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지막지한 군사력과 경제력]
광대한 중국의 토지, 서릿발같은 조선의 삼강오륜이 일본의 작은 공장과 눈 없는 총칼에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졌다.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으로 유명한 의화단의 주먹과 한 때 11만 명을 자랑하던 동학군의 낫은 일본군에게 좋은 빌미만 제공했다. 정규 일본군이 그들과 싸우는 것은 어린애 팔 비틀기보다 쉬웠다. 백여 명의 일본군에게 만여 명의 동학군이 우금치에서 불과 1주일 만에 500명만 살아 남았던 것이다(녹두장군 전봉준의 회고).
청은 야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만주족은 아예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고 붓과 서류를 멀리 하고 칼과 자연을 가까이 하게 했지만, 아무런 도전이 없는 세월이 250여년간 계속되면서 어느새 야성을 다 잃고 지옥사자도 슬슬 눈치를 살피던 팔기군이 마적 떼에게도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칼은 녹슬고 야산은 기화요초 화사한 정원으로 바뀌었다. 붓은 민중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서류는 민중의 고혈을 짜는 삼베가 되었다. 삼강오륜은 민중을 억압하는 가면이자 방패가 되었다.
[중국의 통일과 한국의 분단]
세월은 흐른다. 사정없이 흐른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부지런한 자는 부자가 된다.
마침내 병든 사자가 병을 고쳤다. 다시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수와 당, 요와 금, 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조선족, 절대절명의 순간에 왜의 조총을 이순신이 거느린 거북선의 대포로 무력화시켰으나 이내 변방의 한 오랑캐였던 여진족에게 왕이 엄숙한 격식을 갖추고 항복하면서 그 기세가 날로 초라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흥 세력 일본에 속절없이 짓밟히고 일본이 쫓겨난 후엔 다시 몸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동아시아의 패자 일본의 무릎을 꿇린 두 초강 고수 미국과 소련에게 이제 막 통일한 중국은 만만찮은 힘을 보여 주는 정도 이상의 역할을 못했다. 그러나 이 잠재력은 50년 후 초강대국 미국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힘으로 솟아오른다. 임진왜란 이후 400년 만의 동아시아 세계대전이 벌어져 작은 한반도에서 전세계의 강대국이 힘을 겨루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울부짖게 만들었지만, 바꿔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양대 세력의 힘이 어금버금했고 한민족은 고구려나 신라, 고려, 조선 초기처럼, 열강을 주체적으로 이용할 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3백만의 조선족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뿐. 부러진 허리에 시멘트와 모래로 짓이겨 만든 각목을 대고 굵은 철사로 꽉 묶었다. 더욱 세게.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한국의 반쪽 중흥]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동강난 금수강산의 남녘에서 마침내 서양의 과학기술과 시장경제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보다 100년이 늦었다. 그러나 한번 당겨진 불은 거침없이 타올랐다. 1988년 총칼을 버린 전세계의 씩씩한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가벼운 옷차림으로 대한민국의 잠실벌에 모였을 때, 이를 TV로 지켜보던 세계가 경악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한국은 야성과 지성이 넘치는 나라로 바뀌어 있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눈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눈이 칼처럼 예리하게 빛나지 않고 훨훨 타오르는 게 조금 찜찜했으나 쥐새끼처럼 눈치나 살금살금 엿보던 6·25 때의 그 가련한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양의 신문과 TV가 얼마나 한국을 왜곡 보도했는지, 눈으로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은 데모와 파업의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정도는 국민도 정권도 눈 하나 깜짝 않았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만 명의 학생 중에 고작 1백여 명이 아크로폴리스에 옹기종기 모여 마이크와 꽹과리를 동원하여 캠퍼스를 온통 쩌렁쩌렁 울렸지만, 나머지는 다들 귀가 먹었는지 공부하고 연애하고 커피 마시고 우유 팩 차고 낮잠 자고 히히덕거렸던 것이다. 수수께끼의 나라 대한민국!
[중국의 기지개]
이 무렵 중국도 철지난 옷을 엉성하게 입어 촌티가 줄줄 흐르긴 했지만, 싱싱한 다리와 떡 벌어진 어깨, 구릿빛 얼굴에 번쩍이는 눈으로 그 저력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을 은연중에 보여 주었다. 마침내 그들이 중화사상과 서양의 과학기술, 시장경제를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숨바꼭질]
이상한 것은 60년대 10여 년을 무려 연평균 경제성장률 20%로 세계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던 북한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상의 노예가 되면서 그 넘치는 야성이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고 안으로 타 들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자해집단으로 변해 가던 시점이었다. 몇 년 후 기아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것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다.
[중국의 용틀임]
10년 후 마침내 중국이 그 육중한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일본의 작은 호수는 썩기 시작하고 중국의 거대한 장강은 대양을 향해 거침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중원과 동아시아에 4,000년간 눈이 갇혔던 근시안 중국이 드디어 태평양을 넘어 인도양을 넘어 대서양을 넘어 전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육지보다 바다가 넓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한번 눈을 크게 뜨자 금방 중국은 실질적인 세계 2강이 되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 용오름을 대하던 그런 태도가 아니다. 중국은 경제만이 아니다. 군사가 더 위협적이다. 문화 잠재력이 더 위협적이다. 북극곰 러시아도 봄의 혼란을 서서히 극복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그 옛날의 위엄을 되찾고 있다. 한반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은 북한을 알게 모르게 속국화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중국은 미국과 으르렁거릴 뿐 이빨과 발톱만 슬쩍 슬쩍 보여 줄 뿐, 싸움을 걸지는 않는다. 아직은 힘이 형편없이 딸림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속을 절대 내비치지 않는 중국은 지금은 샅바 잡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2020년, 2030년, 2050년 단계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안다리걸기, 바깥다리걸기, 들배지기 기술로 그 힘을 시험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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