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일이 한국에 미친 영향4/7


[동아시아 4국 구도의 성립]

당, 신라, 발해, 일본.
이 기본 구도는 후금이 이름을 청으로 바꾸어 중원과 주변을 다 아우르면서, 만주를 결과적으로 한족에 몽땅 바치게 되기까지 계속된다. 무슨 이유인지(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를 얘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청은 조선을 두 번에 걸친 침략으로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독립국의 지위를 부여했다. 군대도 주둔시키지 않았고 관리도 단 한 명 보내지 않았다. 그 백성을 이주시키지도 않았다. 현재는 중국, 한국, 조선, 일본--이렇게 네 나라로 갈라져 있다.

한족은 260년간 만주족의 지배를 받은 대가로 만주를 주웠지, 스스로 정복해서 편입한 게 아니다. 고구려 이후에도 1000년간 만주는 우리 나라와 중국의 완충지대로 남아 있었다. 만약 청이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지 않고 양자강 이북만 지배하고 그 아래는 신하국으로 삼고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만주는 오늘날도 중국 땅이 되었을 리가 없다.

만주가 중국에 편입된 것은 최근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라의 삼국통일과 함께 바로 만주가 중국 땅이라도 된 듯이 비분강개하는 자들은 괴이한 정치적 목적이 있거나 역사를 보는 눈에 두꺼운 녹내장이 끼어서 아무리 보아도 역사적 사실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주족의 욕심이 과하지 않았으면, 만주만이 아니라 중국의 노른자위인 화북과 화중도 오늘날의 중국에 편입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족이 260년간 치욕적인 3등 국민 생활을 하고 어느 날 둘러보니, 인구가 너무 적은 만주족이 그냥 없어졌고 천만뜻밖에도 주인 잃은 만주가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차지한 것이다. 노예 생활 260년 후에 어느 날 눈을 비비고 보니까, 만주가 중국에 편입되어 있었던 셈이다.

만약 우리 조상이 현명하여 일본처럼 산업화를 일찍 시작했으면, 만주는 그냥 완장을 차고 가서 금만 그었으면 우리 땅이 될 수 있었다. 국가간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에는 국경선이 대대적으로 변경되는데, 이렇게 힘이 없으면, 결정적인 시기에 국경선을 넓히기는커녕 남의 식민지가 되거나 멀쩡한 국토도 두 동강 세 동강 난다. 선의든 욕심이든 힘과 지혜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우습게' 만주를 차지한 중국은 그 땅의 역사도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발해, 요, 금, 원, 후금이 지배했던 만주의 역사를 몽땅 중국사에 편입하고 과거의 수치심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특히 노예 생활 260년은 너무 수치스러우니까, 한족은 청의 치세에서도 주인 생활을 계속한 듯이, 만주족도 중국인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역사를 철두철미하게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만주족은 사라져버려서, 그렇게 해도 이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중국인에 대해 전혀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우월감을 맛볼 수 있다.

패권주의를 단호히 배격한다는 말로써 미국과 소련을 경계하는 동시에 제3세계의 맹주 역할을 하던 중국이 이제 개혁개방 덕분에 부국강병에 어느 정도 성공하자마자 바로 패권주의를 사모하여 경제나 정치와는 달리 눈에 잘 안 띄는 역사를 국가 차원에서 왜곡하기 시작한다.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면서. 이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에 편입해도 누구 한 사람 뭐라고 하지 않지만, 두 역사만이 좀 부담스럽다. 못 살고 인구도 적지만 아직도 몽골이 건재하기 때문에 원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좀 껄끄럽고, 남북으로 갈려져 있지만 인구가 7천만이나 되고 특히 한국은 중국보다 열 배나 잘 살기 때문에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다투어 중국에 아첨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제 중국은 남북한 공히 우습게 보고 노골적으로 고구려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통째로 왜곡하려 든다. 얼마나 남북한을 우습게 보았으면, 대만까지 합세한다. 중국의 예상대로, 아니나 다를까, 제 죽을 줄 모르고 다투어 반미친중 정책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남북의 두 정권과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은 그 흔한 촛불 시위 한 번 할 줄 모른다. '역사 우려먹는' 데 도가 튼 정부와 여당과 친정부 세력들은 그저 들릴 듯 말 듯 입안에서 웅얼웅얼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다.

엉뚱하게도! 당이 백제 멸망 후, 그리고 고구려 멸망 후, 그 땅만이 아니라 신라마저 다 집어 삼키려고 하여 나·당이 치열하게 8년간 전쟁을 치른 것은 쏙 빼고, 만주는 당 역시 발해에게 다 빼앗긴 것도 쏙 빼고, 김춘추와 이세민이 서로 속내를 숨기기 위해서 평양을 경계로 땅을 가르자고 한 아무런 효력이 없는, 당이 백제와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려는 그 순간부터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1400여년 전의 약조에서 한국 역사의 원죄를 찾아서, 지금 당장 고구려사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통째로 부인하려는 되놈들을 욕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백골이 진토된 아득한 옛날의 우리 조상을 욕하는 자까지 애국자연하고 있다. 당이 보낸 첩자의 후손임에 분명하다. 뮌헨조약이 언제 지켜졌으며, 독소 불가침 조약이 언제 지켜졌으며, 베트남의 평화협정이 언제 지켜졌는가. 그렇게 국제 조약이 대단한 것이라면, 이완용이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기로 한 한일합방조약도 잘 지켜서 우리나라를 지금도 일본의 식민지로 바쳐야 하는가.

외교 홈피에서 현대사 이전의 역사를 싹 지운 채로 외교적 용어로 한 '구두 약속'도 약속이라며 고구려사를 왜곡 않겠다는 중국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어서' 그걸 무슨 대단한 업적인 양 정부와 여당은 떠들어댄다. 원자탄 두 방으로 중무장한 100만 일본군으로부터 소총 한 자루 제대로 못 갖춘 독립군마저 1000명도 없던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주고,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유의 여신이 손짓 한번 하자 수십만이 부나비처럼 날아와서 스스로 3만5천의 목숨을 자유의 제전에 거룩한 희생양으로 바침으로써 지옥의 입구에서 아슬아슬하게 뒷덜미를 잡아채 우리나라를 천신만고 끝에 이승으로 들쳐업고 온 친구의 친구조차 집요하고 야비하게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털어서 먼지를 내기 작전'으로 신경을 박박 긁으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통째로 부인하고, 번번이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호시탐탐 옛 고구려 땅의 노른자위인 북한도 삼키려는 나라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도 이해심이 깊은지 모르겠다. 이건 약과, 북한은 입만 벙긋하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고려연방'을 천둥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줄기차게 외치지만, 세계제일의 욕 솜씨를 '중화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써먹지 않는다. 꼬리를 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스스로 꼬리를 떼어버리고 입에는 스스로 재갈을 물렸다. '자주' 한번 잘도 하는 셈이다. '주체' 한번 기막히게 하는 셈이다.

[신라의 쇠퇴와 당의 쇠퇴]

신라가 오랜 평화를 구가하다가 서서히 타락하면서 나라는 사분오열된다. 당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평화는 풍요한 물질과 짜릿짜릿한 쾌락을 미끼로 국가의 정신과 국민의 영혼을, 육체의 감각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 당의 해이해진 정신은 현종의 초기 개원의 치를 끝으로 북망산을 바라보는 황제부터 육체적 쾌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라가 갈가리 찢어졌다. 당이나 신라 모두 이웃 나라를 돌볼 틈이 없었다. 마침내 왕조가 교체된다. 고려와 송이 바로 그 두 나라이다. 서로가 분열 상태였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나라를 통일시켰다. 동맹이니, 연합이니, 군대파견이니, 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북방 유목 여러 대제국 등장과 고려의 선전, 송의 굴욕]

이 사이에 만주와 몽골이 그 힘을 비축했다. 마침내 여기서도 왕조가 바뀐다. 발해가 거란족의 요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게 경천동지할 만했다. 그들은 중국과 한국의 내분을 틈타 유목민 특유의 기질로 순식간에 천하제일고수가 되었다. 고려는 이름부터 고구려를 계승한 대로 만주를 다시 찾으려고 했지만, 새로 들어선 요에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요는 고려와 송 두 나라를 상대로 깃발을 앞세우고 말발굽을 거칠게 울렸다. 뒤에서는 천둥보다 더 센 북 소리가 둥둥 울렸다.

예상과는 전혀 달리 대요(大遼)는 작은 고려에게는 대패하고 큰 송은 마구 짓밟았다. 송의 조씨 왕조는 바깥을 눈여겨보지 않고 중원의 무기만 꺾어 두면 길이길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철저히 문치 위주로 황제 독재를 제도적으로 확립한 결과, 나라의 부에 비해 군사력이 형편없었다. 황하 이북은 순식간에 요의 땅이 되어 버렸다. 이 나라가 얼마나 강하고 부유했는지, 중국은 다시 실크로드를 넘어 서양에 그 이름을 떨쳤다.

진의 차이나와 요의 카테이(거란의 원래 발음. 홍콩의 항공 회사 Cathay Pacific으로 남아 있음)가 중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고려는 송과 달리 왕조 초기에 문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요의 침략을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서희의 담판은 요에 대한 문(文)의 승리이고 강감찬의 귀주대첩은 요에 대한 무(武)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강감찬은 원래 문신).

[文弱의 송,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국경선 밖을 내다보지 못한 송의 자만은 그 후에도 계속 코가 깨진다.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금에 이은 몽골족의 원, 이들에게 겁탈 당하다가 마침내 이민족인 원의 노비가 된다. 인구나 경제력에서 송과 고려 사이의 완충 지대인 만리장성 동북쪽은 도저히 무엇이 나올 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의 눈이 오로지 중원에 고정되어 있는 사이에, 이들은 그야말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순식간에 중원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송은 스스로 군사력을 키울 생각은 않고 이들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하려다가 도리어 참담하게 당했다. 그 승리자를 이길 힘이 없었기 때문에 송은 열심히 뇌물과 여자를 바쳤다. 그러나 초원의 아들들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에는 금방 체력을 회복하여 개미떼를 향하여 말이 짓밟고 가듯이 인구가 수백 배 많은 송을 짓이겼다. 요새 아이들이 전자 오락하듯이 전쟁놀이를 마음껏 즐겼다.

반면에 문무의 조화가 후기에 깨지긴 했지만, 고려는 이들 세 북방의 제국들이 마음대로 도모할 수가 없었다. 초기처럼 문무의 사이가 좋았으면 몽골도 물리쳤을지 모른다. 아쉽지만, 문신이 집권한 송과 달리 무신이 집권한 고려는 끈질긴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도 (江都) 39년 후에 항복했지만, 고려는 원 제국 유일하게 직접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를 받을 수 있었다. 자주, 자립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이에서 잘 알 수가 있다.

[명과 조선의 역사 데뷔]

유목민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한다.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가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세계 최강국 원(1271~1368)도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한족이 다시 일어섰다. 이 원명(元明) 교체기에 고려도 자체 모순으로 힘이 다한다. 조선으로 교체된다. 나라는 새로이 힘을 얻었고 국민들은 눈빛이 살아났다. 중국과 달리 여기는 그저 왕조가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 구성은 그대로였다. 다시 동양은 평화가 찾아온다. 명과 조선, 일본, 그리고 만주의 빈 땅.

[왜의 칼과 총]

전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던 왜가 고려말부터 서서히 그 칼을 번득이기 시작한다. 완전히 싸움꾼이었다. 그러나 조직적인 힘은 없었다. 모기 같고 각다귀 같았다.

그러나 조선과 명이 책에 취하여 칼을 녹슬게 하는 사이에 칼을 갈고 닦고 비겁하게 총으로 새를 잡지 않고 사람을 잡기 시작한 지 도합 100여년, 왜는 마침내 통일되어 동방불패로 거듭났다. 동아시아의 역학 구도에 본격적으로 끼어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조선을 전장터로 삼국이 7년간 세계대전을 벌였다. 조선과 명은 치명적인 외상(군사력에 의한 살상)과 내상(중화와 소중화란 문화적 자부심의 추락)을 한꺼번에 입었다. 그러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을 요구하진 못했지만, 지방 영주들이 다시는 반란을 꿈꾸지 못하고 생업에 몰두하게 했다. 일본은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후에 서양의 힘을 배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임진왜란의 최대 수혜자, 누르하치의 후금]

이 때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던 허허벌판의 만주에서 한 영웅이 태어났다. 그 이름 누르하치! 동아시아의 세계대전에서 최대의 혜택자는 바로 부족 국가를 이루어 흩어져 있던 이들 만주족이었다. 이들이 한 영웅 휘하에 여덟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들자, 그 세력이 얼마나 강대했던지 조선과 명은 거의 맥도 못 추었다. 천 자루의 붓을 단 한 자루의 칼로 모조리 동강내는 순간이었다. 불과 30만의 만주족(여진족)이 1억 5천만의 한족을 발아래 꿇리는 하늘도 놀랄 대사건이 벌어졌다. 이어 그들은 왕년의 세계제국 원을 벤치 마킹하여, 그 장단점을 철저히 연구하여, 유교를 잘 활용한 결과 1644년 이후 장장 268년 동안 콧대 높은 한족을 맛있게 지배했다.

[동아시아 4국에서 3국으로]

희한하게 조선만 왕조가 바뀌지 않고 세 나라가 정립하게 되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의 동아시아 기본 구도인 4국 정립(定立)이 3국 정립(鼎立)으로 굳혀지는 순간이었다.

[청과 조선의 쇠퇴]

세월은 흐른다. 사정없이 흐른다. 고인 물은 썩고 부자의 눈은 게슴츠레해진다. 중국 최장의, 어쩌면 세계 최장(1661~1795)의 아름다운 시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겪으면서 비록 한족이 고위직에서는 푸대접을 받았지만, 일반 백성은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잘 살았다. 그런 청도 주변에서 더 이상 긴장을 가하지 못하자 나태해지기 시작한다. 조선은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양반의 싸움으로 영일이 없었고 영정조 연간에 중흥을 꾀했지만, 성리학을 정치권력의 도구로 삼으면서 그들의 힘도 한계에 부딪치고 끝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이양선(해양 세력)의 등장과 일본의 변신]

갑자기 웬 이양선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이들을 우습게 보았지만, 대포를 쏘아 쫓아 버렸지만, 그들의 배후는 무시무시했다. 어느새 그들은 태평양과 대서양과 인도양을 동네 개울 건너듯이 넘나들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막강한 산업화의 힘을 동아시아의 후진국 일본이 제일 먼저 깨닫고 그 기술을 게걸스럽게 배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변방의 작은 섬나라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주도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임진왜란으로 그 만만찮은 힘을 보여 준 후, 중국과 한국이 인간 문명에 찌들어 지성(知性)의 독성과 쾌락의 오물로 이뤄진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홀로 싱싱한 야성(野性)을 갈무리하고 있었던 일본이 서양의 과학기술과 법률과 경제정책을 받아들여 스스로 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게 되었다. 서양을 배운 지 불과 한 세대만에 일본은 늙은 사자 청을 메치고 (청일전쟁 1894), 미련한 곰 러시아를 한판으로 내다 꽂고(러일전쟁 1904), 앙살 맞은 고양이로 둔갑한 호랑이 조선을 한 발로 걷어차 단숨에 쓰러뜨리고 그 목에 쇠줄을 달았다(한일합방 1910).
--계속--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