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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꽃분이'가 있다. 북한 꽃분이의 유래는 북한 정권이 선전 목적으로 만든 혁명영화 '꽃 파는 처녀'에서부터 시작됐다.
영화는 1970년대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문화부에서 첫 사업을 시작하면서 직접 지도하고 선보인 작품으로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꽃분이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저잣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파는 가난한 처녀다.
꽃분이는 밤이면 너덜너덜한 거적을 걸치고 맹물로 끼니를 때우며 어머니 대신 지주 집에서 종으로 일한다. 가난과 아픔에 시달려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꽃분이에게 삶의 의미를 준 것이 바로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다.
꽃분이는 자기가 겪고 있는 가난과 수난의 비극에서 해방하는 길은 오직 김일성의 영도에 따라 혁명에 뛰어 들어 일제로부터 나라를 독립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과감한 여성혁명가로, 시대의 본보기로 성장한다. 당시만 해도 혁명영화 ‘꽃 파는 처녀’는 북한 주민들을 고무시키는데 큰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영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역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에서 겪은 피눈물 나는 꽃분이의 삶이 자신들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더 비참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북한을 이탈하여 남한에 온 박경옥 씨는 '북한에는 꽃분이 가정이 많다. 북한 주민들은 멀건 죽물도 없어 못 먹고 변변한 단벌 옷도 없는 가정을 보고 꽃분이 가정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지금 이러한 꽃분이 가정이 두 집 건너 한 집이다. 꽃분이 가정 주부들은 어려운 생활난에서 가정을 먹여 살리려고 비천한 장사를 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씨는 '특히 역전 주변에서 매음하는 여성들 중 꽃분이 가정 주부들이 많은데, 북한 주민들은 이들을 가리켜 '꽃 파는 여성', '꽃분이'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에게 오고가 는 꽃분이라는 별명은 서로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모욕이며 상처다.
결국 북한정권에서, 그것도 김정일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혁명영화 '꽃 파는 처녀'는 북한 주민들에게 혁명의 불씨를 새겨주는 것이 아니라 불만의 불길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