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아시아 女性기금' 재평가 필요

아사히 신문 기획기사.
2014. 12. 28. 아사히(朝日)신문

위안부 문제를 보다 다각도로 생각해 보기 위해, 국내외
식자(識者)의 다양한 관점을 소개해 드리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 오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
東京大 명예교수, 明治大 특임교수. 국제법 전공.
저서 <위안부 문제란?> <동경재판・전쟁책임・전후책임> 등

아사히(朝日)신문의 위안부 보도에 대한 '제3자 위원회'
보고서가 제출되고 사장이 기자회견을 가지며 명예회복을
맹세했다. 여기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란, 2차 대전중, 일본군 장병에게 계속적으로 性的
봉사를 강요당한 여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안부 제도의
희생자는, 日本, 中國, 韓國, 필리핀, 네덜란드 등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 중에서, 필리핀과 네덜란드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日本의 보상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해주었지만,
韓國은 日本의 보상방식을 강하게 비판해 왔고, 日本은 또
이러한 韓國의 반응에 강하게 반발하는 式이 전개되어 오면서
日韓간 심각한 정치문제가 현재 되어버린 상황이다.

日本은, 朝鮮을 1910년에 병합했고, 1945년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韓國과 1965년에 국교정상화를 했다. 그때, 日韓
양국은 식민지 시대의 청구권을 서로 포기(放棄)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배에 따른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여성인권의 고양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부각되고
日本은 이미 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판단한 이 문제에
직면하는 곤란한 상황이 전개됐다. 1995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日本內 의견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무라야마'(村山)
내각과 각계 오피니언 리더가 협력하여 '아시아 女性기금'이
탄생했다. 日本은 그후, 역대정권 총리 명의로 된 사죄편지와,
국민들로부터 형성된 기금으로부터 보상금 200만엔(円),
日本國費 의료비 120만~300만엔(円)을 364명의 前위안부
각자에게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고, 여성의 인권문제에 매진해
왔다. 이같은 노력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무라야마(村山)담화에 기초하여 日本정부와 국민들의 마음을
담은 사죄와 보상으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시책이었다.

하지만, 韓國의 지원단체와 언론들은, <罪를 인정하지 않는
日本으로부터 '위로금'을 받으면 피해자는 공창(公娼)이
되고 만다>는 式으로까지 주장하며 日本으로부터의 보상을
거부토록 하며 역으로 日本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이러한 韓國의 모습은, 日本 국민들로 하여금 깊은
실망에 빠지게 만들었고 결국 현재와 같은 日本의 '嫌韓'
'우경화'를 초래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아울러, 日韓 언론들은 보상금을 <위로금>이라고 보도하고,
美國이나 유럽의 언론들은 위안부를 <성노예>로 잘못
표기하는 등 부적절한 편견에 치우친 보도를 반복해 왔다.
日本 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보도에 제대로 반론을 하지
않았고, '아시아 女性기금'의 여러 보상활동을 홍보하는
일에도 무심했다. 여기에 더하여, 제1차 아베(安倍)내각에서
일부 정치가의 부적절한 발언 등이 문제가 되고 일부 嫌韓性
발언이 여러 나라의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성노예 문제를
반성하지 않는 日本>이라는 이미지가 국제사회에 퍼지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여러 문제와 더불어 한편으로 가장 소홀히 여겨진
것은, '아시아 女性기금'에 의한 보상활동에 대한 검증
(재평가) 작업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학자, 평론가, 지원단체 관계자, 저널리스트
등일 뿐, 정작 모든 피해자 각각에게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를 직접 전하고 지금도 피해자를 돌보며 애쓰는 아시아
여성기금 관계자 및 사무국 관계자와 그들의 활동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 상태다. 학자나 평론가 100명의 그럴듯해
보이는 의견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한 명의 의견이 더욱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적 오류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하기는 힘들다. 언론들은 지금까지
한쪽만 보고 선동적인 방향으로 보도해 온 것을 깊이
반성하고, '아시아 女性기금'과 '日本정부'가 펼쳐온 보상
활동을 상세하게 소개해 줄 필요가 있다. 日本 정부 역시
이러한 그동안의 노력들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한편,
특히 위안부 문제에 있어 소극적 자세로 비춰지고 있는
아베 수상의 경우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일반 국민들은, <그들은 강제연행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매춘부인가?>라는 式의 무의미한 대립 구도에
빠질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위안부 제도로
인한 희생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가혹한 인생을 살아온
그들의 남은 인생이나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日韓 양국 정부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협의는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원인은, 각자의 국내에 만연한 편향된 강경 여론
때문일 것이다. 日韓 양국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제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근본적
(솔직한) 이해가 무엇보다 불가결하다.

● 아시아 여성기금
정식명칭은, <女性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前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담화' 발표에
따라 1995년 7월에 발족했다. 日本수상 명의의 사죄 편지와
보상금 200만엔(円), 日本國費 의료비 120만~300만엔
(円)을 前위안부에게 지급했다. 일정한 역할을 종료한 후
2007년 3월에 해산했다. 韓國의 경우, 韓國정부 인정 前
위안부 207명(2002년 시점) 중, 61명이 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대만은 13명, 필리핀은 211명이 지원을 받았다.
네덜란드의 경우, 의료복지사업으로 79명이 지원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前위안부 인정이 곤란한 사정으로
인해, 고령자 시설로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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