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류근일, 조갑제


2003년 6월호 [월간중앙]과의 대담에서 김대중 기자는 “DJ 정부가 조선일보 사장에게 나와 류근일, 조갑제를 딴 데로 보내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고분고분하지 않자 조선일보를 상대로 ‘국민의 정부’는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1987년 하반기에 한국의 언론은 자유의 날개를 달고 훌쩍 세계적 수준으로 날아올랐다. 그로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방송과 신문은 ‘할 말 못할 말’ 거의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역대 정부의 독재와 실정에 대한 보도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시원하게, 사실은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대학교의 대자보에나 나붙던 불그스레한 말도 슬슬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 때는 그러나, 친북적인 발언은 ‘물 공화정’의 출범과 더불어 국민의 힘으로 창간된 한겨레신문도 그런 대로 자제했다. 공산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김일성 왕조를 노골적으로 두둔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고.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는 북한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담하게 한겨레신문을 중심으로 몇몇 일간지와 주간지가 민주의 깃발을 내걸고 민족과 통일과 진보에 복선을 깔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와 개혁을 독점하면서 방송과 신문을 껄끄러워했지만, 언론자유는 나름대로 보장해 주었다.

바로 이 때에, 1987년에서 1997년까지 10년간 한국 언론의 황금 시기에 한국에도 언론 시장이란 난전(亂廛)이 비로소 열렸다. 육의전(六矣廛)이 아닌 난전이 비로소 열렸다. 관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벗어난 진정한 언론 시장이 비로소 열렸다. 자연스럽게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에 의해 언론의 가격이 결정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가 상품의 종류와 품질과 디자인과 가격을 결정하는 언론 시장이 정착되어 갔다.

언론의 난전에서 진보와 평등을 표방하는 한겨레신문이 대세를 장악할 듯했지만, 독자들은 거의 일방적으로 보수적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새벽에 현관에서 눈을 비비며 이들 신문을 집어 들거나 출근길에 허겁지겁 달려가면서 무의식적으로 가판대에 손을 뻗어 이들 신문을 잡아챘다. 중앙일보도 공격적인 경영과 알차고 재미있는 정보 제공으로 독자들을 유혹했고,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신문도 때마침 주식붐을 탄데다가 정치보다 경제에 관심을 더 쏟는 지식인들과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고급독자를 많이 확보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경쾌하고 통쾌한 스포츠신문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시대는 영웅을 낳는다. 이 때 탄생한 스타 기자들이 바로 김대중, 류근일, 조갑제이다. 이들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언론 시장에서 독자가 탄생시킨 스타 기자들이다. 따끈따끈한 고급 정보와 명쾌한 해설과 향기로운 명문에 목말라 하던 독자들은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때로는 탄성을 지르고 때로는 탄식을 내뱉으며 희망의 눈을 반짝였다. 김수현의 주말 연속극을 기다리듯이 이들의 칼럼과 사설과 기사와 책을 손꼽아 기다렸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언론계의 밀월은 이내 파경을 맞았다. 한겨레와 KBS는 주식 한 주 공유한 것도 없고 생리적으로 영 궁합도 맞지 않은 듯했는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했다. 그 때부터 뭔가 요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티조선의 회오리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불기 시작했다. 초고속통신망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보급되는 것과 때를 맞춰 오마이뉴스와 딴지일보란 인터넷 신문이 생기면서 세 군데 전선에서 동시에 난리가 났다. 민족과 진보란 말만 나오면 북 장단을 맞추며 신바람 난 방송과 신천지를 개척하여 기세등등한 인터넷과 여전히 돈을 내고 사 보는 독자가 거의 없는 신문이 주사파적인 말들을 노골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기사회생한 김정일 정권은 6․15 공동선언에 입각하여, 대놓고 안티조선의 이빨과 발톱에 힘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를 폭파시켜 버리겠다!”

과거 캐기와 세무조사는 결국 성공하여 조중동은 ‘중립적인’ 말을 슬슬 내놓기 시작했다. 마침내 노무현 정부에서 새 언론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면서 수요자가 공급자를 결정하는 언론 시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수요자가 아무리 원해도 공정거래법상 75% 시장점유율이 신문에만 예외적으로 60%로 특별히 적용함에 따라 더 이상 새로운 독자들은 원하는 신문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새로운 독자들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스타 기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스타는 미국으로, 류근일 스타는 집으로, 조갑제 스타는 일선으로 떠났다.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은 [월간조선]에서 편집장 겸 대표이사로 친박정희 반김정일 대열의 선두에 서서 고군분투하던 조갑제 스타마저 이제 갑옷과 방패를 빼앗긴 채, 병력을 회수 당한 채, 세 치 혀와 날카로운 단도만 하나 들게 되었다. 여전히 이들이 칼럼을 쓰고 집필을 하지만, 한 자리에 모여 날마다 팔씨름, 입씨름, 닭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어렵게 탄생시키는 준엄한 ‘사설’은 더 이상 쓰지 못한다. 기사와 논설의 옥석을 가리지 못한다. 한국의 최고 권력자든 북한의 절대권력자든 그들을 상대로 조선일보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말의 전장에 나아가 진두지휘를 못한다.

여전히 북한핵을 물고 늘어지고 북한인권에 애를 태우고 안보를 걱정하고 자주외교의 속내를 밝히고 수도분할의 위헌성과 비효율성을 꼬집고 노조의 귀족화를 개탄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적들에게 엄중히 경고하겠지만, 그 말들은 왕의 조칙으로 병사를 빼앗긴 장군이 달밤에 뒷동산에 올라 나무와 풀을 향해 힘차게 돌격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왠지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5천만 한민족은 얼얼하게 얻어터지고 정신을 잃고 까무러쳤다가 누군가에 의해 찬물이 끼얹어져야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민족과 자주와 평화와 진보의 황홀한 환상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 때에 수백만 의병이 백의장군을 찾아가듯이, 동산에 올라 쓸쓸히 퉁소를 불고 있는 백의장군을 찾아가듯이 수백만 팬들이 이들 스타 기자를 찾을 것이다.
(200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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