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에게 돌팔매질할 자들


이미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이지만 스필버그의 ‘색 바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나치에게 분노의 싸늘한 돌을 던지지 않고 유태인에게 인류애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런 자들이 있다. 세상에, 누가? 김정일과 그 일당들이다. 오히려 그들은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저런 정도를 갖고! 저렇게 우아하게 단번에 죽이다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고통에 고통을 가하면서 서서히(안단테) 서서히(라르고) 죽여야지!

“아우슈비츠는 요덕수용소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강철환

독재자가 자국민 3백만을 굶겨 죽인 북한에서는(지구촌 시대가 개막되면서 TV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스며든 인류애 때문에, 그리고 녹색혁명에 따른 잉여식량 때문에 사실대로 밝히고 도움을 청하면 어떤 국민이든 수만 명 단위로 아사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든 아시아든 더 이상 자연재해에 의한 수백만의 기아는 사라졌다는 말이다. 수백만의 아사는 경제 정책 실패에 의한 정치적 기아일 따름이다. 외부의 인도적 식량 원조도 힘 있는 자들이 약탈하고 갈취하고 독점하는 정치적 기아일 따름이다.), 옥수수 몇 알 쌀 몇 톨 때문에 기꺼이 인륜도덕을 내팽개치는 것이 일상사가 된 북한에서는 독재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단번에 목숨을 끊어 버린 나치의 학살은 순진하게 보일 따름이다.

식목일에 이제 세계 어떤 나라보다 푸르러진 한국의 산과 들에 나무를 심지 않고 마음속으로 멀리 휴전선을 바라보며 풀 한 포기 없는 증오의 북한 민둥산에 사랑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 문국한! 누가 떼어 가는지 자꾸만 떼어 가서 손수건만한 플래카드는커녕 나뭇잎만한 안내판 하나 없는 부천역 앞의 리베르테 4층에서 그는 외롭게 부인과 함께 작년 11월 국회의 작은 방에서 전시했던 북한대학살전시회를 다시 열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것은 4월 5일 오후 2시경. 대부분 본 자료들이지만 처참한 사진과 애절한 편지를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누른 채 다시 둘러보고 그분과 식사하고 얘기하다가 7시 조금 지나서 나왔다. 그 사이 찾아오는 사람은 5명도 안 되었다. 부천역은 인산인해!

독일인들은 유태인 학살에 대해 지금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무지와 침묵으로 홀로코스트에 동의하고 방조했다는 원죄 의식 때문이다. 유럽 전체가 2천년 동안 박해하던 유태인을 전쟁 상황에서 독재자가 내부의 적으로 몰아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 당시에는 과히 놀라지 않았다. 유태인 학살을 직접 본 사람도 사실 거의 없었거니와 드문드문 낮게 떠다니는 소문은 내 코가 석자라, 다들 애써 외면했다. 따지고 보면 직접 그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 외에는 독일인들은 죄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가담한 사람들도 전쟁의 광기와 독재의 공포 때문에 스스로 양심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그 모든 것을 게르만족의 야만적인 행위로 자인하고 60년이 지나도록 유태인 학살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든 무릎을 꿇는다.

그 거대한 야만에 오롯이 양심을 지킨 의인이 1억 게르만족 가운데 1명 있었다. 그가 바로 오스카 쉰들러였다. ‘거짓’으로 나치를 속이고 ‘뇌물’로 그들을 매수해서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유태인들을 친부모나 친형제자매보다 더 사랑했다. 매 순간 목숨을 걸고 가진 재산을 다 털어 그들을 구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조금도 이를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좀 더 자기가 희생했으면 몇 명 더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약 50년 후 또 다른 게르만족 의인이 1명 나타났다. 그가 바로 노르베르트 폴러첸이다. 평양에서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생 허벅지를 떼어 준 독일인 폴러첸이다.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북한의 주민과 탈북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오로지 스스로 보고 들은 것만을 얘기하는 의사 (醫師) 폴러첸 의사(義士)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한국에서, 자나 깨나 인권을 외치고 민족을 찾고 평화를 부르짖는 한국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경찰의 방패로 제지받고 시민단체의 각목으로 위협받는다.

5천만 한국인 중에도 의인은 없지 않다. 생계를 뿌리치고 오로지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문국한 선생님이 바로 그런 쉰들러 중 한 분이다. 북한 동포의 기아와 고문과 죽음을 직접 보게 된 후 태평양을 동네 개울처럼 수시로 넘나드는 재미 건축가 남신우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다. 벽안의 수잰 숄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눈물과 눈빛은 양심이 아직도 최면에 걸리지 않은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좋은 벗들’의 법륜 스님 등,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윤현 목사님 등, 생사가 불명인 김동식 목사님, 그 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악전고투하는 분들이 숱하다. 일본인도 많다! 국회에서 위선자들의 쇠가죽 양심과 독선자들의 강철 양심에 호소하는 김문수 의원 등도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 10명 안에 들어간다. 10명이 넘으니, 100명도 넘으니 한국은 반드시 절망의 벼랑에서 기사회생할 것이다.

누가 고발하는 사람도 없고 누가 잡아가는 사람도 없는데, 침묵에 그치지 않고 자랑스레 인권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큰소리로 기획탈북의 문제점을 걸고넘어지는 자들이 대명천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민주를 독점한 그들은 말은 어찌나 잘하는지, 뱀의 혀보다 더 유려한 말솜씨로 대한민국 5천만 대부분을 최면에 걸었다. 미국의 대북한인권법에 사색이 노래지는 자들도 있다. 아니, 이들은 앞장서서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수’인권을 독창적으로 설계하고 대대적으로 제작하여 무소불위의 독과점 방송 재벌 KBS와 MBC와 SBS에 무한정 공급한다.

그래서 그런가. 부천역에는 사람들이 하루에 수십만 명이 오가지만, 희미한 진실의 촛불이 켜진 그 앞 리베르테의 4층은 적막이 흐른다. [잠복근무]라는 초대형 영화 광고 천은 아득히 높은 리베르테(liberte 자유) 빌딩에 휘황찬란하게 걸려 자유분방한 뭇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배고픔과 인육과 공포를 가감 없이 증언하는 어두컴컴한 대학살 전시회장은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안내 쪽지조차 흰 종이 흔적만 남아 있어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우연히라도 보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진 사람들이 또박또박 매직으로 흰 천에 쓴 한 마디 한 마디는 죽음보다 깊은 최면에 걸려 있던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를 양심의 쇠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이제 곧 혈서와 같은 이 절규들이 인권에는 오로지 보편적 인권이 있을 뿐임을 어떤 나라보다 잘 아는 미국에 전해진다.

쉰들러를 보고는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던 5천만이 ‘사실’ 보도는 뱀의 꼬리만큼도 없고 오로지 사실을 왜곡하는 ‘해설’만 낙산사를 불태운 고성의 산불처럼 난무하는 방송과 인터넷을 보고 김정일과 그 일당이 자행하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권유린을, 히틀러와 스탈린과 모택동과 미국 남부의 옛 백인 귀족들의 잔악함을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김정일의 인권유린을 애써 찾아볼 생각을 않음으로써, 짐짓 귀를 막고 눈을 감음으로써,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고 스스로의 양심을 마비시킴으로써, 오늘도 2천3백만 중에서 죽고 도망가서 인구가 2천만도 채 안 되는 북녘의 ‘우리’ 형제자매가 하루에 1천 명씩 죽어 가게 내버려두고 인구의 60%가 영양실조로 다들 눈에 헛것이 씌어 풀과 나무와 돌과 흙과 구름과 눈마저 먹을 것으로만 보이게 방조한다.

협동농장의 토지를 농민에게 골고루 갈라주기만 해도 최소한 3년 안에 식량문제는 자체적으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내정간섭이라고 10년이 지나도록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무조건 돕자'고 한다. 분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도 무슨 내정간섭이라고 모기만한 소리로 시늉만 하고, ‘무조건 돕자’고 한다. 하물며 김정일의 치명적인 급소인 인권탄압에 관한 말만 나오면 주권침해라며, 침략의 구실이라며, 중상모략이라며, 숨이 넘어갈 듯 입에 거품을 물고 우르르 발작한다. 길길이 뛰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깔면서, ‘무조건 돕자’고 한다.

오로지 있는 사실을 말할 따름이고 오로지 2천만 명 중에서 꼴딱 죽어가는 사람을 10여년 동안 겨우 몇 천 명 살렸을 따름이건만, 저들은 침소봉대니, 확인불가니, 범죄자 방조니, 기획탈북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실도 거짓으로 만들고 거짓도 사실로 둔갑시킬 수 있는 현대 문명의 바알 신(神) 방송에 기대어 하늘에 맹세코 위선을 자랑하고 땅에 맹세코 독선을 뽐낸다.
쉰들러가 나치에게 거짓말하고 에스에스(SS)에게 뇌물 바쳤다고 돌팔매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통일 후 과연 저들이 어디로 숨을지!

(200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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