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는 의자보다 못한 박정희 의자

*오는 4월30일(토) 오후 2시 조선일보 광화문 빌딩 9층 강당에서 [조갑제의 월례 현대사 강좌-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있습니다. 연락처는 02-724-6845. 아래 글은 [趙甲濟의 朴正熙 傳記-'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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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5월16일의 군사혁명으로 최고 권력자로 변한 朴正熙 소장은 그러나 소박한 인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육사생도들을 혁명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데 일역을 맡았다가 박정희의 경호원이 된 육사 11기 이상훈(전 국방장관)대위는 광주에서 열린 혁명지지 대회에 참석한 박 의장을 수행하여 작은 호텔에 들었다.

한밤중에 호텔 문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화장실을 겸한 세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李 대위가 가보니 朴正熙가 양말을 빨아 줄에 널고 있었다. 양말을 한 켤레밖에 신고 오지 않아 밤에 몰래 나와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李 대위에게 들킨 박정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박정희의 양말과 관계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5·16 당시 국무원 사무처 보도과장은 국방부 보도과장 출신 이용상이었다. 혁명정부하에서는 공보부의 보도처 보도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가 9사단 참모장일 때 그 밑에서 정훈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용상 시인은 계급을 떠나서 박정희 집안과 인간적으로 친밀했다.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이용상에게 박정희 의장과의 기자회견을 주선해달라고 졸랐다. 이용상은 장충동의 의장 공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육영수가 받았다. 박 의장이 언제 돌아온다는 것만 확인했다. 이용상은 중앙청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무턱대고 장충동으로 갔다.

박정희는 외출에서 돌아오더니 발을 씻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회견 장소에 나와 의자에 걸터 앉았다. 이낙선 소령이 호주머니 속에 양말을 넣고 와서 박의장에게 귀엣말로 '사진기자들도 왔으니 양말을 신으시지요' 라고 했다. 박정희는 큰 소리로 '발은 찍지 말라고 해!'라고 하면서 끝까지 맨발로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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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 동기생인 김병희는 최근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친구 박정희를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최고회의 의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속 을 방불케 하였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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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사건 직후 당일 朴대통령의 시신을 만졌던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 줄 몰 랐는가'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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