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김기종' 옹호나선 '從北세력' 발언 모음

"김기종 대표를 윤봉길 의사나 안중근 의사와 같은 열렬 애국자로 칭송하는 경우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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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 시기: 2005년 9월


▲ “(박근혜) 대통령께서 '익산 테러' 당시 침묵 대신 지금과 같은 지시를 내렸어야만 했다. 만일 그랬다면 이번 美 대사 폭력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은미, 2015년 3월6일 자신의 SNS 中)

▲“물리적 가해자인 김기종 대표를 무조건 질타하고 주한미국대사를 동정하는 반응들이 있는가하면 이 같은 사건들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를 꼼꼼히 따진 바탕에서 우러나온 반응들 가운데에는 물리적으로 공격한 것은 찬성할 수 없으나 가해자가 외쳤던 구호들과 염원들은 우리민족 온 겨레가 바라고 있는 소원들을 가해자가 모두를 대신하여 국내외에 널리 외쳐주었다는 반응들이다. (중략) 또한 일부는 김기종 대표를 윤봉길 의사나 안중근 의사와 같은 열렬 애국자로 칭송하는 경우들도 있었고, 그리고 비폭력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것으로 아무리 노력하여도 되지 않는 경우에는 마지막 수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들도 적지 않았다” (北 문화공작원 노길남이 운영하는 미주지역 從北매체 <민족통신> 2015년 3월6일자 보도)

▲ “지금 美 대사 테러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얼굴에 상처가 조금 났다고 합니다. 익산에서는 수십 명이 죽을 뻔 했습니다. 그 현장에 아내가 있었습니다. (중략) 사죄하고 절하고 美 대사한테 이런 짓거리들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윤기진, 利敵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前 의장, 2015년 3월9일 ‘통일인사 황선대표 첫 재판에 즈음한 기자회견’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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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거사를 했더라고요, 안중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때 침략했던 사람들이 안중근을 예뻐했을까요?” (김수남,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의장, 2015년 3월10일 TV조선 보도)

▲ “소모임할 때 김기종 왔던 일은 있어요. 어쩌다가 와서 뒷자리에 와서 보고 갔으니까 얼굴은 알지. 그 사람이 행동이 소영웅주의자야.” (간첩출신 김낙중, 2015년 3월10일 TV조선 보도)

[해설]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

利敵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前 의장 출신의 윤기진은 현재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공동의장으로 신은미와 함께 ‘종북콘서트’를 진행한 황선 前 민노당 부대변인의 남편이다. 윤기진이 주도하는 민권연대라는 테러범 김기종이 이끄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와 함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에 속해 있다.

김낙중은 1955년 월북(越北) 후 남파되어 36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며 북한에서 총 210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다. 김낙중은 북한으로부터 1991년 10월 ‘김일성 공로훈장’, 1991년 12월 ‘민족통일상’을 받았으며, 김일성이 특별히 보낸 산삼과 녹용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김낙중이 연루됐던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은 건국 이후 최대간첩사건으로 분류된다.

수남(前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이 의장으로 활동하는 利敵단체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는 과거 맥아더 동상 철거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로 利敵단체 범민련 남측본부의 외곽단체이다.

연방통추를 결성했던 강희남(목사) 前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2009년 6월6일 자신의 방에 “이 목숨을 민족의 재단에”라고 적은 붓글씨 1장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A4 용지 1장의 遺書(유서)를 남긴 뒤 자살했다.

遺書는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내용이었다. 강 씨가 사망하자 당시 민주당(現 새정치민주연합), 민노당(舊 통합진보당 前身)은 강 씨의 자살에 대해 哀悼(애도)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는 2004년 7월29일 라는 인터넷 매체와 親北사이트 <민족통신> 등에 게재한 ‘탈북자 소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 覇權主義(패권주의) 세계에서는 核무기가 말을 한다. 核이 없으면 주권도 지킬 수 없다. 核은 주권이다. 以北(이북) 내 조국이 核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양키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 그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8월10일 에 실린 ‘저 불량배 부시를 생각한다’는 글에서는 “북조선은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정치리념과 철학이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것은 김일성 수령의 ‘永生(영생)주의’이며 또 金正日 위원장의 ‘先軍(선군)정치’ 리념이다. 북조선이 약하고 가난한 나라로 보이지만 그들이 세계 최강 아메리카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신력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미사일과 核은 그들의 정신력의 상징물이다. 核은 주권이다. 남조선과 달리 북조선은 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권국가로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일성 주석의 ‘영생주의’와 김정일 위원장의 ‘先軍정치’ 리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강 씨는 5·16이 발생하자 주민증을 찢은 뒤 40년간 참정권을 포기했다가 2002년 대선 당시 “이번 만큼은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며 주민증을 다시금 만들기도 했다. 그는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北(북)에 弔問(조문)간다, 길 비켜라”는 글을 들고 조문을 강행하다 문산 근방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강 씨가 사망하자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前身)은 아래와 같이 브리핑을 내놓았다. 

“평생을 우리 민족의 통일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온 흰돌 강희남 목사가 영원히 떠났다. (중략)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중략) 생전 당신이 몸소 실천함으로 깨우쳤던 그 가르침대로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갈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동영 前 상임고문은 강희남이 사망하자 2009년 6월7일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강 목사께서는 불의 앞에 불꽃같이 살다가신 분이다. 특히 민족문제를 가슴아파하고 분단의 벽을 허물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분이 세상을 떠나가기 전 남긴 글을 온 국민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숭고한 정신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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