 변론을 마쳤다.
이재화 변호사는 “통신당 소속 사람들은 폭력혁명주의자가 아니다. 단지 김영환처럼 20대의 순수한 정열마저 버리고 전향한 것이 아니라, 20대 때 추구해온 가치를 간직한 채 시대에 맞게 그 이상을 선거를 통해 실현하겠다고 진화한 것”이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의 동일성 여부로 위헌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수치이며, 결과적으로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을 불온시하는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해야 할, 우리 헌법이 적대시 하고 있는 전체주의 바로 그것”이라고 변론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현재 통진당 해산 재판은 1980년대 이념 논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1987년 선거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국정원 선거개입 등을 보면 과연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중이 한 번도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민주주의의 현실”이라며 “국민이 진실로 주인 대접받는 민주주의를 추구한 통진당에 대한 정부가 해산 청구를 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4시간 반에 이르는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통진당 측의 일부 변호인들은 여전히 1980년대 학생운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재벌과 노동자, 독재와 민주의 구도로 사회를 규정하고 있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고, 그들은 법정에서 그 어떤 발언도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 할 수가 있었다. 한 재판에 이처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도 결국 민주적 절차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주어진 자유 때문에 공동체의 안녕과 자유가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그 안전장치는 어떤 행위의 반작용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언제나 대응이 한발 늦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그 자체가 전제주의나 독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북한은 지난 70년간 한 순간도 대남혁명전략을 포기하거나 바꾸어 본 적이 없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합법과 비합법적인 모든 전략을 동원해 왔다. 최근 그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가 바로 남한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자신들이 길러낸 혁명의 전위대를 심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과 약점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진당이 바로 북한 혁명 전략의 전위 조직으로 보고 해산을 청구한 것이며, 통진당은 자신들은 북한과 상관없는 정당이라며 반발하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 9명의 손에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과연 이번에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때처럼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11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대한 최종 변론이 열렸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통진당 해산을 촉구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통진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재판정에 들어서자 재판관들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사건 기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17만쪽 분량이라고 한다. 마지막 변론이어서 그런지 사진 기자들도 여느 재판 때보다 많았고, 방청석도 가득찼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서 제18차 변론을 마침으로써 이 사건의 변론절차는 모두 종결됐다. 헌재는 최종 선고 기일은 추후에 지정한다고 밝혔다.
최후 변론에서는 정부 측 대리인 5명, 통진당 측에서는 모두 8명이 나서서 법정 공방을 펼쳤다. 양측 변호인단이 사용한 시간은 각 2시간, 2시에 시작된 재판은 6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날 변론의 쟁점은 통진당 목적(당의 강령)의 위험성, 통진당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의 위헌성, 통진당 활동의 위헌성, RO 사건과 통진당의 관련성 등이었다.
정부 측은 “통진당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폭력혁명을 목적으로 활동해온 민혁당의 잔존세력들이 당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악하고, 정당의 목적과 활동에 있어 민주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반헌법적 세력”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이에 반해 통진당 측은 “통진당이 북한의 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통진당은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일뿐”이라고 맞섰다. 이들 변호인은 “통진당 해산 심판 자체가 정치적인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반민주적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최대 관심은 정부 측 대표자로 나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최후 변론에 쏠렸다. 특히 이정희 대표는 동영상을 통해 통진당이 종북(從北)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 장애인을 대변하는 소수정당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도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필자의 시각에서 이날 재판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통진당 변호인들이 헌법재판소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며 헌법재판관들을 ‘은근하게 압박’하는 변론 전술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들 변호인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 자체를 ‘민주 대 반민주’ 세력의 대결 구도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역할을 분담한 것 같았다.
통진당 측 변호인 "해산 청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통진당 측의 이광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5ㆍ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라며 “9차 헌법은 헌법의 본질을 훼손한 폭압 정권인 박정희ㆍ전두환 체제를 지양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과 6월 항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9차 헌법에 의해 재구성된 청구인(정부측 공무원)들이 과거의 악령으로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전영식 변호사(이하 변호인은 모두 통진당 측)는 “2014년 오늘 우리는 두 번의 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이라는 폭력에 의한 헌법파괴를 이겨내고 헌법재판이라는 형식으로 민주주의의 미래를 재판하고 있다”며 “오늘의 헌법을 만든 힘은 시민사회의 힘이었지, 법조인들의 힘이 아니었다. 이 역사의 힘을 존중해 달라”는 말로 최후 변론을 마쳤다.
이재화 변호사는 “통신당 소속 사람들은 폭력혁명주의자가 아니다. 단지 김영환처럼 20대의 순수한 정열마저 버리고 전향한 것이 아니라, 20대 때 추구해온 가치를 간직한 채 시대에 맞게 그 이상을 선거를 통해 실현하겠다고 진화한 것”이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의 동일성 여부로 위헌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수치이며, 결과적으로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을 불온시하는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해야 할, 우리 헌법이 적대시 하고 있는 전체주의 바로 그것”이라고 변론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현재 통진당 해산 재판은 1980년대 이념 논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1987년 선거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국정원 선거개입 등을 보면 과연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중이 한 번도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민주주의의 현실”이라며 “국민이 진실로 주인 대접받는 민주주의를 추구한 통진당에 대한 정부가 해산 청구를 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4시간 반에 이르는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통진당 측의 일부 변호인들은 여전히 1980년대 학생운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재벌과 노동자, 독재와 민주의 구도로 사회를 규정하고 있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고, 그들은 법정에서 그 어떤 발언도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 할 수가 있었다. 한 재판에 이처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도 결국 민주적 절차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주어진 자유 때문에 공동체의 안녕과 자유가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그 안전장치는 어떤 행위의 반작용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언제나 대응이 한발 늦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그 자체가 전제주의나 독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북한은 지난 70년간 한 순간도 대남혁명전략을 포기하거나 바꾸어 본 적이 없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합법과 비합법적인 모든 전략을 동원해 왔다. 최근 그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가 바로 남한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자신들이 길러낸 혁명의 전위대를 심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과 약점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진당이 바로 북한 혁명 전략의 전위 조직으로 보고 해산을 청구한 것이며, 통진당은 자신들은 북한과 상관없는 정당이라며 반발하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 9명의 손에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과연 이번에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때처럼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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