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미국에서는 최신식 신형 이지스 구축함의 진수식이 있었다. 타이콘테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의 뒤를 이어 21세기까지 미해군의 주역이 될 신형 구축함의 이름은 '알레이 버크'였다. 이날 진수식의 주인공은 바로 미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알레이 버크' 대장 본인이었다. 자기의 이름을 딴 배의 진수식에 본인이 참석한 것은 미해군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알레이 버크 대장은 1996년 1월 1일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에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의 요인들이 죄다 참석하다시피 했고 하늘에는 F14 톰캣 비행대가 애도의 비행을 했으며, 전세계의 바다에 떠있는 모든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과 2차대전 때 그가 지휘했던 제23 구축함대 소속의 모든 함정은 장례식이 거행되던 정오를 맞추어 5분 동안 31노트로 달렸다. 클린턴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미해군의 영웅 알레이버크 대장이 누운 관속에는 미국이 그에게 수여한 훈장은 단 한 개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을 뒤덮은 것은 모두 일본 정부와 일본국민이 그에게 수여한 훈장들뿐이었다. 그것만을 관에 넣어달라는 그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50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944년 11월 25일, 알레이 버크 대령(당시 계급)은 5척의 구축함을 인솔하여 뉴브리튼섬의 동북쪽 끝에 있는 세인트죠지 곶 앞바다를 31노트의 속력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미해군 구축함들은 35노트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그 중 1척의 엔진이 시원찮아서 함대 전체의 속도를 31노트로 낮추어 항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버크 대령의 구축함대는 여명의 새벽에 가가와 기요토 대좌가 이끄는 일본의 구축함대와 조우하여 치열한 해전을 벌이게 되었다. 일본 함대도 같은 5척이었다. 5:5로 똑같은 양편의 한판 승부는 버크 대령의 미구축함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일본 함대의 5척 중 오나미, 마키나미, 유우기리의 3척이 격침되었고 1척이 대파되었다. 그러나 미국 함대측의 피해는 없었다. 제23구축함대의 전설적인 승리의 한토막이다. 버크 대령의 제23구축함대는 전쟁 동안 일본의 순양함 1척, 구축함 9척, 잠수함 1척을 격침시키고 항공기 서른대를 격추시켰다. 전쟁 때 알레이 버크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의 화신이었다. 일본인을 잡아죽이는 것이 자기의 타고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일본해군을 무자비하게 조졌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관용과 용서라는 것을 몰랐다.
그랬던 그가 무덤에 묻힐 때, 일본인이 그에게 준 표창과 훈장만을 가슴에 덮어달라고 유언하고 죽었던 것은 한 일본 여성 때문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소장으로 진급한 버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에 미국 극동 해군 사령부에 근무하게 되어 일본에 가야만 했다. 일본인에 대한 불쾌한 기억뿐인 그는 그리 달갑지 않은 기분으로 동경공항에 발을 디뎠다.
그의 숙소는 제국 호텔. 방은 썰렁하고 장식도 별로 없었다. 버크는 기분 전환삼아 호텔지하의 꽃집에서 꽃을 사서 물컵에 꽂아두었다. 다음날 퇴근하여 방에 돌아온 그는 꽃이 아주 예쁜 꽃병에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꽃병의 꽃은 매일 새것으로 바뀌었다. 누가 그리하는 지는 호텔에서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방을 청소하는 부인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태평양에서 전사한 일본 해군 장교였다.
버크는 수고의 대가로 돈을 주려했으나 부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일본인에 대한 버크의 적개심과 증오와 편견과 선입견을 씻어준 것은 바로 그 부인이었다.
버크는 미국 내에서 가장 일본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친일파 중의 하나로 변했다. 버크는 일본 자위대의 산파가 되었고, 일본에 대한 군사원조를 늘리는데 앞장섰다. 미해군 참모총장 재직시에도 일본 해상자위대의 발전과 성장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일본 정부는 버크에게 훈장을 수여했는데, 버크는 이 훈장을 도난당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일본 해상 자위대는 전 대원이 백만엔의 성금을 모아 훈장를 다시 만들어 보내주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의 각계각층이 그에게 감사장과 표창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남편과 싸운 적이요 남편을 죽인 원수였던 한 남자의 마음을 돌려 조국의 은인으로 만든 것은 호텔 청소부였던 한 여자였다. 이 여자의 행동이 노예근성일까? 비굴한 아첨일까? 대국에 대한 사대주의일까? 아니다. 이런 행위야말로 자긍심과 자존심과 긍지가 없는 국민에게서는 나오지 않는 친절이며 우정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이런 행동을 할 수 없고 이런 마음을 쓰지 못한다. 일본과 대만이 왜 우리보다 잘 사는가? 그들이 잘 사는데는 이유가 있다. 동맹국에 대한 배려를 사대주의라고 빈정거리는 한국인들에게는 1만불이 한계이다. 그것만해도 너무 과분하다. 장차에 어느 미국인이 한국을 도우려 할 것인가. 쓰러지려 하면 밀어주고 싶을 것이다. 넘어져 있으면 밟아주고 싶겠지. 그게 사람의 감정이니까.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