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직 외교관의 말, <韓国도, 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 타당성 각자 판단.
2015. 2. 19. 산케이(産經)신문
韓国의 박근혜(朴槿恵) 대통령은 13일, 韓国을
방문 중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과
회담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日本 정부가
속히 <납득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역시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양국간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에 대해 日本 정부는
지금까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수상의 사죄 편지를 보내는 등 최대한
노력을 다해 왔다.
근거도 없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8월의 고노 관방장관 담화도 양국
관계를 고려한 <선의(善意)> 측면이 강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을 포함한 역대 수상은 위안부의 처지에
대해 깊은 동정(同情)의 뜻을 표해왔다.
■ "韓國도 모른다"
韓國은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필자는
작년 6월 訪韓했을 때, 위안부 문제를 담당한
바 있는 韓国의 前외교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이면 日本 정부로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다음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韓国도, 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韓国은 물론 日本 내부에서도 국가 차원의 배
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 점은
무라야마(村山) 前수상조차 당시 국회에서
<(국가차원의 배상은) 이미 끝났다> <日本의
입장을 겨지해 나가겠다>며 했을 정도다.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가 강제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발을 내딛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담화 발표 5개월 前인 1993년 3월, 韓国의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같은 표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을 日本側에 요구하지는 않겠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당시 前위안부에 대한
생활지원 등도 韓国정부의 책임하에 실시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여
'미야자와'(宮沢) 당시 수상은, <강제>의
정의를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까지도 넓혀서 포함하는 등의
방향으로 담화 작성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3월) 韓国 외교부의 간부는 日本
側에게,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언급한
발언의 진의(眞意)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과거사'에 관한 문제가 韓國에서
제기될 때마다 日本側에게 뭔가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가 들어간 것으로서 용기 있는
발언이다>.
<(한국 정부는) 日本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통례(通例)가 되어 왔는데 이제 시대도
변하고 했으니 日本에 대한 보상 요구는 더이상
韓国정부의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책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서 이것이 대통령의
본심이다>
당시 이러한 韓國側의 설명은 수긍이 갈 만한
내용들이다. 韓國은 당시의 이러한 점을 참조
하여 위안부 문제는 日本에게 뭔가를 요구해
서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했으면 한다.
■ '反日'을 이용하는 대통령
韓国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위안부 문제로 日本을 비난한 이명박(李明博)
前대통령도, 그 이전인 2011년 10월의 '노다'
(野田)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 때에는 이렇게
말했었다.
<역대 韓国의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가면,
'反日'을 이용하면서 지지율을 올리려는 식
으로 많이 해왔다. 나는 그런 일은 안할 것
이다>(2013년 10월29일자 요미우리 신문
조간 '노다' 前수상 인터뷰 기사)
동일한 인물도 이렇게 태도가 싹 바뀌어 버
릴 정도니, 韓国의 외교를 향해 계속성(継続
性)이나 일관성(一貫性)을 바라는 것은 무리
일지도 모른다.
'아비루 루이'(阿比留瑠比, 정치부 편집위원)
산케이(産經)신문 '아비루 루이'(阿比留瑠比, 정치부 편집위원) 칼럼
※ 타당성 각자 판단.
2015. 2. 19. 산케이(産經)신문
韓国의 박근혜(朴槿恵) 대통령은 13일, 韓国을
방문 중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과
회담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日本 정부가
속히 <납득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역시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양국간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에 대해 日本 정부는
지금까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수상의 사죄 편지를 보내는 등 최대한
노력을 다해 왔다.
근거도 없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8월의 고노 관방장관 담화도 양국
관계를 고려한 <선의(善意)> 측면이 강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을 포함한 역대 수상은 위안부의 처지에
대해 깊은 동정(同情)의 뜻을 표해왔다.
■ "韓國도 모른다"
韓國은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필자는
작년 6월 訪韓했을 때, 위안부 문제를 담당한
바 있는 韓国의 前외교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이면 日本 정부로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다음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韓国도, 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韓国은 물론 日本 내부에서도 국가 차원의 배
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 점은
무라야마(村山) 前수상조차 당시 국회에서
<(국가차원의 배상은) 이미 끝났다> <日本의
입장을 겨지해 나가겠다>며 했을 정도다.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가 강제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발을 내딛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담화 발표 5개월 前인 1993년 3월, 韓国의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같은 표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을 日本側에 요구하지는 않겠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당시 前위안부에 대한
생활지원 등도 韓国정부의 책임하에 실시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여
'미야자와'(宮沢) 당시 수상은, <강제>의
정의를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까지도 넓혀서 포함하는 등의
방향으로 담화 작성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3월) 韓国 외교부의 간부는 日本
側에게,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언급한
발언의 진의(眞意)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과거사'에 관한 문제가 韓國에서
제기될 때마다 日本側에게 뭔가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가 들어간 것으로서 용기 있는
발언이다>.
<(한국 정부는) 日本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통례(通例)가 되어 왔는데 이제 시대도
변하고 했으니 日本에 대한 보상 요구는 더이상
韓国정부의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책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서 이것이 대통령의
본심이다>
당시 이러한 韓國側의 설명은 수긍이 갈 만한
내용들이다. 韓國은 당시의 이러한 점을 참조
하여 위안부 문제는 日本에게 뭔가를 요구해
서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했으면 한다.
■ '反日'을 이용하는 대통령
韓国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위안부 문제로 日本을 비난한 이명박(李明博)
前대통령도, 그 이전인 2011년 10월의 '노다'
(野田)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 때에는 이렇게
말했었다.
<역대 韓国의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가면,
'反日'을 이용하면서 지지율을 올리려는 식
으로 많이 해왔다. 나는 그런 일은 안할 것
이다>(2013년 10월29일자 요미우리 신문
조간 '노다' 前수상 인터뷰 기사)
동일한 인물도 이렇게 태도가 싹 바뀌어 버
릴 정도니, 韓国의 외교를 향해 계속성(継続
性)이나 일관성(一貫性)을 바라는 것은 무리
일지도 모른다.
'아비루 루이'(阿比留瑠比, 정치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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