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경제와 약탈 경제


[생존과 문화를 뒷받침하는 경제]

의식주 해결이라는 생존이든 그 생존을 넘어 삶을 윤택하고 의미 있게 하는 문화든 경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먹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추위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36.5도의 체온을 유지할 옷과 집이 가장 그립다. 누더기 옷을 걸친 거지가 밤이 되면 가장 그리운 것은 짐승과 날씨로부터, 또는 강도와 도둑으로부터 보호받을 보금자리이다. 가난한 흥부의 아들딸이 이불 속에서 언제까지나 오글오글 헝겊쪼가리를 몸에 걸친 채 서로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할 수는 없다. 기지개를 켜고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한다. 그러자면 공작새만큼 아름다운 옷은 아닐지라도 참새처럼 수수한 옷은 걸치고 나가야 애들 말로 쪽이 안 팔린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면 인간은 반드시 문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인생을 논하고 자연과 대화하고 신을 찾고 윤리를 따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축제를 준비하고 오락에 빠진다.

[전쟁이 약탈 경제행위라면 평화는 생산 경제행위]

인류는 의식주와 문화를 뒷받침하는 물적 기반인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거듭했다. 전쟁은 약탈하는 경제 행위였고 평화는 생산하는 경제 행위였다. 처음에는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그 때는 죽음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먹이사슬에서 중상 정도에 머문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특이하게 머리와 손이 발달했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와 농경민의 생산 경제]

대략 지금부터 만 년 전부터 인간은 머리와 손을 이용하여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농업은 두 방향으로 발달했다. 하나는 이전의 수렵채취 시대와 비슷했다. 그 이유는 물의 부족이었다. 광대한 초지를 이동하면서 짐승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땅을 갈아서 식물과 동물을 길렀다. 거기서 열매와 뿌리와 잎을 거둬들이고 고기를 얻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자연재해로 부족해진 식량을 다른 자로부터 빼앗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오로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뻔뻔하게 나무막대기와 돌을 들고 이웃 마을에 쳐들어갔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 약탈 경제 행위를 한 무리는 대체로 유목민이었다. 아무래도 거기는 땅은 광활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늘 힘겨웠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는 걸 지탱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웠다. 일정 숫자 이상으로 늘어나면 안 되었던 것이다. 호랑이나 사자가 암놈을 새로 차지하면 자기와 유전자가 다른 새끼들을 다 죽여서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여 자연에 순응하듯이, 자연에 보다 가까웠던 이들 유목민은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방을 몰살시키곤 했다. 유목민이 서로 죽고 죽이지 않는 방법은 농경민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연례 행사처럼 되었다. 우리가 유목민을 호전적인 족속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정에 연유하는 바가 크다.

[약탈 경제와 공정한 분배--공산주의의 원형]

유목민의 장점도 많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공평한 분배였다. 이들은 공동 생산, 또는 공동 약탈, 공동 분배가 원칙이었다.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재산을 축적해 둘 필요가 없었다. 검소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약탈경제를 계속한 족속이 자연환경이 제일 열악한 바이킹족인데, 이들의 후손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분배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춘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것이 그들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 이론이란 것도 알고 보면 이 유목민의 약탈 경제에 바탕을 둔 공평한 분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단지 그 약탈이 다른 종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제 나라의 가진 자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투쟁의 대상을 같은 종족으로 정하는 측면에서 공산주의는 정말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유목민보다 훨씬 비도덕적이다.

[농경민의 생산 경제와 부의 편중]

농경민이라고 착하기만 한 게 절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이 더욱 잔인했다. 가뭄이나 홍수, 지진, 해일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한 경우도 있지만, 생산이 산만큼 높아지면 탐욕은 하늘만큼 높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강력한 집단이 나타나 평정을 하고 비슷한 국가가 대립하여 평화가 유지되면, 자비로운 군주가 나와서 법과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 일반 서민들도 배를 두드리며 살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봉건 시대라고 하여 꼭 사는 게 짐승같이 살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전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거나 공부하고도 자기 패거리를 자화자찬하려고 남을 무조건 욕하는 못된 심사 탓이다. 마르크스는 인격적으로 참으로 문제가 많은 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다가 다시 탐욕이 넘친 자들이 슬슬 나타나고. 권력을 남용하는 군주나 관료, 또는 봉건 영주들이 나오고.

조선은 중기 이후 생산이 날로 줄어들고 왕과 관료, 양반의 약탈이 심해졌다. 이를 착취라고 할 수도 있다. 일제 시대는 그 도가 더 심했다. 생산을 하는 척하고 약탈해서 섬으로 실어 나르고 노골적으로 착취해서 반도 안에서 호의호식했다.

[북한의 약탈 경제는 부의 축소와 부의 편중을 가져오다]

북한은 처음에는 생산이 좀 있었지만, 곧 약탈과 착취 체제로 변했다. 어느 사회든 생산이 줄어들면 분배에 더욱 매달리게 되고 그 분배는 갈수록 왜곡되게 되어 있다. 북한은 70년대 중반부터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국토 면적에 대한 인구비율이나 과학기술 발달 수준이나 기후로 보나 근면한 국민성으로 보나 북한이 굶주릴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약탈 경제, 착취 경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동족을 침략하여 대대적으로 약탈할 기회를 상실한 이래로 또다시 오로지 전쟁에만 대비하다가 전인민이 곯게 되었다. 옛날의 유목민은 전쟁 준비를 하면 반드시 이웃 종족이나 나라에 쳐들어가서 지든 이기든 끝장을 보았다. 그러나 겁 많은 북한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만주로 쳐들어가서 약탈하면 그게 제일 좋은데,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개혁개방이란 게 결국 생산 경제체제를 구축한다는 말인데, 북한은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약탈 경제체제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극소수만 호의호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생산 경제는 부의 확대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촉진하다]

한국은 1961년까지만 해도 국가 예산의 약 반 이상을 미국 원조에 의지한 정말 한심한 나라였다. 생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대적으로 생산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선 전기(서기 1500년 무렵) 이래 무려 460년만의 대전환이었다. 다행히 세계 시장이 열려 있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수출과 수입을 해서 나라 전체의 부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났다. 불과 18년만에 세계 72위에서 세계 17위로 껑충 뛰어올랐던 것이다. 분배의 왜곡을 많이 언급하는데, 그것은 숲 대신 나무를 보는 것도 아니고 겨우 썩은 나뭇잎이나 보는 수준이다.

임금 수준을 비교해 보면, 노조가 처음으로 합법화되던 1987년 기준으로 해도 1인당 GDP 대비 1.49로 이것은 한국 노동자들이 1인당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던 일본의 1.30보다 앞선 임금 수준이었다. 1999년 기준으로는 한국이 1.72, 일본이 1.22, 대만이 1.07, 싱가포르가 0.84, 미국이 0.90이다.

쉽게 말해서 외국은 맞벌이 않고는 도저히 먹고살지 못하지만, 한국은 한 사람이 벌어도 가족을 그럭저럭 부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지로 한국은 경제개발 이후 여자는 가정 살림, 남자는 직장 생활이 원칙이었다. 남편은 생산과장, 아내는 소비사장이었다. IMF 이후 살림이 빡빡해지면서 여자들이 취업하려고 비로소 팔을 걷어붙이는 상황이다. 그만큼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이다.

[민주화 이후 생산 경제에서 약탈 경제로 관심이 이동]

안타까운 일은 이른바 민주화 쟁취 이후 생산 경제에서 약탈 경제 내지 착취 경제 쪽으로 좋게 말해서 분배 내지 복지 경제 쪽으로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생산이 거의 늘지 않고 있다.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10년은 그런 대로 버텼는데, 이제 거의 한계에 이른 듯하다. 생산을 양적 성장 위주에서 질적 성장도 함께 중시하는 체제로 바꾸고, 분배도 생산성을 높인 만큼 가져가야 하는데, 오히려 생산성보다 분배율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아직은 그런 대로 견딜 만하지만,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공산이 크다. 먹을 게 없으면 싸움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 중기 이후와 북한을 보라. 말 한 마디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살벌한 사회다.
이대로 가면, 우리 후손까지 갈 것 없이 우리 당대에 그런 살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200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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