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입을 막는 것으로 독재를 가릴 수는 없어

15년 전이었다. 1990년에 필자는 단과대학 학생회장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단과대 학생회실에 00과 후배들이 찾아왔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상의하러 온 내용은 탈북자 때문이었다. 당시 탈북자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어쩌다 발생하는 탈남자 혹은, 탈북자들은 대체로 체제이탈자가 주였다. 필자가 학생회장으로 있었던 단과대학 00과 탈북자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최고급 당간부의 자식으로 해외 유학중 민주주의사회의 실상을 접하고, 갈등하던 사람. 가족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급기야 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00과 신입생으로 들어와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1990년이라면 임수경씨 방북이 있었던 1989년 다음해로 전국대학은 통일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왜 전대협이 임수경씨를 북한에 보냈는지 설명해야 했고, 북한은 지금까지 반공교육을 받았던 그런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사회라는 이야기를 했다. 루이제 린저나 기타 북한 서적에서 발췌하여 그럴듯하게 '사람이 살고 있었네'와 같은 소자료도 만들었다. 물론 그 자료에는 우리 민족이 반백년동안 갈라져 고통받고 통일하지 못하는 원인이 미국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실었다.

그 탈북대학생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기가 막혔을 일 이었다. 자유를 택하면서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절친했던 친구들을 정치범 수용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고 날마다 자책하고 있었을 그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아니고 '북한은 이렇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 일은 매우 빠르게 나에게까지 이끌려 왔다. 우리는 대책을 숙의했다. 협박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협박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때 이렇게 하자고 제안했다. “토론하자. 공개토론하자. 학우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해서 그의 실체를 알리자.” 이 제안에 후배들이 되물었다. “자신있는가?” 이 물음은 혹 밀리면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 권위만 싣게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함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의견에 힘이 실리면 그해 신입생사업은 큰 곤란을 받을 일이었다.

필자가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두가지 이유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체사상 같이 좋은 사상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이미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북한은 지옥과 같은 사회라고 이야기하면 편한 방법이 있었다. ‘안기부에서 시켰느냐?'고 반문하면 모든 것이 정리될 일이었다.(실제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협박이나 강압의 방식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것은 군사독재나 써먹는 방법이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가 취할 일이 못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사회는 최선을 다해서 민주주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 탈북대학생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이후 완전하게 침묵했다.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을 ‘배신자'처럼 생각하게 하는 대학가 분위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2005년 2월에 서강대에서 정반대의 두 개 행사가 개최되었다. 하나는 2월 4일 '누구를 위한 북한인권인가'의 제목하에 열렸고, 또 다른 하나는 2월 14일에 개최된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토론회의 목적들은 분명했다. 전자는 북한인권문제는 김정일체제를 압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고, 후자는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북한 인권의 심각한 현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 두 개의 토론회가 외견상 다른 점이 있었다면 첫 번째 토론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두번째 토론회는 토론회 입구에서 반대시위를 벌였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토론회에 참석한 서수철(탈북대학생-가명)이 첫번째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그들에게 자신이 겪은 북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누구를 위한 북한인권인가' 발제가 끝나고 질의 응답이 시간이 되어 수철군은 “강사님은 탈북자분들을 몇 명이나 만나 보았으며 북한사람들이 어떻게 인권탄압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냐?' 절규하듯 물었다고 한다. 이에 그 강사는 탈북자는 만나본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세미나에 참가했던 대학생들이 수철이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였다. 수철군은 북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고마웠고 그들에게 북한을 제대로 말해주고 싶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와 정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수철군은 식은 땀이 난다고 한다. 눈에 힘을 주고 나를 쳐다보며 “여기까지 왔으면 조용하게 살아야지 왜 떠들고 다니냐?”, “통일하고 싶으니까 조용히 살자”, “혁명의 배신자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고 수철군에게 소리 쳤다. 수철군은 그 이야기를 필자에게 전하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고 말했다.

15년전과 15년후의 주사파가 달라진 점은 15년전은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자신감 넘치는 주사파였던 것에 비해, 15년 후의 주사파는 독재자를 추종하며 스스로 독재의 방식에 매몰되어 버린 타락하는 모습이다. 논리와 진실에 자신없는 독재자와 그들의 추종자는 언제나 상대방의 입을 막아왔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 이 글은 www.new-right.com에서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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