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1. 산케이(産經)신문
1989년 12월, 당시 小紙(산케이)의 바르샤바(폴란드)
지국장이었던 '나유키 마사오'(名雪雅夫) 기자는,
쿠데타에 의해 독재체제가 붕괴된 루마니아에
들어갔다가 총격을 받게 된다. 현장 근처에 있던 교도
(共同)통신 기자로부터 타전되어 전해진 이러한 일보
(一報)에 편집국은 어수선하고 긴박해졌다.
▼ '나유키' 기자는 헝가리 쪽으로 탈출하여, 한 마을
의사로부터 등에 박힌 총탄을 적출하기에 이른다.
<너는 머리털이 없기 때문에 상처가 없어서 좋겠다>
(='머리털이 없다' '상처가 없다' 모두 발음이 '게가
나이'로서 일본어로만 가능한 표현)
무사하다는 소식을 편집국에 알린다고 알린 것인데
응답으로 돌아온 것이 '스미타 요시노리'(住田良能)
외신부장의 이러한 농담이었다. '나유키'(名雪) 기
자는, 듣는 순간 크게 화가 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 말았다.
▼ 그런데 귀국 후, 한 선배 기자로부터, '스미타'
(住田) 부장이 그때 전화기를 붙잡은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유키'(名雪) 기자는 전해듣게 된다.
누구든지 목숨은 소중하다. 그렇더라도 때로는 위험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도저히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지경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기자로서의 '본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내는 쪽의 고뇌는 깊다.
▼ 시리아로 들어가려고 계획하던 프리랜서 카메라맨
남성(58세)이 외무성으로부터 여권반납을 명령받았다.
분쟁지역의 실상을 전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일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고토 겐지'(後藤健二)
씨가 외무성의 설득을 마다하고 시리아로 들어간
작년과는 또 사정이 많이 다르다.
▼ 日本人 두 명이 살해되어 위험성이 극도로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테러집단에게 붙잡힐
경우, 日本의 외교와 국익 측면에서 얼마나 큰 타격이
생기게 되는지는 이미 경험을 했다. 여권 회수라는
이번 정부의 조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 물론, '생명의 보호'라는 것을 이유로, 기자의
도항(渡航)을 무한정 금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보도의 자유'라는 것을 언급할 필요까지도 없이,
이러한 금지조치의 지속은 곧 '언론의 죽음(死)'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유키'(名雪) 기자와 '스미타'
(住田) 부장은 그 후에 부사장과 사장이 되었고,
지금은 두 명 모두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이럴 때,
두 명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고 그들의 생각이
듣고 싶어진다.
보내는 쪽의 고뇌
- 펀드빌더(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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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2, 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