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과 구조 全과정 복원: 이 글을 읽고도 해경을 욕하는 冷血漢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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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시56분22초)"아니, 구명조끼를 왜 꺼내? 미친…우리 뒤지기 싫어요"

객실에 남은 학생들의 불안

세월호가 급선회를 하며 좌현으로 기울어지던 08시48분부터 해경의 구조 헬기와 P123정이 도착하던 09시30분까지 42분간 船體(선체) 안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08시48분 당시의 증언에 따르면 객실 안은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건 사람이건 모조리 왼편으로 휩쓸렸다고 한다. 3층 복도에서는 자판기가 쓰러졌고 4층 객실에서는 벽걸이 TV가, 5층 라운지에서는 소파가 사람들과 함께 뒹굴면서 일제히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생존자 전영문(61) 씨는 학생들이 “엄마!”, “아빠!”를 찾는 비명을 질렀다고 기억한다. 순간적인 소동으로 인해 승객들 가운데는 자판기에 깔려 골절상을 입거나 가구가 쓰러지면서 부딪혀 입술이나 머리가 찢겨져 피가 나기도 했고, 아침 식사 중이던 식당에서는 끓는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화상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객실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이 모든 소동을 보지 못한 채 불안감을 즐거움으로 바꾸려 애쓰고 있었다. 325명의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났지만 이들의 인솔 책임을 맡은 교사 14명은 위기상황을 맞아 학생들을 인솔하며 비상사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수학여행의 인솔 실패인 셈이다. 45도 이상으로 기울어져 엉망으로 변해가는 선실 내에서 인솔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겁에 질려 있었고 몇몇 교사들만이 겨우 학생들의 안부를 물으며 안심시키는 수준이었다. 船上(선상) 안전교육을 인솔 교사들도 받지 않았으니 그들로서도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08시58분에 교감 강민규씨가 교사들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는 방송 내용을 따른 듯 ‘움직이지 마시고’라는 지시가 포함돼 있다. 잘못된 안내 방송을 인솔 교사들이 증폭, 확산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학생들은 안내방송을 따라 하는 교사들에게 의지할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듯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기네들끼리 애써 떠들었다.

그 배의 유일한 인솔자는 세월호 계약직 여승무원인 스물두 살의 박지영 양뿐인 듯했다. 그녀는 10시10분이 지나도록 계속 방송을 했다.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여객선 세월호를 유원지의 작은 배로 인식한 듯 무조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어 달라”고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476명의 승객 가운데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할 기회를 놓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294명이나 됐다(탈출 과정에서 사망한 단원고 정차웅 군 포함-注).

09시30분경 해경의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船室(선실)의 476명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었을까. 단원고 2학년 故 박수현군이 남긴 동영상에는 같은 방을 쓰던 여러 친구들과의 대화와 함께 불안을 감추려 애쓰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시간대별 세월호의 기울기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발표에 따른 것-注)

야, 팔 후들거려. 야, 더 기울어져. 더 기울어진다고?

08시52분 : 세월호는 30도로 기울고 있었다.

<동영상>

아, 기울어졌어.
야, 나 좀 살려줘.(웃음)
08시52분32초<안내 방송>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우려 사고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 중>

<동영상>

진짜 침수되는 거 아니야?
떨리는 거 장난 아니야.
…잡을 수 없어.
못 움직여.
내 핸드폰.
씨발. 말도 안 돼.
아. 내리고 싶어. 씨바 진짜 진심이야.
야, 나도 찍어줄래?
미친놈.
야, 어때, 상황이?
아, 씨발. ㅎㅎㅎ
안 돼.
야, 왜 나갔냐?
야, 이거 야, 이거 봐봐.
들어와.ㅎㅎㅎ
더는 안 내려가지 그래도?
야, 더 쏠리는데?
쏠림 장난 아니야. 그냥 힘 빼면 이쪽으로 가.
ㅎㅎㅎ힘 좀 줘.


잠깐만, 잠깐만.
들어가.
사다리.
다 떨어져 가지고…
조용히! 조용히!

08시53분28초<안내방송>

현재 자리에서 이동하지 마시고 안전 우려 사고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영상>

야, 방문 문 열어.
안에서만 열 수 있어.

내가 그랬잖아. 아까 그것 때문에 존나게 힘들었다고.

밖에서 못 열어. 아예.
아! 뭐야! 빨리 구하라고! 아…
신난다.
야, 여기 만약에…
야, 나 진짜 죽는 거 아냐? ㅎㅎ
창가 밖이었으면 우리 죽었어. 씨발.
야, 이거 존나 흔하지 않은 일 아냐?
씨발, 당연하지, 나… 살 때도 이따위는 아니었어.(웃음)
야, 나도.

이따위는 아니었어.
야, 팔 후들거려.
야, 더 기울어져.
더 기울어진다고?
어.
장난하나?
살짝만…
야, 나 신발 좀 올려주라. (주변 웃음소리 뒤섞인 소란스러움)
나 신발 다 여기다 버렸는데.
미친 새끼야 뭐해.
위급상황이 아냐, 이게 실제라고.
야, 누가 구명조끼 좀 꺼내 와라.

아, 뭘 꺼내.
아, 씨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잖아. 이건 실제야.
야, 이것 좀…달라고.
야, 혹시 모르니까 꺼내놔.
꺼내놔야 될 것 같아.
아. 이거 존나 웃긴다.

안 돼. 안 돼.
야! 못 가.
카메라! 카메라!
이 카메라로 잘 이게 안 찍혀.

아, 이상한 냄새 나. 가스분출된 거 아냐?

(소란)

야, 살려줘…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갖고 있어.

아니야. 아니야.
난 됐어. 난 됐어.

08시54분40초<안내 방송>

다시 한 번 승객 여러분들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손님이 계시는 위치에서…

08시55분48초<동영상>

수학여행 클라아쓰.
수현!
나는 괜찮으니까.
수학여행 클라아쓰-. 하하하

아, 안정되고 있다.
안정되고 있어?
어.
아니야.
어. 점점 왼쪽으로 가고 있어.
아까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아.

어.

08시56분10초<동영상>

아, 이상한 냄새 나.
가스분출된 거 아냐?

<안내 방송>

승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선내에 계신 분들은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이나…

나 진짜 내려가고 싶어졌어.여기 무섭거든

08시56분22초<동영상>

야, 이거 뉴스에 뜨는 거 아냐?
야, 희범아 같이 있자.
아-
삶은 달걀 냄새나.
…삶은 달걀 냄새 나.
적응! 적응 완료!
아-, 씨발.
야, 나 받아줄 수 있냐? 떨어져도?

아이, 떨어지지 말라니까.
나 진짜 내려가고 싶어졌어. 여기 무섭거든.
나는 내려가지 않는 걸 추천할게.
진짜.
들고 있어 봐. 너도 들고 있고, 바닥에 놔.
아냐, 내가 갖고 있을게.
아니, 구명조끼를 왜 꺼내? 미친.
우리 뒤지기 싫어요. 뒤지기 싫어요.

엄마한테 전화해 볼까? 엄마가 마지막일 수…


08시56분55초<동영상>

넌 죽어도 난 죽기 싫다.
현아.
울었어?
아니, 아니.
지금 이 상황은. 지금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나 핸드폰 어디…
페이스북에 올리면 정말 재미있겠다.


아빠, 아- 나 죽기 싫어.
야, 물들어 오면 존나 재밌겠다.

(모두 웃음)

아, 진짜 물 들어오면 진짜 우리 나가야 돼.
엄마한테 전화해 볼까? 엄마가 마지막일 수…

08시57분20초<안내 방송>

현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매우 강조함)

08시57분29초<동영상>

절대 움직이지 말래.
마지막이야. 나 지금 기울어진 거 보이지? 아, 모르겠구나.
고마워.
진짜, 그런데 갑판 위에 있던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니까.
유리 깨져서 다 떨어진 거 아니야?
그리고 아까 전에 갑판에서. 갑판에 창문도 없잖아.
1층?
그러니까 더 위험하다는 거지.
현재 보시는 거는.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해봐!
현재 보시는 거는…

08시57분58초<안내 방송>

단원고 학생 여러분 및 승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2층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명조끼 입으라는 것은 침몰되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08시58분02초<동영상>

현재 지금은 배가 기울어졌습니다. 전 토할 것 같고요.

(계속 방송 중)

나 지금 다리 후들거리고 속도 안 좋아졌어.
저기서 태평하게 핸드폰 만지고 있는 한국인 옆에 있어.

08시 58분 26초<안내방송>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구명동의가 착용 가능하신 승객들께서는 구명동의를 착용해 주시고…이동하지 말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명동 착용 최초 방송)

08시58분35초<동영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구명조끼 입으라는 것은 침몰되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아, 진짜 바다로 뛰어들 것 같애.
아, 실제 상황이야
만지지 마.
안 잡아. 안 잡아.
어?
안 잡고 있어. 지금. 닿기만 하고 있어.
아니 잡지 마. 거기.
잡다가 떨어질 수도 있어.
야, 이 상황에서 폰질 중이야. 우리. (헤헤헤)
패기의 한국인이다. 우리는.
와!
수현아. 마지막.
씨발, 진짜 패기 보소.
나도.
우리 이렇게 바다로 헤엄쳐서 이렇게 될 거야.
들어가자.
왜 니가 들고 있어? 나 이제 토할 것 같거든.


08시59분07초<안내방송>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구명동의가 착용을 다 하신 승객께서는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아, 실제상황이야. 구명조끼 더 줘

08시59분22초<동영상>

…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 이렇게 죽는구나.
왜? 안 입었잖아?
응.
야, 여기 진우혁? 또 누구냐? 한정무 또 누구 없냐?

08시59분44초<동영상>

일정 그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12시에 간다더니.
아니.
어.
더워-

08시59분58초<동영상>

야, 애기까지 있어.


애기까지 있어. 미치겠다.


구명조끼, 너 있어?
아, 실제상황이야.


구명조끼 더 줘.
평소에 안 보이던 간절함이 여기서 다 본다.
아…
네 뒤에 쪽에도 없어?
예. 없어요.
다 떨어졌어?
어, 어지러워? (아이 소리 들림)
여자 방에 누가…
센서 어딨어?

<09시03분30초. 고 박수현군 동영상 종료>

[2] 09시17분: 故 김 모씨 카톡-“바다가 창문 앞쪽에 있어”

08시58분. 목포 海警(해경) 사고 소식 전파

목포 海警(해경) 상황실은 08시58분에 통화를 마친 최덕하군의 신고전화를 근거로 즉시 사고 소식과 출동 명령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어서 故 박수현군의 동영상 촬영이 끝난 지 1분 뒤인 09시04분30초에는 P 123정에 출동 명령을 하달한다.

09: 04: 30 <지휘부 교신>
목포 상황실 : 모든 국. 모든 국.
여기는 목포 타워. 여기는 목포 타워.
현 시각 전남 관매산 남동 2.7마일. 2.7마일에서 여객선. 여객선. 침몰 중. 침몰 중.
모든 선박은 그 쪽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목포타워. 수신 여부.

09:04:50
P123정 : 여기 P123. 수신완료.

P 123정은 약 25분뒤 현장에 도착해 한 시간여 동안 172명의 생존자 중 45%인 79명을 구조해 낼 수 있었다. P정과 각종 선박의 동원령보다 앞서 해경의 潛水(잠수) 구조세력에게 출동명령이 먼저 하달됐다. 09시 정각을 기준으로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의 122구조대(09시00분), 서해청 소속의 해경 특공대(09시03분), 남해청 소속의 특수구조단(09시20분)에 긴급 출동 지시를 내렸다. 각기 임무별 특성이 다른 이들은 공통적으로 수상 인명 구조와 스쿠버 장비를 이용한 좌초 선박 내 인명 구조 능력을 갖춘 해양 구조세력이었다.

서해청 특공대 7명은 차량으로 출발해(09시35분), 목포항 전용부두에 도착(09시50분)한다. 이곳에서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이들이 다시 차량으로 서해청 헬기장에 도착한 때가 10시25분. 여기서 헬기를 이용해 서거차도에 도착한 때가 10시45분. 이곳에서 어선을 이용해 세월호 침몰 지점 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15분. 출동 명령을 접수한 지 2시간 12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서해청 특공대는 세 구조대 중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잠수 구조용 선박도 없었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볼 수 없었다.

해경의 特救團(특구단)은 형식적으로만 운용

목포 해경서의 122 구조대는 2011년 항공 구조대가 편성되면서 헬기를 이용한 항공 구조 임무를 이관했다. 현재의 122 구조대는 헬기도 자체 편재에서 사라졌다. 122 구조대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短艇(단정)과 경비정 그리고 차량만 있었다. 이날 122 구조대 10명의 대원들은 안개로 출항이 어렵게 되자 차량을 이용해 75km의 거리를 약 1시간 만에 주파한 다음 진도 팽목항에서 어선을 잡아타고 세월호에 도착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14분으로 출동 명령 접수 후 3시간 14분만이었다. 안개로 인해 단정이나 선박으로 이동할 경우보다 더 빨리 도착한 것이다. 사고 후 감사원과 검찰이 이들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했으나 그 어떤 실책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5월19일, 朴槿惠 대통령은 “해경이 구조에 실패했다”면서 해경 해체를 선언한다. 다시 8일 뒤인 5월27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海警의 122 구조대가 사고 직후인 9시에 출동명령을 받았는데도 헬기가 없어 신고 후 2시간20분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며 해경 해체 이유를 밝혔으나 대통령이 든 사례가 사실과 완전히 달랐다. 이로써 대통령은 엉터리 정보를 근거로 해양주권 수호기관인 해경을 해체했다는 지울수 없는 증거를 남기게 된다.

한편, 남해청 소속의 특수구조단(特救團)은 국가단위의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우선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구조대로, 소방청의 중앙119 특수구조단과 유사한 성격으로 편성된 구조대이다. 소방청은 각 道(도)마다 이같은 복합재난에 대비한 특수구조단을 운용해 오고 있는데 해경은 이를 모델로 2012년에 창설했다. 그러나 해경의 特救團(특구단)은 전국 규모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1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남해청에서만 운용 중이었다. 해경의 122 구조대나 특공대의 인명 구조가 水中(수중)과 수상구조에 국한되지만 해경 특수구조단은 항공, 연안, 심해, 선박, 화재 등의 다양한 재난 사고가 해상에서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포괄적인 인명 구조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특히 再(재)호흡기를 이용한 장시간 잠수, 40m 이상 大深度(대심도) 잠수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장(김석균)이 예산과 조직을 담당하는 기획조정관으로 근무하던 2011년 당시 이 조직을 설치하면서 자체 항공세력도 마련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규모로만 특구단을 구성했다는 해경 내부의 비판이 있다.

이런 해경 특구단에도 헬기가 편재에 없었다. 09시20분에 출동 명령을 하달받고 차량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한 뒤 (10:30) 고정익 항공기를 이용해 11시10분에 이륙한 후 12시경 목포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이 목포 공항에서 여수 해경청 헬기에 탑승한 시각은 13시. 사고 해역의 1508함의 갑판에 착륙한 시간이 13시30분이었다. 4시간 10분만에 도착한 이들도 각자 스쿠버 탱크 하나씩만 맨 상태였다.

서해청 특공대, 122구조대, 남해청 특구단 등 잠수 구조세력은 배가 물 속으로 들어간 뒤 한 시간쯤 지나서부터 도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에게 생존자 구조의 기회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09시30분 해경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구조 대기

08시 58분 이후 P123정을 비롯한 인근 해역의 모든 선박들이 세월호가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고 해역으로 船首(선수)를 돌리고 있었다. 이후 구조 선박과 헬기가 도착하던 09시30분 무렵까지 선실 내부는 짧은 영상들과 카톡 메시지 등이 간간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구조세력이 도착할 때까지 영상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따라가 보자.

08시52분
세월호는 30도로 기울고 있었다. (검경 합수부 발표)

08시 56분
故 김시연 동영상 -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좀 있었는데 죽었다고. 나간 사람들은 살고.'

학생 박 모군 카톡 - '엄마아빠...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요. 보고 싶어요 ㅠㅠ'

08시58분
강민규 교감 카톡 - “침착하세요. 방송에 귀를 주목하고 학생들에게도 침착하라고 독려 문자 부탁, 움직이지 마시고.”

故 박수현 동영상 - '진짜 물들어오면 우리 진짜 나가야 돼.'

故 김 모씨 카톡 - '계속 가만 있으래'

09시00분경
구조된 한 승객은 SBS 뉴스를 통해 이런 증언을 남겼다.

“가만 계시라고 움직이면 더 다치신다고 그리고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나서 옆의 분들 도와 달라 이런 방송이 계속 나왔어요.”

출장길에 산타모를 적재한 채 이 배에 승선했던 김성묵씨는 3층 船尾(선미)쪽 객실에서 배가 기울어진 각도를 재고 있었다. 스마트 폰으로 재보니 45도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그는 안내 방송을 따라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얘들아. 진짜 장난 아니니까, 잘 들어. 단원고 다 뒤질지도 모른다”

09시01분
단원고 교감 카톡 - “기다려야 할 듯. 선생님들은 카톡 통해 학생들 확인해 달라”

09시 02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진짜, 죽는다고. 배가 뒤집어졌어.”

09시04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지금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구명조끼 입고 있고, 컨테이너 박스 다 떨어졌어.”

09시10분:“얘들아. 진짜 사랑하고 나는 마지막 동영상 찍었어”

09시05분
단원고 연극부 단체 카톡으로 故 김 모양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우리 진짜 죽을 것 같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

09시 07분
단원고 2학년4반 담임교사의 단체 카톡 - “지금 상황 어때?”

09시09분
故 박수현군 동영상 - “선생님도 괜찮은 건가?”

09시10분
어느 학생의 카톡 메시지가 발송됐다.
“다들 사랑해. 진짜 사랑해. 얘들아. 진짜 사랑하고 나는 마지막 동영상 찍었어.”

09시11분
기울어진 선실 내부의 모습이 약 30초간 촬영됐다. 음성은 녹화되지 않았다.

09시12분
故 최 모씨 카톡 - “컨테이너 다 떨궈졌다”

09시13분경
이 시각, 조타실에서는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 승객의 촬영 동영상- 40도 이상 기울어진 船室(선실) 모습이 영상이 잡힌다.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갑판의 객실 외벽에 기댄 채 나란히 서 있고 대부분이 전화로 현재 상황을 알리고 있다. 한 승객은 아예 바닥을 벽면으로 삼아 기댄 채 흐린 하늘과 바다를 보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승객들의 음성도 더러 녹음됐다.

“불난 것보다 더해요, 더해.”
“이거 30분 후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배 타는 학생들이나 전부 다 제대로 있나 모르겠다는 거야?”

이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안내 방송>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 움직이지 마세요.”

이 무렵 3층 안내데스크 옆에서 머물던 승객 최재영씨는 박지영 양에게 조타실로 문의해 보라고 채근했다.

“헬기 오기 전까지도 무전을 몇 번 했으니까요. 제가 지영이보고 그랬거든요. 분명히 선장실에 무전을 해서 어떻게 해야 되냐, 보트라도 띄워서 탈출해야 돼냐…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 물어봐라…사무장도 옆에서 무전기로 불렀는데 조타실에서 답이 없었어요.”

담임교사 2-4반 단체 카톡 -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조끼 입을 수 있음 입고'

09시20분:“지금 애들이랑 물건들이랑 다 밑으로 쏠려서, 아 존나 무섭다'

09시13분29초
승객이 선실 바깥의 기울어진 모습을 촬영했다. 안내방송도 동시에 녹음됐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외부의 갑판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배는 계속 기울어져 가는데 방송은 자리를 지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승객 대부분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빈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09시15분
선실 대기 안내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다.

09시16분
같은 시각, 단원고 교감이 교장에게 카톡으로 상황 보고-“배가 15도 기운 상태로 정지”

09시25분38초 학생 카톡-“이제 해경 왔대”

09시17분
故 김 모씨 카톡-“바다가 창문 앞쪽에 있어”

09시19분01초
YTN의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방송을 탔다.

<뉴스 속보 - 진도 부근 해상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신고>

09시20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지금 애들이랑 물건들이랑 다 밑으로 쏠려서, 아 존나 무섭다. 배에 있던 화물들 바다로 다 떨어지고 난리남”

09시21분
세월호는 45도로 기울고 있었다.
생존자 김 모씨 카톡-“방에 서 있던 애들 누워 있던 애들 진짜 다 날라왔어. 미친 지금 전기도 다 나감”

09시23분
세월호는 52.2도로 기울고 있었다.
3분 사이에 7.2도나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다.

故 김 모씨 카톡-“형, 배가 뭔가에 부딪혀서, 배가 안 움직이고 수상구조대인가 뭔가 오고 있대”

09시24분경
생존자 최재경씨-“방송을 또 한 번 하더라고요. 헬기가 지금 왔다고. 곧 구조선이 오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생존자 김 모씨 카톡-“꼭 기어 할꺼에요. 진짜 살아서 감^^”

故 김 모씨 카톡-“막 컨테이너 떨어지고, 방안 기울기가 45도야”

09시 25분
故 김 모씨 카톡-“데이터도 잘 안터져. 근데 지금 막 해경 왔대”(카톡 네임 웅기)

09시25분38초
학생 카톡-“이제 해경 왔대.”
“지금 속보 떴어. 아마 우린 듯.”

(09시28분44초)생존자 신 모씨 카톡-“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09시26분
이 무렵 승객 김성묵(37)씨는 더 이상 船室(선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양 손을 뻗어 잡을 곳을 찾아가며 3층에서 4층 베란다 쪽으로 올라갔다. 학생들이 3층과 4층 홀에 많이 있었지만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배가 너무 기울어져 붙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원 같은 사람들이 5층으로 기울어진 계단을 붙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 김성묵씨는 자신이 주변의 학생들을 도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머문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고 다음날 그는 CBS 라디오 뉴스 프로에 출연해 사회자 김현정씨가 “왜 선원들을 따라가지 않았나”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안에 사람들을 옮겨 주느라. 그때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헬기 구급요원이랑 눈이 마주쳐서 안에 있는 분들 다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옮겨 드렸습니다.”

09시26분45초
세월호 선체 20m 상공에 해경 B511 팬더 헬기가 접근중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세월호 조타실과 진도 VTS간 교신이 계속되고 있었다.

진도 VTS : 세월호. 1분 후에 헬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세월호 : 잘 안 들립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십시오.
진도 VTS : 1분 후에 헬기 도착 예정입니다.
세월호 : 다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진도 VTS : 1분 후에 헬기 도착 예정입니다.
세월호 : 승객이 너무 많아서 헬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진도 VTS : 헬기도 도착할 거고요. 인근에 있는 선박들도 접근중이니까 참고하십시오.
세월호 : 예. 알겠습니다.

09시 27분
생존자 신 모씨 카톡-“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09시27분06초
또 다른 영상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발코니의 기울어진 갑판 바닥을 바라보며 객실 외벽에 올라앉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4층의 학생들을 걱정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 어디에 있어요? 학생들?”
“학생들은 다 객실에 있어요.”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자 한 승객이 바다쪽 난간을 붙잡고 손을 흔든다.

09시28분13초
MBC 뉴스 속보가 방송됐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관내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이 여객선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 등 500여 명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09시28분44초
학생 카톡-“아직 움직이면 안 돼.”

이 시각의 영상에는 선실이 더 기울어지고 있는데 방송에서는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하고 있었다.

09시29분
故 김 모씨 카톡-“이제 해경 왔대” “아직 움직이면 앙대”

09시 30분
세월호가 53도로 기울었다.

이때부터 세월호의 1층 船尾(선미) 화물 적재층인 D데크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3층 객실에 머물던 기관부 선원 7명은 이 장면을 확인하고 더 이상 배가 복원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들은 승객들을 그냥 둔 채 자신들만의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일반 승객 가운데 이 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화물차 운전기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주 화물차와 함께 제주-인천간을 오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날 이 배에는 33명의 화물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화물칸에 물이 차는 것을 발견하고 탈출을 결심한다. 화물기사들이 일제히 기울어진 선실로부터 밖으로 나와 3층 홀 옆의 출구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명은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베란다 난간을 잡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날 사고 선박에서 화물기사들은 수많은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 그리고 자신들도 전원 생존에 성공한다.

그 시각, 사고 현장에서 북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의 어민 김현호(46)씨 부부는 한가한 철을 맞아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뒤 TV의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에서 속보 자막이 흘렀다. 진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인이 “진도 부근이라는디 안 가봐?”라고 물었다. 김 씨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사람들 말만 듣고 1톤급 소형 어선을 몰고 나섰다가는 낭패라는 생각에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헌디, 진도 부근이라는디, 진도 부근이라도 여그 조도 부근인지 쩌그 위쪽 어딘지 어떻게 알어?”

부인도 할 말이 없었다. 진도군 조도면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이어서 넓은 바다 가운데 많은 섬들이 자리해 물길도 뱃길도 복잡한 곳이었다. 그렇게 부부가 TV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같은 시각, 조도면 이장단장 겸 청년회장인 정순배씨는 해경으로부터 긴급구조 연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내용을 정리해 조도면에 속하는 7개 섬의 해양 예비군인 어부들 250여명에게 단체 문자 발송을 준비해야 했다.

이때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도 해상 근무 중 긴급구조 무전을 받았다. 고속 短艇(단정)인 201호의 박승기 항해사가 선수를 돌려 맹골수도쪽으로 방향을 잡고 全速(전속) 항진을 시작했다. 30~40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인근 해역의 모든 배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그들처럼 船首(선수)를 돌리고 있었다.

그 시각, 세월호를 약 1km 앞두고 전속 항해중이던 해경의 P 123정은 인근 해역의 선박 가운데 세월호에 가장 가까이 접근중이었다. 흐린 날씨로 하늘과 바다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잿빛 공간 저 멀리 새하얀 선체의 세월호가 4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로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 붉은 색 팬더 헬기 한 대가 접근 중이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항공대 소속의 팬더 B 511호였다. 팬더 512호는 3009함에 실려 중국 불법어선 단속을 나갔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침몰 지점으로 날아오는 중이었다. 제주항공대 소속의 팬더 513호도 1분 후엔 사고 해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3] 海警·官·民 구조대, 50분 동안 선체 밖으로 나온 173명中 172명 구조

09시30분, 구조가 시작되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災難(재난)은 지진이나 풍수해와 화재 등으로 빚어지는 ‘자연재난’과 안전 불감증, 부주의 등으로 빚어지는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재난사고를 대비하고 연구하는 防災學(방재학·Department of disaster prevention)에서는 재난 관리 활동단계를 ‘예방’-‘대비’-‘대응’-‘복구’ 등 네 단계로 구분해 두고 있다. 방재학 연구자들은 인간이 만든 문명의 속성상 대형 재난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들은 발생 빈도와 피해규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큰 혁신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사고가 발생하기 前단계에서 예방과 대비에 역점을 두어야 했다.

세월호가 4월16일 09시30분에 복원불능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防災學의 입장에서 보면 ‘예방’과 ‘대비’ 단계의 실패인 셈이었다. 선박 건조와 운항의 안전점검, 사고 발생시 승객들의 안전대책 강구와 비상탈출 도구 구비, 승무원의 안전교육과 훈련 등이 제대로 실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재난관리의 4단계 중 1, 2단계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넘어가면서 09시30분 이후 세 번째 단계인 ‘대응’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단계에는 생존자의 救助(구조)가 최우선 항목이 된다.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海警·官·民 구조대, 선체 밖으로 나온 173명中 172명 구조

해양경찰청의 구조임무를 띤 구조 세력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09시30분. 헬기 B 511호, P 123艇(정)이 순서대로 도착했고 제주 해경서 항공구조대의 헬기 B 513이 09시32분에, 목포 해경 소속의 B 512가 09시45분에 사고 해역에 도착해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사고 접수를 받은 지 30분 만에 구조세력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점은 생존자들에게는 대단히 運(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드넓은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세력의 현장까지 도달 시간이 구조의 성패를 좌우하며 生(생)과 死(사)를 가른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해양경비대 매뉴얼에 따르면 사고 접수 후 2시간 이내에 현장 도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해경은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세월호 船體(선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173명이었다. 이 중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입혀준 채 맨 몸으로 물로 뛰어든 정차웅군이 溺死(익사)한 채 해경에 인양되고 나머지 172명은 모두 생명을 건졌다. 해경의 팬더 헬기 B 511은 2회에 걸쳐 12명을 구조하고, B 513은 3회에 걸쳐 13명, B 512은 2회에 걸쳐 총 10명을 구조해 내 항공 구조세력에 의해 총 35명이 구조된다. 여기에 고속단정과 함께 구조에 참여한 P 123정이 정차웅군을 포함한 80명을 구조, 인양해 해경은 이날 세월호 선체 밖으로 탈출한 승객 173명 중 114명의 생명과 1구의 屍身(시신)을 건져냈다. 세월호에 허용된 구조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배가 침몰할 때까지 약 50분 동안 114명의 목숨을 건져낸 것도 대단한 성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상 재난의 특징 중 하나가 광대한 해역의 넓이로 인해 신속한 구조세력의 투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넓은 바다 위에서는 ‘서울에 배 한 척, 대전에 배 한 척’ 하듯이 드문드문 위치하기 때문이다. 오랜 해양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선진 해양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소에 지역별 민간 구조 세력을 지원하고 육성해 왔다. 해양의 예비군인 이들은 모든 해역의 어선과 어민들이 포함되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 민간 잠수사들도 구조협회 등에 가입하여 해양 사고 발생시 구조자로 참여한다.

선진국의 海洋협조세력

미국은 1936년에 설립된 미국연안경비대 자원봉사단(USCG Auxiliary)이 미국연안경비대(USCG)의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활동중이다. 이들은 사법권만 없을 뿐 평시에 어선 및 선박 검사와 해양 순찰 및 수색 구조를 담당한다. 연간 1800만 달러 상당의 예산을 USCG로부터 지원받고 회원 3만 5000여명의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이들은 보트 4971척과 항공기 226대 및 무선설비 2641개 국을 보유, 운용중이다.

영국의 왕립구명정협회(Royal National Lifeboat Institution: RNLI)는 1824년에 설립돼 2011년까지 13만 9832명을 구조해낸 기록을 갖고 있다. 4만 1000여 회원들 가운데 구조정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회원들만 4600여 명이나 되고 기부금 조성자가 3만 5000여 명이다.

일본도 1889년에 창립한 일본수난구제회(日本水難求濟會, Marine Rescue Japan)가 해양 예비군으로 활약하는 중이다. 5만4000여명의 회원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이 단체는 일본 해상보안청, 사회보험청 등 관계관청과 자자체의 교육훈련 등 각종 지원을 받으며 전국어업협동조합, 전일본해원조합 등이 협력단체로 지원을 맡는다. 창립 이후 2012년까지 19만 3882명의 인명을 구조했고 3만 8757척의 선박을 구조해낸 기록을 갖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우리나라의 경우 1년 전인 2013년에 한국해양구조협회(Marine Rescue & Salvage Association of Korea)가 수난구호법 제26조에 의해 설립됐다. 협회를 중심으로 전국의 해역을 16개 지부로 나누어 구성을 마친 이 협회의 예산은 기부금과 회비로 충당해 오다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 인천 해양경찰청 소회의실에서 지원사업 예산안 심의를 하던 중이었다.

이날 사상 최초로 한국의 해양 예비군인 한국해양구조협회에 해경이 지원할 예산액수는 5억 원. 그러나 이마저도 때마침 발생한 세월호 사고 소식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그 후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세월호 사고 해역에 해경과 함께 구조 지원세력으로 참여했다가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를 받게 된다. 이 협회의 黃大植(58) 구조·구난 본부장은 자동차, 집, 숙소, 사무실, 핸드폰, 개인통장 29개 등을 압수수색을 당해야 했고 가족과 친인척 모두의 통장이 조사대상이 됐지만 무혐의로 종결된다. 한국해양구조협회의 공동 부회장으로 기부금을 낸 구난업체 언딘도 같은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 보면 유독 우리나라 언론과 검찰만이 이런 해양 협조세력을 두고 해경과 癒着(유착)관계라고 비난하는 남다른 무식함을 드러낸다. 협조와 유착간의 어휘 분별력도 없고 무엇보다 바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 날 사고발생 직후 진도 VTS가 인근 해역의 어선들과 연락을 취해 구조를 요청했고 목포 해경 상황실에서는 진도 군청을 통해 官公船(관공선)과 어업지도선의 출동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민간 구조세력인 한국해양구조협회에서도 전국의 잠수 인력에게 소집을 알렸다.

해경이 09시30분부터 구조작업을 펼치다가 38분 뒤인 10시08분부터는 민간 어선 2척과 어업지도선 2척이 구조에 가세한다. 해양 예비군이 참가한 것이다. 그 시각엔 세월호 船體(선체) 주변으로 대형상선 4척과 어선 50여 척의 배들이 구조세력으로서 모여 들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선체가 높아 수면 위의 수상 인명 구조에는 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대신, 1.1톤급 소형 어선인 피시헌터호와 태선호 및 고속短艇(단정)인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가 신속히 세월호 선체에 접근하여 난간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실어낼 수 있었다. 이들이 모두 58명의 승객을 구조한다. 이로써 선체 밖으로 나오던 승객 172명 전원이 구조된 것이다. 지금부터 구조상황을 시간별로 추적해 보자.

09시10분, B 511호 헬기 최초로 도착



09시 30분
B 511호 헬기에는 항공대장 양해철 경감과 부기장 김태호 경위가 조종을 맡고 있었고 電探(전탐사) 이명중 경사,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항공 구조사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이 검은 수트복 차림으로 세월호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큰 배가 쓰러지는 중인데 주변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였다.

이들 항공 구조대는 09시03분에 상황실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09시10분에 이륙함으로써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신, 선체에 몇 명이 탑승하고 있는지에 관한 기타 정보를 전혀 갖지 못한 상태였다. 검은 잠수복 차림의 박훈식 경위를 포함한 항공 구조 대원들은 기울어진 배를 보고 무척 낯설어 했다. 목포 해양경찰들은 목포–제주간 선박들을 어지간해서는 한두 번 이상 乘船(승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선박의 크기나 내부 구조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날 아침 이들이 발견한 배는 그때까지 본 배 가운데 제일 컸으며 그렇게 큰 배가 저토록 말도 안 되는 자세로 기울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선체 주변으로 사람들이 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奇異(기이)했다.

팬더 B 511호가 세월호에 가까이 도착하자 선체 주변에 컨테이너 몇 棟(동)과 약간의 화물들이 둥둥 떠 있는 것 이외에는 갑판이고 바다고 간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처음에 화물선인가 싶었다고 한다. 양해철 경감은 헬기를 몰아 선체 주위를 한 바퀴 선회하며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헬기가 선체를 거의 한 바퀴 다 돌아 船尾(선미) 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에 5층과 4층 사이 우측 통로 난간 쪽으로 사람이 보였다. 50도 가까이 기울어진 바닥에서 네 사람이 난간을 붙잡은 채 앉아있었다. 양해철 경감은 그들 머리 위로 機體(기체)를 이동시킨 뒤 몇 십초 간 제자리 비행을 시작했다. 전탐사가 채증을 위한 촬영을 하는 동안 정비사가 구조장비 호이스트(注:고리로 연결해 물건을 들어올리는 장치)를 준비했다.

이때 선실에서 헬기가 도착한 장면을 본 회사원 김성묵씨는 이제 구조가 되는가 싶었다. 그가 헬기를 보고 있으니 사람은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듯했다. 그는 ‘도대체 헬기가 왜 온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 팬더 B 511호의 양 경감은 조종간을 잡고 정지비행을 하면서 “구조사 투입 준비!”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호이스트를 작동시켰다. 박훈식 경위가 호이스트를 잡고 헬기에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다시 양 경감이 임무를 주지시켰다. “안전하게 구조 임무 수행할 것!” 박훈식 경위가 下降(하강)하면서부터 양 경감은 09시49분까지 세월호 선체 상공에서 6명을 헬기에 싣게 된다.


조리실 김종임씨 헬기로 최초 구조

09시31분
박훈식 경위 뒤를 이어서 김재현 경장이 호이스트로 선체에 하강했다. 두 구조사는 선체에 내렸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배가 50도 가량 기울어진 상태여서 갑판과 선체 외벽의 모서리가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발판이었다. 이러다 보니 난간을 잡고 앉아있던 승객들도 불과 5m 전방에서 구조대원들이 내려왔지만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헬기에서는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호이스트로 바스켓을 내리고 있었다.

구조사 김재현 경장이 먼저 승객들에게 엉금엉금 기어서 접근했다. 박훈식 경위는 헬기로부터 내려오는 바스켓을 잡기 위해 공중을 주시했다. 흔들리며 내려오던 바스켓이 박훈식 경위의 손에 잡힐 무렵 김재현 경장은 승객 네 사람 중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해서 박훈식 경위가 있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 아주머니가 조리실에서 선체 밖으로 탈출한 김종임씨였다. 그녀가 제일 먼저 헬기로 구조되었다. 그녀 뒤로 최찬열씨(조리실 직원)와 70대 노인이 구조되었고 맨 마지막으로 김태환씨가 바스켓에 몸을 실었다. 이로써 5층 난간에서 만난 네 사람 모두 가장 먼저 목포 해경서 항공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항공 구조사들이 이들 네 사람을 실어 올리는 동안 4층 난간에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바스켓을 잡고 있던 박훈식 경위가 이들 중 세 사람을 더 태워 올렸다. 6인승의 B 511호 팬더 헬기에 13명이 탄 것이다. 1700 마력으로 비교적 출력이 약한 팬더 헬기는 엔진에 무리가 갈 수 있었지만 상황은 급박했다. 그 무렵 제주 해경 항공구조대의 513호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해 한 바퀴 旋回(선회) 했다. 당시 상황을 생존자 김태환씨에게 들어보자.

김태환씨의 증언

<잠시 후에 우리 머리 위로 헬기가 정지비행을 하면서 구조대원 한 분이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경황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추운 바닷바람이 부는데다가 헬기 프로펠러가 불어젖히는 바람 사이로 소음도 엄청났고요. 한 분이 바스켓을 저희에게 끌고 오는데 배가 아까보다 더 기울어져서 거의 모서리를 밟고 엉금엉금 왔습니다. 거기서 제가 제일 젊기도 하고 다른 분은 年老(연로)하신데다 다친 분도 있고 해서 그 분들이 먼저 타고 갈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발 딛는 데를 잡아 드리고, 그러면 해경 분이 잡아 끌어주시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제가 네 번째로 구조가 된 겁니다. 가장 먼저 온 구조헬기에 의해 구조된 거지요.

헬기로 구조된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을 겁니다. 헬기에 올라탄 뒤에 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가 타고 왔던 배가 쓰러진 채 절반쯤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있을 때 누가 물어요. 제가 헬기에 탔을 때 그 해경들에게 배 안에 사람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말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해경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겁이나서 들어갈 수 없던 곳을 해경에게 들어가라는 건 잘못이라고 봤어요. 제 목숨이 소중하면 해경 목숨도 소중한 거 아닙니까. 해경 목숨은 특별히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선 몇 명을 어렵게 구조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그 사람들에게 제가 뭐 잘났다고 가라마라 하느냐 이겁니다. 더구나 나중에야 이렇게 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배가 완전히 침몰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고, 배 안에서 계속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에 승객들이 꼼짝없이 묶여 있었던 것도 몰랐으니까요. 저도 몰랐고요.>

항공구조사가 도착해 구조하는 것을 본 김성묵씨는 항공구조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구조사가 김성묵씨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다. 김성묵씨는 5명을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알고 자신의 주변에서 난간을 붙들고 있던 학생들을 추스려 한 명씩 윗층으로 올려 보냈다. 그가 항공 구조사를 도와 선실 내부의 학생들을 올려보내자 그 옆에 있던 화물 기사들이 김성묵씨를 돕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항공 구조사는 양 손을 들더니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였다. 김성묵씨와 화물 기사들이 학생들 여섯 명을 추려 올리기 시작한다.

09시32분: P123艇(정) 세월호 선체 부근에 도착

09시32분
P 123정이 세월호 선체 부근에 도착했다. 잿빛 바다 위로 흰색의 거대한 선체가 좌현 50도로 누워 있다는 것도 낯선 광경인데다가 흐린 하늘에 붉은 색 헬기 두 대가 구조를 위해 떠 있었지만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아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P123정은 북쪽에서 내려와 세월호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이 무렵 세월호는 우회전 중 쓰러지면서 左舷(좌현)을 기울인 채 표류하기 시작해 조류를 따라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남쪽을 향하던 船首(선수)가 서서히 돌아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P艇(정)은 5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의 정면을 먼저 본 것이다.

P123정의 김경일 정장은 세월호 선체 右舷(우현)으로 한 바퀴 선회하면서 접안시킬 마땅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좌현부터 접근하다가 빨려 들어갈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P123정은 구조선이 아니고 해상에서 신속하게 기동 하도록 설계된 어선단속선이었다. 따라서 船首(선수) 갑판은 파도를 잘 가르도록 높게 만들어져 사람이 물에 빠지면 높은 갑판으로 인해 쉽게 건져 올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 배의 船尾(선미)에 고속 短艇(단정)이 실려 있다. 인명구조같이 다른 선박에 接岸(접안)할 경우에는 단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船首(선수) 갑판이 높으면 비슷한 높이의 접안장소가 아니고서는 아무데나 접안도 못한다. 세월호 주변을 선회하던 P정은 사람을 찾으면서 배를 갖다 댈 접안 장소도 동시에 물색중이었다. 세월호 후미쪽은 이미 물과 너무 가까이 기울어져 P정으로서는 접안할 곳이 아니었다. 그 곳에 몇 사람이 난간을 붙잡고 있었지만 자칫하다가는 6825톤급의 세월호에 110톤급 P정이 물려 들어갈 수 있었다. 김경일 정장은 단정으로 구조하면 될 것으로 보고 계속 접안 장소를 찾아 배를 몰았다. 후미를 돌아 세월호 좌현 선수쪽으로 돌던 P 정은 비로소 접안할 만한 곳을 발견한다. 세월호 좌현의 5층 갑판이 기울어지면서 P정의 갑판과 비슷한 높이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일 정장은 그 쪽으로 배를 몰아 조심해서 접근해 들어갔다. 그 사이 P 123정의 후미에서는 박은성 경사와 김용기 경장이 크레인 작업을 통해 短艇(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 깜깜한 데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나 죽을려나 봐”

09시35분
세월호가 53도로 기울었다. 침수한계선인 D데크가 전부 물에 잠겼다. 흘수선까지 물에 잠긴 것이다. 이로서 세월호는 선박으로서의 復原力(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됐다.

09시36분
선실이 더 안전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09시36분30초
KBS 뉴스속보가 나갔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승객 등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수중입니다. 이에 따라 해경 구난함이 현재 출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승객 등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수중입니다. 이에 따라 해경 구난함이 현재 출동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4층 선실 내의 故 김시연 양의 동영상이 남겨졌다. 영상에서 학생들은 아직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듯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각, 한 학생이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할머니, 배가 한 쪽으로 기울었어. 깜깜한 데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나 죽을려나 봐.”

09시37분 54초
어느 학생이 남긴 영상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기울어진 선체 벽에 기댄 채 앉아있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09시38분33초
故 박예슬 양이 남긴 동영상 - “헬리콥터가 와.” “구조 좀…”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린다”

P 123정에서 내려진 고속단정이 세월호를 향해 발진하는 장면이 P정의 후방카메라에 녹화됐다. 단정은 기울어져 침수중인 세월호의 선체 중앙 부분으로 금새 도착했다. 이미 그 곳에 구명조끼를 걸친 채 나와 선체에 매달려 있는 승객들이 보인다. 그들이 기관부 선원들이었지만 해경은 이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09시39분
세월호는 54.9도로 기울고 있었다.
카톡-“해경이 왔다. 근데 움직이면 안 된다.”

09시39분48초, 박상욱 경장 등 세월호에 올라 구명벌 두 개를 바다로 던지다

09시39분48초
고속단정이 선체 3층 중간에서 선체 밖에 나오려는 승객들을 태워 P 123정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때부터 세월호 선체 밖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탈출 지원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기관부 선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모두 생명을 건진다. 그들 뒤로 구명조끼를 걸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물로 뛰어들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P 123정의 船首(선수)쪽이 세월호 5층 갑판에 접안되자 박상욱 경장(37)이 좌현으로 기울어진 세월호로 뛰어 올랐다. 객실이 시작되는 3층이 수면 가까이로 쓰러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3층은 물이 들어차지 않았다. 그는 조타실 창문으로 사람을 발견했다. 이형래 경사도 세월호로 올라 탄 뒤 난간에 설치 된 救命(구명)벌을 발로 차 바다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두 대가 떨어졌으나 펴진 것은 한 대뿐이었다.

이 무렵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 환갑 여행에 참가한 김정근(60)씨가 17명의 동창 가운데 제일 먼저 3층 多人室(다인실)에서 로비로 나왔다. 그가 기울어진 3층 로비를 보니 구명조끼를 걸친 학생들이 반쯤 세워진 바닥을 벽 삼아 기댄 채 서 있었고 몇몇 다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인 듯 보였다. 그때 3층 식당과 객실 사이의 안내 데스크 부근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한 젊은 여성이 다람쥐처럼 천정에 매달린 채 무전기로 통화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여성이 스물두 살의 박지영 양이었다. 그녀는 연신 무전기에 대고 “퇴선시킬까요”라고 묻고 있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아무런 답신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박지영 양은 아직 구명조끼를 걸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구명조끼를 던져 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승객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4] 3층 객실에 물 들어차자 승객들 ‘潛水(잠수) 탈출’ 시작

김홍경(58)씨 등 몇몇 어른들의 영웅적인 행동

09시40분04초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 집단의 위기가 발생하면 튀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다. 첫 번째 유형은 진정한 利他心(이타심)을 발휘해서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다른 한 유형은 위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利己心(이기심)을 채우는 허영기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웅심리에 도취되어 공동체에 극심한 害惡(해악)을 끼친다. 이날 세월호 승객들 중에는 김성묵(37)씨처럼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세월호 船尾(선미) 3층 좌현에서 기관부 선원 7명이 해경의 고무보트에 의해 구조되고 있을 때 5층 선실에 머물렀던 승객 김홍경(58)씨 등 몇몇 어른들은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탈출을 미룬 채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도왔다. 김홍경씨는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을 듣고 구명조끼 函(함)을 찾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자신도 입었다. 그는 탈출 결심을 하고 선실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커튼 20장을 엮어 밧줄을 만들어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다. 그가 5층 선실 밖으로 탈출하던 중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갑판 통로(발코니)에 학생과 승객들 10여 명이 난간에 매달린 채 꼼짝을 못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김 씨는 자신의 탈출을 미룬 채 이들의 구조를 돕기 위해 4층 우현 발코니로 내려갔다.

김홍경씨가 4층 발코니에 도착했을 때 화물기사 김동수(49)씨가 소방호스를 끌어오고 있었다. 4층 우현 발코니에서 객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우물처럼 변해 있고 그 속에 학생들이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무거운 철제 출입문은 열린 채 고정돼 있었다. 그 통로는 문에서 3m 정도 直進(직진)한 다음 T자 형태로 내부에서 통로가 갈라진 곳이었다. 갈라진 곳의 맞은편 벽은 바닥으로 변하는 중이었고, 통로 입구는 우물 입구로 바뀌고 있었다. 나오려면 3m나 되는 철제 벽면을 기어올라 문밖으로 나온 뒤에도 다시 2m정도 올라와야 90도로 꺾인 객실 외벽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비로소 김동수씨가 버티고 있는 4층 베란다의 벽면을 밟을 수 있었다. 김동수씨가 소방호스를 통로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4층 갑판 통로에 고정된 벤치의 등받이를 딛고 접근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벤치의 등받이를 밟을 수 없을 테지만 이때는 이미 등받이가 바닥이 된 상황이었다.

김홍경씨가 이 장면들을 자신의 스마트 폰에 담기 시작했다. 펩시콜라 자판기가 쓰러져 있고 그 옆으로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 10여 명이 선실 외부로 통하는 계단의 난간을 붙잡은 채 앉아 있는 모습들이 들어왔다.

09시40분22초
세월호 4층 발코니에서 김동수씨가 던져준 소방호스를 잡은 학생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김동수씨가 호스를 힘겹게 잡아당기는 장면이 김홍경씨의 영상에 남겨졌다.

09시41분
세월호가 55.4도로 기울었다.

한 학생의 카톡-“아, 보고 싶어. 엄마”

09시41분26초
해경의 고속 短艇(단정)이 선체 중앙부 4층 난간의 승객을 구조하는 중이었다. 같은 시각, 한 학생(생존)이 카톡을 남겼다.
“창문 바로 앞에 컨테이너, 떠내려가고 있어. ㅆ ㅂ 방송도 안해 줘. 걍 가만히만 있으래.”
선실 내부에서는 300명 넘는 사람들이 탈출을 결심하지 않은 채 선실에 대기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09시42분
세월호가 56.5도로 기울었다.

한 학생(생존)의 카톡-“아빠가 속보 떴다고 보라고 해서, 숙소 안에 다 있어, 배터리 단다고 지피에스 켜 놓고, 배터리 다니까 기다리래 ㅜㅜ.”

09시42분10초
항공 구조사가 외벽을 붙잡은 채 5층 난간 안에 있는 여학생을 난간 밖으로 유도해 이동중이다.

09시42분18초
고속短艇이 P 123정으로 구조자들을 이송중이다.


大馬島(대마도) 거주 피시헌터(1.1톤) 선장 김현호씨 출동

09시42분33초
고속단정이 P123정에 도착. 선체 외벽에서 구조 작업 중인 해경 항공 구조사는 아직 여학생의 이동을 안내 중이었다. 발 디딜 곳을 찾느라 몹시 진행이 느리다.

이 시각, 진도군 조도면 정순배 회장은 한 번에 25명씩 조도면에 거주하는 어민 250여 명에게 긴급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大馬島(대마도)에 거주하는 피시헌터(1.1톤) 선장 김현호씨 핸드폰에서 문자도착 소리가 났다. 부인과 함께 TV 연속극을 보던 김 씨는 혹시 하는 생각에서 문자를 열어 보았다.

<긴급상황 맹골 근처 여객선 침몰중. 학생 500여명 승선. 어선 소유자 긴급 구조요청. 정순배>

김현호씨는 문자 메시지에 ‘맹골’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용수철같이 몸을 세웠다. 조도면 사람들이라면 맹골 수도의 위험한 물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필 그 험한 水道(수도)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니. 김 씨는 검은 색 점퍼를 걸쳐 입고 마당 한 편에 연료를 담아 둔 20리터짜리 말통을 낚아채며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집 앞 30여m쯤에 있는 대마항에 그의 어선 피시헌터호가 정박중이었다. 그가 배로 달려가는 중에 마을 형님 김승태(53)씨를 만났다. 그도 문자 메시지를 보고 달려 나오던 참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김현호씨의 1.1톤급 어선 피시헌터호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피시헌터호에 올랐을 무렵에는 대마도 대막리에 거주하는 김준석(40)씨도 마을 형님인 김대열(44)시를 태선호(1.05t)에 태우고 또 다른 선착장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이들 네 사람이 두 대의 漁船(어선)으로 출발한 대마도의 위치를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맹골도에서 동쪽으로 약 5km 부근에 서거차도와 동거차도가 남북으로 비스듬히 위치한다. 맹골도와 이들 두 섬 사이가 맹골수도이다. 서거차도의 동남쪽에 동거차도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두 섬은 거의 연이은 듯 보인다. 대마도는 서거차도와 동거차도 두 섬에서 다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 대마도에서 사고지점인 남서쪽의 병풍도까지는 약 11km 떨어져 있는 것이다.

김현호씨는 김승태씨를 태우고 배를 몰아 동거차도 아래의 무인도 북섬을 향했다. 맹골수도로 가기 위한 코스인데, 이곳을 지나면 약 7km 떨어진 맹골수도와 병풍도 부근이 관측 가능해진다. 지구의 曲律(곡률)반경과 관측자의 눈높이(선박의 갑판 높이+관측자의 눈높이를 합하면 대략 3m)를 감안하면 수평선까지 관측 가능한 거리는 거의 6~7km 정도가 된다.

“우리 섬에서 바로 앞으로 2분 정도 나가면 무인도가 있어. 북섬인디 그 옆으로 딱 도니까 사고 현장이 바로 보여불어. 병풍도쪽으로. 보자마자 30노트 전속력으로 달려갔제. 그 동안 뒤에서 승태 성님이 말통으로 기름 부어 넣고. 한 15분 걸렸을 거여.”

피시헌터호와 태선호가 全速(전속) 항진중이었다.

09시44분: 학생의 카톡-“더 이상 답장 못할 듯”


09시43분00초
해경 B511 헬기가 바스켓 내려준다.

학생(생존)의 카톡-“휴대폰으로 뭐 하지 말래, 나 무서워, 진짜 무서워 괜히 배 타가지고”

09시43분53초
여학생이 헬기에 무사히 도착한다.

09시44분
학생(사망)의 카톡-“더 이상 답장 못할 듯”

09시44분23초
B 511 헬기: 상황실. 여기 호텔 2. 현재 6명 구조. 511호기 6명 구조. 서거차도. 서거차도 방파제로 이동합니다. 수신 여부.

팬더 B 511호 기장 양해철 경감은 승객을 더 이상 태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離脫(이탈)비행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헬기 駐機場(주기장)이 있는 곳은 약 5km 떨어진 서거차도 해변. 양해철 경감은 511호를 몰아 서거차도 해변에 구조 승객들을 내려놓은 뒤 다시 현장으로 복귀 비행을 반복하게 된다.

한편, 511호가 떠난 자리를 채운 제주 해경의 513호에서는 柳規錫 경장이 바스켓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세월호 선체 위에서 구조 중이던 목포 해경의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과 합류하게 된다. 한때 박훈식 경위의 지휘를 받기도 했던 柳 경장이 선체에 발을 딛고 보니 船尾(선미)쪽 20여m 떨어진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의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류 경장과 김재현 경장이 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을 옮기는 곳은 30여m 벼랑 끝단이었다. 잘못 미끄러졌다가는 최소한 골절부상을 입은 채 물로 빠지게 될 곳이었다. 이들에게는 붙잡을 난간도 없었다.

생존자 윤길옥씨-“이 헬기가 확성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우현 갑판)서 사람 구조할 때 해경이 이쪽, 이쪽(갑판)으로 들어왔더라고요. 거기서라도 그냥 소리라도 빨리 물에 뛰어들라고 소리만 쳤어도 많이 나왔을 건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4층 베란다에서 학생들을 도와 헬기의 항공 구조사에게 올려 보내던 김성묵씨는 또 한 대의 헬기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그는 선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소방호스를 가져와 베란다 기둥에 묶은 다음 다른 한쪽을 4층 홀 쪽으로 던져 넣었다. 학생들이 힘겹게 소방호스를 붙잡고 올라왔다. 2명이 올라왔다. 김성묵 씨는 이대로는 너무 늦다고 판단했다. 그는 소방호스 한 개를 더 구해와 던져 넣었다. 새로 던져 넣은 호스를 붙잡고 학생 1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시각, 또 다른 장소에서 화물기사 김동수씨도 소방호스로 학생들을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09시47분경, 객실 3층부터 侵水(침수)가 시작

09시46분25초
세월호가 61.2도를 넘어섰다.

조타실로부터 내려온 반바지 차림의 승객이 P 123정으로 올라탄다. 그가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였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세월호 선체에 올라 탄 이형래 경사가 구명벌을 펼치기 위해 노력 중이었지만 두 개만 떨어지고 그 중 한 개가 펼쳐졌다. 나머지 구명정은 제자리에서 脫去(탈거)되지도 않고 있었다. 박상욱 경장이 조타실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몇 번 시도하다 미끄러지며 실패하자 P 123정에 실려 있던 홋줄을 가져와 조타실로 던져 올렸다. 조타실에서 누군가가 이 홋줄을 잡아 문 손잡이에 연결했다. 박상욱 경장이 조타실로 올라가려 홋줄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나 위에서 사람들이 홋줄을 잡고 내려오는 바람에 올라가지 못한다.

09시47분경
세월호가 62도로 기울었다.

객실이 있던 3, 4, 5층 가운데 3층부터 侵水(침수)가 시작되었는데, 그 시각은 09시47분경으로 보인다. 물이 입구에서부터 차들어오자 생존자들은 밀려드는 물을 정면 돌파한다. 그들은 물 속으로 潛水(잠수)를 시도해서 배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른바 ‘잠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잠수 탈출을 시도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溺死(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단원고 박준혁 군 潛水(잠수) 탈출에 성공

3층 복도 여자 화장실 앞. 단원고 배드민턴부원이던 박준혁(16) 군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승객 10여 명과 함께 거의 50분 가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구명조끼를 입을 때 여섯살바기 권지연 양이 보여 직접 조끼를 입혀 주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기다리는 동안 박 군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헬기 소리가 들리고 방송으로 구조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박 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권지연 양을 윗층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권지연 양은 이렇게 박 군의 손에서 떠나면서 4층으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3층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이 입구부터 차오르면서 탈출할 곳이 사라져 버렸다. 박 군과 일행은 최후의 수단으로 물 속으로 잠긴 입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박 군은 물 속으로 뛰어든 뒤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잠수를 했다. 그는 뿌연 물 속에서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물 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잠시 후 세월호 선체 밖으로 빠져나와 바다 위로 떠오르면서 구조될 수 있었다.

김성묵씨의 회고

“홀에 있던 아이들이 난간 잡을 데도 없고 벌써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바닥을 붙잡고 올라와야 되는데 거기가 미끄러져서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고요…그래서 소화기 줄을 호스를 이용해서 끌어당기는데…몇 명 못 구했는데 너무 90도 가량 기울어지다 보니까 아이들이 힘이 부족해서인지 잡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때 홀에 한 30~40명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제 눈에 보이는 아이들만…제가 구조하던 입구 문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었어요. 바닷물이 너무 빨리 올라 차니까.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소방호스를 밀어 넣던 화물 기사 김동수 씨가 그 아래에서 호스를 기다리던 성인 남자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여자애들 이 루트 포기하면 안돼요! 이 루트 포기하면 안 돼요! 저기 있다는데…”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된 로비

김동수씨의 설명이다.

“이 밑에는 커튼으로 안 되니까 호스를 끝까지 내린 거예요. 여기 의자(벤치)에 묶었죠. 의자에 묶었는데도 힘드니까, 저도 몸이 막 딸려가니까 제 몸에 묶어가지고 호스를 여기까지 끌어서 여기에서 다시 여기까지 끌어 올렸죠. 저는 이쪽에 학생 하나가 있어 가지고 부르니까 그리고 뛰어가 보니까 여기는 물이 차오르고 있고, 절벽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냥. 아무 것도 없으니까.”(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생존자 최승필씨 증언-“밑의 3층에 있던 사람들도 그 물에 둥둥 떠서 이렇게 올라와야 정상인데 한…네 명, 다섯 명밖에 안 떠올라오는 거예요. 나머지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천장이나 이런 데 다 부딪히거나 어떻게 돼 가지고 거기에 걸려서 못 빠져나오는 거겠죠. 그런데 옆을 딱 보니까 고등학생들은 거기에 쫙 있고 ”야, 물들어 오니까 빨리 와.“ 하는데도 안 와요. 계속. 그 사이에 물이 점점 빨리 들어오는데 그 아기하고 전부 다 호스만 꽉 잡고 있었어요. 물이 꽉 차고 오는데, 우리는 쭉 뜨는 데, 옆에 있던 애들이 나와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물 압력 때문에 이쪽에서 애들이 나오질 못했나 봐요.”(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船內(선내)로 물이 들어오던 순간 3층 로비 부근에서는 또다른 탈출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이 3층으로 밀려들어오면서 갑자기 배는 더 기울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로비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물건처럼 왼편으로 쏟아지듯 굴렀다. 그 쪽으로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 환갑 기념여행을 떠났던 이중재(60) 씨는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믿고 객실 문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물이 들어오는 순간 그는 바다가 더 안전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선체의 3층 로비 중앙을 통과해야 바다로 나가는 난간이 있었다. 이중재 씨보다 앞서 출발한 성인 남자가 난간에 거의 도달할 무렵 갑자기 편의점 쪽으로 몸이 쏠리면서 철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그 남자는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중재씨는 “그때 선실 로비의 사람들은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로 날아다녔어요.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골절상등을 입고 피 흘리며 쓰러졌고요.”라고 회상했다.

배의 기울기가 더 심해지는 와중에 이중재씨는 3층 중앙 로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3층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3층에서 난간쪽으로 나갈 수 있는 곳에는 이미 바닷물에 점령 당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학생들이 3층 중앙로비에서 4층 중앙로비로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말이 계단이었지 기울어진 배에서 계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난간이 계단에 붙어 있어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승객들의 비명을 들으며 그는 4층 베란다쪽으로 올라가려 애썼다. 하지만 출입구가 우물로 변해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편의점 문을 붙잡아 주어야만 그걸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박지영 양의 奮鬪(분투) “누난 너희들 다 탈출하고 나갈 거야.”

그때도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은 박지영 양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살을 헤치고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 학생이 물었다. “누나는 왜 구명조끼를 안 입어?” “누난 너희들 다 탈출하고 나갈 거야.” 그녀는 계속 기울어진 선실내부를 요령 좋게 옮겨 다니면서 다친 사람들에게 휴지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중재 씨가 출입문과 씨름하는 모습을 본 박지영 양이 다가와 문을 잡아 주었다. 그로인해 이중재 씨가 가까스로 4층 베란다 바닥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여전히 우물 같은 수직 통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과 온갖 물건들이 물살에 휩쓸려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3층 바닥 전체를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이중재 씨는 갈 곳을 올려 보았다. 그 때까지 잡을 곳이 거의 없는 벽면을 어렵게 짚어가면서 올라왔던 이중재 씨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오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이 빠져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여기서 이제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소방 호스가 내려왔다. 그가 호스를 잡고 힘을 쓰려는데 누군가가 “애 좀 받아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이씨는 아이를 받았다. 권지연양이었다. 그는 아이를 머리 끝까지 밀어 올렸다. 위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받아주었다. 이번에는 이씨가 호스를 잡고 오를 차례였다. 바로 그 순간 통로 속으로 밑에서부터 바닷물이 거세게 차올랐다. 그리고 소방호스를 잡은 이씨를 수직으로 밀어 올렸다. 이중재씨는 그 상태로 船體(선체) 밖으로 밀려나 바다로 빠져 떠있다가 구조된다.

“뛰어 내려라! 뛰어 내려!'

그 무렵 3층 로비에서 외부로 나가는 통로의 문은 열린 채 고정돼 있었지만 그곳으로 이미 물이 들어찼다. 학생들이 갈 곳 없는 뒷걸음질만 하고 있었다. 나갈 곳이 바닷물에 장악된 것이다. 화물기사 한승석 씨와 강병기 씨가 탈출을 외쳤다. 그리고 일반 승객과 학생 10여 명을 강제로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수해서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이 학생들은 나중에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다가 해경의 단정으로 구조된다.

생존자 윤길옥 씨 증언-“저는 무조건 물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냥 몸이 배 밑으로 싹 쓸려들어가서 바닷물 두 모금 먹고 하니까, '아이고 죽었구나.'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러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물 밖으로 몸이 솟구치더라고요.”

생존자 한승석 씨의 증언-“(3층 중앙 로비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는데 구명조끼 입은 한 사람이 물 속으로 딱 들어가더라고요. 이상했어요. 이상하다. 저 사람이 갑자기 왜 뛰어들지? 물 속으로? 아닌 게 아니라 딱 보니까 물이 찼던 거예요. 그쪽으로 바로. 그 사람은 바로 그 출구에 있었거든요. 여기로. 여기가 난간이잖아요. 여기(3층 갑판)가 물이 딱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물 높이가 여기보다 더 높아져 버린 거지요. 많이 높아졌어요. 다급한데 소리 지르면서 “다 들어가!” 그러니까 물 속으로 들어가니까, 그 다음에 앞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따라 들어온 거라고요.”

생존자 최재영 씨 증언-“(탈출 당시) 남학생 2명, 여학생 3명, 이렇게 보였거든요. “뛰어내려라! 뛰어 내려!” 막 계속 소리 지르니까 남학생들은 뛰어내렸거든요. 그런데 여학생 3명은 못 뛰어 내려요…해수면하고 이제(3층 로비 문이) 자꾸 닫히는 거예요. 닫히면 못나오잖아요. 이제 마지막 (탈출구가) 닫히면서 그 여학생들 눈빛을 봤거든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좀 힘들어요. 제가…”(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잠시 후 4층에서도 이와 같은 잠수 탈출이 시작됐다.

[5] P 123艇, 세월호 船室(선실) 유리창 깨고 최초로 내부 승객 5명 구조

09시48분00초
3층 船首(선수)쪽 多人室(다인실)로도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입구쪽에서 밀려들어오는 물살에 반대쪽으로 밀려버렸다. 사람들은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선수 벽면쪽이었다. 선반들이 설치되어 있고 담요와 구명조끼 적재함 같은 가구들이 비스듬하게 세워진 모습이었다. 선반의 칸막이가 이들에게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밑에서 물이 차오르고 사람들은 선반을 한 칸씩 밟으며 올랐다. 다섯 사람이 매달렸다.
그 시각, 조타실로부터 사람들이 미끄럼틀 타듯 기울어진 바닥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차례차례 P 123정으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일부는 조타실쪽에 묶어둔 홋줄을 잡고 내려온다. 박상욱 경장은 이들이 전부 내려온 다음 홋줄을 잡고 조타실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09시48분25초
박상욱 경장은 조타실 문까지 홋줄을 붙잡고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조타실 바닥에 도달한 뒤로 더 이상 손잡을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거의 뒤집어진 상태로 바닥이 천정처럼 변한 텅 빈 조타실 문에 매달린 채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자 그는 홋줄을 잡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선체의 기울기는 62도가 되고 있었다. P 123정 김경일 정장은 3층부터 물에 잠기는 장면과 박상욱 경장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고 지휘부와 즉시 교신한다.

09시49분16초
P123정장:“아, 목포타워. 여기는 123. 현재, 현재 본국이 左舷(좌현) 船首(선수)를 접안해 가지고 승객을 태우고 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가지고 사람이 지금 하강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잠시 후에 침몰할 것 같습니다. 이상.”

09시49분37초
조타실로 진입 시도 중인 123정 옆으로 선체 중앙부에서 구조자들을 가득 태운 7인승 短艇(단정)이 123정을 향해 접근중이다.

09시50분26초
P 123정장:“아, 여기는 123. 현재 배가 약 60도. 60도까지 기울어가지고 지금 艦首 현측이, 좌현 현측이 완전히 이제 다 침수되고 있습니다. 이상.”
이때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사고소식을 문자 메시지로 발송하고 있었다.


<<해경 헬기, 구명벌 바다로 투하>>

09시51분20초
해경 헬기 B 512호가 상공에서 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확인한 후 구명벌을 바다 위로 투하한다. 약 15초 후 노란색 구명벌이 둥근 원형으로 펼쳐지자 5명 가량의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헤엄을 치며 접근중이다.

09시52분34초
B 521 헬기에서 항공 구조사가 水鏡(수경)을 쓴 채 호이스트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인근 상공에서 B513호가 세월호 선체 주위를 旋回(선회)중이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선수 쪽에 컨테이너와 화물들이 둥둥 떠 있다. P 123정 옆으로 주황색 지붕이 덮인 구명벌도 떠 있다.

09시52분43초
P 123정장:“목포 타워. 여기는 123. 현재 승객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나온답니다. 빨리 122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

상황실:“123 직원들이 안전장구 갖추고 여객선 올라가 가지고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람. 이상. 지휘부.”

P123정장:“타워. 여기는 123. 현재 여객선 상태. 상태. 좌현 완전히 침수했습니다. 완전히 침수해 가지고 현재 좌현 쪽에서는 더는 구조할 수 없고 현재 상태를 봐서 항공 헬기 이용한 구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상.”

09시53분18초
B512호의 항공구조사가 바다로 하강해 물 위의 생존자들을 구명벌에 태우고 있다.

09시54분경
<동영상>“배가 기울어졌어요. 물이 고여요. 물이!” (소란) “엄마, 안녕. 사랑해!”

학생 유가족 증언:“전화가 왔는데, 얘 전화가 아니고 다른 전화예요. 그래서 (받았더니) “할머니! 할머니! 배가 기울어져서 지금 배가 한쪽으로 빠지는데 나 죽으려나봐. 잘못하면 죽어.” 그러면서 “깜깜한데 이거 붙잡고 있어” 그러더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한참 만에 받더니 “할머니 끊어” 이래. 그러니까 그때가 10시쯤 가까이 됐나 봐요.”

09시55분
P정이 세월호에서 잠시 멀어지며 전남 707 官公船(관공선)이 접근한다. 110톤급 P정은 구조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P정이 관공선으로 인계한 구조인원은 47명이었다.

09시56분
학생(死)의 카톡-"엄마아빠…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요, 보고싶어요 ㅠ ㅠ"


<<乖離(괴리) 보인 목포해경과 현장 구조정 간의 상황인식>>


09시57분08초
P 123정장:“아. 현재까지 구조인원은, 현재는 인원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원은 진도 707 행정선이, 행정선이 본국 옆쪽에 계류해가지고 그 쪽으로 구조인원을 인계하고 나서 다시 구조하겠습니다. 이상.”
상황실:“그렇게 그쪽으로 인계하고 나서 貴船(귀선)은 신속히 가서 계속 구조하기 바랍니다.”
P 123정장:“완료. 완료.”

09시57분45초
당시 P정은 영상정보를 전송할 ENG 카메라 같은 장비가 없었다. 목포해경서장은 사고 현장의 영상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채 P정에게 지시를 하는 중이었다. P123정장의 상황 묘사를 상황실에서는 상상력으로 조합하면서 구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현실과 괴리가 발생했다.
목포 서장:“기울었으면 근처에 어선들도 많이 있고 하니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고함을 치거나 마이크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 반대 방향으로?”
P 123정장:“123. 여기는 123. 현재 左舷(좌현)이 완전히 침수되어 가지고 좌현 쪽으로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완전히 눕힌 상태라서 항공에 의한 구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상.”
목포 서장:“그러니까 항공 구조는 당연히 하는데-. 정장이 판단해 가지고 우현 쪽으로 좀 그 난간 잡고 올라가서 뛰어내리게 해서 바다에서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검토해. 그렇게 해야지 만약에 침몰 직전에 위험이 더 크니까 뛰어내리게 조치하라구.”
P 123정장:“수신완료. 참고로, 현재 여기저기 사람들이 다 있는데 못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그 지시한 대로 좌현 쪽으로 한 번 해보고, 하라고 계도하겠습니다. 이상.”
목포 서장:“차분하게, 차분하게. 마이크를 이용해서 활용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당황하지 말고 우리 직원도 올라가서 하고, 그래 안하면 마이크를 이용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10시02분 생존학생 카톡-“96도 기울었대요, 아예 못 일어나요”>>


09시59분
학생(死) 카톡-"너무 무서워, 핸드폰 제대로 안돼고, 지금 캐비닛 (엎)어져서, 옆방애들 거기에 깔렸어, 어떡해"

09시59분30초
서거차도에 1차 구조자 6명을 내려준 뒤 다시 돌아온 해경 팬더 B 511호에서는 62도 이상 넘어진 세월호 외부의 난간을 붙잡고 앉아 있는 여러 명의 승객들을 발견한다. 그들 옆으로 구조대원들은 船體(선체) 외벽의 창틀을 발판삼아 엉금엉금 기면서 이동하고 있다. 난간 밖으로 나온 승객들도 비슷한 자세로 이동 중이다.

09시59분40초
船尾(선미)측 4층 발코니 통로에 구명조끼를 입은 6명 가량의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을 잡고 있다.

09시59분50초
해경 B 511 헬기에서는 두 명의 구조대원이 유리창을 바닥삼아 앉은 채 아래층 외벽 난간에 매달린 승객들의 구조 방법을 논의 중이다.

10시00분
세월호가 64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학생 카톡-“배가 60도 기울었는데 침몰하고 있어”
생존 학생 카톡-"아직은 괜찮은데 밖에 있는 애들이, 아뇨, 전화 안터져요"

10시01분05초
헬기에서 내려진 1인용 바스켓에 2명씩 태워 올리기 시작한다. 5층 꼭대기 난간 끝에는 구명조끼를 입은 여학생이 홀로 난간에 앉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무렵 단원고등학교가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단원고]현재 120명…(판독불가)…계속 안전하게 구조중에 있습니다. 정보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0시01분33초
김홍경 씨 영상–배는 완전히 기울어져 벽이 바닥으로 변한 대신 바닥은 또다른 벽이 된 장면을 담았다. 난간 밖으로 구조헬기가 보인다.

10시02분
생존 학생 카톡-“96도 기울었대요, 아예 못 일어나요, 배 안이요 ㅠ ㅠ”
학생(死) 카톡-“90% 이상, 기울었대”

<<양대홍 사무장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갈 거야”>>

10시03분
선원 출신의 양대홍(45) 사무장은 핸드폰으로 부인 안소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 전 청해진 해운에 입사해 근무하다 사무장으로 진급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까 그걸로 아이들 등록금 해라.”
아내가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길게 통화 못해.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갈 거야.”
양 사무장은 그 길로 선원식당 칸에서 아르바이트생 송 모(19) 군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송 군은 생존자에 포함됐다.
아내 안소현씨는 “남편이 그 상황에서 탈출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며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러 더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말했다.(채널A 인터뷰. 5월15일)

10시03분40초
B511 헬기가 3층 난간에 나와있는 승객들을 한 명씩 바스킷에 태워 구조중이다. 어업지도선 전남 207호가 현장에 도착한다.

학생 문자 메시지-"구명조끼 입고 애들 모두 뭉쳐 있으니까. 아직 복도. 지금 걸어갈 수 없어. 복도에 애들 다 있고 너무 기울어져 있어."


<<“애기 여기요! 애기 여기 있어요!”>>

10시04분경
4층에서는 최승필 씨가 출구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때 여섯 살바기 권지연 양을 보호하고 있던 학생들이 최승필 씨에게 일제히 소리쳤다.
“애기 여기요! 애기 여기 있어요!”
“애기 여기 있어요!”
모든 학생들이 아기부터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최승필 씨가 아기를 건네받고 보니 아침에 휴대전화를 충전하러 갔다가 마주친 권지연 양이었다. 그는 권지연양을 잡은 채 조금 더 올라갔다. 그러나 더 이상 붙잡고 오를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앞에 소방호스가 내려져 있었다.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권지연 양을 묶어 올리기에는 너무 짧았다. 그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동수 씨와 눈이 마주쳤다. 소리를 질렀다.
“소방 호스 좀 더 내려 주세요. 이 애를 묶어야겠어요.”
김동수 씨가 호스를 끌어다 더 내려주었다. 최승필씨가 호스를 당겨 아이를 묶으려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그때였다. 안개처럼 증기가 올라온다 싶더니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닷물이 쏴아 하면서 밀려 들어왔다. 4층이 물에 잠기던 순간이었다. 그 물살에 자판기가 쓰러진 채 둥 둥 떠내려갔다. 그 사이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무렵 로비 안쪽으로 물이 차오르자 단원고 학생들이 일거에 탈출한다. 단원고 2학년 6반 남윤철(36·영어) 교사와 체육·학생인권부장 고창석(43) 교사 등이 학생들을 출구 쪽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두 교사는 물살에 휩쓸렸다. 급박한 순간이 닥치자 교사들은 학생들을 먼저 구하려 애쓴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은 안전교육이나 구조방법에 문외한이었다. 단원고 교사 14명 중 11명이 船室(선실) 내에서 사망해 직군별 생존율 최하(21.4%)를 기록했다.


<<어업지도선 박승기 항해사, 바닷물에 뛰어든 사람 없어 이상하게 생각>>

10시04분15초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201호 박승기(44) 항해사가 탄 1톤급 어업지도선 201호가 500m 전방에 옆으로 쓰러져 침몰중인 세월호로 접근중이었다. 카메라가 장착된 헬멧을 쓴 박승기 항해사는 세월호에 가까이 갈수록 船體(선체)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물과 싸우고 있을 줄 알았으나 예상과 달라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 시각 세월호의 기울기는 65도를 넘어서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업지도선이 세월호로부터 30m 정도로 가까이 근접하자 비로소 船尾(선미) 난간에 몇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배를 그 쪽으로 몰았다.

이 무렵 피시헌터호 선장 김현호씨는 전속력으로 배를 몰아 세월호 부근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피시헌터 호를 따라 태선호도 달려오고 있었다. 두 척의 소형 어선으로 달려오던 네 사람은 현장에 다가설수록 할 말을 잃었다. 난생 처음 보는 대형 여객선이 65도 가까이 왼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져 가는 여객선 주위로 해경의 123艇(정)도 보였고 고무보트 고속 단정과 관공선도 보였다. 무엇보다 대형 상선 네 척과 중형급 어선 50여 척이 쓰러져가는 여객선 주위로 몰려든 채 대기중이었다. 이들 선박은 갑판이 높아 세월호 선체에 접안이 어려운 배들이었다. 접근해서 구조할 수 없는 배였던 것이다. 50여 척의 배들이 구경하듯 세월호를 빙 둘러싼 채 대기하는 틈 속으로 배를 몰고 접근했다. 해경 순찰정들이 어선들의 세월호 근접을 막았다. 2차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김현호씨는 이해는 했으나 쉽게 빨려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큰 배가 가라앉으면 작은 배가 딸려가긴 하는데, 지금처럼 천천히 물을 먹으면서 가라앉으면 괜찮을 성 싶었지요.”

그는 배를 몰아 가까이서 보니 세월호 선체 위로 객실 3개 층이 보였는데 그 중 1층과 2층은 벌써 수면 아래로 잠겼고 3층도 흐린 물살이 넘실대고 있었다. 거기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을 해경의 고속단정과 두 척의 어업지도선이 이리저리 움직여 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구조 규모는 소규모였다. 김현호 씨는 배가 가라앉는 속도에 비해 구조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0시05분경
학생(死) 카톡-"너무 무서워"

3층 船首(선수)쪽 多人室(다인실)에서는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에 다섯 사람이 벽쪽의 선반으로 밀려났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 선반들은 가로로 길게 설치돼 칸 칸마다 담요와 구명조끼가 차곡차곡 놓여진 곳이다. 그런데 배가 기울면서 이 선반이 세로로 세워졌다. 선반의 칸막이들이 발판으로 변했다. 다섯 명은 사다리가 되어버린 선반에 줄줄이 매달렸다. 이들은 연신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피해 선반을 밟고 한 칸씩 위로 이동해 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先頭(선두)에 선 청년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그의 앞에는 세월호 측면이 보이는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유리창을 통해 청년은 해경의 P 123정을 발견한다. 그는 창 밖으로 P정이 접안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유리창에 구명조끼를 대고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바닷물에 밀려 선반을 붙잡고 매달린 지 15분 만이었다.

P 123정의 해경들이 세월호 船首(선수) 아래쪽의 3층 선실 유리창으로 주황색 구명조끼를 흔들면서 구조 요청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여기야. 여기! 여기, 깨! 여기! 여기!” 해경들이 소리치며 작은 쇠뭉치로 유리창을 가격하기 시작했지만 번번이 쇠뭉치가 퉁겨졌고 유리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대원이 다른 도구를 찾으러 P정 후미로 사라졌다. 유리창 아래로 사람들이 절박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10시05분52초
선체 내부의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P정 승조원들이 유리창을 깨려 애를 쓰고 있을 때 목포 서장은 P 123정장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목포 서장:“정장. 그러면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방송해 가지고 반대 방향 쪽으로 뛰어내리게끔 유도해봐. 지금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한 사람만 밖으로 빠져나오면 다 줄줄이 밖으로 따라 나오니까 방송해가지고 방송 내용이 안에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세요.”

현장을 보지 못한 목포 서장은 답답한 나머지 간절히 호소하듯 정장에게 지시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정장으로서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선체로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고, 선체로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시06분
학생(死) 카톡-“지금 구조중인데 저희 학교-학생 말고, 다른 승객들부터 구조중인가 봐요”

10시06분43초
P123정 대원이 쇠막대를 가져가 세월호 船首(선수)쪽의 3층 유리창을 가격하고 있었다.
이 무렵 단원고에서 학부모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안심시키기 위한 내용이었다.
[단원고]학생 우선으로 구조중이며 배가 침몰상태가 아닌 배가 기운 상태이며, 여러 척의 구조 배가 도착해 있는 상황입니다.

10시07분
세월호가 68.9도로 기울어졌다.

10시07분35초
P 123정이 세월호 船室(선실) 유리창을 깨는 데 성공했다. 세로로 세워진 선반을 밟고 선 사람들이 유리 파편을 피하기 위해 선반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채 기다렸다. 유리가 전부 깨진 다음에야 다섯 사람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그 중 두 사람은 배가 너무 기울어지는 바람에 해경이 홋줄을 창 속으로 넣어주어야 했다. 이들다섯이 갇힌 선실 내부에서 구조된 사람들이었다.

이때부터 세월호의 기울기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선체 속으로 물이 빨려 들면서 배가 더 빨리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기울기는 68.9도. 09시47분에 62도였던 것이 10분 동안 6.9도가 기울어졌는데 이때부터 10시10분까지 약 3분 만에 9도나 더 빨리 기울어진 77.9도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17분까지 불과 7분 만에 31도나 더 돌아버린다. 선체 위에서 헬기로 사람을 구조하던 박훈식 경위는 당시 상황을 “드럼통처럼 배가 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0시08분32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세월호 좌측 船尾(선미)에 도착한다. 이때 구명복을 입지 않은 남자 승객을 먼저 싣고서 동반 침몰을 피하기 위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옆에 207호도 같이 움직였다. 이들 뒤로 피시헌터호와 태선호가 도착해서 구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10시09분
학생(死) 카톡–“저희 배에 있어여.”
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10시09분20초
세월호 船尾(선미)에 다시 승객이 나타났다. 그는 기울어진 난간을 붙잡은 채 구조를 기다렸다. 어업지도선 201호가 재차 接岸(접안)을 시도한다. 접안이 되는 순간 어업지도선 요원 한 사람이 세월호 3층 난간으로 올라간다. 그는 위에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을 데리고 어업지도선으로 옮겨 태운 뒤 배를 후진시켜 오른쪽 후미 깊숙한 곳으로 재차 접안시킨다.

10시10분15초
행정선 전남 707호가 P123정 옆으로 접근해 고무보트 고속단정으로부터 구조자를 직접 옮겨 태운다.

10시10분20초
어업지도선이 세월호 船尾(선미)에 접안한 채 구명조끼를 걸친 세 사람을 옮겨 태운다. 이 때 두 남성이 맨 앞에서 기다리다가 구조선이 다가오자 뒤에 있던 나이 많은 여성을 먼저 태운 뒤에야 배로 올라탔다. 배가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은 난간을 거꾸로 붙잡은 채 움직이는 상황이 됐다.

[6] 10시17분 마지막 카톡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10시12분 학생(死) 카톡- “나 무서워, 너무”

10시11분경
故 박수현 군이 4층 右舷(우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단원고 학생 가족:“우리 아들이 핸드폰을 그날 갖고 갔으면 핸드폰이 물에 빠져서 연락이 안되는데 우리 아들이 핸드폰을 놓고 갔어요. 책상에. 그래서 계속 문자가 오길래 나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요. 지네끼리 무슨 장난하나 했더니 이때부터 사고가 난 거예요.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있어’라고 선생님이 그랬어요. 담임 선생님이. ‘지금 상황이 어때?’ 하고 애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아직 다친 애들은 없습니다’라고 답하니까 선생님이 ‘다행이다.’ 하니까, ‘선생님, 혹시 조끼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선생님이 ‘응. 입었어. 애들아. 움직이지 말고’ 그러니까 지들끼리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이따 만나자. 부디.’…지들끼리…”(SBS <그것이 알고 싶다> 4월26일)

10시11분15초
세월호 3층의 깨진 유리창에서 빠져나온 한 사람이 물에 빠진 채 파도를 타고 있었다. P 123정은 구명부이를 던져 승객을 구조하는 중이다. 이 사람에게 구명 부이가 달린 로프를 던지고 끝까지 잡아 당긴 사람은 P 123정에 구조된 세월호 승무원이었다.

10시11분20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구조자들을 태우고 관공선 진도 아리랑호로 이동하고 있다.

10시11분35초
진도 아리랑호에 구조자들을 옮겨 태운 어업지도선 201호가 다시 세월호 방향으로 船首(선수)를 돌린다. 같은 시각, 선수 쪽에서는 P 123정이 물에 빠진 승객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세월호 상공엔 두 대의 헬기가 제자리 비행을 하며 승객을 구조중이다.

10시12분
학생(死) 카톡-'나 무서워, 너무'


“니가 시방 나 죽여불라고 그러냐”

10시12분15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세월호 좌현 船尾(선미)쪽으로 접근중일 때 1.1톤급 소형 어선 피시헌터호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뒤로 어업지도선 207호가 구조자들을 싣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는 접안할 장소를 찾지 못한 채 뒤로 빠졌다.

당시 구조상황은 어업지도선과 해경의 고속短艇(단정) 등 세 척의 단정이 소수의 인원을 싣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근에 대기중인 행정지도선 전남 707호와 진도 아리랑호로 달려가거나 P 123정으로 가서 사람들을 옮겨 태운 뒤 다시 선체에 매달린 사람들을 구조하러 가고 있었다. 피시헌터호 김현호 선장은 좌현 선미쪽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김현호씨는 엔진 알피엠(rpm)을 올려 피시헌터 호를 세월호의 선미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다 경험이 김현호씨보다 더 많은 김승태씨가 “니가 시방 나 죽여불라고 그러냐”며 말렸다.
8층 건물 같은 덩치에 길이만도 145m에 달하는 거대한 船體(선체)가 가라앉고 있는데 자칫 배가 가라앉으면 세월호의 20분의 1도 안 되는 피시헌터 같은 1.1톤급 어선은 함께 水葬(수장)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P 123정도 피시헌터호의 접근에 경적을 울리며 경고를 했다. 하지만 선장 김현호씨는 3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이 겁이 나서 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물로 뛰어들면 구조할 수 있는 선박들이 많았지만 물이 무서워 가라앉는 배를 붙잡고 있다가는 배와 함께 가라앉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피시헌터 옆에서 같이 움직이던 태선호 선장 김준석씨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후미로 돌진해 접안한다.

10시13분
학생(死) 카톡-“몰라요 구조해준다는데”

10시13분05초
피시헌터호가 세월호 후미 접안에 성공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고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동승했던 김승태 씨가 구조에 앞장섰다. 후미에서는 어업지도선 207호, 해경 고속단정, 피시헌터호 등 短艇(단정) 세 척이 구조를 하고 있었다. 배는 거의 80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10시13분50초
사람들이 해경의 7인승 고속단정으로 옮겨 탔지만 뒤이어 사람들이 계속 올라타다가 고속단정 후미에 접안한 어업지도선 201호로 건너 타고 있다. 고속단정과 나란히 접안하고 있던 피시헌터호로도 사람들이 옮겨 탔다. 이어서 201호도 비좁아 공간이 없자 그 옆에 접안한 태선호로 사람들이 넘어갔다.


故 박지영 양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뛰어내리세요”

10시15분
안내데스크가 있는 3층 로비에서도 이 무렵 처음으로 대피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 전영문(61)씨는 故 박지영 양이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뛰어내리세요. 밖에 구조대 있어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당시 3층 로비엔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 20여 명을 포함해 30여 명의 승객들이 배의 왼쪽 벽을 바닥삼아 쓸려내려와 있었고, 바닥이 되어버린 3층 船室(선실) 왼편 창문과 출입구로 시커먼 바닷물이 거침없이 차올랐다. 박지영 양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난간에 매달렸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로비에 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바닷물 속으로 潛水(잠수)하기 위해 뛰어내렸고, 일부는 물에 떠밀려 4층 출구 쪽으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일부는 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 박지영 양도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10시15분15초
이 시각, 세월호 船體(선체) 각도가 90도가 됐다. 완전히 옆으로 서버린 것이다. 그 다음부터 선체는 계속 돌면서 구조선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어선과 단정, 어업지도선에 탄 구조대원들이 옆에서 구조하던 다른 대원들에게 고함친다.
“배가 많이 기운다! 배가 많이 기울어! 배가 많이 기운다고!”
“어! 배 기운다. 배 기울어! 어이! 배 기울어! 배 기울어!”
“배가 지금 계속 기울고 있다고!”
피시헌터호의 김승태씨도 김현호씨에게 소리쳤다.
“야, 너 배 들어간다!”
김현호씨가 비로소 상황을 파악하고 배를 急(급)후진시켰다.

10시15분24초
어선과 어업지도선 및 고속단정이 일제히 後進(후진)하기 시작했다.

10시16분07초
세월호가 100도로 넘어간다.

10시17분
세월호가 108.1도로 전복되는 중이다. 선체 외부의 모든 난간과 갑판이 물에 잠겼다. 이때 마지막 카톡 메시지가 학생으로부터 발송됐다. 이 메시지의 주인공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지금 더 기울어”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이 시각, 소방호스를 이용해 학생과 일반 승객 20여 명을 당겨 올렸던 화물기사 김동수 씨는 최후의 순간을 직감하고 자신도 탈출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의 옆에는 소방호스에 묶인 채 끌어 올려진 권지연 양이 바닥에 앉은 채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들고 안으며 객실 쪽을 돌아보았다. 이때 그는 물에 잠기는 유리창 안쪽에서 창문을 두드리던 학생과 일반 승객들의 마지막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이쪽에서 물이 차면서 이쪽 창문에 학생들하고 일반 손님들이 막 그 창문 때리는 거 봤고, 제가 나오면서 그거 다 봤거든요. 창문에서 물이 차면서 물이 안에서 잠기면서 밑에서부터 계속 잠길 때 때리는 모습을 다 봤으니까, 그것이 제일…”(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그는 몸을 돌려 나오면서 자기 옆에서 탈출하던 학생에게 권지연 양을 맡겼다. 단원고 2학년 박호진 군이었다. 그는 김동수 씨가 전해주는 권지연 양을 받아 안았다. 김동수 씨는 박호진 군의 등 뒤에서 박 군을 감싸며 바다 쪽으로 탈출을 시작한다. 바로 돌아서면 난간 밖 바다였고 단정들이 구조를 위해 달려들 기세였다. 마지막 순간인 듯 더 이상 船體(선체) 안에서는 머물 곳이 없었다. 김동수 씨와 박호진 군은 물론 부근의 모든 승객들이 일제히 바다로 몸을 돌렸다.



201호 선장의 고함 “잡기만 해! 잡아! 잡아! 잡아!”

10시17분10초
110도로 기울어진 세월호가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는 다시 세월호 부근을 선회하다 절반 이상 가라앉은 선체 중앙의 屋外(옥외) 계단 부근에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을 발견하고 침물중인 세월호로 접근한다. 어업지도선의 한 요원이 고함과 손짓으로 접안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10시17분35초
110도 이상으로 세워져 顚覆(전복) 직전인 세월호 각 층의 갑판은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채 회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속은 급류였다. 한 사람이 세워진 5층 갑판과 4층 갑판 사이 골목처럼 변한 곳에서 201호 쪽으로 물살을 가르며 솟아나듯 나타났다. 201호 선장이 고함을 쳤다. 박승기 항해사가 손을 뻗었다.
“잡기만 해! 잡아! 잡아! 잡아!”

10시17분50초
201호의 두 요원이 승객의 양팔을 잡아당겼다. 201호가 파도에 휩쓸린 채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승객은 201호 갑판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생명을 구한 것이다.

10시18분09초
세월호는 바닥을 하늘을 향하여 드러낸 채 옆으로 완전히 누워 버렸다. 갑판은 海面 밑으로 잠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측 外壁(외벽)의 영문로고 CHUNGHAEJIN이 수면과 나란히 깔린 채 하늘을 향하고 있다. 외벽의 유리창들도 일제히 하늘을 향한 채 물 밖으로 간신히 그 모습만 보여주는 중이다.


“門(문)이 계속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물 속으로…”

10시18분34초
좌현부터 쓰러지며 수면과 나란히 드러누웠던 세월호의 우현 외벽 유리창들이 5층 꼭대기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배가 한 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그 위로 4층과 3층 유리창들이 물 위로 올라와 3층이 맨 위가 되고 4층이 아래로 뒤집어지고 있다. 어업지도선 201호가 물에 잠긴 유리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현 4층 船室(선실) 끝 통로와 난간 부근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나와 매달려 있다. 고속단정도 201호와 나란히 기울어진 선체 중앙으로 접안을 시도한다.

10시18분56초
선체 옥상이던 5층 우현이 완전히 물 속으로 잠기고 4층도 잠겨가는 순간, 어업지도선 207호가 3층 발코니 쪽으로 접안을 시도하고 있을 때 201호는 진회색 바닷물이 일렁이는 4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201호는 바닥처럼 깔린 유리창 위로 접안한 상태였다. 뻘물처럼 흐린 바닷물이 격하게 일렁이며 4층 유리창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애타게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10mm가 넘는 두꺼운 유리창으로 인해 그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고 안타까운 몸짓만이 어른거렸다. 201호의 왼쪽에서는 해경의 고속단정도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언덕처럼 변해가는 세월호 右舷(우현) 외벽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당시 박승기 항해사는 이런 증언을 남겼다.
“4층 객실에 門(문)이 하나 열려 있고,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데 한 1분 있으니까 그 문이 물 속으로 잠기는 거예요. 문이 계속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물 속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고무보트가 집중 구조


10시19분00초
세월호의 좌현과 갑판은 모두 물 속으로 처박힌 채 배가 점점 더 돌고 있었고 右舷(우현) 베란다 쪽과 선체 우현 외벽만이 물 위로 비스듬이 솟아 경사면을 이룬 상태에서 사람들이 대거 물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5층은 완전히 물 속으로 들어갔고 4층 난간 쪽은 외벽이 물 밖에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3층은 온전했다. 201호가 달려들었다.

이때가 많은 승객들이 한꺼번에 탈출하던 순간이었다. 십여 명의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권지연 양을 안은 박호진군과 그를 뒤에서 보호하던 김동수씨도 밀리듯 201호의 船首(선수)에 닿을 수 있었다. 박호진 군은 배에 오르지 않고 201호 요원들에게 애기부터 받으라고 소리쳤다.
“애기! 애기!”
이미 구조되어 201호 단정에 타고 있던 학생도 덩달아 소리쳤다.
“애기! 애기!”
구조요원이 박 군으로부터 애기를 받아 뒷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순간 박 군과 김동수씨가 201호 선체로 올라설 수 있었다. 김동수 씨는 권 양을 살펴보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방호스로 구조하던 김성묵 씨도 이때 막 배를 타고 탈출하게 된다. 201호가 이들을 태우고 뒤로 물러날 때까지 약 40초 동안 4층 난간도 흐린 물 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이 순간 세월호 4층 난간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닷물 속에서도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때 부근에서 맴돌던 피시헌터호가 달려 들었다. 선장 김현호씨가 배를 몰고 김승태씨가 배의 船首(선수)쪽에 납작 엎드려 상체를 앞으로 최대한 내민 채 두 팔을 뻗었다. 물 속에 빠진 채 난간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달려오는 피시헌터호를 보며 손을 뻗는다. 거리는 약 5m 정도였다. 피시헌터호는 이들의 손을 잡아 당겨 배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10시19분07초
세월호가 계속 몸체를 틀면서 가라앉자 이때부터 사람들은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피시헌터호의 김승태씨가 이물(선수)쪽에서 손을 뻗어 사람들을 붙잡을 때 선장 김현호씨는 엔진을 계속 걸어둔 채 자신도 배 옆으로 나와 물에 빠진 사람의 구명조끼를 잡아 당겼다. 피시헌터호는 마치 언덕 위로 올라서듯 비스듬하게 경사면을 이룬 세월호 우현 외벽 위로 힘겹게 붙고 있었다. 그 옆으로 해경의 고속단정인 고무보트에서도 사람들이 구조되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에도 이물쪽으로 구조요원들이 나와 세월호 난간쪽의 사람들을 건져 올렸다. 다시 그 오른쪽으로는 김준석씨가 모는 태선호가 세월호 3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세월호 後尾(후미)쪽에 위치한 어업지도선 207호도 물 속의 사람들을 건져올리기에 바빴다.

10시19분25초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고무보트 주변으로는 바닷물로 뛰어든 사람들이 다가와 매달렸다. 피시헌터호에 탄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구명조끼를 붙잡고 끌어올렸다. 해경의 7인승 고무보트에서는 금방 수십 명의 구조자들로 滿船(만선)이 됐다. 발디딜 틈이 없자 구조된 사람들 대여섯 명이 바로 옆 피시헌터호로 옮겨 타기 시작한다. 201호 우측으로는 태선호가 김대열(44)씨를 이물쪽에 앞세운 채 밀고 들어가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배를 들이밀었다. 주변에서는 50여 척의 선박들이 이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10시20분, 短艇(단정)들이 구명조끼 입은 승객들을 건져 올리다

10시19분30초
잿빛 바닷물이 4층 유리창을 완전히 점령했다. 세월호에서 사람이 하늘을 보고 숨 쉴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피시헌터호의 김현호씨는 그 와중에 물결 아래로 보이는 유리창 속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창문마다 한 명 혹은 두 명씩 있었다고 기억한다. 김현호씨는 그들을 향해 출구쪽을 가리키며 “옆으로 오시오! 옆으로!” 하고 손짓을 섞어가면서 외쳤다. 그러자 안에서는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 김현호씨는 왜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배 안에 통로가 연결되어 있을 텐데 왜 출구쪽으로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은 배가 기울어져 이동도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육중한 철제문이 덮개로 변해버려 안에서 열고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10시19분52초
좌현이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간 세월호의 船首(선수) 쪽 우현 5층과 4층도 완전히 잠겼다. 船尾(선미)쪽은 우현 3층과 4층 절반이 잠겼다. 선체 중앙, 외벽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단정, 어업지도선 201호 등 소형 선박 세 척이 구조 중이었고, 그 우측 10여m 떨어진 곳에 태선호가, 다시 20여m 떨어진 곳에 207호가 파도와 싸우며 가라앉는 세월호에 접안을 시도 중이다.

10시20분14초
우현 3층의 後尾(후미)도 잠겼다. 피시헌터호는 22명을 태운 채 물러났다. 태선호도 20명을 태운 채 뒤로 빠졌다. 어업지도선도 더 이상 접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세월호는 접근하는 구조선박들을 외면하듯 몸을 돌리면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경의 고속단정이 마지막까지 접안을 시도하며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건져 올리고는 뒤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10시20분46초
우현 3층 선미쪽은 유리창 다섯 칸을 남기고 후미 끝까지 물 속에 잠겼다. 단정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떠 있는 승객들을 건져 올렸다.

10시21분11초
3층 전체가 물 속에 잠겼다. 유리창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구조활동을 벌이던 구조선들이 인근 선박으로 사람들을 옮겨 태우고 있다.

10시21분19초
세월호가 최후의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물보라를 길게 내뿜으며 船體(선체)를 완벽하게 뒤집기 시작한 것이다. 2층 유리창이 水壓(수압)으로 터져 오르면서 물보라가 솟았다.


에어 포켓은 처음부터 없었다

10시21분53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닷물에 떠 있는 승객에게 접근해 건져 올린다. 이때 세월호의 船室에는 에어포켓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일반 어선과 같은 鐵製 隔室(철제 격실)이 아니라 세월호의 격실은 모두 합판으로 조립 구성된 공간이었다. 水密(수밀)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일반어선에 에어포켓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은 배가 측면으로 바가지 엎어지듯 갑자기 전복되었을 경우에에 한한다. 서서히 돌아누울 경우는 배 안의 모든 빈 틈을 물이 비집고 들어가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호는 1층 화물칸 D데크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09시30분부터 약 50분 동안 합판 재질의 객실들을 한 층씩 채워가며 전복되었기 때문에 에어포켓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설사 사고 현장에서 스쿠버 구조요원들이 잠수를 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생존자가 구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수중 溺死(익사) 사고는 3분이 결정짓는다. 3분이 경과하면 호흡정지로 뇌에 전달되어야 할 산소공급이 차단된 우리의 신체는 기능이 정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사실을 아는 현장 사람들은 ‘끝났구나!’ 하는 탄식과 눈물어린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은 채 돌아서야 했다.

10시22분30초
세월호는 군청 색깔의 바닥을 水面(수면) 위로 드러낸 채 완전히 뒤집어졌다. 엔진이 실린 後尾(후미)쪽은 물 속에 가라앉았고 船首(선수)쪽 절반만 물 밖으로 나온 채였다. 선수 아래의 球狀船首(구상선수·Bulbous Bow)가 45도로 하늘을 향해 들려졌다. 돌고래 같았다.

10시22분37초
선체 측면의 배수구로 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계속해서 선체 내부로 물이 채워지는 것이다.

10시22분48초
세월호는 점점 가라앉으면서 왼쪽으로 돌아눕기 시작했다. 선체의 80%가 완전 침몰된 채 선수 쪽 일부만이 남았다. 이곳은 균형수가 실려 있을 곳이었지만 평형수가 빠진 관계로 텅 빈 공간 속에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10시35분 사실상 세월호의 구조작업은 종료

10시23분23초
선수 右舷(우현) 외벽에 표시된 영문로고 ‘SEWOL 세월’이 하늘을 향했다. 비어있던 밸러스트 탱크에 남은 공기로 인해 한동안 세월호는 구상선수만 물 밖으로 내민 채 잠겨버렸다.

10시25분48초
해경 B511호 헬기가 공중 선회중이다. 주변엔 컨테이너 박스들과 스티로폼, 일반 화물 들이 어지럽게 떠 있다. 단정들이 수상에 사람이 있는지 계속 선회하며 수색중이다.

10시28분
P 123정이 전남 어업지도선 207호 단정으로부터 의식불명인 익수자 한 명을 인수 받았다. P정 갑판에서 海警(해경)들의 심폐 소생술이 실시됐다.

10시31분
약 3분 뒤 이 사람은 급하게 물을 토하며 가쁜 호흡을 시작했다.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해경은 그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때를 35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사람의 신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해경의 기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0시 35분을 기점으로 사실상 세월호의 구조작업은 종료되었다.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09시30분부터 구조가 시작되어 10시35분까지 65분 동안 P 123정, 고무보트 고속단정, 헬기 3대,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 민간 어선 피시헌터호와 태선호 등 5척의 선박과 1척의 단정 그리고 3대의 헬기가 172명을 살려낸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 세월호로부터 양 팔을 자유롭게 흔들면서 두 발로 바닥을 밟으며 ‘걸어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생존본능에 의지한 채 붙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면서 몇 번의 마음 졸임 끝에 겨우 살아남은 것이었다.

10시 42분
세월호 침몰 선체 부근 해역에서 P 123정의 고무보트가 한 명의 익수자를 발견하고 인양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고 얼굴에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P정 갑판으로 옮겨 즉각 심페 소생술을 실시했지만 5분 후에도 어떤 생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P 123정은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이었다. 이로써 수상구조는 막을 내려야만 했다. 더 이상 구조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0시 48분 19초
P 123정 김경일 정장과 목포 서장과의 마지막 교신이 있었다.
상황실:“그럼 지금 선박에는 여객선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123정장:“현재 확인이 안 되나 승무원 말 들어보니까 학생들이 이삼백 명 탔다는데 많은 학생들이 못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황실:“그럼 많은 학생들이 선박 내에 있다는 것이 정확한지.”
123정장:“정확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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